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56
부적을 살핀 한제는 산령상인에게 가볍게 포권을 하더니 한 걸음 나섰고 이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연락하겠네!”
그가 사라진 자리에서 짧은 한 마디가 울려 퍼졌다.
산령상인은 한제가 떠나간 곳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저 믿어보는 수밖에⋯⋯.”
한제는 산령상인의 말을 전부 믿지는 않았다. 봉인을 뚫고 자신을 칠백만 천지 내부로 불러들여 줄 것을 요청한 것도 그래서였다.
그런 신통술에는 큰 대가가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청을 받아들인다면 상대의 진심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가 완전히 믿지 않으면서도 산령상인의 제안에 동의한 이유가 단지 섬뇌족 대장로를 죽일 목적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산령상인을 돕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를 이 세상 밖으로 내보냄으로써 뭔가를 증명하고 싶었다.
빠르게 우주를 가로지르던 한제의 시야에 중앙 광장이 들어왔다.
한제는 곧 광장에 착지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꽂혔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높은 대전 밖에서 나타났다. 칠백만 천지를 떠나 섬뇌족 성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곳이었다.
대전 앞에는 거대한 진이 있었다. 막 활성화되려는 진 위에는 수십 명의 수련자가 서 있었다.
옆에는 진을 관리하는 섬뇌족 수련자가 서 있었지만 한제는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곧장 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멈춰! 이미 진이 활성화된 상태야! 다음 차례를 기다리게!”
진의 관리자가 다급히 외쳤지만 한제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활성화된 진에 한 줄기 틈이 생겨났고 한제는 곧장 그 안으로 들어섰다.
“헉!”
“도대체 무슨 짓을!”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진의 관리자와 진 안팎의 수련자들이 경악해 외쳤다.
그 순간, 눈부신 빛이 번득이더니 한제를 포함해 진 안의 수련자들이 사라졌다.
주인님은 어디에
번개로 둘러싸인 섬뇌족 성역의 열여섯 개의 수련성 중 한곳.
검은 안개로 변한 허이국은 냉랭하지만 아름다운 여인을 휘감은 채 다급하게 도망치고 있었다. 그는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으로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다.
“도망치지 못한다! 날 건드린 순간, 너는 피할 수 없는 재앙을 맞은 것이다! 지금 장로 한 명에게서도 겨우 도망치고 있으니 나의 양아버지가 오신다면 너는 끝장이야!”
여인은 싸늘한 눈으로 허이국을 비웃으며 소리쳤다.
“닥쳐라! 이 허이국의 실력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으면서 무슨 헛소리냐!”
허이국은 여인의 뺨을 힘껏 후려치며 외쳤다.
여인은 피를 왈칵 토해냈으나, 살기 어린 눈으로 허이국을 노려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때, 하늘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콰쾅!
수련성을 뒤덮은 충격에 각자 동굴 속에서 수련을 하고 있던 섬뇌족 수련자들조차 겁을 집어먹었다. 동시에 세상이 어두워지더니 수없이 많은 은빛 뱀이 교차하며 하늘을 가득 채웠다. 세상에 종말이 찾아온 듯한 광경이었다.
뒤이어 하늘에 청의의 노인이 나타나더니 성큼성큼 다가왔다. 노인은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어마어마한 거리를 뛰어넘었다.
“검령 주제에 감히 행패를 부리다니, 기필코 죽여주마!”
노인은 차게 내뱉으며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려 허이국을 가리켰다.
콰쾅!
다시 한번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하늘을 채운 모든 번개가 응집돼 허이국을 향해 달려들었다.
“히익!”
허이국은 기겁하며 몸을 홱 돌리더니 은빛 뱀을 향해 두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셀 수 없이 많은 검기가 그의 주위로 폭발하듯 뿜어져 나와 은빛 뱀들과 충돌했다.
콰콰쾅!
하늘과 땅의 기색이 변하고 구름과 바람이 뒤로 밀려났다.
휘몰아치는 충격에 허이국은 한 움큼 정기를 토해내더니 여인을 데리고 다급히 도망쳤다.
“나를 놓아준다면 약간의 자비를 베풀어주마. 허나 네가 만약⋯⋯.”
아름다운 여인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을 꺼냈으나, 그녀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허이국이 빽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면서도 오른손을 여인의 옷깃 안으로 집어넣더니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닥치라고 하지 않았느냐! 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그전에 너부터 실컷 희롱해주마!”
여인은 극심한 고통과 치욕으로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허이국을 뒤쫓던 노인의 두 눈에서 화염이 이글거렸다.
저 얍삽하고 재빠른 검령이 저토록 방자하게 굴기까지 하자 더욱 분노한 노인은 곧장 오른손을 강하게 휘둘렀다.
노인의 미간에서 부족의 낙인이 번득이면서 검은색 번개공이 나타나더니 곧장 허이국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빌어먹을 또 그거냐!”
허이국은 진저리를 치며 오른손을 휘둘러 검은 안개를 사방으로 퍼뜨렸다. 안개는 곧장 퍼져나가 번개공과 충돌했다.
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대지는 격렬하게 진동했고 하늘에는 수많은 균열이 일었다.
천둥번개가 사방으로 내리치면서 대지를 찢어발겼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 차례 소란이 마무리됐을 무렵, 저 멀리서 검은 안개와 함께 허이국이 모습을 드러냈다.
영체인 그도 중상을 입었는지 다소 흐릿했다. 허나 그의 손은 여전히 여인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무너져 내린 검은색 번개공에서 세 갈래의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더니 허이국에게 돌진했다.
갈래갈래 온 세상을 무너뜨릴 듯 엄청난 힘이 어려 있었다.
그때, 허이국이 재빨리 손에 쥐고 있던 여인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세 갈래의 검은 기운이 우뚝 멈춰 섰다.
허이국은 그 기회를 틈타 도망치면서 외쳤다.
“고작 정열기 수준으로 감히 이 허이국에게 대적하려 하다니! 우리 주인님이 돌아오시면 너 같은 놈은 손짓 한 번으로도 끝이다!”
허이국을 추격하던 청의의 노인은 분노로 부들부들 떨었다. 그간 수많은 적을 마주해왔지만 저렇게 신경을 긁는 자는 없었다.
“내 반드시 네놈을 사로잡아 차라리 죽여달라고 빌게 해주마!”
“어이구, 무서워라! 늙은이, 협박을 하려거든 제대로 좀 하라고! 아니면 노인장도 내가 이 계집을 취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거 아냐? 그러지 않고서야 정열기 수준인데도 나를 따라잡지 못할 리가 있나!”
허이국은 이를 악물고 도망치면서 몇 차례나 순간이동을 했다. 그는 잔뜩 허약해진 상태로도 계속해서 상대를 우롱했다.
“그렇게 보고 싶다면 이 어르신이 은혜를 베풀어주지. 실컷 봐라!”
허이국은 비릿하게 웃으며 여인의 옷을 확 잡아당겼다. 여인의 옷이 그대로 찢겨나가면서 눈처럼 하얀 나신이 드러났다.
“네… 네놈을 반드시 죽여 버릴 것이다!”
여인은 악에 받친 눈으로 허이국을 노려보며 날카롭게 외쳤다.
“닥쳐라. 한 번만 더 내 심기를 거스르면 네 몸을 빼앗겠다! 영체인 내가 다른 사람의 육신을 얼마나 잘 빼앗을 수 있는지 알고 있겠지?”
협박이 통했는지 여인은 여전히 허이국을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도 입은 꾹 다물었다. 반면 허이국은 당당히 외친 것과 달리 죽을 맛이었다.
‘주인님, 어서 돌아오시지 않으면 이 허이국은 죽습니다! 살려주세요!’
허이국을 추격하던 청의의 노인 역시 허이국의 협박에 이를 갈았지만 더는 입을 열지 않고 조용히 추격만을 이어나갔다.
그때, 허공에서 누군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검령 주제에 입이 참 걸기도 하구나! 네놈이 돼지의 몸에 갇힌 뒤에도 그런 소리를 지껄일 수 있는지 봐야겠다!”
목소리와 함께 남색 도포를 입은 중년 사내가 허이국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버지!”
여인이 반색하며 외쳤다.
‘쇄열기 절정!’
반면 허이국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곧장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중년 사내가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우뚝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체내에서는 펑 소리가 울려 퍼졌고 몸은 갈래갈래 찢겨나가 검은 안개가 되었다.
그의 손에 쥐어져 있던 여인은 부드러운 힘에 휩싸여 중년 사내의 곁으로 돌아왔고 그 무렵 청의의 노인도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검은 연기로 무너져 내린 허이국은 금세 응집되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한층 약해져 있었다. 이제는 훅 하고 불기만 해도 흩어져 사라질 것만 같았다.
“하하, 계집이 말한 양아버지가 이리 젊을 줄은 몰랐군! 한데 양아버지라… 내가 보기에는 양아버지보다 정부에 더 가까워 보이는데!”
허이국의 비아냥거림에 중년 사내는 표정이 싸늘하게 변하더니 다시 한 번 오른손을 휘둘러 강력한 바람을 소환했다.
콰쾅!
바람이 돌진하자 허이국의 몸은 무너져 내렸다. 이번에도 금방 회복되었으나, 다시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무너져 내리고 회복되기를 반복하는 동안 그는 급격하게 허약해져 금방이라도 소멸될 듯했다.
“네놈은 쉽게 죽지도 못할 것이다! 끊임없이 와해되면서 수백, 수천 번 죽음의 공포를 느껴 보거라!”
중년 사내는 그 와중에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님, 살려주십시오. 이 허이국, 정말 죽습니다!”
겁에 질린 허이국이 외쳤다. 만약 여인을 그리 못살게 굴지만 않았더라면 아니, 처음부터 건드리지 않았더라면 이럴 일은 없었을 터였다.
“그래, 네게는 주인이 있겠지. 대체 어떤 녀석인지 궁금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