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07
* * *
뿌옇게 안개가 낀 어느 날이었다.
아자토스는 그 안개를 보며 생각했다.
-이 안개는 어디까지냐?
아자토스는 그렇게 물으며 뒤따라오는 슈브 니구라스와 니알라 토텝에게 물었다.
이제는 제법 큰 산양의 모습을 한 슈브 니구라스와 어린아이의 태를 벗은 니알라 토텝은 고개를 저었다.
꽤 오래 걸은 느낌이었지만 안개는 끝나지 않았다.
아무리 걸어도 안개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를 아자토스는 꽤나 뒤늦게 깨달았다.
-너도…… 나를 따라오고 있었구나.
목적지가 없는 걸음에 동행하는 자가 하나 더 늘어났다.
신기한 노릇이었다.
한 마리의 산양을 시작으로, 그 뒤 계속 일행이 늘어나니.
이젠 아예, 사람도 동물도 아닌 것이 함께하기 시작했다.
-니요그 소텝.
아자토스는 그 안개에게 이름을 남겼다.
거기에 더해.
-‘이름 없는 안개’로구나.
아자토스는 안개에 또 다른 이름을 부여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따라온 이름 모를 안개.
녀석과의 동행은 처음엔 꽤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 * *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좋았던 기억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좋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 반대가 됐다.
한 번 배신을 당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금의 자신이 아자토스이자 동시에 김유원이기 때문일까.
‘뭐…….’
[‘무정형(無定形)의 혼돈’이 ‘이계검’에 깃듭니다.]슈카악-!
칼끝이 ‘명명되지 않은 거대함’의 머리를 반으로 갈라 냈다.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나.’
칼 끝에 휘감긴 이름이 안개를 베어 냈다. 베어질 리 없는 안개는 마치 절단된 나무처럼 싹둑 잘려져 나가며 소멸했다.
우우우우웅-!
안개로 이루어진 거대한 생명체가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니요그 소텝은 놀라며 소리쳤다.
-대체 어떻게!
유원이 휘두른 칼은 단순히 날카롭다거나, 위력적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안개가 베어지자 이름이 칼에 깎여져 나갔다.
아니.
빼앗겨졌다.
무정형의 혼돈.
칼에 깃들어있는 그 힘은, 니요그 소텝이 가진 이름을 먹어치웠다.
-정말 당신입니까?
“또 같은 걸 묻는구나.”
유원은 대답을 하면서도 칼을 휘두르는 걸 멈추지 않았다.
“반은 맞다.”
[‘무정형(無定形)의 혼돈’이 ‘이름 없는 안개’를 베어 냅니다.] [신력이 1 상승하였습니다.]스으으-.
안개를 베어 낸 칼끝을 통해 되돌아오는 이름과 힘.
“반은 틀리고.”
-그럴 리가!
“니알라 토텝이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더냐?”
유원의 물음에 동요한 듯 안개가 흔들렸다.
니알라 토텝.
어리석은 혼돈이라면 분명, 자신의 존재를 반쯤은 눈치 채고 있었을 터인데…….
“그 녀석은 여전히 생각이 많은 모양이구나.”
또 무슨 꿍꿍이인 걸까.
아자토스의 힘과 기억을 얻고 난 후, 유원은 어리석은 혼돈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됐다.
미래에서의 싸움. 그리고 현재에서의 싸움.
그리고 과거, 어리석은 혼돈이 처음 이름을 얻기 전부터 그 이후까지.
어쩌면 탑의 안과 밖을 통틀어 그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게 바로 자신일지도 몰랐다.
‘그 녀석.’
그러니 유원은 확신했다.
‘밖에서도 뭔가를 꾸미고 있구나.’
스악-.
가볍게 칼을 휘두르던 유원이 안개의 중앙을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계속 깨작깨작.
조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조금씩 안개를 베어내 다 보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쯧.”
유원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짧게 혀를 찼다.
“형님도 그렇고, 저 녀석들도 그렇고. 괜히 휘말려서는.”
안개 속에 갇혀 있는 우마왕과 랭커들.
아마 저들 중 대부분은 언제 자신이 안개에 휘말렸는지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이름 없는 안개. 니요그 소텝은 그런 존재였다.
너무나도 거대한 나머지,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이 바로 명명되지 않은 거대함. 녀석이 가진 이름의 힘 중 하나의 힘이었다.
“그나마 형님의 주술 덕분에 완전히 집어삼켜지지는 않았나.”
만약 저기에 손오공 같은 녀석이 한 명만 더 섞여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그랬다면 상황이 꽤 달라지긴 했을 것이다.
아마 니요그 소텝을 쓰러뜨리는 건 어려워도, 거대한 안개로부터 빠져나올 수는 있었겠지.
푸스스스-.
거대한 안개의 덩어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 그것은 바람에 날린 안개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한 발. 아니, 아주 많이 멀리 떨어져서 본다면 그것은 용을 닮은 거대한 괴물의 형상을 한 구름이 날개를 펼치는 것처럼 보였다.
“도망치느냐?”
유원은 고개를 들어 구름이 된 보라색의 안개를 올려다보았다.
날개를 펼친 구름의 용은 어딘가 위태로워 보였다.
날개 한 짝은 잘려 나가 있었고, 머리의 반쪽은 날아가 있었다.
원래였다면 일정한 형태가 없는 안개가 다시 그 잘린 부분을 회복했을 테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이름이 깎여 나간 자리는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었다. 그것은 존재 자체가 사라진 것과 같았으니까.
-소-스여! 소토-여!
니요그 소텝은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가 향하고 있는 곳은 하늘.
저 보라색 하늘의 너머, 거대한 성운과 무수히 많은 이름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입밖으로 다 내뱉을 수도 없는 이름을 애절하게도 부르짖는군.”
그렇게 하늘을 향해 올라가던 니요그 소텝의 머리 위에서 작지만 선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몰랐느냐? 오늘 같은 날이 올 거라고.”
유원이 니요그 소텝의 머리 위에 서서 물었다.
아래에서는 우마왕을 비롯한 수천 명의 랭커들이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아마, 이 거대한 안개가 마치 하늘을 뒤덮은 거대한 먹구름처럼 보일 것이다.
니요그 소텝은 기껏 가둔 그들을 놓아 주었다.
그건 유원에게서부터 도망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유원은 귀찮게 칼을 휘둘러 자잘하게 이름을 베어 낼 필요가 없게 됐다.
“네가 귀찮은 일을 덜어 줬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이걸로 비겼다고 해야 하나.”
유원이.
아니, 아자토스가 자신의 머리에 올라와 있었다.
니요그 소텝은 도주를 포기했다.
그는 공룡의 앞에 선 작은 생쥐나 다름없었다. 차마 대적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는 목소리를 떨었다.
-위대…… 한…….
잠시 니요그 소텝의 말이 멈췄다.
하늘을 잠시 의식하던 그는 이내, 가까운 곳의 주먹에 굴복했다.
-나의…… 아버…….
“끝까지 역겨운 녀석이다, 넌.”
유원은 차마 못 들어주겠다는 듯 말을 끊었다.
듣자하니 속에서 열불이 나고 역겨워 토악질이 나올 지경이었다.
“누가 네 아버지냐? 가장 먼저 소토스에게 붙어먹은 녀석이.”
-아버…….
“한 마디만 더 해라.”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에 니요그 소텝은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유원은 절대, 이런 녀석에게 아버지 소리 따윌 듣고 싶지 않았다.
“이름이고 뭐고, 널 무저갱에 처박아 영원히 고통 받게 해 줄 테니.”
니요그 소텝의 동요가 느껴졌다.
그는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무언가 달랐다. 이상했다.
분명 안개를 딛고 서 있는 존재는 아자토스였다. 그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었다.
그가 지니고 있는 이름이 그것을 증명했다.
그런데 대체 왜,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애원하고 용서를 구하면 네가 한 일이 달라지더냐? 네 앞에 선 게 내가 아니라 소토스였다면 달랐을 거냐?”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니요그 소텝.
이 녀석은 정말이지, 구제불능에 역겨운 놈이다.
스윽-.
유원의 칼끝이 위로 향했다.
아자토스는 칼을 다루지 않았다. 그에게는 어떤 아이템도, 하다못해 날붙이 같은 도구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김유원이다.’
아자토스가 아닌 유원은.
맨손보다는 칼이 더 익숙한 사람이었다.
‘나는…….’
무정형의 혼돈을 칼에 휘감는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단칼에 눈앞에 있는 거대한 안개를 베어 내는 상상을.
‘김유원이다.’
콰우우웃-!
칼끝을 따라 유원의 시야에서 그어진 기다란 검은 선.
쩌어어-.
그 선을 따라, 니요그 소텝의 거대한 안개가 베어졌다.
그와 함께.
[‘무정형(無定形)의 혼돈’이 ‘이름 없는 안개’를 흡수합니다.] [‘무정형(無定形)의 혼돈’이 ‘명명되지 않은 거대함’을 흡수합니다.] [‘무정형(無定形)의 혼돈’이…….] […….] [신력이 10 상승하였습니다.]무수히 많이 떠오르는 메시지.
유원은 몸속에 무수히 많은 힘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알고 있던 세 개의 이름 외에도 몇 개의 이름이 더 떠올랐다.
역시 참 욕심 많은 녀석이다.
그 뒤로도 꾸준히, 다른 이름들을 모아온 것을 보면.
-어리…… 석은…… ■■…….
이름을 빼앗긴 안개가 겨우 목소리를 쥐어짜낸다.
-■■토스…… ■■.
푸스스스-.
안개가 힘을 잃고 흩어졌다.
제대로 들린 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름을 잃어 버린 안개는 그저 안개일 뿐이니, 그것이 말을 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그래도 확실하게 들린 말은 있었다.
‘어리석은 아자토스, 인가.’
후우우욱-.
이름을 잃어 버린 니요그 소텝은 그저 하나의 구름이 되었다. 더 이상 그 위에 서 있을 필요가 없어진 유원은 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생각했다.
‘니알라만 그렇게 부르던 게 아니었군.’
아무래도 저 말은 니알라 토텝을 비롯한 여러 아우터들에게 퍼져 있는 모양이었다.
유행이라도 되는 건지.
‘정작 어리석은 이름을 가진 게 누구인데.’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저들이 뒤에서 자신을 어떻게 불렀던 것인지 알면 알수록 점점 더 기대가 됐다.
어차피 결심을 굳히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유원의 목적은 하나였다.
이 싸움에서 이기는 것.
그리고 아자토스가 저지른 실수를 바로잡는 건, 결국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낼 일이었다.
턱-.
아래로 떨어져 내린 유원을 중심으로 둥근 원이 만들어졌다.
니요그 소텝의 안개에서 빠져나온 랭커들은 유원을 경계했다. 안면이 있는 랭커들, 미카엘이나 이랑진군 같은 자들 역시 쉽게 다가오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적아를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앞에서 보았던,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웠던 광경 때문이었다.
꿀꺽-.
이랑진군의 시선이 힐끗 위로 올라갔다.
하늘에 그어져 있는 검은 선.
저 한 번의 검격이 수천 명의 랭커와 두 자릿수의 하이랭커 여럿을 가두었던 안개를 베어 냈다.
‘대체…… 저자는…….’
저벅-.
유원을 피해 멀리 퍼져 있는 랭커들 가운데 한 명.
우마왕이 그를 향해 다가갔다.
“하나만 물으마.”
그는 차분한 눈동자로 유원을 바라보았다.
헤라클레스와 디아블로가 그리 느꼈듯.
우마왕 역시 유원의 눈을 통해 두 명을 보고 있었다.
“너는 누구냐?”
우마왕의 질문에 유원이 눈을 빛냈다. 그가 자신을 통해 두 명을 보고 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속으로는 계속, 자신은 김유원이라 되새겼던 것 같은데.
‘좀 더 신경 써야겠어.’
애매한 둘보다는 확실한 한 쪽을 택했다. 그렇다면 기울어지지 말아야 한다.
우마왕의 질문에 유원이 답했다.
“김유원입니다.”
“그러냐?”
눈빛이 다시 돌아왔다.
우마왕은 안심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이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뭘 할 생각이냐?”
“당연히…….”
뻔한 질문이었다.
끝난 건 니요그 소텝뿐.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전장으로 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