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561
562. 죄와 벌
“…….”
폭탄이 터진 법정은 진공 상태가 돼 버렸다.
너무 순수한(?) 증인이자 공범들.
감춰온 주범이 법정 안에 자살 폭탄을 던지며 범죄 일체를 자백해 버렸다.
지은재 판사의 얼굴은 심기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달아올랐다.
아무리 어린 청소년에 불과했지만 이건 엄연한 법정 모욕이었다.
전직 국가 수장도 법정에 서면 판사를 향해 고개를 조아리고 예의를 지켰다.
두 주먹을 움켜쥐며 격해진 감정을 조절했다.
좌우배석 판사들의 얼굴도 못지않게 딱딱해졌다.
검사 황준혁은 반쯤 넋이 나갔다.
허탈감과 자괴감에 맥이 풀렸다.
사삭 사사사삭.
방청석을 가득 채우고 있던 기자들도 분노에 찬 증기기관차처럼 손을 놀렸다.
아무리 십 대 청소년이어도 이건 아니었다.
수첩을 넘겨 가며 쉼 없이 움직이는 기자들의 손.
스윽.
그 틈에 바쁜 걸음으로 재판정 밖으로 사라지는 몇 명의 기자들.
특종도 이런 특종이 없었다.
연대 그룹 4세와 사회 상류층 자제들의 범죄.
그것도 여성을 폭행하고 무고한 학생에게 범죄를 뒤집어 씌웠다.
아침에 급속도로 퍼졌던 호소문 내용 일체가 사실로 드러난 셈이었다.
죄를 뒤집어쓴 이영진의 여동생 말이 정확하게 맞았다.
“부장님! 특종입니다!”
“빨리 지면 빼세요!”
“인터넷 판에 먼저 올리십시오!!!”
재판정 밖에서 소리치는 기자들 목소리가 법정 안까지 들렸다.
“이 X새끼들아! 니들이 뭔데 지랄이야! 우리 할아버지가 누군 줄 알아? 연대 전문수 회장이야! 나 이렇게 만들고 니들 무사할 것 같아? 다 죽었어. 니들 가만 두지 않을 거야! 다아아아아!”
이성을 잃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전동국.
눈동자가 획 돌아간 전동국은 이미 똥오줌을 못 가리고 막 싸지르고 있었다.
증인석에서 벌떡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며 어린아이처럼 할아버지를 찾았다.
멘붕 상태라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온갖 갑질에 노출된 채 살아서 정신력도 바닥이고 인성도 바닥을 쳤다.
“이라와! 이 개…….”
쫘아아아악!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전동국이 변호인 장태산을 향해 달려들었다.
찰나의 순간 전동국이 주먹을 휘두르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 법정에 울려 퍼진 찰진 마찰음.
콰다다당.
장태산이 들어 올린 손에 정통으로 뺨 싸다귀를 맞고 개구리처럼 법정 바닥에 나가떨어진 전동국.
“경위 지금 뭐하고 있는 겁니까!”
지은재 판사가 기립해 있던 경위를 향해 소리쳤다.
타다닥.
오늘 방청객이 많아 잔뜩 긴장하고 있던 법정 두 명이 달려들어 전동국을 붙들었다.
“놔! 놓으라고! 이 거지 같은 새끼들아!!!”
엎어져 제압당한 채 발버둥 치는 전동국.
“미성년자지만 본 법정을 모독했습니다! 바로 감치하세요!”
한기가 느껴질 만큼 싸늘하게 명령하는 지은재 판사.
법정경위들이 전동국을 질질 끌고 나갔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짐승 새끼가 울부짖었다.
“신성한 재판정에서 무리를 일으킨 점 죄송합니다.”
장태산이 판사들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법정에서 난동을 부린 현행범에 대한 정당방위였음을 인정합니다.”
판사가 그렇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다.
“그럼 피고 이영진에 대한 마무리 변론에 들어가겠습니다.”
장태산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자신은 죄가 없음이 밝혀지는 상황을 지켜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이영진.
조용히 그 옆에 국선변호인 장태산이 섰다.
“세계인권선언문 제7조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며 어떠한 차별도 없이 법의 동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이 선언에 위반되는 어떠한 차별과 그러한 차별의 선동으로부터 동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미치 강단에 선 인권교수처럼 변호인석에 서서 말하는 장태산의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단단한 기세가 법정 안의 공기를 쥐락펴락했다.
한마디 한마디에 서릿발 같은 정기가 담겼다.
다시 법정은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우리 헌법 제 11조에도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이나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어떤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2항에는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 할 수 없다.’ 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 변호인은 이번 재판에서 대한민국 법치 체계의 위기와 국가의 직무유기를 똑똑하게 목격했습니다!”
장태산의 목소리에 담긴 진실한 분노가 뜨겁고 절절하게 재판정에 흘렀다.
“여기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어린 소년을 보십시오. 아무 죄 없이 구치소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한 채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헌법에서 분명히 금지한 사회적 특수계급에 의하여 이제는 입에 담기에도 구차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억울한 누명을 쓴 겁니다. 동시에 누가 봐도 불합리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차별까지 받았습니다.”
증인의 탈을 쓴 범죄인들 아버지들이 가한 차별을 신랄하게 역설하는 장태산.
“언제까지 우리는 이러한 폐해를 당하고 살아야 할까요? 오늘은 여기 이영진 피고에게 닥친 불행이지만 내일은 이곳에 있는 누군가에게 닥칠 억울한 운명이기도 할 겁니다.”
기자들이 장태산의 말을 빠르게 받아 적었다.
그의 말을 곧바로 기사에 실어될 만큼 명문이었다.
“모든 국민이 법 앞에서 평등하게, 그 어떤 차별도 받지 않게 하기 위해 사법 시스템에 권한을 위임했지만 과연 기대한 만큼 정의로웠을까요?”
장태산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누구 하나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오직 변호인에게만 허락된 최후 변론 자리.
입 밖에 내지 않을 뿐 이 자리에 있는 누구나 그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 다 답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저를 비롯해 재판부, 그리고 여기 계신 여러분 모두가 평생 끌어안고 풀어가야 할 숙제임이 분명합니다.”
차분해진 장태산.
재판정을 향해 몸을 돌렸다.
지은재 판사와 배석판사들과 눈이 마주쳤다.
판사들의 표정은 결언했다.
자신들이 품고 있던 양심을 깨우는 사법연수원 후배의 따끔한 충고였다.
전혀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았고 고깝게 생각되지도 않았다.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할 법관의 대명제.
“지금까지 밝혀진 명백한 모든 증거와 범죄행위자의 자백에 의거하여 이 사건의 국선변호인 장태산은 피고 이영진의 무죄선고와 즉시 석방을 존경하옵는 재판부에 요청하는 바입니다!”
조용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변호인의 최후변론.
지은재는 후배로서의 장태산을 똑바로 바라봤다.
단 한 번의 기일에 경찰과 검찰 측이 짜놓은 모든 증거자료를 뒤엎어 버린 진정한 국선변호인.
더 물어볼 것 없었다.
“검사 측, 피고 측 변호인 말에 동의합니까?”
지은재는 ‘동의하겠습니까’도 아니고 ‘동의합니까’로 의견을 물으며 압력을 넣었다.
검사가 부동의 하면 선고기일을 따로 잡아야 했다.
하지만 검사가 그렇게까지 머리가 안 돌아가는 자는 아니었다.
“……동의합니다.”
충격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황준혁은 입장이 난처해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변호인 말에 반격할 거리가 없다.
법정에서 증인이었던 당사자가 스스로 범인임을 자백했다.
이 사실을 뒤집을 증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방청석에는 기자들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이미 핫 이슈라 오늘은 법정에서 벌어진 모든 상황이 기사화 돼 전국민에게 퍼질 것이다.
‘끝났네……. X발.’
오늘 재판이 검사 경력에 오점으로 남겨질 것을 황준혁은 잘 알았다.
바로 내년에는 수도권이 아닌 지방 한직에 앉아 벌금 사건이나 다룰 게 뻔했다.
멀어져 버린 검찰총장의 꿈.
멀어진 꿈만큼 욕망이 사그라지자 차라리 마음이 평안이 찾아왔다.
“2012고합 271호 특수강도 사건 심리기일을 종료합니다.”
지은재 판사가 준엄한 눈빛으로 마지막 재판을 향해 달렸다.
지은재 판사는 좌우 배석 판사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본 재판부는 여러 증거와 범행실행자의 자백에 의거하여 피고 이영진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땅땅땅.
망치를 세 번 내리치며 무죄를 선고하는 지은재 판사.
형사 사건에서 보기 드문 기일 선고였다.
“와아아아아!”
“그래야지. 누가 봐도 무죄인데!”
방청석에서도 환호가 터졌다.
지켜보던 기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양심과 이성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더럽고 치졸한 상류층을 향해 한 방 먹인 판결에 속이 다 시원해졌다.
“이영진 학생…….”
“네……. 판사님……. 흐으윽.”
그 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 이영진은 줄줄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훔치며 판사를 바라봤다.
누가 봐도 앳되고 순수한 눈빛을 가진 학생.
더럽고 치졸한 악마들이 친 덫에 걸렸다 이제야 벗어났다.
“억울한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시킨 것에 대해 대한민국 사법부와 국가기관을 대신해 미안함을 전합니다.”
지은재 판사가 이영진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판사라는 직책을 떠나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의 위로였다.
남의 자식이지만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장태산의 말처럼 오늘은 이영진이라는 힘없는 어린 학생이 당했지만 내일은 누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될지 몰랐다.
까마득한 기득권이 아닌 이상 판사 신분도 위험한 세상이었다.
“아닙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고개를 숙이는 이영진.
“검사님. 이 사건에 관해 진범이 밝혀졌으니 후속 조치 부탁드립니다.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장태산 국선변호인……. 수고했습니다.”
“재판부에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평소 형사법정과 어울리지 않는 따뜻한 말들이 오갔다.
방청석 기자들의 입가에 훈훈한 미소가 번졌다.
“재판을 종료하겠습니다.”
“모두 기립해 주십시오!”
지은재 판사를 비롯해 법관들이 먼저 퇴장했다.
“혀여여여영! 우아아아아아아앙!”
긴장이 풀린 이영진은 자신을 변론해 준 국선변호인을 끌어안았다.
형이라 부르며 품에 안겨 애처럼 울음을 터트린 영진이.
그 모습을 지켜본 몇몇 기자들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래. 영진이 수고했다…… 이제 집에 가자. 할머니하고 한나가 기다려.”
“네……. 저 이제……. 집에 갈래요……!”
이영진은 눈물을 흘리며 환하게 웃었다.
***
“어메……. 내 새끼……. 고생했다이…… 삐쩍 말라부렸나…… 아이고…….”
연신 아이고 소리를 하며 점례 할머니가 영진이를 껴안았다.
“할머니…… 엉엉……. 엉.”
영진이가 큰 소리로 울음을 토했다.
“오빠…… 고생 많았어.”
한나가 본인보다 작은 키의 오빠를 안아줬다.
얼싸안은 세 사람.
보기가 심히 좋았다.
“선상님 이 은혜를……. 어찌해서 갚아야 할지…… 나가 죽어서라도 꼭 갚겄어라…….”
“아닙니다. 충분히 대가를 받았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건 아니지라……. 니들 선상님이 부모님이라 생각허고 앞으로 목숨맹키로 모시라. 짐승이 아니라믄 그리 살아야 헌다!”
“네! 할머니!”
“형……은 제 생명의 은인이에요. 저 유죄판결 나면 확 죽어버리려고 했어요.”
싹싹한 동생이 둘이나 더 생겼다.
이 역시 전생의 인연.
영진이가 무죄 판결을 받는 순간 엄청난 카르마 포인트가 쏟아졌다.
악마 새끼들은 여론 폭풍에 바로 긴급 체포됐다.
인터넷은 예상대로 난리가 났다.
방청석을 채웠던 기자들이 저마다 쌓였던 그간의 분노를 이번 사건을 개기로 글로 쏟아냈다.
살짝 흘려준 정보에 설탕 소금 등 각종 양념을 적절히 섞어 기사화했다.
계획적으로 한나를 강간하려 했던 사건도 수면위로 드러내 고소했다.
전동국은 천하의 개 쓰레기가 됐다.
연대 제품들에 대한 불매 운동이 삽시간에 번졌다.
정치권에서도 마제국 의원에 대한 성토가 빗발치며 일어났다.
아쉬웠다.
올 초에 이런 사건이 있었다면 여당에 타격을 입혔을 것이다.
이 역시 하늘의 뜻이라 여겼다.
아직 각성되지 못한 국민들이 많았다.
“영진아, 니가 질로 좋아하는 감재 쪄 놨다. 어여 먹자. 선상님도 드시소.”
두부 대신 고구마가 영진이를 반겼다.
“네! 잘 먹겠습니다!”
집에 도착 전 미리 영진이에게 말해 놨다.
할머니 몸이 편찮으셔서 당분간 우리집에 머물기로 했다고 말이다.
나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된 영진이는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 하나 드세요.”
“오빠~ 제가 깐 거 드세요~.”
영진이와 한나가 고구마를 하나씩 까 건넸다.
“잘 먹을게.”
이들과 함께 있으니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졌다.
서로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
“할머니, 맛있습니다!”
“선상님 신지랑 드시소.”
“전 사이다요!”
영진이가 사이다를 찾았다.
“오빠 여기~.”
한나가 1.5리터 사이다 병을 가져와 내려놨다.
“크으으!”
거하게 한 잔 마시고 트림을 하는 영진이.
“구치소에서 사이다가 가장 먹고 싶었어요. 속이 답답할 때는 사이다가 최고잖아요.”
영진이가 큰 잔에 사이다를 다시 채우며 해맑게 웃었다.
“영진아. 사이다 너무 좋아하지 마라. 사이다는 많이 먹어도 계속 목말라~.”
“그래도 전 사이다가 좋아요. 순간이라도 속이 뻥 뚫리잖아요. 헤에에.”
순박하기 그지없는 영진이.
녀석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띠리리리리.
그때 요란하게 울리는 스마트폰.
낯선 번호다.
띠릭.
통화 버튼을 눌렀다.
“누구십니까?”
– 장태산 대표. 나…… 전문구라고 하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