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68
* * *
바위산에 올라간 수르트는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높은 산이 마치 작은 의자처럼 느껴지는 덩치. 그가 올라와 앉자 순식간에 바위산은 활활 타오르는 화산으로 변했다.
고개를 살짝 들자, 시선 끝으로는 붉은 용 하나가 보였다.
“브리트라…….”
수르트의 미간이 구겨졌다.
저 녀석이 왜 여기 있는 걸까.
용족이 자신을 도울 만한 이유가 없었다. 하나, 짐작 가는 바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오딘의 움직임은 잠시 묶어 두지. 하지만 이제 남은 다음은, 무스펠하임의 몰락뿐이다.
어리석은 혼돈.
그 녀석의 짓이었다.
“시간을 번다는 게 이런 뜻이었나.”
브리트라는 용족 중에서도 최상위 개체였다.
제아무리 오딘이라 한들, 그리 쉽게 죽일 수는 없을 터.
더군다나 수백 마리의 레비아탄이라면 오딘의 군대를 막아서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쿵-.
뒤쪽에서 느껴지는 발걸음.
수르트는 산 위에 올라탄 채 고개를 돌렸다.
심상치 않은 기척이 느껴진다 했더니, 딱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너로군.”
어린 거인족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큰 덩치.
사자의 가죽을 머리에 뒤집어쓴 채, 터벅터벅 걸어오는 남자.
“거인 학살자라는 건방진 이름으로 불리는 놈이.”
헤라클레스가 수르트의 앞으로 다가와 섰다.
“스스로 그렇게 부른 적은 없다.”
사자의 가죽 아래로 헤라클레스의 안광이 번뜩였다.
“너희가 부른 거지.”
실제로 ‘거인 학살자’라는 칭호는 다른 누구도 아닌, 거인족이 만들어 낸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헤라클레스는 많은 수의 거인족을 죽였다.
비록 그것이 오해로 인해 만들어진 칭호일지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이름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 녀석이 그랬다.”
유원에 대한 헤라클레스의 믿음은 꽤 깊었다.
“네가 살아 있으면 기간토마키아의 몇 배나 되는 사람들이 죽을 거라고.”
꽈아악-.
헤라클레스의 손에 쥐어진 곤봉에 힘이 들어갔다.
심상치 않은 마력이 대지를 타고 흐르기 시작한다. 발을 딛고 선 땅이 움푹 파이며, 헤라클레스의 몸이 무거워졌다.
“그러니까 널 잡아야겠다.”
꾸득, 꾸드득-.
[거인화]헤라클레스의 몸이 부풀어 오른다.
거인족의 형상과 함께, 심상치 않은 마력이 그의 몸에 깃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오싹, 오싹-.
수르트는 자신도 모를 오싹한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르트는 웃었다.
“시스템에 이런 기능도 있었군.”
이건 자신이 느끼는 공포심이 아니었다.
시스템에 깃들어 있는, 유전자 깊이 새겨지는 공포심.
거인 학살자라는 이름은 수르트마저도 떨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물론.
“가소로워, 아주…….”
그 정도 공포심은 수르트에게는 딱 좋은 경각심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 봤자 이제 막 20위 안쪽으로 랭킹이 진입한 녀석이.”
쿵-.
쩌적- 쩌저저-.
수르트가 일어서자, 바위산이 무너지며 땅이 울렸다.
“감히 내게 도전하다니 말이야.”
수르트는 오딘 외에는 자신의 적수가 없다 여겼다.
헤라클레스라면 거인들의 천적이라 알려져 있었고, 실제로 만나 보니 그 소문이 실감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느 정도 상대와 비슷한 수준이어야 성립되는 이야기일 뿐.
상성이란 차원이 다른 격차 앞에선 무의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영웅 놀이에 너무 심취했구나.”
“놀이가 아니다.”
“……!”
수르트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대체 어느 틈에 돌아온 걸까.
쩌어엉-!
헤라클레스의 곤봉이 수르트의 머리를 때렸다.
지이잉-.
머릿속을 강하게 울리는 충격.
콰앙-!
수르트의 머리가 땅에 처박혔다. 새로운 무기를 손에 넣은 헤라클레스는 휘두른 곤봉을 어깨에 걸치며 말을 이었다.
“정의다.”
* * *
콰앙-!
수르트의 주먹과 헤라클레스의 곤봉이 부딪쳤다.
지이잉-.
주먹을 타고, 곤봉의 단단함과 헤라클레스의 힘이 느껴졌다.
탓-.
헤라클레스가 수르트의 주먹을 딛고 움직였다. 수르트의 시선이 헤라클레스에게로 향하는 그 순간, 헤라클레스의 곤봉이 휘둘러졌다.
쩌엉-!
투화악-!
가슴팍에 곤봉을 얻어맞은 수르트의 몸이 휘청거렸다.
산보다 더 거대한, 그리고 산보다 더 강한 몸을 움직였다. 헤라클레스의 힘은 그 정도였다.
수르트의 입장에서는 저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이런 힘이 뿜어질 수 있는 건지.
실로 놀랍고도 경이로운 힘이었다.
“크으음…….”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수르트가 신음했다.
이런 통증을 느껴 본 게 얼마만인지.
제천대성, 디아블로와의 싸움에서도 이 정도 통증은 느껴 보지 못했다.
부우우웅-.
헤라클레스의 곤봉이 다시금 수르트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저건 위험하다.
처음 한 방의 충격이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헤라클레스의 전투 방식이 지나치리만큼 단순하고 무식하다는 점이었다.
머리를 향해 날아오던 곤봉을 향해, 수르트의 주먹이 뻗어 갔다.
콰앙-!
기이이잉-.
두 힘의 충돌로 인해 소리가 사라진다. 헤라클레스와 수르트가 동시에 뒤로 밀려나며, 균형을 잡기 위해 비틀거렸다.
수르트는 헤라클레스의 손에 쥐어진 곤봉을 바라보았다.
‘보통 무기가 아니군.’
이번엔 애초에 거슬리는 무기인 곤봉을 부서뜨리기 위해 주먹을 휘두른 것인데.
평범한 나무로 보이던 곤봉은 부서지지 않았다. 제아무리 마력을 불어넣어 강화를 한다 한들, 평범한 나무 몽둥이라면 부러지지 않을 리 없었다.
“이그드라실의 가지였나.”
설마 하던 수르트는 이내 확신을 가졌다.
저런 걸 대체 어떻게 아이템으로 만들어 낸 건가 싶었지만, 생각나는 사람이 두 명이 있었다.
이그드라실의 가지를 지닌 오딘.
그리고 헤라클레스의 형제인 헤파이스토스.
두 사람이라면 저런 아이템을 만들어 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자신감의 이유였군, 이게.”
헤라클레스의 힘은 놀라울 정도였다.
단순히 힘 하나만 놓고 본다면 헤라클레스는 수르트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괜히 그가 탑 최강의 육체를 지니고 있다고 알려진 게 아녔다.
거인화 외에는 특별한 스킬도, 아이템도 지니고 있지 않았던 그의 손에 이그드라실의 가지가 들어왔다.
그야말로 호랑이에게 날개가 달린 격.
더군다나 ‘거인 학살자’의 칭호를 통해 최고조로 상성의 우위를 점한 헤라클레스는, 수르트에게도 위협이 되는 상대였다.
‘지금 이 시점에 헤라클레스의 손에 이그드라실의 가지가 쥐어지고, 이곳에 왔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우연일 리는 없다.’
무림계의 격언 중 하나로, 이제는 탑 전체에 퍼진 유명한 말이 있었다.
이 탑에 우연이란 없다고.
모든 게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며, 누군가의 날갯짓으로 인해 만들어진 결과일 뿐이라고.
더군다나 어리석은 혼돈이 그랬다.
-누군가 저보다 더 많은 수를 두고 있습니다. 당신 외에 누군가 불을 가져갈 수 있을 거라고는 저 역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워낙 흥분 상태였기에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말.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힐끗-.
수르트의 시선이 저 멀리서 오딘과 싸우고 있는 브리트라와 레비아탄들에게로 향했다.
나름대로 어리석은 혼돈이 시간 벌이를 해 보겠노라 준비한 모양이지만, 저들은 어디까지나 시간벌이에 지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곳에 나타난 헤라클레스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였으니.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화르륵-.
수르트의 몸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누군지는 몰라도, 판을 기가 막히게 짰어.”
피어오른 불꽃이 수르트의 손안으로 모여들었다.
하늘까지 치솟는 불꽃은 거대한 검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하늘에 자욱이 낀 먹구름을 갈라 낸 불꽃의 검은 수르트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스킬이었다.
“오딘이 오기 전에 네놈을 죽여 주마. 녀석과 네가 합류하는 거야말로 판을 짠 놈이 원하는 바일 테니.”
이제부터 수르트는 진심으로 올 것이다.
이 자리가 라그나로크의 종착지임을, 그 역시 깨달았을 테니.
화르르륵-.
불꽃의 검이 대기를 일그러뜨렸다.
헤라클레스는 피하는 법을 몰랐다.
애초에 그런 싸움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불꽃의 검과 헤라클레스의 곤봉이 부딪쳤다.
퍼어엉-!
화아아악-!
헤라클레스의 몸이 불꽃에 휘말린다.
수르트를 향해 단숨에 뛰어올랐던 헤라클레스가 까맣게 타들어 가며 땅 아래로 처박혔다.
콰앙-!
땅이 깊게 파이고, 수르트가 그 자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수르트는 확실하게 그의 숨통을 끊어 내려 발로 헤라클레스를 마구 짓밟았다.
“고작해야 너 같은 말 하나로…….”
쾅, 쾅, 콰앙-!
수르트의 발길질이 이어질 때마다 지진이 일어나듯 땅이 흔들렸다.
몸이 축 처진 헤라클레스를 짓밟으며 수르트가 분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뭐가 달라질 것 같으냐-!”
턱-.
수르트의 발이 멈췄다.
발에 힘을 주던 수르트는 무언가 자신의 발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꽈아악-.
발아래에 깔린 헤라클레스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그는 한 손에는 곤봉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수르트의 발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무슨 놈의 힘이…….’
힘이 강하다는 건 알았지만, 이런 무식함이라니.
수르트의 불꽃에 몸이 까맣게 그을린 헤라클레스는 중얼거리듯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녀석의 생각을 다 이해하기엔, 내가 그리 똑똑하지는 못해.”
단순히 힘만 강한 게 아니었다.
이그드라실의 가지를 이용한 곤봉을 손에 쥐는 순간, 헤라클레스의 육체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아이템의, 이그드라실의 힘이었다.
“그래도 이거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수르트의 발아래에서 고개를 들어 올린 헤라클레스의 안광이 번뜩였다.
“결국은 너희들이 패배할 것이다.”
“이런…… 건방진…….”
화르륵-!
발을 떨어뜨린 수르트가 다시금 불꽃의 검을 손에 쥐었다.
뜨겁게 타오르던 불꽃이 점점 더 붉게 타오른다. 세상의 모든 불을 집어삼킨 듯, 그것은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어려운 온도로 변해 갔다.
“일단 너부터 죽이고, 그 가소로운 녀석의 숨통도 곧 끊어 주마.”
육체적인 공격으로는 헤라클레스를 죽일 수 없다.
그것을 깨달은 수르트가, 다시금 불꽃을 휘두르려던 그 순간.
[‘불의 심장’이 불꽃을 다스립니다.] [‘화안금정’이 불꽃을 다스립니다.] [‘성화’가 불꽃을 위협합니다.]수르트의 머릿속에 메시지가 떠오르고.
화륵-.
그의 손에 쥐어진 불꽃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뭣…….”
흔들린 불꽃의 검은 휘둘러져 봤자 헤라클레스에게 그리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것을 휘두른 수르트조차 동요해 제대로 힘을 주지 못했으니, 공격은 무위로 그쳤다.
수르트는 자신의 불꽃을 흔든 상대를 찾으려 고개를 돌렸다.
헤라클레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왔나 보군.”
씩 올라가는 입꼬리.
그리고 그 순간.
“가까이도 있었네.”
저벅-.
무너진 바위산 위쪽.
유원이 걸어오며 헤라클레스를 향해 인사했다.
“괜찮냐?”
“아직 멀쩡하다.”
몸에 묻은 먼지와 까만 재를 툭툭 털어 내며 헤라클레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정작, 그 앞에 선 수르트는 유원을 발견한 후로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타닥, 타다닥-.
유원의 몸에 붙어 있는 보랏빛의 불꽃.
그의 몸 안에서 흐르는 익숙한 느낌의 마력.
“네…….”
그 순간 수르트는 깨달았다.
“이노옴-!”
자신의 불을 훔쳐 간 범인이, 바로 유원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