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62
663장. 저주와 용서는 종이 한 장 차이.
‘뭐지? 왜 날 저런 시선으로…….’
바바라 에브가일은 존경하던 베토벤 재림자의 경악에 찬 시선에 의문이 들었다.
큰맘 먹고 연주를 부탁했다.
베토벤 재림자가 작곡했다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악보가 얼마 전부터 떠돌았다.
한국의 음대 교수가 연주를 시도하다 절망하며 퍼트렸다는 악보.
수많은 연주자들이 베토벤 재림자에게 도전했다.
화질 나쁜 구형 핸드폰에 남겨진 동영상이지만 재림자의 연주 기교는 정말 대단했다.
저음과 고음을 거침없이 넘나들며 화음의 조화를 이뤘다.
벼락 치듯 피아노 건반을 휩쓰는 손가락.
빠름과 느림이 적절하게 섞인 완벽한 미학.
외모 또한 대단한 미남이었다.
연주에만 심취한 채 몰입해 있는 표정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뮤즈의 재림이었다.
활대를 따라 퍼져가며 내면의 깊은 곳을 자극하는 바이올린 선율들.
연주하는 재림자 주변으로 마치 음표가 떠다니는 환상이 보이기까지 했다.
누구나 따라할 수 없는 독주곡들이었다.
실력 있는 자들만이 겨우 덤빌 수 있는 극에 달한 독주곡.
그 곡을 재림자는 기존의 모든 형식에서 벗어나 연주했다.
한 음 뒤도 짐작 할 수 없는 기묘한 변화들.
베토벤 재림자는 연주자들에게 절망과 동시에 희망을 안겨줬다.
인간으로서 도전하기에 불가능한 영역을 보란 듯이 개척했다.
절대 따라갈 수 없기에 좌절을 경험하게 하는 동시에 재림자는 같은 인간으로서 기꺼이 해냈기에 또 희망을 품게 했다.
클래식 음악계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개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베토벤 재림자.
바바라는 아르바이트로 참석한 오늘 파티에서 엄청난 행운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여성들은 트럼프와 월가의 거물 인사에게만 꽂혀 있었다.
진짜 위대한 거물이 눈앞에 있었지만 알아채지 못했다.
재림자는 의외로 예민하지 않았다.
대화도 잘 통했고 눈빛도 따뜻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 눈치껏 던졌던 연주 부탁.
흔쾌히 수락할 것만 같더니 이내 바바라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모차르트!”
그리고 뜬금없이 그의 입에서 나온 이름 모차르트.
쿵!
바바라는 느닷없이 듣게 된 모차르트라는 말에 그만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이런 증상이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 처음 모차르트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그 이름만 들으면 매번 심장이 두근거렸다.
베토벤이라는 이름에는 이상하게 미안함과 그리움이 샘솟았다면 모차르트라는 이름에는 그 정반대였다.
어린 시절 가난한 부모님이 바바라의 재능을 알아채고 어렵게 음대 전문 교수에게 데려간 적이 있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음악 학교의 교수였던 그는 바바라를 진심으로 환영했다.
그 자리에서 바바라를 테스트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모차르트의 계보를 이을 만한 후계자라는 칭송.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의 어린 바바라였다.
그녀는 교수의 추천대로 모차르트부터 배웠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시간이 흘러도 도무지 실력이 늘지 않았다.
일정 수준이 넘어가면 내면에서부터 모차르트에 대한 거부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기교가 아닌 감정을 담아야 하는 상위 클래스에서는 특히 바바라의 실력이 먹히지 않았다.
교수도 그런 식으로 반복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부드러운 연주 솜씨와 밝은 기운을 담아내는 감정은 모차르트의 곡을 연주하는 데 있어서 필수였다.
하지만 매번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베토벤 스타일로 바꿨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극과 극의 감정선을 요구했다.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의해 바바라는 베토벤을 선택했다.
실력은 더디지만 조금씩 늘었다.
천부적인 재능이 받쳐주지 못했다면 극복하지 못했을 슬럼프.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바바라는 베토벤 스타일의 연주자가 됐다.
교수 추천으로 LA필하모니의 객원연주자로 입단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바바라는 더 이상의 자리에 올라가지 못하고 가끔 정식 단원 결원 시 대타로 불려가는 신세가 됐다.
부모님은 그런 바바라에게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여러 차례 권했다.
그러나 바바라는 그도 거부했다.
파티 아르바이트를 돌며 버텼다.
미래를 알 수는 없지만 마음 한 편에 어느 날 이 벽을 깰 무언가를 만나게 되리라는 기대 같은 게 있었다.
바바라는 그 순간이 오늘이었음을 직감했다.
베토벤 재림자의 연주를 보고 들으면서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친근한 어떤 장소와 인물들, 복잡한 사건이 흐릿하게 계속 떠올랐다.
신들이 산다는 천상계 같기도 했지만 꿈을 꿀 때마다 몹시 배고프고 척박했다.
동료들이 곁에서 맴돌았다.
누구보다 서로를 의지하고 믿으며 배고픔을 견디며 버티던 동료들.
그게 끝이었다.
배고픔과 가난함을 참지 못하고 하늘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에서 늘 깨어났다.
“저…… 모차르트는 갑자기 왜?”
바바라가 모차르트를 언급한 다니엘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재림자의 연주를 직접 보며 부족한 점을 극복하고 싶었던 바바라.
그녀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간절하게 빛났다.
***
– 이게 말이 됩니까? 모차르트는 남자인데 왜 여자로…….
– 말했잖아. 포인트가 부족했다고.
– 네?
– 남자가 여자보다 출생 포인트가 더 비싸.
– …….
베토벤의 설명에 난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직도 신계의 비밀에 대해서는 정보가 부족했다.
좀 더 신계에 대해서 공부를…….
– 카르마 포인트를 사용해 상급신이 되시겠습니까? 쉽게 찾아오지 않는 더블 포인트 적립기간으로…….
됐다고!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사기 대출 전화 같은 알림음의 유혹.
신계 규칙에 대해 궁금하면 포인트라도 써서 신이 되라며 날 부추겼다.
언제나 느끼지만 사이비 약팔이 같다.
– 잠시의 고난을 참았다면 좋았을 것을…….
베토벤이 전생에 모차르트였던 바바라를 쳐다보며 안타까운 목소리를 냈다.
신계에서 모차르트를 향해 뜨겁게 저주를 날리던 모습과는 맞지 않았다.
방금 등장할 때도 놈, 놈 하며 으름장을 놓았던 베토벤.
정작 여자의 몸으로 태어난 모차르트의 영혼을 마주하자 생각이 많아진 듯했다.
베토벤은 요즘 누구보다 잘 나갔다.
과거처럼 포인트가 떨어져 지옥으로 갈 걱정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진이 누님 클럽은 여전히 핫했다.
그곳에서 벌어들인 포인트로 차례로 승급한 음악의 신들.
– 이렇게 될 걸 모차르트가 알았겠습니까.
– 그렇지……. 신도 미래는 모르는 법이지.
베토벤 말이 맞았다.
신탁도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내려지는 추론적 결과에 불과했다.
신화 속의 수많은 신들의 신탁도 틀린 적이 많았다.
인간들의 행동에 의해 끊임없이 바뀌는 인간과 신들의 미래.
신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는 신들의 말이 떠올랐다.
악신이나 선신이나 인간들이 원하는 바를 들어줄 뿐.
신들에게 선행과 악행의 개념은 무의미했다.
대가는 어차피 인간이 치러야 할 과제였다.
포인트를 벌기만 하면 되는 신들에게는 인간 세상은 몇 차례 스펙트럼을 통과한 빛과 같았다.
– 베토벤.
– 말하라.
– 아직도 모차르트가 밉습니까?
– …….
선뜻 답하지 못하는 베토벤.
안타까웠다.
인간으로 환생한 모차르트는 앞으로도 여러 동료 신들의 저주로 인해 어려운 인생을 살다 갈 것이다.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신들의 은원은 신들이 풀어야 하는 법.
다시 한 번 바바라를 바라봤다.
전생의 업식이 모차르트라지만 내 눈앞에 서 있는 여인은 바바라 에브가일일 뿐이었다.
그저 내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열정은 넘치지만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바이올리니스트.
그리고 신계에서 벌어진 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베토벤에게 미안함을 품고 사는 한 인간.
베토벤은 말을 아꼈다.
복잡한 시선으로 바바라, 아니 모차르트를 쳐다봤다.
– 저주와 용서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들었습니다. 피안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악성(樂聖) 베토벤……. 당신에게 저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모차르트는 한때 베토벤의 스승이자 영감을 주는 이였다.
배고픔 때문에 벌어진 배신.
둘 사이의 저주에 마음 아팠다.
– 종이 한 장이라…….
베토벤이 내 말을 곱씹었다.
그의 복잡한 시선은 바바라에게서 쉽게 거두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 시간을 잊어가는 신들의 바다에서 살다보니 미움보다는 그리움이 더 밀려오는구나.
회한 가득한 베토벤의 목소리가 대기 중에 울렸다.
– 기억의 파편이 물고 오는 기억의 잔린들이 교향곡 같구나. 아…… 한때는 사랑하고 의지했던 스승이며 친구여. 널 보며 기다림의 고독을 맛보는구나. 이렇게 마주할 너였다면 지난 세월 그토록 미워하지 말 것을……. 내가 힘들어 지칠 때마다 토닥이던 너의 손길을 기억한다. 그때의 추억을 나의 바다에 품는다. 모차르트. 나의 친구여……. 이제는 너의 길을 가려무나. 내 사랑하는 친구 모차르트여…….
손을 뻗어 모차르트의 뺨을 어루만지는 베토벤.
시 같은 그리움 가득한 베토벤의 독백 속에서 애증이 느껴졌다.
미움과 그리움 모두가 부질없다는 걸 한순간에 깨달아버린 베토벤이었다.
파아아아앗.
베토벤의 몸에서 거룩한 빛이 발산됐다.
– 베토벤이 중급신으로 각성했습니다.
중급신!!!
놀라운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저주의 마음을 거두어들인 베토벤에게 하늘이 선물을 내렸다.
내 일은 아니지만 진심으로 마음이 뭉클했다.
모차르트 때문에 힘들었던 악신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베토벤뿐만 아니라 그들도 모차르트를 미워하고 있을 게 확실했다.
파바바밧.
그 순간 음악의 신들이 한꺼번에 강림했다.
모차르트의 도주로 천막 생활을 하던 그들.
바그너, 라흐마니노프, 푸치니, 베르디, 슈만,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생상 등.
그들은 여러 감정이 뒤섞인 눈빛으로 모차르트의 환생인 바바라를 바라봤다.
– …….
말은 없었다,
짧지만 긴 시간.
그때 누군가의 입이 열렸다.
– 나도 널 용서한다. 모차르트여.
– 너와의 한때 즐거웠던 추억으로 저주를 거둔다.
– 모차르트 나의 친구여……. 이 생에서 우리들이 못다 한 음악의 꽃을 피우기를.
– 동무여……. 내일은 없나니. 오늘을 사랑하며 살아가라.
– 모차르트, 가슴으로 널 품는다.
– 네가 떠났던 자리를 다시 펼쳐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마……. 내 친구여.
– 가난한 친구에게 카르마의 포인트를 허락하노라.
신들이 약속이나 한 듯 미움을 거두어들이고 축복을 날렸다.
그들의 뜨거운 진심이 느껴졌다.
가난했기에 더 미워했었던 배신자.
고단한 인간의 생을 또 살아가야 할 모차르트를 위해 저주를 거두고 위로를 날렸다.
파앗! 파아앗! 파아아앗!
바바라의 몸에서 광채가 터졌다.
웨이터로 일하며 힘들 게 번 포인트를 아낌없이 친구를 위해 투척하는 음악신들의 우정.
촤아아아앗.
바바라의 몸에서 우울하고 어두웠던 기운들이 물러나고 있었다.
– 저주를 거두어들인 음악신들이 단체로 각성했습니다.
– 단체 각성 이벤트에 당첨되어 중급신이 되었습니다.
– 모차르트에게 걸렸던 신들의 저주가 모두 풀렸습니다.
– 모차르트의 음악적 금제가 해제되었습니다.
– 카르마 포인트 축복을 받아 새로운 인생이 펼쳐집니다.
연달아 들려오는 알림음.
입이 떡 벌어졌다.
포인트 몇 푼에 벌벌 떨던 음악신들이 아니었다.
중급신은 광빨부터 달랐다.
유니콘에게도 쩔쩔매던 신은 어디로 가고 성화에 그려진 진짜 신의 모습이 엿보였다.
– 고맙다. 친구여.
– 네 덕분이다. 인간이여.
– 너에게 축복이 임하기를…….
음악의 신들이 나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 신들이 카르마 포인트를 후원했습니다.
– 때 묻지 않은 신들의 축복을 획득했습니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별것도 아니었지만 음악의 신들이 포인트로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파아앗! 팟!
그리고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린 음악의 신들.
베토벤은 세상에서 가장 평안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네 덕분이다. 친구.
더 없이 따뜻한 눈빛으로 날 봤다.
– 제가 아니라 베토벤과 음악신들이 내린 결정입니다. 중급신에 오른 걸 축하합니다.
– 그래서 하는 말인데…….
– 네?
– 앞으로 모차르트 잘 부탁한다. 내가 한때 모셔봤지만 실력은 진짜 끝내준다.
활동하던 시절 호사가들에게 비교를 당했던 베토벤과 모차르트.
죽어서야 서로를 인정하게 됐다.
–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 그래. 부탁해……. 이것저것. 흐흐흐.
뭐지? 저 음흉한 웃음은?
바바라와 나를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번갈아 바라보는 베토벤.
설마!
– 우리 모차르트님 참 예뻐졌어~ 그렇지?
뭔가 음모를 꾸미는 듯한 눈빛의 베토벤.
그의 시선을 따라 바바라를 돌아봤다.
으윽!
예쁘긴 한데 약간 이질감이 느껴졌다.
바바라 에브가일이 아니라 모차르트 에브가일로 보였다.
– 잘 부탁해. 나 급한 일이 있어 간다.
– 또 뭐가 그가 그렇게 급합니까?
저주를 풀어주던 음악신들도 바빠 보이긴 했다.
뭔가 내가 모르는 일이 있는 것 같았다.
– 오늘 예약이 풀이야. 상급신 승급 축하 파티 잡혔다.
– 베토벤! 중급신이 되어서도 계속 웨이터 하시게요?
어이가 없어 물었다.
거룩한 광채에 휩싸인 베토벤과 전혀 매치되지 않는 웨이터라는 직업.
– 직업에 귀천이 어딨어. 그리고 놀면 포인트는 누가 줘? 중급신 품위 유지비용 장난 아니다. 앞으로…… 더 바짝 벌어야겠다!
포인트 확보 의지를 활활 불태우는 베토벤.
웃음이 절로 지어졌다.
아직도 누군가를 향한 저주를 풀지 못한 신들과 인간에게 알려주고 싶다.
저주와 용서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