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400
399장. 치외법권 (1)
“지금 당장 장관들 소집해! 빨리!”
“아, 알겠습니다!”
“으으으으…. 내가 술을 끊던가 해야지.”
사하 공화국 대통령 뱌체슬라프는 헬기에 타자마자 목을 만졌다.
푸틴이 누구인가를 잠시 잊어버렸다.
뱌체슬라프도 과거 FSB 조직 소속이었다.
여러 추천이 있었지만 과거 속했던 연방보안국 경력이 컸다.
그 때 들었던 푸틴의 악명.
가장 친했던 친구를 고발하고 직접 총알을 심장에 쑤셔 넣었다고 들었다.
권력을 잡기 직전에 그의 의리를 높이 산 옐친이 푸틴을 FSB 수장에 임명했다.
개방주의를 추구했던 옐친과 달리 소련 보수주의자였지만, 푸틴은 충성을 아끼지 않았다.
대통령이 되고 쿠데타가 발발할 때 푸틴은 그를 지켰다.
경제 위기로 실정을 예상한 옐친은 푸틴을 위로 끌어 올렸다.
실각하면 죄를 추궁당할 게 두려웠던 옐친에게 충성심을 보이는 푸틴은 믿을 만한 집지키는 개였다.
특히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스쿠라토프를 푸틴이 한방에 보내버렸다.
옐친과 가족의 부패를 잡고 공격했던 옛 쿠데타 세력의 선봉장 스쿠라토프.
그를 절친인 푸틴이 안가로 불렀다.
그곳에서 여자를 제공하고 질퍽한 비디오를 찍어 방송국에 뿌렸다.
동시에 FSB 요원들을 투입해 옐친을 보호했다.
1999년 12월 31일 옐친은 푸틴에게 권력을 넘기고 권좌에서 내려왔다.
그 이후 낱낱이 드러난 푸틴의 사냥 실력.
자신을 밀어줬던 언론과 자본가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했다.
러시아를 좀먹던 부패를 단시간에 진공청소기로 청소하는 것 마냥 흡입해 버렸다.
민영기업이 되었던 가스프롬을 비롯해 과거 국영기업 대다수를 강제로 회수했다.
단숨에 러시아 정부 재정이 바닥부터 차올랐다.
과감한 행동에 매료된 국민들은 푸틴을 열렬하게 신봉했다.
동시에 반발하는 언론인들 다수를 직간접적으로 암살했다.
많을 때는 하루에도 기자들 몇 명씩 주검이 됐다.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엘리트 KGB 출신이라 한 치의 실패가 없었다.
정적까지 포함해 그 숫자가 어림잡아 수천 명이 넘어갔다.
보안국을 휘어잡고 있었기에 모든 정보들이 그에게서 하나로 통합됐다.
엄연히 헌법과 법이 존재했지만 푸틴은 21세기 차르가 되었다.
그런 차르의 명을 오늘 어길 뻔했다.
중앙 무대에서 떨어져 지내 정치 감각이 둔해진 탓이었다.
“진짜 그 땅을 다 넘길 겁니까? 언론들이 알면….”
“언론? 그게 공짜야? 어차피 개발해야 할 땅이야. 그리고 명을 거역할 자신 있어? 내일 당장 주검이 되고 싶냐고!”
“아, 아닙니다!”
“기어! 박박! 그가 죽기 전에는 절대 거역하지 마. 네 가족들 모두 이름도 모를 호수에 수장되는 꼴 보기 싫으면!”
“넵!”
정신이 바짝 든 사하 공화국의 무늬만 통치자들.
내일 찾아올 차르의 친구를 대접하기 위해 머리를 박박 굴려야 했다.
***
치이이이잇 치이잇.
고소한 돼지기름이 숯불 위로 떨어졌다.
숲에서 잡은 암컷 멧돼지는 고기가 아주 연했다.
호르몬으로 인해 냄새가 독한 수컷들과 고기질의 차원이 달랐다.
멧돼지들 중에서 고르고 골랐다.
뿔 달린 녹용 재료용 사슴부터 시작해 멧돼지, 늑대, 호랑이까지 봤다.
내공을 사용해 눈길 위를 빠르게 달렸다.
아공간에서 창을 뽑아 들고 숲을 누볐다.
이계에 온 것 같았다.
대한민국은 중국에서 넘어온 미세먼지로 숨을 쉬기 힘들었지만 이곳은 청정 그 자체였다.
북극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은 먼지 하나 없었다.
공업이 발달하지 못한 시베리아 지방이었기에 청정 공기가 유지됐다.
기 또한 이계와 다르지 않았다.
사하 공화국을 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오염된 기는 내공 축적에 방해가 됐다.
이계 말고도 평소 훈련할 곳이 필요했다.
세계 지도를 뒤지다 발견한 이곳 러시아 시베리아.
기온 차가 연간 100도에 달해 사람이 살기에는 척박했다.
넓은 땅에 비해 인구가 적어 사람 마주칠 일도 드물었다.
도시 말고는 평원에 야쿠르인들만 살았다.
성질 더러운 러시아인들 성격을 알기에 미국이나 중국, 기타 세력이 침범하지 못했다.
푸틴에게 돈질한 이유가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자존심에 살고 자존심에 죽는 민족이 러시아인들이었다.
그들 보스와 친구가 됐다.
멧돼지 중에 제일 맛난 놈으로 잡았다.
늑대들 몇 마리와 싸운 흔적도 만들었다.
사냥을 비롯해 상남자 스포츠를 좋아하는 푸틴에게 이만한 어필은 없었다.
멧돼지를 끌고 나타나자 그가 바로 포옹하며 마음을 활짝 열었다.
시나리오는 완성됐다.
“다 구워진 것 같습니다.”
“자네 샤슬릭도 요리할 줄 아나?”
후추와 소금으로 기본 간이 된 멧돼지 꼬치구이.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푸틴이 불을 피우자 경호원들이 샤슬릭을 준비했다.
꼬치구이의 다른 이름.
한국사람 누구나 아는 꼬치엔 맥주가 어울리는 메뉴였다.
굽는 건 간단했다.
멧돼지 고기 중에 비계와 고기가 적절히 퍼져 있는 삼겹살 부위를 준비했다.
적당한 살, 비계, 껍질이 맛의 하모니를 이뤘다.
고기를 푹푹 포크로 찍어 두툼한 고기 안쪽까지 양념이 베도록 만들었다.
야생 벌판에서 먹는 꼬치구이 맛은 그 자체가 천연 조미료를 가미한 듯 풍미가 넘쳤다.
“야생 캠핑이 취미입니다.”
이계 쌩 야생이라 문제였다.
오크와 놀아보면 이곳은 천국 캠핑장이었다.
“그렇지! 남자라면 야생에서 생존하는 법을 알아야지! 내가 왕년에 말이야. 자네 알지? KGB 출신이라는 거? 그때 처음 훈련을 받았는데 여기 사하 공화국의 이름도 모르는 산이었지. 야전 장비 세트만 의지한 채 한 달간 생존했어. 그래도 겨울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여름이라 숲은 우거지고 밤에는 야생 동물들이….”
문제는 이 아재가 투 머치 토커라는 데 있었다.
한국에서 이쪽으로 위명을 떨치는 방찬호 형과 레벨이 비슷했다.
어린 시절 이야기, 군대 이야기, 이제는 KGB 시절 얘기까지 나왔다.
친구 되는 거 쉽지 않았다.
가죽점퍼로 추위를 이겨내는 상남자의 끊이지 않는 수다는 반전 매력이었다.
평소 알던 푸틴은 포장용이었다.
시크하고 도도한 러시아의 두목.
불콰하게 달아오른 얼굴로 혀끝은 한 시도 쉬지 않았다.
주변에 다가오는 이가 없었다.
사하 공화국 대통령과 총리는 지도를 들고 사라졌다.
내일 본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었다.
경호원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기감으로 살펴보니 주변 몇 킬로미터 이내에 상당수 특수 요원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정도 경계라면 인공위성 한 두 대쯤은 이곳을 감시하고 있을 것이다.
제일 가까운 곳에 떨어져 서있는 남자가 들고 있는 007가방은 말로만 듣던 핵가방이 확실했다.
이 거대한 나라가 상남자 중심으로 돌아갔다.
“술안주로 환상입니다.”
핵가방이 안주로는 제격이었다.
술 취한 김에 미친 척하고 지시 내려 핵가방 오픈하면 지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지? 흐흐흐. 보드카 강렬한 너의 인사여. 사모하는 여인의 애달픈 눈물과 같아라~.”
푸틴이 잔을 들고 외쳤다.
이거 지금 시야?
다시 태어난 삶에서 이런 접대자리는 상상도 못했다.
나름 다시 사는 삶에 갑질하고 살고 있었지만 여기서는 철저하게 을이 되어야 했다.
돈으로도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보스였다.
“눈물보다는 키스가 더 어울리지 않겠습니까? 사모하는 여인의 뜨거운 키스와 같아라~.”
“다니엘…. 남자의 인생을 좀 아는군.”
“전 보스가 부러울 뿐입니다.”
미녀가 주변에 널린 푸틴이다.
이혼하고 난 후 과감하게 남자의 삶을 살았다.
우리 둘의 호칭을 다니엘과 보스로 통일했다.
“모스크바에 놀러와. 진짜 남자의 세계를 보여줄게.”
“기쁘게 찾아뵙겠습니다!”
거절하지 않고 화끈하게 대답했다.
이럴 때 빼면 안 됐다.
지난 생에 증권사 비정규직이었지만 가끔 접대를 받을 때가 있었다.
전산처리 하청업체들이 나에게도 술을 쏘는 자리였다.
당시 상황도 사회생활 중 하나였다.
나 그때도 바쁘게 살았다.
정규직 되기 위해 탬버린 겁나 많이 흔들었다.
앞으로 푸틴과 잘 지낼 필요가 있었다.
형! 도와줘!
헬프를 외치면 전투기 타고 올지도 몰랐다.
하지만 절대 야한 비디오는 찍지 않을 것이다.
푸틴의 상대 약점 잡기 고전 수법이 미인계였다.
후에 미국 대통령이 된 트럼프도 푸틴의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었다.
“인생 별거 없어.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수없는 죽음의 위기를 넘고 친구의 심장에 총알을 쑤셔 박았지. 막상 권력을 잡고 보니…. 이것같이 피곤한 게 없어. 차라리 은퇴하고 공무원으로 살다 가는 게 편할 뻔했어.”
가진 자의 의기양양한 투정이었다.
장가 가본 사람들이 결혼하지 말라고 하는 심보와 같았다.
러시아 사회체제는 푸틴 자신만의 민주주의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러시아를 사랑해서….”
다시 한 번 기름칠을 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 다니엘 낮 간지러운 소리 그만해. 사랑? 그래 나 조국을 좋아해. 하지만 사랑과는 별개지. 내가 떠나면 내 밑에 있는 애들 싹 죽어. 그리고 러시아는 정치싸움에 흔들리고…. 미국과 유럽 놈들이 쥐고 흔들겠지. 그게 기분 나빠.”
상남자 보스는 화끈했다.
미사여구는 필요 없었다.
“보스….”
그때 최측근으로 보이는 자가 핸드폰을 들고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그게….”
푸틴 귀에 속삭이는 남자.
“흐음.”
푸틴이 나를 한 번 쳐다봤다.
“알았어. 대기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남자가 물러나고 푸틴이 흥미로운 눈길을 보냈다.
“쥐새끼들이 냄새를 맡고 이곳까지 찾아왔다는데…. 어떻게 해줄까?”
“중국산입니까?”
“흐흐. 홍콩에서 끝장내지 못한 아쉬움이 큰 것 같아.”
“냄새를 잘 맡는 놈들이군요.”
“그쪽 애들이 그래. 과거 영광을 찾겠다고 이상한 짓거리를 많이 벌이지.”
푸틴도 중국인들이 벌이는 일을 알고 있었다.
“특히 러시아산 무기를 좋아하죠.”
푸틴의 아픈 구석을 찔렀다.
적당한 이간질도 사회생활 중 꼭 필요한 필살기다.
“그러니까 문제지. 뭘 팔기만 하면 뜯어서 카피하고 자기 것이라 우기니…. 양심도 없는 종자들이지. 그래서 옛 선조들이 걔들을 무시했어.”
러시아와 중국은 함께 갈 수 없는 운명이었다.
미국에 대적하기 위해서 손을 잡았지만 과거부터 얽힌 악연이 깊었다.
“큰 죄도 짓지 않았는데 저를 죽이지 못해서 안달입니다.”
“리장창의 딸이 예뻤지?”
나에 대해 정보를 많이 캔 것 같다.
“우정 같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런 것 같더군. 그래서 더 그런 것 같아.”
“그게 무슨….”
“리장창의 딸이 임신했어.”
“!!!”
멀리 돌고 돌아서 시베리아 벌판에서 듣게 된 충격적인 클라라 소식.
이래서 하늘 아래 어설픈 인연은 없다는 말이 존재하는 것 같다.
쿵! 하고 심장이 한번 뛰더니 마음은 다시 차분해졌다.
어차피 헤어진 사이였다.
클라라는 결혼한 몸이고 결혼 생활을 하면 충분히 당연한 일이었다.
“동양인들은 아직도 과거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더군. 특히 남녀 관계에서는 더 집요하게 적용되고 말이야.”
“안타까울 뿐입니다.”
“뭐, 난 괜찮았어. 그 사랑 덕분에 내 창고가 두둑해졌잖아.”
참으로 실리적인 보스다.
당사자 앞에서 대놓고 돈 벌었다고 자랑이다.
“보스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 같으면…. 애들 시켜서 깔끔하게 독을 탔겠지. 다니엘도 필요하면 말해. 이번에 새로 개발한 놈인데 무색무취에 시간이 좀 걸려서 천천히 죽는 독이 있어. 아주 효과가 좋아.”
“저도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지만….”
“한국에서 불가능하지만 이곳에서는 가능해.”
“네?”
“몰랐나? 내일 정식으로 계약하고 돈이 지불되면 이곳은 자네의 땅이 될 것이야.”
씨익 웃는 푸틴.
“치외법권.”
그리고 내뱉는 폭탄선언과 진배없는 한 마디.
“아!”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는 면제가 될 것이야. 자네 땅을 허락 없이 침범한 그 누구도 마음대로 죽일 수 있게 된다는 말이지. 그건 내가 주는 선물이야.”
이 보스 무서운 남자다.
내가 구입한 땅의 규모가 작지 않았다.
30,000제곱 킬로미터였기에 경기도의 세 배 정도 크기에 해당됐다.
땅 넓은 러시아였기에 티가 안 났지만 결코 작은 공간이 아니다.
그런 이곳에서 귀족처럼 살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잘 쓰겠습니다.”
시원하게 받아들였다.
혹시 철회할까 봐 바로 오케이를 날렸다.
“물론 석유나 다이아몬드 같은 거 채굴하면 세금은 내야 해.”
“깔끔하게 납부하겠습니다.”
“흐흐. 다니엘은 돈 문제로 속 썩이지 않을 것 같아 마음에 들어. 밑에 있는 녀석들은 돈만 보면 눈이 돌아가.”
친구 관계가 됐지만 냉정하게 우리는 철저한 계산 관계였다.
“그럼…. 직접 처리할 거야? 냄새 맡고 더 많은 쥐새끼들이… 이곳까지 찾아올 것 같은데?”
여전히 흥미로운 시선으로 나를 보는 푸틴.
“놔두십시오. 마법 피리로 한 방에 쓸어버리겠습니다.”
“좋아! 남자라면 그래야지~. 하하하.”
푸틴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건 그렇고 다니엘 헬기나 비행기 몰 줄 아나?”
“자격증은 없습니다만…. 조작할 수는 있습니다.”
“그래? 그럼 헬기 몇 대 하고 비행기 좀 선물할 테니 타고 다닐래?”
자격증 없다고 밝혔음에도 헬기와 비행기를 선뜻 선물한다는 이 아저씨.
러시아에서만 가능한 불법적 대화.
“보스의 선물…. 기꺼이 받겠습니다!”
콜!
# 400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