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ake a Bath Together, Duke! RAW novel - Chapter 150
150화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클로드의 손을 마주 꼭 잡았다.
비록 아이작 달튼이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소름이 끼치고 날 보며 웃는 면상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게 대수냐. 내 남자가 날 걱정하는데.
같은 철장 안에 나란히 갇힌 두 사람을 보며 나는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누가 봐도 행복해 미칠 것 같다는 표정으로.
“안녕?”
솔직히 인사 따위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래도 예의라는 게 있잖아.
나는 예의를 운운한 게 무색할 정도로 무례하게 두 사람을 위에서 아래까지 천천히 훑고는 슬쩍 고개를 돌려 감옥의 상태를 확인했다.
카르테인 공작가의 지하 감옥은 전형적인 로맨스 판타지 세계관에 나올 법한 곳이었다.
빛이라고는 벽돌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게 전부인, 차가운 돌로 만들어진 작은 방. 허름한 모포와 이가 나간 컵, 돌바닥 사이에서 자란 풀 틈새로 움직이는 벌레들.
“아…….”
모든 환경을 확인한 후 볼품없이 앉아있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입술 사이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갑자기 두 사람이 불쌍해서?
‘그럴 리가. 내가 겪었던 고통도 고통이지만 이쪽은 인생을 통으로 빼앗길 뻔한 사람이라고.’
나는 곱게 눈웃음을 지으며 느릿하게 입매를 비틀었다. 준비한 것도 아닌데 입에서 자연스럽게 두 사람을 비웃는 말이 새어 나왔다.
“세상에, 나 지금 너무 놀라서 말이 안 나와. 두 사람 다 어쩜 그렇게 그 자리가 잘 어울려?”
“너…….”
“아니, 너무 찰떡같아서 왜 진즉 입주시켜 주지 않았나 후회가 될 정도라니까? 아, 너흰 찰떡같다는 표현을 모르려나?”
핏발이 가득 선 눈으로 나를 노려본 소피아 일라리아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두 사람은 황궁의 감옥에서도 그다지 좋은 대우를 받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냥 분을 못 이겨 감옥 안에서 혼자 난리를 피웠든가.’
잔뜩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딱지가 내려앉은 아랫입술을 보고 있는데, 그녀가 내 쪽으로 달려와 거칠게 철장을 흔들었다.
“내가 네까짓 것 때문에! 너만 아니었어도 난, 나는 지금 이러지……!”
“뭐래. 드디어 정신 놨니?”
“뭐?”
“아니, 다 자기가 해놓고 나한테 난리를 치니까 제정신인가 했지.”
나는 냉소적인 목소리로 일라리아 백작 부인의 원망을 잘라냈다. 아, 이제는 백작 부인도 아니려나?
‘백작이 상심이 커 칩거를 하는 바람에 일이 어떻게 처리됐는지는 잘 모르겠네.’
어쨌든 그 역시 거멓게 죽은 눈으로 아내에 대한 처분권을 넘기는 것에 동의했었다.
나는 경멸을 담은 눈으로 소피아의 발악을 지켜보다 그녀를 향해 손을 들었다. 이게 뭐 하자는 짓이냐는 듯 그녀가 눈썹을 밀어 올렸다.
“아, 별거 아니야. 그냥 네가 자꾸만 주제 파악을 못 하는 거 같아서 친절하게 하나씩 따져 보려고. 혹시 아니? 내가 정말 뭔가를 했을지.”
“주제라고? 지금 나한테 주제나 파악하라고 한 거야?”
“으응, 그래.”
저런, 피해망상까지. 나는 소피아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덤덤하게 엄지를 접었다. 적어도 자기가 무슨 짓을 어떻게 저질렀는지는 똑똑히 머리에 박아 넣어야지.
“어디 보자. 회귀 전부터 세볼까? 음, 결혼한 유부녀면서 다른 남자에게 눈 돌린 사람이 누구지? 별문제 없이 사랑에 빠져서 맺어진 인연을 집안의 보물까지 이용해 찢어놓은 사람은?”
“…….”
“회귀 후로는 남의 인생을 홀라당 뺏어 먹겠다고 미친놈이랑 손잡고 계략을 꾸미고, 말짱히 잘 살던 사람 영혼을 난데없이 분리한 데다가, 어머? 마지막 수마저 전부 실패하니 사랑하는 사람과 신 앞에서 내가 그 사람이라고 거짓말까지 했잖아? 그것도 입에 침 한번 안 바르고.”
하나씩 나열하다 보니 손가락이 부족했다. 나는 그새 주먹이 쥐어진 손을 살살 흔들며 어깨를 으쓱였다.
“세세한 건 세지도 않았는데 벌써 손가락이 부족하다. 그치?”
“…닥쳐. 그 입 닫으란 말이야!”
소피아가 다시금 자신의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딱지가 뜯어져 피가 나는 입술로 그녀가 내게 외쳤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피아에게 의문을 표했다.
“내가 왜? 여기서 그만 추해지자, 소피아. 돌아가신 네 가문의 선조님들이 평안을 즐기시다가도 억울해서 관에서 뛰쳐나오시겠어. 이렇게 쓸데없이 사리사욕이나 채우라고 그분들이 마도구를 가보로 고이고이 모셔놨던 건 아니셨을 거 아니야. 안쓰러워서 어쩐다니.”
“…너, 너어.”
조상까지 소환한 비아냥 때문인지, 소피아는 제대로 말을 잇지도 못했다.
이해한다. 아무리 소피아 일라리아가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라고 해도 자기 가족 욕하는 걸 듣고 있긴 힘들겠지.
게다가 나는 온갖 게임과 소셜 미디어로 부모님의 안부와 관련한 빅 데이터를 접했던 사람 아닌가.
‘재판에서도 그다지 참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보는 이가 아무도 없는 곳이라 그런가?’
오늘따라 유난히 남의 속을 긁는 말이 잘 나왔다. 그렇게 부들부들 떨기만 하는 소피아를 지켜보던 나는 문득 흥미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소피아 일라리아가 감옥에서 나를 본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나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고는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라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그냥 물어보는 건데, 소피아. 너 왜 내 이름 안 불러?”
“…….”
내 말을 들은 소피아가 굳었다.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 것이 전부 거짓이기라도 하다는 듯 그녀의 눈에 초점이 사라졌다. 철장을 흔들던 손조차 내린 그녀가 표정도 생기도 없는 눈으로 나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아주 기이한 질문을 들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거야 너는 이름이 없으니까. 나디아 골드게이트는 나잖아? 넌 어느 밑바닥에서 구르다 왔는지도 모르는 신원 불명의 영혼이고.”
“같잖은 말을 하는군.”
내가 입을 열기도 전 클로드가 차갑게 말을 되받아쳤다.
참다가 못해 나섰다는 건 알지만, 그게 그다지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클로드의 목소리를 들은 소피아의 눈이 그 순간 사랑의 묘약이라도 먹은 사람처럼 몽롱해진 것이다. 주위에 그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소피아가 엉망인 몰골로 계속해서 그를 갈구하기 시작했다.
“아……. 공작님, 공작님, 공작님!”
진짜 미치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치고 있을 때였다. 그녀의 곁에서 나를 계속 눈에 담고 있던 아이작이 나지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소용없을 겁니다. 슬슬 백작 부인의 정신이 오락가락하기 시작했거든요. 마력의 색을 따라 하려다 생긴 부작용입니다. 나디아 님이 보시기에 그리 좋은 광경은 아닐 테니 눈을 감으시지요.”
“걱정하는 척 말 걸지 마. 너한테 물어본 적 없으니까.”
싸늘하기 짝이 없는 말에도 아이작의 눈은 여전히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조금 더 가라앉아 있다 뿐, 소피아와 별반 다르지 않은 눈빛으로 나를 본 그가 상냥하게 말했다.
“하지만 나디아 님은 사람이 말을 걸면 완전히 무시할 성정은 못 되시지요. 결국, 제게 이렇게 말을 걸어주시고 관심을 보여주시지 않습니까.”
“어, 그건 맞는 말인데 넌 정신 안 놨니? 내가 그때 턱을 너무 약하게 쳤나.”
“나디아 님, 저와 백작 부인을 직접 벌하러 오신 겁니까? 그러시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나디아 님께 제 마지막을, 그리고 제 운명을 온전히 쥐여드릴 수 있는 날을.”
“…….”
예상하긴 했지만 질린다, 진짜.
나는 절로 기분이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잠시 눈을 감았다. 온갖 감정으로 소용돌이치는 마음을 잠시 가라앉힐 필요가 있어서였다. 그렇게 다시 눈을 뜬 나는 빈정거림 하나 없이 진지하게 말했다.
“좋아, 이제 확실하게 알겠어. 너희 정말 반성이라고는 조금도 하지 않는구나. 미안하지도 않고, 용서를 구할 마음도 없어.”
갑작스럽게 두 사람을 보러 온 건 맞지만, 그간 생각하지 않고 있던 건 아니었다. 나는 정말로 많이 고민했다. 우리의 명으로 죽는 것마저 달콤하게 느낄 두 사람에게 무엇이 가장 잔인한 벌이 될지.
답은 뻔했다. 너무나도 진부한, 그래서 고리타분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최고의 복수법.
보란 듯이 행복하게 살기.
‘하지만 내 그릇은 내가 가장 잘 알아. 나는 성녀가 아니야. 마음씨가 고와 이대로 두 사람과 선을 긋고 완전히 다른 삶을 살며, 이 모든 걸 악몽으로 치부할 사람도 못 되지.’
내가 받은 고통 중 아주 일부라도 그들에게 돌려줄 수 있다면, 난 고작 그걸 위해 기꺼이 바닥까지 내려갈 거다. 그래서 이곳에 오기 훨씬 전부터 마음먹었다. 두 사람이 보는 앞에서 나의 ‘행복’을 보여주기로.
나는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나 클로드를 보며 벅찬 기분이 들었을 때보다 더 찬란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불렀다.
“클로드.”
“나디아.”
언제나 자신이 곁에 있다는 걸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듯, 클로드가 내게 바로 답을 돌려주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우리에게 꽂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이를 바라보듯 클로드를 바라보며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감쌌다. 내 손길을 느낀 클로드가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상체를 숙여주었다.
콧잔등과 입술, 턱, 더 내려가서는 목에서 쇄골까지. 마치 이곳이 나와 그의 침실인 것처럼 나는 그의 몸 곳곳에 입을 맞추며 애정을 과시했다.
클로드의 입장에서는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을 텐데도 그는 머뭇거림 하나 없이 내게 호응했다.
“아, 읍…….”
안다. 내가 그 두 사람에게 주기로 한 벌이 결코 고상하거나 세련되지 않다는 걸. 하지만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왜냐면 나와 클로드를 보는 아이작과 소피아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일그러져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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