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768
769장. 왕성 투어.
“거슬려……. 자꾸 거슬려…….”
2014년 2월의 어느 날.
종로에 위치한 NK그룹 회장실에서 조태훈이 인상을 찌푸렸다.
인수한 메모리 반도체는 호황기에 접어들었다.
클라우드 산업을 비롯한 전세계 IT 산업의 발달과 활발한 투자로 메모리 반도체 주가가 치솟았다.
하이넥스는 곧장 그룹 내 효자 계열사가 됐다.
산업은행이 관리하는 동안에도 투자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오정과 비슷한 수준의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배터리 사업도 마찬가지.
엘자와 경쟁하며 일본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다만.
“KI그룹이 흔들리고 있어. 이게 다 장태산의 작업 때문이라니……. 도대체 그 자식 정체가 뭔데?”
부하 직원들에게도 존칭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조태훈 회장의 입에서 ‘자식’이란 말이 튀어나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저 조금 건방진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좀 달랐다.
쓰러진 오정 회장과 연대를 비롯해 재계 총수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장태산.
나이도 한참 어린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룹 인수 수법이 몹시 교묘했다.
심증은 가지만 절대 증거가 될 만한 물증을 남기지 않았다.
세계적 투자자를 등에 업고 잘 익은 맛있는 열매만 똑똑 따먹었다.
특히 장태산이 임명한 안아와 천일, 삼룡, 동룡 등의 대표들은 하나같이 절대 충성했다.
청와대와 정치인들, 무소불위의 깡패들이나 진배없는 검사들까지 바짝 긴장했다.
장태산에 관련해 조금이라도 소음을 일으키면 순식간에 여러 방향에서 외압이 빗발쳤다.
“고자룡 회장이…… 장주시에 갔다 이거지.”
재계 거물들 중에서 가장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는 인물로 평가를 받는 엘자의 고자룡 회장.
그가 어제 장주시로 갔다.
장태산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연구소.
은밀하게 소문이 돌았다.
일반 상식의 이해 범위를 넘어선 초기술 배터리부터 기존에 없던 새로운 신기술이 개발되고 있다는 그곳.
여러 루트를 통해 정보를 획득하려 애써봤지만 보안이 워낙 철저했다.
1000명이 넘는 국내외 연구진이 모여 있음에도 누구 하나 밖으로 정보를 물어내는 자가 없었다.
NK그룹도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장태산이 타 그룹들과 추진하는 사업들이 목에 가시처럼 걸렸다.
추진 사업 대부분이 미래 신산업이었다.
그중 하나를 얻기 위해 고자룡 회장이 직접 움직인 것이다.
“내가 뒤처진 듯한 이 기분은 뭐지? 그 자식이 뭐라고…….”
보기와 달리 탁월한 승부사 기질이 넘치는 조태훈 회장.
동물적 감각으로 하이넥스를 인수했다.
황금알을 낳는 정유사 지분을 아람코에 팔아넘기고 다른 먹잇감을 노렸다.
생각만 해도 입맛이 다셔지는 장태산의 종합 연구소의 신기술.
“만나봐야겠어. 더 늦기 전에…….”
본능이 속삭였다.
어서 장태산을 만나야 한다고.
***
‘너, 넘겨? 엘자를?’
고자룡은 크게 충격을 받았다.
어느 정도 교환 가치를 따져 대비하고 있었지만 장태산의 요구는 생각 밖의 파격적인 것이었다.
선조들이 피땀 흘려 완성한 그룹이다.
다른 기업들과 달리 직원들이나 하청 업체의 눈물이 덜 배인 곳이다.
보국(報國)과 상생(相生)이 기업 이념에 깔려 있었다.
자부심이 있었던 만큼 경영에 있어서도 정도를 추구했다.
그런 엘자를 앞뒤 없이 달라고 요구하는 장태산.
“으음…….”
한 박자 숨을 골랐다.
장태산의 능구렁이 같은 속을 알 수가 없었다.
“농담이지?”
일단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한번 떠보는 고자룡.
“아침부터 회장님 붙잡고 농담하겠습니까.”
“……진담이라면 실망이네.”
올라오는 화를 애써 가라 앉혔다.
전에도 장태산과의 만남 때 이 화 때문에 번번이 일을 망쳤다.
“자리이타(自利利他)라는 말을 아시지요?”
“자리이타?”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다는 말이었다.
부처가 강설한 법들 중 하나라는 걸 고자룡도 알고 있었다.
“엘자를 저에게 넘기면 두루두루 다 편할 겁니다.”
“이해할 수 없네. 장 대표가 엘자를 가져가면 두루두루 편할 거라니…….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인가?”
빙긋.
장태산은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일단 회장님이 편안하실 겁니다.”
“나?”
“골치 아프지 않습니까?”
“뭐가 말인가?”
“말 안 듣는 각 계열사 대표들과 임원, 대주주들을 한 방에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장 대표…….”
위험한 발언이었다.
창업 때부터 고수되었던 가족과 의리 경영.
“아직도 용기가 부족하십니다.”
계속되는 장태산의 도발.
“장 대표. 농담 말고 내 선에서 감당할 수 있는 조건을 말해 보게.”
고자룡은 절실했다.
딸을 팔아 마련한 귀한 자리가 아닌가.
장대국과의 인연이 있어 대화가 매끄럽게 풀렸지만 장태산은 여전히 처음 만남 때처럼 어려웠다.
“회장님은 첫 번째 기회를 놓치셨습니다.”
담담하게 말을 잇는 장태산.
“미안하네.”
“그럼 어쩔 수 없이 차선으로 가야죠.”
“차선은 뭔가?”
나이가 한참 어린 장태산의 리드에 고자룡은 말려들고 있었다.
태어나 몇 번 처해본 적 없는 아쉬운 입장인 을이 되었다.
“물건 보고 선택하시면 됩니다.”
“물건?”
“제 사업 아이템 보려고 오신 거 아닙니까. 해장하시고 구경시켜드리겠습니다.”
‘도대체 저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단 말인가.’
고자룡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장태산의 언변.
고자룡은 차라리 입을 다물었다.
꼬로로록.
어제 다소 과음을 한 탓에 아침부터 요란하게 활동을 시작하는 장.
“가시죠.”
장태산이 앞장섰다.
그리고 그 뒤를 졸졸 따라 걷는 고자룡.
오늘 하루 역시 도깨비에 홀린 듯 보내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
– 마스터. 신분이 확인되었습니다.
안면인식 시스템이 가동됐다.
스르륵.
강화 방탄유리로 제작된 두 번째 성문이 열렸다.
엄마표 콩나물국에 해장을 마치고 나자마자 시작된 왕성 투어.
저벅저벅.
뒤를 따라오는 임윤아와 고자룡 회장, 그리고 고연지.
파아앗.
맑게 부서지는 겨울 햇살을 받고 있는 연구실 한옥이 눈에 들어왔다.
“아!”
“아…….”
“음.”
세 사람이 연달아 경탄을 터트렸다.
자택에서 바로 특수한 경로로 연결된 출입구는 곧장 연구소 메인 건물로 이동할 수 있게 돼 있었다.
“아름다워…….”
임윤아가 깔끔하고 거대한 한옥 건물들을 보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게 다 연구소야?”
고연지도 마찬가지.
“대단하군!!!”
고자룡 회장은 더 놀라는 눈치다.
“회장님, 타시죠.”
입구에 전기 자동차가 준비됐다.
꽤 넓은 부지 위에 세워진 연구 단지라 걸어서는 시간을 장담할 수가 없었다.
“이, 이건 뭔가?”
“일렉이라는 이동 수단입니다.”
골프 카트보다 좀 더 큰 이동수단.
스륵.
터치 한번으로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특수 유리로 제작된 네 개의 문.
크기는 일반 자동차보다 작았지만 승차감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네 명이 이동하기에는 딱 알맞았다.
히터가 따뜻하게 들어왔다.
“운전대는?”
운전석에 앉았지만 운전대가 없는 일렉이를 보며 고자룡 회장이 물었다.
띠리리릭.
그때 중앙에 위치한 20인치 화면에 시원한 그래픽이 등장했다.
속도계와 왕성 네비게이션이 화면에 화려하게 펼쳐졌다.
연구소에서는 이동시 일반 자동차를 사용할 수 없었다.
친환경을 모토로 운영되었기에 대부분 전기 자동차를 이용했다.
– 마스터. 이동 경로를 확인 부탁드립니다.
말 그대로 나는 이 왕성의 주인이자 마스터.
“에너지 기술 연구원 부탁해.”
– 에너지 기술 연구원 확인했습니다. 이동을 시작합니다.
스르르릇.
“음성인식 자율주행!”
2014년에는 혁명적 기술에 속하는 음성인식 자율주행이 눈앞에서 확인되고 있었다.
일렉이 음성에 어울리게 부드럽게 움직였다.
시속 20Km.
– 마스터. 주행 속도는 만족하십니까?
“히터가 약한 것 같아.”
–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쌍방향 대화를 나누며 자율주행차 일렉이 움직였다.
엉덩이가 금방 더 따뜻해졌다.
“이게 무슨…….”
삼룡자동차 연구소에서 제작된 녀석이다.
연구소 내에서 사용하고 있어 형식 승인은 받지 않았다.
한마디로 나의 왕성은 누구도 터치하지 못했다.
“충전은 어떻게 해?”
고연지가 궁금한 듯 물어왔다.
“배터리 전압이 일정 이상 낮아지면 알아서 충전소로 가.”
“뭐라고?”
“로보트 청소기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할 거야.”
“아!”
진동이 거의 없는 전기 자동차.
연구소 곳곳에서 연구원들이 차량을 타고 이동했다.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모든 사용 경로가 통제됐다.
운용 프로그램은 블라드미르 담당.
그 녀석은 사탕 빨아가며 편하게 내가 지시하는 일들을 처리했다.
신을 직원으로 부리는 최초의 인간이 바로 나였다.
“혁명이군……. 이건…….”
고자룡 회장이 감탄한 듯 혁명이란 말까지 했다.
아직 본론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도로가 왜 이렇게 뽀송뽀송해?”
“눈이나 비가 와도 자동으로 관리가 돼.”
“정말?”
“보고도 의심하면 병이야.”
왕성 연구소 보안과 관리는 최첨단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장주시 연구소에서는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특허 회사들의 신기술들이 직접 시현됐다.
“텔레매틱스 기술이 이렇게 발전했다니…….”
그래도 전자 회사 회장님이라고 고자룡 회장의 식견이 제법 남달랐다.
“자율주행차는 피해갈 수 없는 인류의 미래입니다. 고도화 센스, 정밀 지도, 커넥티드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할 겁니다.”
“엘자 연구소도 개발 중이네만…… 이 정도 기술은 없네.”
“아마 그럴 겁니다. 이 연구소에서 개발한 기술들은 기밀이 많습니다. 특히 핵심인 무선통신은 자체적으로 개발한 신호를 사용합니다.”
“5G 정도 되나?”
“후훗.”
대답 대신 가볍게 미소만 지었다.
다 알려줄 수 없는 노릇이다.
“필요하시면 특허를 빌려 가시면 됩니다.”
“정말인가?”
“그런데 아쉽게도 엘자는 자동차 회사가 아니지 않습니까.”
“…….”
고자룡 회장이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개인적인 욕심과 그룹의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에너지 기술 연구원 앞에 도착했다.
스르릇.
차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수고했어.”
– 마스터는 사랑입니다~.
일렉과 제법 대화다운 대화를 나눴다.
“저기…… 지금 자동차랑 사람처럼 감정을 느끼며 대화한 거야?”
고연지가 당황하며 물어왔다.
“응.”
“왜?”
“살아 있으니까.”
“기계가…… 살아 있다고?”
쉽게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연지.
그녀를 바라봤다.
“세상에 죽어 있는 존재는 단 하나도 없어. 말 없는 단단한 바위, 녹슨 쇠, 노후된 시멘트 덩어리도 다 살아 있는 것들이야. 그러니까 존중하고 살아야 돼. 누가 그랬잖아. 암 세포도 생명이라고.”
“…….”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물질세계에 대한 나의 설명에 다들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우리도 죽으면 다 원소로 돌아가. 저들과 다를 게 뭐가 있지?”
빤한 질문에도 다들 대답이 없었다.
“회장님, 들어가시죠.”
손님들을 이끌고 에너지 기술 연구소 안으로 들어갔다.
한식 사괴석 담장으로 외관의 품격을 더한 3층 한옥 건물.
연구소 마당은 멋들어진 소나무가 그 위용을 뽐냈다.
한걸음 앞장섰다.
저벅저벅. 또각또각.
뒤를 따라오는 세 사람.
스르르릇.
나무 문양의 입구가 자동으로 열렸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내부.
“아!!!”
“이건…….”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