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72
사묵자
태고 성신 내의 어느 균열. 항상 어둠과 서늘한 기운으로 뒤덮인 이곳에서는 어떤 생령이든 순식간에 숨을 거두었다.
한데 지금 이 균열 깊은 곳 허공에 한 중년 사내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는 매우 어두운 표정으로 두 눈을 감은 채 호흡하고 있었다.
그가 호흡을 할 때마다 균열 안에 무궁무진한 한기가 응집되며 쩌적 소리와 함께 얼음조각을 형성했다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며 사내에게 흡수됐다.
그의 앞에는 하얀 빛이 한 덩어리 떠 있었다. 혼백을 품은 듯한 빛이었으나, 확실하지는 않았다. 회전하는 빛 덩어리는 허상의 하얀 선을 발산했고 이 선은 중년 사내의 칠규를 통해 체내로 흘러들었다.
한참 뒤, 중년 사내는 눈을 뜨더니 하얀 빛 덩어리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6품 도령, 역시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군. 이제 겨우 6할 정도 흡수했는데도 공열기 초기를 돌파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하겠지만 이런 느낌은 오랜만이야!”
한데 낮게 중얼거리던 사내가 돌연 표정이 확 변하더니 고개를 들어 어딘가를 내다보았다. 한 줄기 붉은 빛이 허공을 가르며 이 균열 안으로 들어와 사내 앞에 멈추었다.
사방을 환하게 밝힐 듯한 붉은 빛의 중앙에는 붉은 종이가 한 장 들어 있었다.
“사묵자 장존회의 명령일세! 섬뇌족을 멸한 그자를 생포하면 6품 도령을 그자를 죽이면 9품 도령을 보상으로 받게 될 걸세!”
붉은 종이로부터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중년 사내, 사묵자는 한제가 태고 성신에 막 들어섰을 때, 탁삼을 추격하던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 중 하나였다.
그가 손을 들어 허공을 움켜쥐자 붉은 종이가 무너져 내리더니 한 줄기 붉은 기운이 되어 그의 팔로 스며들었다.
“간단한 일이지. 내 분신만으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어.”
사묵자는 중얼거리며 두 눈을 감았다. 순간 하나의 허상이 그의 체내에서 걸어 나왔다. 사묵자와 똑같이 생긴 이 분신의 수준은 다섯 번째 천쇠에 이르러 있었다.
분신은 한 걸음 내딛어 균열 깊은 곳에서 곧장 사라졌다.
★ ★ ★
깊은 산맥에 숨어든 한제는 눈을 감은 채 체내의 여섯 갈래 천둥번개를 제련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수련자가 추격해오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가 가장 먼저 제련한 것은 영의 천둥번개였다. 가진 양도 적지 않았고 제련도 그리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섬뇌족이 그간 모았던 영의 천둥번개를 전부 흡수했다. 덕분에 한제의 영의 천둥번개는 매우 강력해진 채 한제의 원신을 맴돌았다. 한 번 맴돌 때마다 그의 원신은 조금씩 부풀었고 수준 역시 조금씩 증가했다.
천둥번개의 힘을 이용한 덕분에 그의 수준은 쇄열기 절정을 향해 끊임없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1만 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쇄열기에 이르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이를 돌파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 것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한제는 도과에 의지해 쇄열기에 이르렀고 천둥번개의 힘에 의지해 그 절정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홉 종류의 천둥번개가 완전히 갖춰지지 않는 이상 그의 수준을 무한정 높일 수는 없었다. 또한 아홉 종류의 천둥번개를 완전히 흡수한다고 해서 곧장 세 번째 단계에 이를 것인지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르는 일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겠지. 어쨌든 향불은 쓰지 않겠다.’
영의 천둥번개를 흡수한 뒤 한제의 원신은 거대한 입이 된 것처럼 나머지 다섯 종류의 천둥번개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하루가 지나갔다.
그 사이에 더 많은 태고 성신의 수련자들이 진언족의 수련성으로 몰려들었다. 그 수는 수만에 달했고 대부분은 강자였다. 이곳에 보내졌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약자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수만 명의 수련자가 수련성 전체를 훑기 시작했다. 그들이 한 번의 탐색을 진행할 때마다 수련성 자체가 들썩이는 듯했다.
이들은 물론 10만 개의 산으로 이루어진 산맥 역시 놓치지 않고 빈틈없이 살폈다. 하지만 끝내 아무것도 발견할 수는 없었다.
한제가 숨은 곳에도 수많은 수련자가 발을 들였지만 누구도 한제의 존재를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한제는 가부좌를 튼 채 주위에 완전히 녹아든 데다가 기운 역시 이 산맥의 기운에 융합된 상태라 두 눈은 물론 신식도 왜곡돼 누구도 그를 찾아낼 수 없었다.
한제는 심신 속 하늘의 천둥번개를 이미 제련해 원신에 완전히 녹여냈고 땅의 천둥번개 역시 몇 시진 전에 흡수를 완료한 상태였다. 이어서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알기에 망설임 없이 네 번째 천둥번개인 원신의 천둥번개를 삼키기 시작했다.
원력으로 응집된 원신의 천둥번개도 세 시진 만에 결국 흡수됐다.
번개 형태인 한제의 원신 주위로는 어느새 네 갈래의 천둥번개가 맴돌고 있었다. 또한 원신은 점점 강해졌고 수준 역시 쇄열기 절정을 향해 계속해서 높아졌다.
“자성의 천둥번개여, 내 것이 되어라!”
한제의 원신 속에서 천둥이 콰르릉 하고 울렸다. 다섯 번째 천둥번개인 자성의 천둥번개가 발버둥치는 소리였다. 이 천둥번개는 기이하게도 자성을 띠고 있어 매우 강력한 저항력을 뿜어댔다. 완벽하게 제련하려면 며칠에 걸쳐 제련하면서 그 저항력을 흩어버려야 했다. 하지만 한제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격렬하게 저항하는 자성의 천둥번개를 바라보던 한제는 차게 코웃음을 치더니 네 갈래 천둥번개가 맴돌고 있는 원신을 동원해 자성의 천둥번개를 공격했다.
콰쾅!
강력한 힘에 얻어맞은 자성의 천둥번개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한제의 원신은 숨을 들이마셔 그것을 말끔히 빨아들였다. 제대로 제련한 게 아니라 파괴하면서 흡수한 상태라 이전에 흡수한 다른 천둥번개들보다는 훨씬 약한 상태였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다섯 번째 천둥번개를 흡수하자 원신 밖에는 곧 자성의 천둥번개도 나타나 맴돌았다. 그리고 그때, 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수준은 결국 쇄열기 후기를 뛰어넘어 절정에 이르렀다.
그 순간, 온몸에 전광이 흘렀다. 이에 원신은 더욱 급속도로 부풀면서 여섯 번째 천둥번개인 도의 천둥번개를 향해 달려들었다.
도의 천둥번개는 섬뇌족이 계내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도 자체가 계내 사람들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천둥번개 역시 반항한다면 좀 전에 그랬던 것처럼 억지로 부숴서 흡수할 생각이었다. 허나 도의 천둥번개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 안에서 잡다한 도념들이 튀어나와 수많은 혼백이 됐다. 혼백이란 한제에게 매우 익숙한 존재로 모두 계내 수련자들의 것이었다.
혼백들은 한제의 도념을 느낀 듯 순식간에 하나로 응집되더니 원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덕분에 일부러 흡수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레 융합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융합이었다.
철저하게 제련된 여섯 갈래의 천둥번개는 한제의 원신 주위를 빠른 속도로 맴돌았고 그 힘을 빌린 한제의 수준은 더욱 치솟았다.
번쩍 뜨인 한제의 오른쪽 눈동자의 번개 문양 주위로 여섯 개의 천둥번개가 나타났고 천둥소리가 진언족 수련성 하늘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이곳에서 한제를 찾고 있던 수만 명의 수련자들은 이번 천둥이 이전의 것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차리고는 곧장 신식을 펼쳐 사방을 훑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었다. 만약 진언족이 기를 쓰고 막지 않았더라면 이들은 이곳의 모든 생령이 사라지더라도 수련성 자체를 제련해 한제를 찾아냈을 터였다.
긴 빛들이 하늘을 뒤덮으며 나타났다. 곳곳에 수많은 수련자들이 도사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여섯 종류의 천둥번개를 제련했지만 끝이 아니었다. 아직 손에 넣지 못한 천둥번개가 세 종류나 더 남아 있기 때문이다. 허나 그 세 종류가 무엇인지조차 한제는 알 수 없었다.
“규칙과 순서에 따라 찾을 필요는 없지. 내가 천둥번개라 명명한다면 그것은 곧 천둥번개가 될 테니까!”
한제는 본디 정해진 법칙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나머지 세 종류의 천둥번개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세 종류의 천둥번개를 만들어내면 될 일이었다.
“아홉 종류의 천둥번개를 제련하면 내 수준이 세 번째 단계로 올라설 수 있을지 모르겠군!”
한제는 두 눈에서 붉은 빛을 번득이며 극의 경계를 쏘아 보냈다.
“극의 경계는 천벌이자 천둥번개지! 그렇다면 난 오늘부터 이 극의 경계를 일곱 번째 천둥번개로 명하겠다! 세상 모든 천둥번개의 주인인 내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할 것이다!”
한제의 의지 아래 극의 경계는 콰쾅 하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방향을 홱 틀더니 곧장 오른쪽 눈으로 녹아들어 낙인으로 눈동자에 남았다. 그리고 일곱 번째 천둥번개가 됐다.
이제 한제의 오른쪽 눈동자에는 일곱 갈래의 천둥번개가 맴돌았고 덕분에 그의 체내에서는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한제는 이때 이미 산맥과 하나로 융합되어 있었고 이에 따라 그의 체내에서 발산된 힘은 10만 개의 산을 타고 수련성 전역으로 확산됐다.
콰쾅!
요란한 소리가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운 그때 수련성 대륙 전역에서 무궁무진한 천둥번개가 일어났다. 이 천둥번개는 눈이 시릴 정도로 강력했지만 일반인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았다.
한제를 찾아 몰려든 수만 명의 수련자는 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흠칫 놀라 다시 탐색을 시작했다. 천쇠에 이른 수련자들은 서로 힘을 합쳐 위력을 증폭시킨 신식으로 주변을 훑기도 했다.
“뇌와! 흉수인 네게는 천둥번개의 혈맥이 있다. 오늘 나는 너의 주인으로서 너를 여덟 번째 천둥번개로 임명한다. 혈맥의 천둥번개가 되어라! 이전까지의 여덟 번째 천둥번개는 사라지고 네가 영원히 변치 않을 여덟 번째 천둥번개가 될 것이다!”
한제의 강력한 신식이 뿜어져 나간 순간, 저물공간에서 뇌와가 튀어나오더니 하늘을 향해 우렁찬 포효를 내질렀다. 이어서 전광으로 뒤덮인 녀석의 몸은 한 줄기 천둥번개가 되어 한제의 오른쪽 눈으로 돌진했다.
눈 깜짝할 사이 뇌와는 사라지고 혈맥의 천둥번개만이 한제의 오른쪽 눈동자에 나타났다. 천둥번개의 본원을 나타내는 번개 문양 주위로 나타난 여덟 개의 천둥번개에 하늘과 땅의 기색이 변하고 바람과 구름도 요란하게 휘몰아쳤다.
수만 명의 수련자들은 이제 충격에 휩싸였다. 평생을 통틀어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내리치는 천둥번개를 보고 있노라니 심신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나는 평생을 하늘에 저항하며 살아왔다. 아내의 혼을 앗아간 하늘에 저항함으로써 더욱 힘든 삶을 살아왔지만 후회는 없다! 내가 수련하는 것은 저항의 의지! 마지막 천둥번개를 찾아내지 못했다면 내 삶 자체를 거역의 천둥번개로 삼겠다. 오늘 이 이한제의 명령에 따라 탄생한 거역의 천둥번개는 유일한 아홉 번째 천둥번개가 될 것이다!”
한제는 벌떡 일어서더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꼿꼿하게 선 그의 모습에서 거역과 반항의 의지가 여실히 드러났다. 전광이 번득이는 눈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은 하늘을 꿰뚫을 듯했다. 그의 마음은 운명과 하늘에 대한 반항심과 투쟁심으로 가득 찼다.
“칠백만 천지에서의 일로 내 마지막 망설임마저 사라졌다. 하늘은 자비롭지 않다! 수련자들은 그런 하늘에 저항해야 한다! 자비롭지도 않은 하늘이 대체 무슨 권한으로 세상을 통제하고 삶을 망가뜨린단 말인가!”
한제의 목소리에 드넓은 번개의 연못이 형성되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동시에 여태 단 한 번도 이 세상에 나타난 적 없던 한 줄기 천둥번개가 태어났다.
이 거역의 천둥번개는 형태가 없어 누구도 볼 수는 없었다. 그저 저항심으로 가득한 자만이 그 존재를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하늘을 뒤흔든 번개 문양
콰쾅!
세상에 강림한 그 천둥번개는 운명에 대한 저항심을 품은 채 한제의 오른쪽 눈동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순간 한제의 오른쪽 눈에서 천둥번개의 본원 바깥으로 아홉 개의 천둥번개가 온전히 갖춰졌고 급속도로 회전하면서 그 눈동자에 하나의 도안을 형성했다. 동시에 형용할 수 없는 천둥번개의 힘이 한제의 체내에서 뿜어져 나와 위로 솟구쳐 올랐다.
이에 따라 진언족 수련성에 모여든 수련자들은 허공에 나타난 거대한 허상의 문을 목격하게 됐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문이었다.
“세 번째 단계, 공의 문이다!”
그 문의 정체를 알아차린 몇몇 수련자들이 외쳤다. 그들은 급변한 표정으로 바들바들 떨었다.
문이 나타난 순간 한제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을 느꼈다. 그 문 앞에서 자신은 한낱 티끌과 같은 존재라 느껴질 정도였다.
“뚫고 나갈 수는 없더라도 시도는 해봐야지!”
한제는 곧장 오른손을 들어 휘둘렀다. 그러자 콰쾅 소리와 함께 그를 숨겨주고 있던 금제가 찢어졌다.
오른쪽 눈에 담긴 천둥번개의 본원은 하늘을 뒤덮을 듯 빛났다. 그 주위의 아홉 갈래 천둥번개가 회전하면서 번개 문양을 형성한 찰나, 한제는 하늘을 우러러 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내 천둥번개의 본원으로 저 문을 열겠다! 나와라, 번개 문양!”
그의 오른쪽 눈동자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와 폭이 1만 척에 달하는 거대한 번개 문양을 형성했다.
한제가 가진 천둥번개의 힘을 응집해 만든 이 문양은 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세상 모든 천둥번개를 끌어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