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783
784장. 미워도 자식.(2)
“사표를 냈다고?”
“만류했지만…….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
리앤장의 대표 황원석이 전하는 말에 손국중은 대꾸가 없었다.
아들 손대균에 관한 소식을 오늘 들었다.
얼굴 표정이 쉽게 펴지지 않았다.
현역에서 물러나 나무와 난초나 가꾸며 지내던 평안한 일상이 다 깨져 버렸다.
자리를 내맡겼던 아들의 뒤늦은 반항.
짐작했던 것보다 일이 커졌다.
손대균은 미련 없이 리앤장에 사표를 던졌다.
조용히 압력을 가해 아들의 기를 꺾으려 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방금 전 출입국관리소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조금 전 급히 프랑스로 출국을 했다고 합니다.”
손국중이 직접 키운 황원석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직 대법관.
말이 좋아 리앤장의 대표지 사실상 허수아비 신세나 다름없었다.
리앤장을 거치는 모든 결재권은 손국중이 손에 쥐고 있었다.
인사 관리는 물론 자잘한 비용 지출까지 손씨 가문 사람들이 전담했다.
“갈 사람은…… 가야지.”
아들이 손바닥을 벗어났다는데 손국중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어리석은 녀석.’
수십 년 전에도 오늘같이 방황을 하며 갈등을 빚었던 아들.
당시만 해도 문제를 잘 수습하고 뜻대로 따라오나 싶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 때문에…… 집안이 엉망이구나.’
손녀 손유리도 장태산과 엮여 있었다.
믿을 만한 사람들을 시켜 지켜봐 온 터.
아들 손대균이 중간에 알아서 처리하지 않았다면 그때도 손국중이 직접 나섰을 것이다.
손유리는 손국중이 아껴온 또 다른 강력한 패였다.
정략결혼이 예정돼 있었다.
아직은 때가 아닌 만큼 풀어놓고 있지만 조만간 한국으로 불러들일 생각이었다.
“임주혁 회장 일은 마무리가 됐습니다.”
“수고했어.”
“아닙니다. 회장님.”
“황 대표가 당분간 리앤장을 잘 이끌어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알겠지만…… 대한민국 참 문제가 많아.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다들 아귀다툼이야. 그럴 때 리앤장이 중심이 되어 컨트롤해야 돼. 사회가 부드럽게 돌아갈 수 있는 윤활유 역할을 해 온 게 바로 리앤장이야.”
“명심하고 있습니다.”
“장태산에 대한 일은 어떻게 됐어?”
“젊은 친구가 수완이 대단합니다. 법적으로 문제 삼을 만한 틈이……. 사실 비집고 들어갈 수 없게 거의 완벽합니다.”
“내가 힘 써볼 터이니 잘 처리해봐.”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수고했어. 돌아가 일봐.”
“쉬십시오. 회장님.”
손국중의 축객령에 황원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장태산…….”
손국중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보고서 뭉치를 집어 들었다.
장태산에 대한 일목요연한 정보들이 무수히 담겨 있다.
“뒤를 봐주는 놈들이 제법이다만…… 넌 그래봐야 한국인이야. 내가 던지는 코걸이를 한번 피해 보거라.”
손국중은 자신만만했다.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귀계를 통해 현재의 자리까지 왔다.
노련한 정치인이자 우두머리인 그에게 젊은 놈 하나 사건에 엮는 건 일도 아니었다.
다들 장태산에 대해 왈가왈부 말들이 많지만 손국중에게는 한낱 어린애에 불과했다.
삐이잇.
인터폰을 누르는 손국중.
– 넵. 회장님.
대기하고 있던 비서가 냉큼 대답했다.
“금융감독원장. 오후에 들어오라고 그래.”
–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손국중은 장태산을 정리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여보리라 마음먹었다.
형사나 세무 쪽이 아닌 금융 쪽으로 파고들만 한 구석이 제법 눈에 띄었다.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 있는 장태산의 금융 허점.
“재주 한번 부려 보거라.”
손국중은 체스 판을 펼친 듯 첫 번째 내보낼 말을 준비시켰다.
상대가 휘청거리는 순간을 노려 단숨에 목을 쳐버릴 도끼도 손에 쥐었다.
***
‘도대체 무슨 말을…….’
제문환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국가도 사용하기 힘든 몇 조의 자금을 커피 한 잔 값처럼 말하는 장태산 회장.
결코 농담 같지 않았다.
‘미워도 자식’이라는 말이 가슴에 사무쳤다.
제문환에게도 대웅조선은 함께 성장해 온 형제요 애정을 쏟아온 자식이나 진배없었다.
그에 더해 청춘을 다 바쳐 일궈온 인생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대웅조선에 입사했을 당시 부모님은 잔치를 열어줬다.
첫 월급을 받아 빨간 내복도 사드렸다.
첫눈에 반한 와이프도 대웅조선에서 만나 인연이 됐다.
결혼식과 돌잔치, 부모님의 장례식까지 대웅조선 식구들이 함께했다.
그들은 형제처럼 언제나 곁에 있었다.
이제는 대부분의 동료들이 퇴직을 하거나 잘려나간 상황.
그럼에도 대웅조선은 제문환에게 있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절을 함께해온 동반자였다.
“대웅조선은 대한민국에서 키워낸 세계적 대기업들 중 한 곳입니다. 유조선, 컨테이너선, LNG선, 자동차 운반선, 시추선을 비롯해 화학플랜트, 해수처리 플랜트, 군함과 잠수함 등등. 대한민국의 발전을 함께 일궈온 산업 일꾼입니다.”
장태산 회장의 목소리에는 진심어린 힘이 담겨 있었다.
대웅조선에 대해 제문환 못지않게 잘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여러 자회사와 학교까지…… 지역을 먹여 살리는 기둥과 같은 기업입니다. 그걸 한 순간에 날려 버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막아야 합니다.”
“회장님.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큽니다.”
“국가가 위기일 때는 개인들이 나서야 하는 법입니다. 대웅을 방치하면 안 됩니다. 중국이 무섭게 따라오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뒷덜미를 잡히는 순간…… 다시 재기할 수 없습니다. ‘말뫼의 눈물’과 같은 사건이 대웅조선소에서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말뫼의 눈물’이라는 말에 제문환은 손에 힘이 빠짝 들어갔다.
세계적 경제 위기와 불황이 연속되면 그 파장이 덮쳐 휘청거리는 대웅조선.
스웨덴의 대표적인 조선업 도시 말뫼도 경쟁 관계에서 버텨내지 못하고 세상에서 사라졌다.
“믿을 만한 인원들을 충원하십시오. 퇴직자들과 현직에 있는 선후배들 중에서 대웅조선에 반드시 필요한 인재들을 제 대표님 휘하에 두십시오.”
‘진심이다!’
살아서 이글거리는 장태산의 눈빛.
단시간에 추진한 사업 전략이 아닌 게 확실했다.
“특히 연구 설계 분야 인력은 중점적으로 관리하십시오. 핵심 연구원들의 연봉은 지금까지 받아 왔던 연봉의 2배를 보장할 생각입니다.”
“…….”
실로 파격적인 대우였다.
제문환도 중국 쪽 헤드 헌터의 러브콜에 흔들렸던 이유가 그 돈 때문이었다.
연구원들에게 있어 연봉은 곧 자존심과 같았다.
아무리 애국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회사에 모든 걸 바칠 수는 없었다.
“고급 두뇌가 기업의 핵심 가치입니다. 더 이상의 유출을 막아야 합니다.”
‘문제점을 모두 알고 있다.’
제문환은 감격했다.
진심으로 존경심이 일었다.
대부분 투자자들은 기업을 인수한 후 구조조정을 통해 흑자 회사로 둔갑시킨다.
그렇게 만든 후 인수 금액보다 높은 가격에 매각하는 게 수순이었다.
그러나 장태산 회장은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
“투자자는…….”
중요한 문제였다.
대웅조선은 잠수함을 비롯해 각종 군함을 제작할 수 있는 방위산업체다.
외국인이 함부로 삼킬 수 있는 기업이 아니다.
“그 문제도 다 대응 준비가 돼 있습니다. 걱정 마시고 제문환 대표님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도도희 대표를 비롯해 삼우로펌에서 전문가들을 파견해 줄 겁니다.”
연이어 이어지는 지시 내용.
“감사합니다!!!”
제문환의 입에서 감사하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애국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합니다. 도적과 같은 중국은 국유국운(國油國運)을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앞으로 미래 조선업계의 핵심 경쟁부분인 LNG선 건설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2020년까지 LNG선박 30척 이상을 확보하기 위해 인력을 빼 갈 것입니다. ……그걸 막아야 합니다. 오정전자처럼 압도적인 기술로 중국을 제압하지 못하면…… 야금야금 소리 없이 빼앗길 겁니다. 우리도 중국처럼 자국 기업 물동량은 자국선으로 수송하고 자국 선박은 반드시 자국에서 제조할 수 있어야 합니다.”
“!!!”
말을 듣고 있던 제문환의 피가 뜨거워졌다.
평생 자신이 꿈꿔 왔던 대한민국과 대웅조선의 미래 모습.
“2012년부터 중국은 대한민국을 제치고 수주량에서 세계 1위가 되었습니다. 일본처럼 우리도 밀릴 수 있습니다. 반독점으로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실력을 배양해야 합니다. 누구도 믿지 마십시오. 어느 순간 일본은 중국에 기술을 넘길 겁니다. 대한민국이 망하기를 바라는 적들이 사방에 있다는 걸 절대 잊지 마십시오.”
장태산 회장의 목소리에 절절하게 묻어나는 오직 한 가지 감정.
‘애국…….’
제문환은 어린 시절 국기 게양대를 보며 국기에 대한 맹세를 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태극기를 바라보며 애국가를 따라 부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났던 그때 그 감정.
피 속에 숨길 수 없는 한민족의 혼이 흘렀다.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겨레의 혼.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자본 투입입니다. 나머지 부분은 제문환 대표가 맡아 주십시오. 미래 조선업은 인건비 중심 경쟁에서 기술 경쟁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그 점을 잊지 마십시오.”
장태산 회장은 장주시에서 있었던 회의 때부터 기술을 강조했다.
제문환도 중국의 무서운 도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믿음에 결코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대한민국 조선업을 위해 이 한몸 던지겠습니다!”
제문환 역시 장태산이 전하는 애국심에 함께 물들고 있었다.
돈과 명예가 아니 또 다른 가치.
남은 인생에 있어 또렷한 목표가 생겼다.
대한민국 조선업 수호.
마지막 남은 인생을 온전히 불사르기에 이 만큼 자랑스러운 꿈이 없었다.
“부탁합니다.”
거침없이 손을 내미는 장태산 회장.
“회장님……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제문환이 장태산의 두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완벽하게 장태산 회장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첫사랑보다 더 지독한 사랑.
제문환의 얼굴에 희망이라는 붉은 열꽃이 진하게 피어났다.
***
“도망을 쳐? 손 선배님…… 많이 약해졌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제문환 대표와 회의를 하는 사이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프랑스로 여행을 떠난다는 손대균 이사의 문자.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라는 당부를 곁들였다.
통화를 시도했지만 이미 휴대전화는 꺼져 있었다.
철저하게 현실을 회피하고 도주를 선택한 똑똑한 선배.
“손국중……. 어떤 비수로 날 찌르려나?”
머지않아 일송회와의 전면전이 시작될 것이다.
첫 번째 대상은 손국중.
마음 같아서는 조용히 마법으로 후 불면 날아가 버릴 재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 방법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았다.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친일파들의 기세를 꺾어야 했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머물고 있는 혼백이 된 조상과 조상들의 전쟁.
확실하게 뿌리를 뽑기 위해서는 상대의 정신을 먼저 굴복시켜야 한다.
시간이 좀 필요했다.
100년 넘게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친일의 흔적과 그 잔재들은 수많은 한국민들을 오염시켰다.
자신이 어떤 뿌리와 근본을 가진 자를 지지하는지도 몰랐다.
맹목적으로 전해지는 친일파들의 세뇌 방법에 노출돼 그들을 따르는 이들이 많았다.
최종적으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까지 모두 깨워야만 한다.
이 땅에서 태어났지만 암암리에 오염된 그들의 정신까지 깨우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전선 확대다.”
KI그룹 인수와 함께 대웅조선 인수 작업도 함께 추진하도록 했다.
그 과정 중에 보이지 않는 힘의 대결도 펼쳐질 것이다.
그러나 결코 두렵지 않았다.
어차피 예상하고 있던 일련의 사건들이다.
부족한 힘을 기르기 위해 지금까지 잠수하고 있었다.
스윽.
스마트폰을 꺼냈다.
여기저기 전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외부 조력자의 도움도 필요했다.
단축 번호를 눌렀다.
띠이이이이이.
– 보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듬직한 파트너의 목소리가 들렸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로버트 라이언을 만나지 못했다면 많은 일을 혼자 추진하기가 벅찼을 것이다.
이 또한 하늘이 맺어준 인연.
“일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 지시한 대로 모두 준비했습니다.
“KI그룹과 일전에 말한 대웅조선에 대해서도 소송을 바로 진행하십시오.”
– 알겠습니다.
“한 치의 틈도 있으면 안 됩니다. 소송과 함께 월가와 정치권 압력도 동시에 시작되어야 합니다.”
–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로버트의 목소리가 더욱 단단해졌다.
하나를 말하면 둘을 알아듣는 사이.
“믿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보스.
ISDS라 불리는 투자자 국가 직접 소송제도.
내가 새롭게 장착한 무기를 뽑았다.
상대는 감히 상상도 못 하고 있을 전투 방식.
전방위적으로 싹 쓸어 넘기며 적들을 남김없이 베어 버릴 것이다.
그 전투에서 나는 자비를 모르는 무법자가 될 것이다.
– 보스…….
그때 조용히 날 부르는 로버트 라이언.
할 말이 있는 듯했다.
– 보스를 뵙고 싶어 하는 분이 있습니다.
“나를요? 누구인가요?”
로버트 라이언이 직접 말을 전할 정도라면 범상치 않은 인물일 터.
– 바비 로저스 회장입니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