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40
그에게 목숨을 잃은 전혼들이 지금은 그에게 향불을 제공하는 근원이 되어 있었다. 이는 한제의 행운이자 봉계의 주인이 남겨준 유산이었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이변이었다. 남몽도존 역시 그가 전수해준 융합의 도술 아래 이런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터였다.
봉선인은 4대 선계 중 하나인 뇌의 선계의 대륙을 제련해 만든 것이다. 그리고 봉계의 주인은 향불을 흡수하는 봉계의 진을 막기 위해 4대 선계를 사용하려 했다.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4대 선계는 파괴되었지만 선계의 대륙은 이 세상에서 향불을 만들어내기에 가장 좋은 재료가 되었다.
게다가 봉선인은 당시 천벌을 저지하면서 그 안에 담겨 있던 향불의 씨앗이 응집되고 다시 한번 제련된 것이다.
게다가 한제는 봉선인을 살두성병으로 사용했다. 이에 그 안에는 십팔지옥이 형성되면서 그가 죽인 이들의 혼이 흡수돼 다시는 윤회의 굴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선계의 대륙에 있던 향불의 힘은 점점 무르익어 갔다.
그러나 활성화될 계기를 맞지 못했다면 이는 천천히 흩어져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 향불의 힘이 호풍과 환우의 세상을 뿌리 삼아 꽃을 피웠다.
이런 우연과 계기가 겹쳐진 결과 지금과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물론 전혼은 많지 않아 수도자의 제자 20억 명이 제공한 향불에 비하면 한참 약했다. 하지만 분명한 향불, 세 번째 단계에 이르는 데 필요한 관건이었다.
한제는 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해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지금 그는 남사족 밖에 도사리고 있는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런 보물도 그 백의의 여인을 당해내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한제는 저물공간에서 거대한 손가락뼈를 꺼냈다. 마치 하나의 대륙만큼이나 거대해 보이는 이 뼈는 반 토막이 난 상태에서도 짙은 위압감을 풍겼다.
그 안에 담긴 고신의 힘은 너무도 묵직해 실체를 가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흡수할 수는 없었다. 그 기운 안에 남은 어렴풋한 의지가 흡수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한제의 미간에서 고신의 반점이 나타나더니 회전하면서 흡수를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탁삼은 반점으로 손가락뼈를 흡수했지. 대단하군.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를 흡수해 얻은 힘으로 반점의 힘까지 강화한 거야. 허나 이 손가락뼈에 남은 의지 때문에 탁삼도 흡수하기는 힘들었을 텐데⋯⋯. 어쨌든 내게도 이걸 흡수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닐 거야.”
한제는 천천히 고개를 젓더니, 이번에는 저물공간에서 월노족 백발노인의 원신을 휘감은 곤극채찍을 소환했다. 백발노인의 원신은 미간에 새겨진 초승달 낙인에서 미약한 빛을 발해 곤극채찍에 저항하고 있었다.
“월노족은 이 손가락뼈의 이용 방법을 알고 있겠지.”
한제는 백발노인의 원신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당시 우의 선계에서 풀려난 청룡 성황에 비견할 정도로 강력한 수련자였다.
네 번째 천쇠를 통과한 듯한 느낌까지 풍겼다. 만약 정면으로 맞붙었다면 한제는 적수가 되지 못했을 터였다.
허나 그는 탁삼의 공격에 중상을 입었고 고신의 손가락뼈가 붕괴한 폭발력에 육신마저 잃은 상태였다. 심지어 원신 역시 중상을 입었다. 한제에게 사로잡힌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노인의 원신은 거의 실체를 갖추고 있었다. 만약 원신에 치명적인 공격을 안기는 곤극채찍이 아니었다면 봉인하기는 힘들었을 터였다.
한제가 결인을 그린 두 손으로 전방을 가리키자 곤극채찍이 곧장 수축하면서 어두운 금색 빛을 발했다.
이에 노인의 원신은 바들바들 떨면서 고통스런 표정으로 한제를 노려보았다.
“6성급 고신 따위가… 우리 월노족은 너 같은 6성급 고신을 수도 없이 죽였다! 나의 원신을 사로잡아서 뭘 어쩌겠다는 것이냐! 나의 원신은 이미 실체화되어 있어서 죽지도 멸하지도 않는다!”
노인은 차갑게 비웃더니 두 눈을 감았다. 허나 원력을 가해도 곤극채찍의 봉인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한제는 말없이 붉은 검을 소환하더니 곧장 노인의 원신을 찔렀다.
푹!
“끄아악!”
검이 관통한 순간, 백발노인은 비참한 비명을 내지르더니 한제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허나 한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노인의 원신을 찌르고 베었다.
상처에서 흘러나온 원신의 정기는 곧장 한제의 체내로 흡수되었다.
“너를 죽일 수 없다고? 노예 주제에 지나치게 오만하구나!”
한제는 싸늘하게 외치더니 다시 검을 휘둘렀다. 노인의 원신은 비명을 내질렀고 벌벌 떨면서 두려움이 어린 눈으로 검을 바라보았다.
“대… 대체 무슨 검이냐!”
한제는 대답하는 대신 다시 검을 휘둘렀다. 공격이 이어질수록 백발노인의 원신은 점점 약해졌다.
한제가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인지 어렴풋이 파악한 노인은 두려움에 떨었다.
한제는 그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저 한없이 약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곤극채찍에 묶여 있는 이상 백발노인은 원신을 회복시킬 수도 자폭할 수도 없다. 그저 고통과 두려움에 떨 수밖에…
몇 시진 뒤, 노인의 원신은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었다. 생기도 적지 않게 빠져나간 상태였고 끔찍한 고통에 숨을 헐떡였다.
한제는 붉은 검을 거두더니 이번에는 오른손으로 백발노인의 원신을 움켜쥐었다. 이어서 신식으로 노인의 원신을 뒤덮었다. 수혼술을 펼칠 생각이었다.
“크윽! 무… 무슨 짓이냐!”
노인은 매서운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며 저항하려 했지만 그 순간 한제가 다시 붉은 검을 소환해 그의 원신을 꿰뚫었다.
노인은 격렬하게 떨었고 두 눈에 드러났던 반항심이 사라지더니 멍한 빛이 드러났다. 투명해진 원신은 금방이라도 흩어져 사라질 것 같았다.
한참 뒤, 백발노인의 원신을 쥐었던 손을 푼 한제는 생각에 잠겼다.
노인의 원신은 완전히 투명해져 흩어지려 했다. 그때 붉은 빛이 번득이면서 정수리를 파고들어 온몸을 관통하면서 원신을 완벽하게 파괴했다.
동시에 한제의 체내에 존재하는 호풍과 환우의 세상 속 어느 대륙 위에 백발노인의 혼백이 나타났다.
그곳에 가부좌를 튼 그의 머리 위에서는 대량의 유백색 기운이 흘러나왔다.
“월노족은 규모가 매우 크다. 나와 탁삼이 멸한 것은 하나의 부락에 지나지 않아. 태고 성신에는 아직 월노족 부락이 세 개나 남았군. 심지어 동쪽의 부락에는 월노족의 선조가 있고 그는⋯⋯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다.”
한제는 백발노인의 기억을 통해 계내에서 중상을 입고 도망친 장존이 어느 비밀스러운 곳에 숨어서 치료를 해왔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이를 통해 장존이 계내에서 어떤 존재가 내지른 고함에 도망쳤다는 남몽도존의 말은 사실인 듯했다.
“중상을 입은 장존이 폐관수련을 하고 있단 말이지? 어느 정도나 회복됐을지⋯⋯. 어쨌든, 이제 떠나야 한다. 그 여인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남사족 성역을 떠나다
고신의 노예, 월노족.
이들은 고신을 배반한 뒤 ‘월노족이 고신의 마음을 씹어 삼켰다’는 뜻에서 월서족(月噬族)이라고 불리기를 자처했다.
한편, 월노족은 고신을 배반할 때 비밀스러운 내력을 가진 무리의 도움을 받았다.
이들은 수준이 매우 높았고 태고 성신 내의 법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통력도 강력했다.
특히 이들은 봉인술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사실 월서족이 고신을 배반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허나 월노족 사람들은 아직도 그들의 신분을 파악하지 못했다. 월노족의 선조인 세 번째 단계 수련자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소문에 의하면 갑작스럽게 태고 성신에 나타난 이들은 여러 부락과 교류를 했지만 원고 선역의 팔비와는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았다.
그들은 월노족에게 월서족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줬을 뿐만 아니라 기이한 신통술을 전수해주기도 했다. 월서족은 이런 신통술을 통해 고신의 힘을 흡수할 수 있게 됐다.
한제는 백발노인의 기억에서 그 신통력을 파악했다. 신통술의 이름은 청운령술(靑雲靈術)로 누구나 익히고 수련할 수 있는 술법은 아니었다. 반드시 영종(靈種)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더구나 온전한 신통술도 아니었다.
영종은 당시 그들이 남겨준 것으로 월노족 사람들의 체내에서 기생하면서 점차 자라나다가 분열되어 번식했다.
월서족은 청운령술을 이용해 당시 전쟁으로 사망한 고신을 삼키고 이를 통해 크게 세를 불려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
한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많은 것을 알게 될수록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층층의 옅은 안개가 하늘을 뒤덮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 안개를 넘어서지 못하면 진실을 알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한제는 고신의 손가락뼈를 저물공간에 거두었다. 뒤이어 고개를 돌려 대지를 훑어본 그는 사라지더니 곧 남사족 성역에 나타났다.
한제는 저 먼 곳을 바라보았다. 일전에 마주쳤던 백의의 여인에 대해 그는 한 가지 추측을 해왔다.
허나 그 추측을 억누른 채 묵묵히 남산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이천매와 남몽도존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한제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긴 빛을 그리며 남사족 성역 바깥으로 질주했다.
성역을 벗어나기 직전, 발아래에 파문이 일더니 이내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축지성촌으로 세상에 녹아든 순간, 허공이 파문으로 왜곡되었다. 그 바깥쪽에서는 어느새 백의의 여인이 나타나 파문으로부터 나타날 누군가를 기다렸다.
한데 그때, 파문이 돌연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걸어 나오려 하던 인영이 한 번 더 발을 내딛는 듯하더니 파문이 격렬하게 퍼져나갔고 잠시 후 점차 약해지다가 결국 사라졌다.
백의의 여인은 의외라는 듯 기이한 눈으로 묵묵히 파문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다가 이내 허공으로 녹아들었다.
잠시 후, 여인은 태고 성신 안의 또 다른 어딘가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가 나타난 순간, 그 앞에 또다시 파문이 일어났다. 하지만 좀 전과 마찬가지로 이 파문은 나타나자마자 격렬하게 일렁였다.
그때, 백의의 여인이 파문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그러자 원형으로 퍼져나가던 파문이 우뚝 멈추더니, 날카로운 칼로 자른 듯 둘로 갈라져 버렸다.
그 순간, 원력이 몰려들면서 폭이 수십만 척에 달하는 거대한 회오리가 형성됐다.
콰쾅!
회오리는 사방을 휩쓸면서 순간이동을 비롯한 신통술의 효력을 잃게 만들었다.
그때, 갈라진 파문에서 한제가 나타났다. 그는 다섯 갈래의 본원이 숨겨진 눈동자로 회오리 속의 여인을 똑똑히 보았다.
“연거푸 제 발길을 막는 이유가 대체 무엇입니까?”
한제의 질문에 여인은 대답 없이 손을 들어 그를 가리켰다.
그녀가 손가락을 뻗은 순간, 회오리는 더욱 요란한 소리를 내며 더욱 빠르게 회전했다. 그리고 여인의 손가락을 따라 한제에게로 돌진했다.
한제는 늪에 빠진 것처럼 회오리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그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손가락 끝에서 두 마리 사슴의 허상이 나타났고 동시에 천만 개의 검기가 튀어나왔다. 이 검기들로 형성된 엄청난 원력이 사방을 마구 휩쓸었다.
쾅! 쾅!
요란한 소리가 퍼져 나가면서 검기와 충돌한 회오리가 우뚝 멈추었다. 한제는 그 틈을 타 몸을 물려 회오리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
백의의 여인은 덤덤한 얼굴로 한제를 바라보다가 오른손으로 다시 앞을 가리켰다.
그 손짓에 한제의 뒤편 우주에는 거대한 손이 나타나더니 미처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한제를 꽉 움켜쥐었다.
여인은 가볍게 걸어 나와 눈 깜짝할 새 회오리를 뛰어넘더니 한제 앞에 이르렀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5척도 채 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전광석화와 같은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한제에게 이 상황에 저항을 하거나 반격을 할 힘은 없었다.
“넌 대체 누구냐!”
한제는 냉랭한 눈으로 눈앞의 흐릿한 여인을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