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24
한제는 큼지막한 시체나 잔해들이 둥둥 떠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몇 구의 시체에서는 대량의 유혼이 들락거렸고 저 멀리서는 한 줄기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 안에서 들려오는 영혼들의 날카로운 소리로 볼 때 영혼들로 이루어진 폭풍 같았다.
하늘에서 생기는 변동
신식을 펼쳐 파악한 이곳은 거대한 해골 안이었다. 아마도 용 같은 거대한 흉수의 해골 같았다.
한제는 지금 그 흉수 두개골 안에 있었다. 그러니 그가 파괴한 벽은 그 흉수의 두개골인 셈이었다.
저 먼 곳에서 휘몰아치다가 쉭 하고 달려들려 하던 영혼의 폭풍들이 흠칫 하더니 두려운 존재를 마주한 것처럼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한제의 존재가 그들에게는 엄청난 공포인 듯했다. 아마도 한제가 탄혼이었던 것을 알아챈 듯했다.
한제는 멍하니 역외 전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수많은 수련성과 다양한 장소를 방문했지만 어디서도 역외 전장은 본 적이 없었다. 역외 전장은 오직 주작성에만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한제는 성큼 걸음을 내딛어 2천 년 만에 역외 전장에 들어섰다.
그는 처음으로 역외 전장에 들어왔던 때가 생생했다. 등가의 선조에게 죽임을 당한 뒤 천역주와 사도환의 도움 덕에 영혼의 형태로 이곳에 들어선 그는 마량의 시체를 탈취하여 새로운 삶을 얻어낸 바 있었다.
한제는 신식을 끊임없이 뻗었다. 덕분에 그는 아주 많은 해골과 유혼을 볼 수 있었다. 유혼들은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달아나려 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하고 한제의 신식에 벌벌 떨었다.
해골에는 수련자들의 것도 있었지만 기괴한 생김새의 흉수들의 해골이 더 많았다. 그 대부분은 이전까지 본 적도 없는 흉수들이었다.
계속해서 뻗어 나간 한제의 신식은 역외 전장의 가장자리에 닿았다. 어떤 막 같은 것에 가로막힌 듯 신식은 더 이상 뻗어지지 않았다.
허나 한제는 멈추기는커녕 더 강력하게 신식을 뻗쳤다. 그러자 거울이 깨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결국 한제의 신식은 역외 전장 너머에 이르렀다.
그곳은 역외 전장 바깥이었다. 하지만 훨씬 더 컸다. 이전에 막으로 둘러싸여 있던 역외 전장에 비하면 강과 바다만큼이나 그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한제는 심신이 진동했으나 멈추지 않고 신식을 뻗었다. 그리고 이내 금빛을 발산하는, 선인들의 것임이 분명한 시체들을 보았다.
수많은 흉수들의 뼈도 있었다. 매우 험악한 모습과 강력한 기운을 발산하는 것으로 보아 생전에 어마어마한 힘을 자랑했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신식을 뻗을수록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거대한 흡혈마수의 뼈와 길궁의 뼈, 심지어 길이가 수십만 척에 달하는 흉수의 뼈까지도!
평생 동안 봐왔던 흉수 중 지하마수를 제외한 모든 흉수의 뼈가 있었다.
계속해서 확산되던 그의 신식은 마침내 역외 전쟁의 진정한 가장자리에 닿았다. 그의 신식이 이 역외 전장을 완전히 뒤덮은 상태인 것이다.
한제의 두 눈은 충격으로 바짝 졸아들었고 심신은 거센 파도처럼 일렁였다.
신식으로 역외 전장을 완전히 뒤덮은 순간, 그는 이 역외 전장이 하나의 조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이 조각은 주작성과 어떤 연관이 있었다. 마치 이 조각으로 인해 주작성이 생겨난 것만 같았다.
매우 불규칙적인 이 조각은 마치 어떤 물건의 일부인 듯했다.
그때, 한제의 머릿속에서 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사성종의 선대 주작 성황이 죽기 직전 전해주었던 비밀이 떠올랐다. 주작성은 사실 문의 일부라던 말이⋯⋯.
다시 살핀 역외 전장은 분명 어떤 문의 일부임에 틀림없었다.
‘당시 사성종이 찾던 문은 대체 어떤 문일까? 타락의 땅에 있던 1대 주작은 이에 대해 과연 알고 있었을까?’
한제는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겨우 충격에서 벗어났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는 은시(銀屍)가 칠채도인의 조각상을 본 순간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여 비명과 함께 했던 말이 떠올랐다.
“문은 내가 연 게 아니야! 그 문은 내가 열지 않았어!”
그 두 사람이 언급했던 문이 사실은 같은 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어렴풋이 들었다.
한제는 천천히 신식을 거둬들인 후 복잡한 눈빛으로 역외 전장을 둘러본 뒤 몸을 돌려 빠져나갔다.
다시 주작성으로 돌아온 한제에게는 주작성이 더 낯설게 느껴졌다. 너무도 많은 비밀과 사실들을 접한 탓이다.
‘홍접은 죽지 않았다. 부문족의 구멍 속 열아홉 번째 층에는 이광의 화살이 봉인되어 있었지. 역외 전장은 사실 하나의 작은 구역에 불과했고 그 너머에는 더 넓은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문의 일부일 뿐이지.’
한제는 주작성의 어느 산봉우리 꼭대기에 앉아 불어오는 산바람을 맞으며 생각에 잠겼다.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점점 주작성과 관련된 비밀들을 알아가게 되는군. 주작성이 이런 곳이었다니…’
한제는 점차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시커먼 구름들이 몰려드는가 싶더니 저 멀리서 천둥번개와 함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 마리 하얀 새가 다급하게 날갯짓을 하며 검은 구름 아래에서 몸부림치듯 날갯짓을 했다. 새는 그 구름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용을 썼지만 결국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에 적중당해 바르르 떨며 검은 구름에 삼켜지고 말았다.
그 광경을 본 한제의 표정이 굳어갔다.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와 바람은 아직 저 멀리 있었지만 습기를 머금은 서늘한 바람이 한제의 주위를 맴돌았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졌고 천둥소리도 점점 가까워졌다. 몰려든 검은 구름은 종이에 퍼지는 먹물처럼 사방으로 끝없이 확산되었다. 비는 점점 거세어졌다.
거센 바람이 불었으나 주위의 작은 자갈들은 흩날리려는 듯하다가도 보이지 않는 힘에 짓눌린 듯 바닥에 붙어 있었다.
꽈릉!
천둥소리와 함께 한 줄기 번개가 내리쳤다.
몰려드는 검은 구름을 바라보던 한제는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가 이번에 주작성으로 돌아온 것은 해야 할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체내의 저항력을 제련해야 했고 세 가지 본원을 완성해야 했다. 이어서 청수로부터 받은 살육의 본원으로 이루어진 살육의 검도 제련해 여섯 갈래의 본원으로 공의 문을 열고 세 번째 단계에 이르러야 했다.
더 이상 주작성의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던 한제는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 한데 그의 뒤로 시커먼 구름이 몰려들었고 마치 그 안에서 어떤 살기가 방금 전 새를 삼킨 것처럼 한제도 집어삼키려 하는 것 같았다.
내리치는 천둥번개에 사방은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했고 비는 퍼붓듯 쏟아졌다. 그때 검은 구름 속에서 한 줄기 한기가 갑작스레 뿜어져 나왔다.
한제는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끼며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강렬한 위기감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 그는 고개를 홱 돌려 검은 구름을 바라보았다.
‘뭔가 이상해!’
오래된 무덤에서 느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위기감이었다. 계내외에서 그간 맞닥뜨렸던 그 어떤 위기감보다도 강렬했다.
‘이 위기를 넘겨야만 계속해서 살아갈 자격을 얻을 수 있을 터.’
이는 몰려드는 검은 구름을 본 순간 한제가 얻은 깨달음이었다.
시커먼 구름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진정한 살기가 아니었다. 그 살기는 구름 속 천둥번개의 변화로 인해 생성된 것이자 한제의 감지로 형성된 것이었다. 한제가 알아차리기 이전도 이후도 아닌 정확히 그가 감지하는 순간에 나타난, 하늘에서 생기는 변동이었다.
“하늘에서 생기는 변동!”
한제의 두 눈이 바짝 졸아들었다. 그는 다른 생각 따위 할 틈 없이 신식을 사방으로 빠르게 뻗었다. 주작성 너머까지 뻗은 신식으로 우주의 상황을 살핀 순간 한제의 표정은 크게 일그러졌다.
주작성 밖은 별이 총총한 검은 우주가 아니라 파란색 빛으로 차 있는 우주였다. 온 우주가 다 파란색으로 변해 있었다. 마치 하늘색 장막이 펼쳐져 있는 듯, 더 정확히는 주작성 밖에 하늘이 나타나 있는 듯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분명 그랬다. 지금 주작성 바깥은 성역이 아니었다. 이 수련성이 어마어마한 위력의 도술에 걸려 계내 밖의 또 다른 세상에 이르러 있는 것처럼 파란 하늘이 성역을 대체하고 있었다.
그 파란 하늘은 텅 비어 있었다. 그곳에 떠 있는 것이라고는 주작성뿐이었다. 더욱이 한제의 신식에는 단 하나의 생명도 감지되지 않았다. 지금 이 수련성에 남은 생명은 한제 자신뿐인 것이다.
그렇다고 주작성의 모든 생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실종된 것은 한제였다.
주작성은 계내 성역에 그대로 있었고 그곳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도 그대로였다.
주무태는 주작 조각상 위에 앉아 묵묵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 한제가 앉아 있었던 주작성의 산봉우리는 텅 비어 있었다.
하늘은 파랗고 맑았으며, 바람은 잔잔했다. 검은 구름 같은 것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주작성은 마치 거울에 비친 것처럼 둘로 나뉘어 있었다. 그중 하나는 계내에 오롯이 남아 있었고 나머지 하나에는 오직 한제만이 남아 있었다. 또한 두 개의 같은 산봉우리 중 하나는 맑은 하늘 아래에 있었고 한제가 있는 이곳은 검은 구름에 휩싸인 채 퍼붓듯 쏟아지는 비를 맞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도술이었다.
한제는 어두운 얼굴로 한 걸음 내딛어 검은 구름 안으로 들어갔다. 한 자루 예리한 검처럼 구름을 가르며 나아간 그는 그대로 이 분리된 주작성에서 빠져나갔다.
그 순간 눈부신 빛이 주작성 밖에서 번득였다. 무궁무진한 파란 빛은 어디라도 관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제는 죽은 듯한 주작성을 등진 채 그 빛 안에 서 있었다. 전방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심지어 신식으로도 완전히 뒤덮을 수 없을 만큼 방대한 곳이었다.
아래로는 흙이 아니라 잔잔한 수면이 있었다. 물결조차 일지 않는 수면에는 파란 하늘이 그대로 비췄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우물 같았다.
“이한제⋯⋯.”
하늘에서 돌연 흐릿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제는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든 그는 애써 심호흡을 하며 금빛을 발산함과 동시에 온몸의 수준을 가동했다.
그때 파란빛으로 가득 찬 하늘에서 푸른 인영이 나타났다. 청의를 입은 중년 사내는 복잡한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존을 뵙습니다.”
한제는 포권을 하며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남몽도존은 말없이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세상은 태고 성신의 모든 공현기 수련자가 힘을 모아 만들어놓은 곳이야. 원고 선비도 힘을 보태 임시로 허공을 뚫었으니 계내의 누구도 네가 이곳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할 거야. 이 세상은 세 시진 동안 존재하겠지만 그 세 시진 동안 너는⋯⋯ 죽음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너와의 인연을 생각해 알려주지만⋯⋯ 네가 봉계 지존이라는 사실을 탓해라! 봉계 지존은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
남몽도존은 잠시 말을 끊고 한제를 살펴보다가 덧붙였다.
“난 전임 봉계 지존의 죽음에 가담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나는 너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남몽도존은 파란 빛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거의 동시에 하늘에서 파문이 일더니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모습이 흐릿해 그가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이라는 것밖에는 파악할 수가 없었다.
노인은 살기를 품은 눈빛을 번득이며 모습을 드러낸 순간 오른손으로 한제를 가리켰다.
“이곳에서 내가 가진 모든 힘을 발휘할 수는 없다. 오직 공령기 중기의 위력만 발휘할 수 있지. 허나 오늘 너는 그 당시의 봉계 지존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그의 손짓에 하늘과 땅의 기색이 변하고 한 줄기 광풍이 불어 닥쳤다. 그의 손가락에서 뿜어져 나온 바람은 한 마리 회색 용으로 변하더니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달려들었다. 더욱이 놀랍게도 그 용 안에는 혼잡한 향불의 힘이 존재했다.
봉계 지존의 재난
한제의 표정이 한층 진중해졌다. 그는 더 이상 삶과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았다. 삶과 죽음을 막론하고 이번의 위기는 무조건 뛰어넘어야만 했다. 이것은 봉계 지존의 재난이었다. 전임 봉계 지존도 태고 성신의 여러 수준 높은 수련자들의 협공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세 시진이라…’
회색 용이 포효하며 달려든 순간, 한제는 한 걸음 내딛으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호풍이 일어나 파란 세상을 가득 채우며 열세 마리의 검은 용으로 변했다.
“캬오오!”
검은 용들은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질러 파멸적인 바람을 일으켰는데 금빛을 띤 이 바람은 곧장 회색 용을 향해 돌진했다.
“금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