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94
한제의 머리가 핑핑 돌기 시작했다.
“이후 수만 년이 흐르면서 그들은 조용히 자취를 감췄고⋯⋯ 또다시 오랜 시간이 흘러 4대 선계는 붕괴했다. 통로는 그 붕괴의 여파나 다른 요소로 인해 불안정해졌고 다른 곳으로 통하는 통로들을 생성했을 수도 있어. 그리고 알 수 없는 어딘가로 뚫린 통로가 한 무리의 흡혈마수를 끌어들인 거지! 이 흡혈마수들은 통로 안에서 번식하며 알을 낳다가 봉인된 통로의 한쪽을 찢어내고 튀어나와 붕괴한 풍의 선계를 점령한 거야!”
한제의 머릿속에 하나하나의 장면이 그린 듯 떠올랐다. 이전에 있었을 일들을 상상하면서 그는 통로 끄트머리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해서 이 균열은 두 번째로 열리게 된 거지! 한데… 그렇다면 동부 안으로 들어왔던 선강 대륙 사람들은 아직 이곳을 떠나지 않고 있다는 건데… 그들이 진즉 떠났더라면 완전히 봉쇄하고 깨끗이 정리해 저 돌문과 이 통로가 남아 있을 리 없을 테니까.”
한제는 생각을 정리하며 혼잣말을 이어갔다.
“그래, 그들은 아직 이곳에 있다. 그렇다면 어디에 있는 걸까? 오행성? 어쩌면 그들은 아직 원하는 뭔가를 찾아내지 못한 거야. 어쩌면 그들의 목적은 칠채도인과 전가 노인이 찾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인지도 몰라. 매미를 잡는 사마귀를 뒤에서 기다리는 참새처럼. 그들은 분명 그런 계획을 세웠을 거야!”
한제는 균열 밖으로 나가기 위해 몸을 훌쩍 날리며 흡혈마수 쪽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녀석은 이곳을 떠나기 싫다는 듯 지천에 널린 흡혈마수의 알들을 바라보며 쉭쉭거렸다.
한제는 수백만 개에 달하는 알들을 바라보다가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광풍이 일며 그 알들을 휘감더니 저물공간으로 들어왔고 그제야 흡혈마수는 한제를 따라 균열 밖으로 나갔다.
균열 밖 풍의 선계에서는 여전히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고 있었고 사방은 짙은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한제는 균열 옆에 선 채 결인을 그린 두 손을 들어 올려 합장했다. 그의 손짓에 따라 균열 가장자리는 바르르 진동하더니 천천히 맞물리기 시작했고 잠시 후에는 완전히 붙어버렸다.
균열을 봉쇄한 한제는 오른손을 잔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 결인을 그렸다. 그렇게 형성된 금제들이 끊임없이 균열 위에 떨어져 층층이 봉인했다.
작업을 마친 한제는 그래도 안심이 안 된다는 듯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나타난 것은 오래된 무덤에서 얻은, 고식엽을 피워낸 거대한 머리였다.
이 거대한 머리로 이루어진 대륙에는 비쩍 말라버린 나무가 가득했지만 그중 몇몇 나무는 새로운 고식엽을 피워냈다. 한제가 3년 전 원고 선역에서 세 고족의 석상으로부터 흡수한 힘을 이용해 천천히 자라난 결과였다.
손을 휘두르자 수십 개의 완전한 고식엽이 날아와 맴돌았다. 한제가 손짓하자 고식엽들이 다시 한번 균열을 봉인했다.
한제는 남은 고식엽을 거두고 거대한 머리로 이루어진 대륙도 저물공간에 넣은 후 소매를 휘두르며 흡혈마수와 함께 짙은 안개 속을 빠져나갔다.
봉쇄된 균열은 천천히 자취를 감추었고 주위를 뒤덮었던 안개 역시 천천히 옅어지다가 이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한제는 하늘에 뜬 채 아래를 내려다보며 신식을 뻗었다. 풍의 선계 전체가 그의 심신에 떠올랐다.
흡혈마수들 때문인지 이곳의 대지들은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우의 선계나 뇌의 선계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 물론 섬의 선계에는 가본 적이 없었으므로 그곳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었다.
“풍의 선계를 기본으로 삼아야겠군. 섬의 선계도 이 정도 상태만 된다면 잘 융합할 수 있을 거야!”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공령기 중기 수준의 힘이 그의 신식을 통해 확산되면서 풍의 선계를 완전히 뒤덮었다.
풍의 선계에 떠 있던 대륙 조각들은 순간 바르르 진동하다가 형태 없는 한 줄기 힘에 떠밀려 중앙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수많은 대륙 조각이 진동하면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무궁무진한 바람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곳곳에서는 흡혈마수들이 분분히 날아올라 험악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응집!”
한제는 백발을 휘날리며 외치더니 두 손을 합장했다. 현재 한제의 수준으로 풍의 선계에 자리한 수많은 대륙 조각을 하나로 합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지는 끊임없이 진동하면서 천천히 이동했고 깨진 거울 조각 같던 풍의 선계 내의 대륙들은 모여들어 끝내 하나로 응집됐다. 그리고 얼마 후 완전한 형태의 대륙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을 채웠던 바람은 무너져 내렸고 수많은 흡혈마수들은 바들바들 떨었다. 한제의 어마어마한 수준을 느낀 녀석들은 감히 어떠한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풍의 선계를 새롭게 결합한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그 위에 가부좌를 틀었다. 두 눈을 감고 원신을 뻗어 대지에 융합시킨 그는 완전해진 대륙을 조종해 앞으로 나아갔다.
콰르릉!
말 그대로 대지가 이동하는 소리와 함께 풍의 선계가 운해성역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주에 나타난 이 대륙은 흘러넘칠 듯한 선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선강 대륙의 선기와는 달랐다. 향불의 기운으로 인해 변질된, 동부 안에 속한 선기였다.
당시 봉계의 지존이 4대 선계를 연 것은 본디 향불을 응집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4대 선계의 대륙은 보통의 대륙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흡혈마수들은 한제의 위압감 때문에 날아오르지도 못한 채 그저 바들바들 떨며 대지에 붙어 있었다.
한제는 신식으로 대륙을 통제해 소하성역으로 향했다. 섬의 선계로 가기 위해서였다.
선인에 저항하기 위한 여정
우주에 울려 퍼지는 소리가 갈수록 격렬해졌고 한제의 통제 아래 운해성역을 빠져나간 풍의 선계 대륙은 소하성역에 진입했다.
소하성역을 수복한 뒤로 나천성역에 있던 소하성역 수련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섬의 선계는 다른 선계와 달리 입구가 완전히 개방되어 있었기에 누구나 소하성역 북쪽 깊은 곳에 이르면 반짝이는 한 줄기 은하수를 볼 수 있었다.
그 은하수가 바로 섬의 선계였다.
소하성역에 몇 차례 방문한 적은 있지만 그때마다 그저 이동하기에 바빴던 한제는 그동안 이 은하수를 본 적은 있어도 그 안에 들어간 적은 없었다.
대량의 파문과 묵직한 위압감을 사방으로 발산하는 풍의 선계 대륙은 소하성역 북쪽의 은하수 아래에 멈춰 섰다. 한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섬의 선계를 바라보다가 이내 그 안으로 달려들었다.
은하수 안으로는 작은 대륙의 조각들이 떠 있었다. 은하수는 반짝이는 빛을 발하는 그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섬의 선계에 들어선 지 사흘째 되는 날, 한제는 무척 지친 모습으로 그곳을 나섰다. 이어서 그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은하수는 바르르 진동하더니 풍의 선계 대륙을 향해 달려들어 대륙의 사방을 둘러싸고는 회전했다. 이에 풍의 선계 대륙은 은하수의 빛으로 뒤덮였다. 무척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섬의 선계는 고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어 있군. 선계를 수호하는 강으로 쓸 수밖에 없겠어.”
속으로 한숨을 내쉰 한제는 섬의 선계 은하수로 둘러싸인 풍의 선계 대륙을 통제해 떠나갔다.
다음으로 향할 곳은 나천성역 뇌의 선계였다.
한제는 뇌의 선계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일찍이 그 안의 곳곳을 누빈 적도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풍의 선계는 은하수에 휩싸인 채 나천성역에 이르렀다.
위압감이 어린 파문을 퍼뜨리며 나타난 거대한 대륙은 나천성역 수련자들의 주의를 끌었다. 신식으로 이 거대한 대륙을 살핀 그들의 심신은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뇌의 선계 입구를 오랫동안 지켜오던 천둥번개는 이미 한제에게 흡수돼 사라진 상태였다.
한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뇌의 선계 안으로 달려들었다.
뇌의 선계 역시 손댈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 있었다. 그 안의 대륙 대부분은 당시 염뇌자가 거두었고 그 후로도 여러 사건으로 인해 소멸된 탓에 이제 남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폐허와 다를 바 없는 뇌의 선계는 황량하고 불안정했다. 언제든 무너져 내려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였다.
한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곳은 더 이상 쓸 수가 없군. 뇌의 선계는 이미 폐허가 됐어.”
잠시 침묵하던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신식을 거두고는 돌아섰다.
한데 그가 막 그곳을 빠져나가려 한 순간, 뇌의 선계 깊은 곳에서 전가 노인이 두 눈을 기이하게 번득였다.
“4대 선계를 다시 모으려 하다니!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저자는 과연 세 번째일까, 아닐까?”
고민에 빠진 전가 노인은 떠나는 한제를 저지하지 않았다.
한편 뇌의 선계에서 빠져나가려던 한제의 두 눈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빠르게 번득였다. 뇌의 선계를 뒤덮은 그의 신식은 전가 노인을 감지하지 못했지만 체내의 천역주만은 맹렬히 움직였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전해졌는지 모를 한 줄기 기이한 힘에 한제는 뇌의 선계 깊은 곳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전가 노인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한제는 경거망동하지 않고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척 곧장 그곳을 떠났다.
‘이곳에 숨어 있었군!’
뇌의 선계 밖으로 나온 한제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마지막 선계, 곤허성역 우의 선계로 향했다.
★ ★ ★
며칠 뒤, 한제는 4대 선계의 교차점에 섰다. 보름도 안 되는 기간에 4대 선계를 돌아다니며 충분한 자원을 수집한 그는 선계의 응집을 마칠 수 있게 됐다.
계내의 우주를 바라보다가 두 눈을 감은 한제는 잠시 후 눈을 번쩍 뜨면서 결인을 그린 손을 아래로 뻗었다.
“풍의 선계 대륙을 근간으로 삼아 새로운 선계를 세운다!”
그의 손짓에 풍의 선계 대륙이 그가 손으로 가리킨 곳을 향해 휙 하고 날아갔다. 묵직한 위압감과 함께 한 줄기 선기가 뿜어져 나왔다.
대륙은 4대 선계의 교차점에 이르렀다. 만약 그것을 네 조각으로 나눈다면 그 조각들은 각 성역의 2할에 이를 터였다.
“새로운 선계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우의 선계의 먼지를 더한다면 충분히 확장될 것이다!”
한제는 두 손을 휘둘러 저물공간을 소환했다. 그러자 그가 우의 선계에서 수집해온 어마어마한 양의 먼지가 흘러나왔다.
이 먼지들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풍의 선계 대륙에 녹아들면서 그 위에 층층이 쌓였다. 머지않아 대륙은 대량의 먼지로 두꺼워졌다.
이어서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다섯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킨 뒤 두 눈으로 밝은 빛을 번득였다. 순간 하늘에는 거대한 손바닥 문양이 하나 나타났다.
역령인이었다.
이 문양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한제의 통제에 따라 곧장 대륙을 후려칠 듯 하강했다. 허나 강력한 기세와 달리 그 안에 실린 힘은 파괴적이지 않았다. 역령인의 묵직한 위압감은 대륙에 쌓인 먼지를 단단히 다졌고 이에 대륙은 바르르 진동하면서 확장해 순식간에 거의 두 배로 커졌다.
“섬계 은하수는 새로운 성역을 수호하는 강이 되어 선인과 일반인을 구분하며 화신기 이하 수련자는 이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을 것이다. 이것이 규칙이다!”
한제가 소매를 휘두르자 섬계 은하수는 휙 하고 달려들어 대륙의 사방을 휘감았다. 대륙을 완전히 포위한 은하수에서는 밝은 은빛이 번득였다.
이 빛 아래 새로운 선계는 그 자체로 하나의 구역이 됐다.
“삼원륜의 진은 이 새로운 선계를 핵심으로 삼아 태고 성신의 기운을 계내에 녹여낼 것이다!”
한제는 혀끝을 깨물어 원신의 정혈 한 움큼을 뱉어냈다. 이 정혈은 은하수로 둘러싸인 새로운 선계에 뿌려졌고 그러자 계내를 뒤덮은 삼원륜의 진이 돌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상공에는 허상의 바퀴가 나타나 회전하며 계외 태고 성신에 존재하는 대량의 기운을 흡수해 새로운 선계로 주입했다.
“선계는 이미 형성됐다. 아직은 원형만 갖춰졌을 뿐이지만 앞으로의 변화에 내 도움은 필요치 않을 터! 이제 마지막 할 일이 남았군. 이 선계와 계내 4대 성역에 존재하는 모든 수련성의 혼을 융합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앞으로 계내에서 태어난 일반인은 수련자가 된 뒤 화신기 절정을 돌파했을 때 이 선계로 이끌려오게 될 것이다!”
또한 한제는 말없이 새로운 선계 상공에 나타난 허상의 바퀴 위에 가부좌를 틀더니 두 눈을 감았다. 미간에서 흘러나온 원신은 바르르 진동하더니 여러 갈래로 갈라져 사방으로 날아갔다.
한편 계내 수련자 대부분은 지난 보름 동안 한제가 무슨 일을 해왔는지 알고 있었다. 이에 한제의 전언과 청림을 비롯한 이들의 명령에 따라 4대 성역 곳곳으로 흩어진 수만 명의 계내 수련자들은 각각 수련성이나 생명이 나타날 법한 대륙을 찾아갔다.
새로운 선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한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한제가 한 일은 새로운 선계의 원형을 갖춘 것뿐이었다. 이는 홍삼자 역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이들은 전쟁 후 부상 치료만으로도 벅찼고 선강 대륙과 동부 안 세상이라는 현실을 아는 것은 한제뿐이었다.
또한 책임감을 통감한 그에게 이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한제는 계외 태고 성신과의 전쟁보다 더 큰 위기와 시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험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이곳의 모든 이들을 이끌고 동부 밖으로 나갈 수 있지만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면 동부 안의 모든 생명은 스러지게 될 터였다.
그리고 수천수만 년 후 천도는 또 다시 생명을 탄생시키며 동부 안의 세상을 새롭게 시작할 터였다. 어쩌면 먼 미래의 어느 날, 이한제라는 이름의 아이가 앙앙 울며 태어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