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508)
509화 연결
“쿠오오오오!”
괴성에 고개를 돌려보니, 거대한 괴조가 하늘에서 그보다 더 커다란 고래와 싸우고 있었다.
“고래?”
고래가 왜 하늘에 떠 있나? 하는 의문을 느끼기도 전에, 하늘 위를 가로지르듯 놓인 물길에 눈을 비볐다.
“물이 거꾸로 흘러?”
바닷물 한쪽이 아예 하늘로 솟구치며 흘러 하늘 위에서 비산하니, 거대한 구름이 바다처럼 하늘에 떠 있었다.
“…….”
여기가 지구가 맞나 싶은 그때 익숙한 와이번이 옆으로 지나다가 급강하했다.
휘리릭.
와이번은 지면에 닿기 전 연기로 화해 사람으로 변했는데, 그도 아는 청년 한동수였다.
“재식이햄!”
“동수?”
장재식은 다급히 달려와 격하게 포옹하는 한동수의 존재가 얼떨떨했다.
친한데 어색해.
“이, 이것 좀 놓고.”
“아, 형님! 안 깨어나는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요? 먼저 출동한 거예요? 그래도 좀 쉬시지, 깨자마자 현장 출동 떨어졌나 보네요. 와, 이 귀는 뭐예요? 코스프레?”
동수의 손이 귀로 향했고 장재식이 당황해 뒤로 고개를 뺐다.
“어? 귀 움직이는데? 건전지 들어간 거예요?”
“…….”
“…….”
장재식은 동수의 맑은 눈깔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나 방금 여기서 깼다. 좀 천천히.”
“아!”
동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형님 홀딱 벗고 있길래, 여서 뭐하나 했……. 와, 꼬리 그것도 움직이네요?”
동수가 신기한 듯 반사적으로 꼬리를 잡으려 하자 엉덩이를 틀어 피했다.
꼬리가 앞뒤로 철렁이며 흔들렸다.
“아, 일단 형님 옷부터, 좀.”
동수는 자신의 아공간에서 배틀슈트 하나를 꺼내 건네주었다.
“고맙다.”
“어쨌든 잘됐네요. 두 마리라 좀 부담스러웠는데.”
“저것 말이냐?”
배틀슈트를 다 입은 장재식이 하늘을 가리켰다. 괴조와 고래가 아직도 아웅다웅 술래잡기 비슷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네, 지금 여기저기 난린데, 일단 몬스터들만 처치하면 더 이상 던전은 안 생기나 봐요.”
“검을 한 자루 다오.”
“네, 여기. 근데 형님 말투가 좀?”
동수가 아공간에서 검 한 자루를 꺼내주며 고개를 갸웃했다.
“나를 저곳으로 태워주면 된다.”
“음? 형님, 바람 다루잖아요?”
“아!”
장재식은 자아의 충돌에 잠깐 미간을 찌푸리곤 고개를 털었다.
“형님 괜찮으세요?”
“괜찮다. 나는 이제 장재식이다.”
“……?”
이 형님 이상해졌는데?
동수가 걱정스럽게 보든 말든 장재식은 자신의 힘을 깨달았다.
‘바람의 검객.’
검을 다루고 바람을 다룬다.
스스로의 힘을 깨닫고 나니, 굳이 저 괴수들 앞으로 나아갈 필요성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납도한 그가 한껏 허리를 숙이고 경고했다.
“옆으로 물러서라.”
“여, 여기요?”
“그래. 저 바다도 하늘도 괴물도 베겠다.”
장재식이 그리 말하곤 발도술을 펼쳤다.
스캉!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하늘이 비틀렸다.
“어?”
일순 하늘에 지진이 났나 싶을 정도로 한쪽이 갈라지며 서로 어긋났는데, 하늘 위에 가득한 수증기에 그 시각효과가 더욱 눈에 띄었다.
쿠우우우우웅!
비명도 없이 목이 잘린 괴조와 고래가 땅에 추락했다.
쏴아아아아!
바다는 여전히 물대포처럼 하늘로 물이 흐르고 있었고, 하늘은 비산하는 물방울이 모여 거대한 바다를 또 하늘에 만들어내고 있었다.
“대에박!”
장재식의 엄청난 신위를 목도한 동수가 입을 쩍 벌렸다.
과거에도 검 하나는 기가 막히게 다룬 장재식이지만, 블랙맨을 처리하지 못해 오래도록 동면에 든 그다.
그런데 깨어나자마자 이상한 귀랑 꼬리를 달고 있질 않나, 엄청난 검술까지…….
‘거의 부사장님급 아냐?’
퍼뜩 머릿속에 김미소를 떠올렸던 동수는 곧 더 대단해진 박준호를 생각했다.
이 정도면 이미 반신의 경지는 넘어선 것 아닌가?
동수는 자신의 두 눈으로 검신의 재림을 똑똑히 담았다.
*
시뮬레이션은 수없이 많은 과거를 만들어냈고, 새로운 시뮬레이션이 시작될 때마다 그것들은 백업된 것이 아니라 삭제되었다.
삭제되었다고 소멸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잠재되었던 그것들이 수면 위에 떠오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삭제된 과거.
조각나고, 갈라지고, 저마다 온전하지 못한 그것들은 던전이 되어 데이터 충돌과 함께 지구에 다시 연결되었다.
과거가 하나일까?
그런 과거가 여럿이니, 오래된 던전일수록 그 횟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성 던전이 중복 횟수가 많고, 가장 최근의 과거였던 6성 7성 던전들이 횟수가 적은 이유다.
던전이 로딩되는 시간 따위가 사라진 지금의 세상에, 브레이크 따위는 없었다.
충돌과 동시에 나타났고, 지금 눈앞에도 그러했다.
소개령이 내려진 도시는 주민들의 대피가 신속히 이뤄졌고, 대부분의 피난은 이동포탈을 이용했다.
이동포탈 앞에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곁에 공간이 일렁거렸다.
츠츠츳!
“던전이다!”
눈앞에 붉은빛의 포탈이 생겨남과 동시에 몬스터들이 튀어나왔다.
예고 없이 세상에 모습을 보인 몬스터는 등장과 동시에 주변 민간인들을 도륙했다.
“꾸오오오!”
긴 창을 든 소머리의 거인이 마지막으로 튀어나와 낮고 긴 괴성을 질렀다.
소름 끼치는 그 소리도 문제지만, 그가 군주급인 게 더 큰 문제였다.
군인들이 긴장하며 지키고 섰지만, 제때 지원이 도착하지 않으면 지금 이 섹터에 존재하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죽으리라.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나설 수밖에 없다.
“소머리 조준! 사격 준비!”
막 발사 명령을 내리기 전, 하늘에서 내려온 한줄기 브레스가 몬스터 무리에게 닿았다.
쏴아아아!
번쩍이는가 싶더니 뒤늦게 주변 공기를 급랭시키며 사람들이 일순 으스스 떨었다.
“어?”
눈앞에 흉흉하게 등장했던 소머리 거인이 얼어붙어 있었다. 군인들이 하늘로 고개를 들어보니 시리도록 하얀 비늘에 검붉은 비늘이 군데군데 돋아난 용이 여기저기 극빙의 브레스를 뿜고 있었다.
용은 족집게처럼 몬스터들만 얼려버린 뒤 뭐가 그리 바쁜지 서둘러 떠났다.
*
“뉴욕 대피 60% 진행 중입니다.”
“멕시코시티 20% 진행 중입니다.”
인류의 모든 도시들이 수호시티가 위치한 한반도 주변에 대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미 인간의 도시와 몬스터들이 뒤섞인 북반구보다 남반구의 몬스터 정리가 더 빨랐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반신급의 수인들이 그야말로 몬스터들이 드글거리는 필드를 싹 청소해버렸다.
세계수를 중심으로 한 보호막은 차원균열을 억제해 더 이상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의 몬스터의 출몰은 없었기에 인근 도시들부터 빠르게 남미 대륙 끝단의 안전지대로 대피를 시작했다.
북미의 여러 도시들이 청소된 남미로 끝없는 피난 행렬에 올랐다.
세계 주요 도시들의 피난 상황을 점검하던 김미소는 빈 화면인 대형 모니터를 보며 재촉했다.
“균열억제권역 아직 집계 전이야?”
“남반구! 집계 시작됐습니다.”
빈 화면에 세계 지도가 띄워지고, 남대서양의 세계수가 위치한 공중섬을 기준으로 남미대륙 북단까지 초록색으로 칠해졌다.
‘넓다.’
이미 대륙 하나가 통으로 안전지대에 접어들었다. 브라질의 대도시는 피난계획이 철수되고, 빠르게 내부의 몬스터만 소탕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북반구는?”
“어, 방금 첫 집계 나왔습니다.”
더 이상 던전의 등장으로 육안 관측하는 게 아닌, 몬스터를 한번 소탕한 지역에 더 이상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으면 안전지대로 집계되었다.
지금 필드나 시티에 퍼져있는 용병들로부터 집계가 이뤄지니, 조금씩 그 관측이 느렸다.
화면에 뜬 지도에 김미소의 얼굴에 실망감이 어렸다.
“작아…….”
좁다.
남반구에 비해 반의반도 안 되는 구역.
중국 일부와 홋카이도를 제외한 일본 일대를 아우르는 정도다.
“오키나와 제도에 섬 출현!”
“홋카이도 동북 방향 200킬로미터 지점 가라앉고 있습니다. 거대한 해저 싱크홀입니다.”
“대만 남서 화산섬 출현!”
문제는 몬스터뿐만 아니라 지구 자체가 여기저기 변혁을 맞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멀쩡하던 땅이 떠올라 공중섬이 되는 경우도 있고, 거대한 싱크홀이 생겨나는 지역도 있었다.
판타지에서나 볼 법한 신비한 지형 변화가 곳곳에서 이뤄지며, 혼란을 부추겼다.
그나마 고무적인 것은 차츰차츰 안전지대가 넓어지고 있다는 것.
“권역 밖의 대도시에 집중적으로 지원 가세요. 필드의 청소는 신수들에게 모두 맡깁니다.”
수호가 소환한 신수들이 미친 듯이 날뛰고 있다. 필드 자체를 쑥대밭으로 만들 기세로 몬스터를 청소하고 있다.
G급 각성자들과 수호 길드의 고렙 용병들의 지원은 죄다 안전지대 밖, 대도시에 집중했다.
“사람들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합니다!”
최고 우선가치를 정하고, 빠르게 인력배치를 마쳤다.
“위성 사진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안전권역 보정 작업 시작했습니다.”
“좋아요.”
김미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도를 가득 채우고 있는 초록빛을 보았다.
한반도와 남대서양에서 시작된 저 빛이 지구 전체를 가득 덮길 간절히 기원하면서.
꼬박 하루의 시간이 지났다.
안전지대를 상징하는 초록빛은 빠르게 지구를 뒤덮어 갔으나, 속도가 차츰 늦어지더니 남반구의 초록빛부터 멈췄다.
서로 극점에 놓인 두 세계수를 축으로, 적도와 같은 선을 그으면 의 중간지점에서 꽤 멀리 떨어진 구역.
“저기가 한계인가?”
남미대륙의 북부에 위치한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의 절반 정도에서 더 이상의 영역의 확장을 멈췄다.
반대쪽인 한반도의 세계수 권역은 아직도 차츰 영역을 늘리고 있지만 어제에 비해 그 속도가 지나치게 느려졌다.
필리핀이 권역에 들어왔으며, 베트남과 중국 몽골 러시아로 이어지는 거대한 아시아 대륙이 더는 차원 균열이 일어나지 않는 안전한 땅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인도나 저 멀리 알래스카까지 닿기에는 멀다.
‘대칭을 이룬다면 인도네시아 일부까지가 한계다.’
두 그루의 세계수로 꽤 넓은 범위가 안전지대에 들었으나, 여전히 지구의 절반이 조금 안 되는 넓이의 땅이 무법지대가 되었다.
다행이라면 그 지역에 위치했던 대도시들은 모두 사람들의 대피를 마쳤다.
“소진아. 여기 맡아줘.”
“네, 부사장님.”
김미소는 상황실을 나와 숲으로 향했다. 이제 더 이상 야수 없는 야수 쉼터는 을씨년스러운 느낌마저 드는 적막함으로 가득했다.
쏴아아아.
한가롭게 숲을 산책할 시간도 없기에 빠르게 달려 세계수의 앞에 도착한 김미소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사장님!”
세계수의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수호의 상태가 심각했다.
얼굴이 허옇다 못해 파랗게 질렸으며, 삐죽 솟은 머리는 잔뜩 헝클어져 있었고, 여기저기 뽑히고 긁힌 상처마저 있었다.
볼살은 그간 수십 년은 굶은 사람처럼 쏙 들어가 있어, 광대가 툭 튀어나와 해골이나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손톱은 여기저기 빠지고 엉겨 붙은 피딱지가 말라 있었다.
헐레벌떡 앞까지 뛰어간 김미소는 차마 수호를 건드릴 수도 없었다.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그의 몸에 작은 충격이라도 줘서는 위험해질 것만 같았다.
“그만하세요!”
싸우고 있었구나.
홀로 무슨 싸움을 하기에, 이리도 망가졌단 말인가?
진즉 찾아볼 걸 그랬다. 하루 만에 어찌 이리도…….
일을 모두 자신에게 떠밀고, 한가로이 쉬고 있을 사람이 아니었는데.
홀로 얼마나 괴로워하고 고뇌하였는지, 자신은 알지 않은가?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다.
“됐어요! 사람들 모두 피난을 마쳤어요!”
어떤 싸움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 그 투쟁을 멈추시라. 당신이 그토록 염원했던 인류의 대피는 마쳤다.
스르륵.
푹 수그렸던 허리가 펴지며, 미라 같던 수호의 고개가 천천히 들렸다.
하루 만에 들어올려진 눈꺼풀 안엔 잔뜩 충혈된 빨간 눈이 있었다.
“…미소.”
“그만하세요. 다 피했어요. 모두 안전구역으로 대피를 마쳤어요!”
울먹이는 그 소리에 수호의 입매가 미미하게 꿈틀거렸다.
“후, 다행이다.”
진짜 더는 버틸 자신이 없었다.
포기할까도 마음먹었지만, 자신의 생명이 다해 하나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다행이란 생각으로 버텼다.
자신의 죽음을 정하듯, 그렇게 묵묵히 감내했다.
이 세상을 구원하는 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세상에 신은 많고, 사람들의 염원은 또 없던 신도 만들어내니까.
“죽는 줄 알았네.”
묵묵히 죽음을 기다렸건만, 다행히 아직 살 운명인가 보다.
계속해서 자신을 압박하던 무거운 족쇄를 벗었다.
해방감이 충만하다.
정말 모든 기력을 짜냈다.
“난 조금 쉬었다가 올게.”
“네. 그러세요.”
눈물로 범벅이 된 김미소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푹 쉬고 오세요.
언제까지라도 당신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게, 제가 잘 지켜내고 있을게요.
당신은 쉬세요.
나의 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