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226
상황좋게 형편좋게 지 맘대로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카드라니. 심지어 「?」카드조차도 덱에 집어넣으려면 실물 카드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진행해야 했었는데.
나는 벡을 노려봤다.
“이딴 밸런스 붕괴 카드를 넣는다는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
“밸런스 붕괴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 카드는 카드팩 박스 한 팩에 반드시 한 장 들어가 있습니다.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서도 누구나 한 장씩 가질 수 있는 카드란 거죠!”
“내 카드 박스에는 없었는데?”
“그런가요? 찍어내는 과정에서 불량품이 있었던 모양이군요.”
“…….”
고작 여덟 박스 만드는 데 불량품이 나온다는 게 말이나 되냐? 이 조작꾼 자식들 같으니.
벡의 멱살을 잡아서 업어치기를 먹여주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심판 폭행으로 실격 처리다.
제대로 함정에 걸렸다.
애초에 박스를 셔플하는 과정도 없이 나눠줄 때부터 의심을 가졌어야 했는데.
나를 노려보는 눈빛의 정체가 바로 저거였구만. 아까 필드를 정리하지 않았다면 「기계 양상공장」이 기계들의 효율을 높인다는 명목 하에 공격력 상승 효과로 바뀌었겠지.
킬각을 피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빌어먹을.”
나는 이를 악물었다. 다행인 점은 저 거지같은 창조인지 뭔지 하는 카드들이 종류를 막론하고 덱에 단 한장밖에 들어가지 못하는 유일 등급의 카드라는 점이다.
즉 한 번만 막아낸다면 더 이상 창조 카드들이 나오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 상황이 좋아진 것은 절대 아니다. 효과가 마음대로 변하는 카드가 있다는 건 어떤 상황에서건 최선의 결과를 내는 카드가 있다는 뜻.
어느 듀얼에서든 갑자기 킬각이 나와도 절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거다. 등골로 땀이 흘러내린다. 이대로라면 ‘웬종일 대회를 계속하면서 매일매일 합법적으로 듀얼하기 대작전’에 크나큰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당신의 턴입니다.]“나를 이 고생을 해서 지게 만들려는 이유라도 있는 거냐?”
“빨리 지게 안 만들어놓으면 한달이고 두달이고 듀얼만 하면서 버티고 있었을 거잖아! 우리는 결론이 빨리 보고 싶다고!”
“내 완벽한 계획을 훼방 놓으려고 카드팩을 발매한 거냐!”
“그딴 걸 완벽한 계획이라고 말하지 마!”
두세달씩 듀얼하면서 버티는 게 뭐가 잘못이라고! 여자친구 사귀는 데 두세달 듀얼하면서 결정하는 게 뭐가 문제라는 거야!
“얌전히 패배를 받아들여라!”
“빨리 결론을 내!”
“자그마치 1년이나 기다렸다고! 빌어먹을 자식아아아!”
주변에 내 편은 단 한명도 없다. 나는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납득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나를 패퇴시키겠다 이거지.
상관없다.
저딴 사기 카드들을 상대편에게 편파적으로 몰아준다고 해도.
룰을 고정해서 사기 카드를 내가 쓸 수 없게 만들어놨다고 해도.
온 세상이 내 적이라도. 비겁한 권모술수로 나를 억지로 까더라도.
나는 절대 져 주지 않을 테니까.
“근데. 이 듀얼. 이우주가 사귈 사람을 고르는 듀얼이라며.”
“그렇지.”
“그러면 엄청 불리해도 상관없잖아.”
“그렇지.”
“대체 왜 저렇게까지 적의를 불태우는 건데?”
“듀얼에 미친 놈이라 그래.”
시끄러. 나는 이 콜로세움에 메테오가 떨어지는 상상을 하며 카드를 뽑아들었다.
“드로우.”
+
【레일 건】
【6 mana】
【이 카드와 세로로 마주보는 카드를 모두 파괴합니다.】
+
콤보 파츠의 핵심인 「레일 건」이 드디어 핸드에 들어왔다. 남은 콤보 파츠는 한 장.
“아직도 싸울 것 같은 기색인데?”
“시레나! 전익현 안 무서워! 시레나 덱 엄청 세!”
“뭐, 전익현이 아무리 날고기어 봐야 창조자 카드도 없는 덱일 뿐이지.”
하하호호 웃고 있는 갤러리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내 콤보가 너희들의 덱을 뚫어갈긴 다음에도 그렇게 하하호호 웃을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
##외전#6 : 듀얼(5)
예감이라는 것은 일종의 빅 데이터와 같다. 경험은 직관을 빚어낸다. 이 직관이 만들어내는 예감은 경험이 많은 자일 수록 정확하다.
‘이긴 것 같은데.’
남연철의 머릿속에서는 승리의 예감이 떠올라 있었다.
자신의 필드 위에 떠 있는 「기계 양산공장」의 효과로 전익현은 턴이 지날수록 핸드를 손해 보고 있었다.
한 장으로 두 장으로 카드가 복사되는 「기계 양산공장」의 효과가 가져다주는 이득은 막대했다.
마치 과거의 「특이성」과도 같은 느낌이랄까. 특이성을 가지고 있는 듀얼리스트와 그렇지 못한 듀얼리스트의 격차는 어마어마하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머릿속으로는 자신이 이기는 그림밖에 그려지지 않는다. 확신에 가까운 예감.
「기계 양산공장」이 발동된 지도 어언 6턴째. 전익현은 카드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황인데도 수읽기만으로 지금까지 버텼다.
그래 봤자 그것도 이제 끝이지만. 전익현의 핸드에는 카드 한 장밖에 남아 있지 않다.
[전익현의 턴입니다.]“버텨 봤자인 것 같은데.”
전익현은 언제나처럼의 표정으로 카드를 뽑아들었을 뿐이다.
“궁금한 게 있는데.”
“전기 충격기는 자주 안 쓸게.”
“그거 말고.”
“그럼 뭐.”
“내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어?”
남연철의 표정이 일순간 찌푸려졌다. 포커 페이스가 꽤 늘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이 시점에서는 표정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걸 지금 물을 필요가 하나라도 있나?”
“대답 안 해 줘도 크게 상관은 없어. 근데 명색이 대표 선발전이잖아.”
“이 듀얼에 선발전이라는 말을 쓰지 마.”
“소소한 단어는 중요한 게 아니야.”
“그 소소한 단어가 중요한 거라고.”
아무래도 전기 충격기의 정격 용량을 늘려 놔야 할 것 같아 보인다. 듀얼로 가득차 있던 머릿속에 전익현의 질문이 머리를 든다.
“…네가 좋은 점이라. 일단 듀얼을 잘하지.”
“또.”
영원과 같은 침묵이 듀얼 필드에 내려앉았다.
“…그게 전부군.”
“내 장점이 그게 전부일 리가 없잖아!”
“소소한 것들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누군가가 그랬거든.”
“그딴 개소리를 하는 놈이 세상에 어딨어! 야! 너희! 너희도 내 장점을 말해! 당장!”
관객석에서 가장 먼저 대답을 한 것은 길게 고민을 곱씹던 신하연이었다.
“예전에는 강사님한테도 몇몇 마음에 드는 점이 있었는데. 오래 보다 보니까 사라졌어요.”
“확실히. 좋다 싶은 마음이 치솟았다가 알면 알수록 호감도가 낮아지지.”
“단물만 쪽 나온 다음부터는 씹는 맛 뿐인 껌 같은 인간이랄까.”
“전익현! 씹는 맛 있어! 팔뚝살 맛있어!”
갤러리의 맹공에 무표정하던 전익현의 입술이 미세하게 튀어나왔다. 어마어마하게 삐친 모양이다.
“그럼 대체 날 왜 그렇게 괴롭히는 건데?”
“싫어하니까.”
싫어한다는 말에 전익현의 입술이 또 조금 더 튀어나왔다. 저 인간도 듀얼 중에 표정이 바뀌기는 하는구나.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말거나 자신은. 그리고 여기 있는 모두는 전익현에게 전해줄 마음이 있었다.
제자가 스승에게 배우듯이, 스승도 때로는 제자에게 배울 것이 있는 법이기에.
* * *
나는 남연철을 노려봤다. 아무리 나라도 좋아하는 사람한테 싫다는 말을 들으면 상처받는다.
“대체 내 어디가 맘에 안 드는데?”
“듀얼 말고 모든 것들.”
1초라도 생각하면 안 되냐. 즉답이 나오는 건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잖아.
“제일 맘에 안 드는 건 역시 생각을 안 보여 주는 점일까.”
“포커 페이스는 듀얼리스트의 기본이라고. 감정의 기복을 줄이고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지 않는 게 진짜 듀얼리스트다.”
“그걸 평소에도 하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지.”
역시. 듀얼은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서로에게 전가한다. 생각, 행동, 사상. 심지어 전가하고 싶지 않은 것들마저도.
“…언제부터 알았냐?”
“엄청 오래 전부터.”
“모두 다. 알고 있어?”
나는 시선을 선수석으로 옮겼다.
“잘 때마다 신음을 그리 뱉는데. 모를 리가 있겠느냐.”
“언제나 알았지. 말하는 건 처음이지만.”
“강사님은 거짓말 엄청 못 해요.”
“잘 때마다 심박과 호흡이 가팔라지죠.”
“그걸 모르는데 여기 올 리가 없지.”
죄다 알고 잇었군. 입 안이 쓰다. 하긴, 그렇게 많이 듀얼을 했는데도 서로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지. 멍청이도 아니고.
“맞아. 전익현! 맛있는 음식은 맨날 선반 안에 넣어놔!”
혹은 시레나만 빼고. 시레나는 멍청이가 아니다. 그냥 시레나일 뿐이지.
나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부터. 그리고 불치병을 알게 된 뒤부터. 나는 오랜 시간 죽음을 준비해왔다.
“니가 제일 나쁜 건.”
시간의 제약은 듀얼리스트에게 실수를 만들어낸다. 나는 위대한 듀얼리스트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수를 절대 하지 않는 완전무결한 존재는 아니다.
내 실수라면. 내가 살아남은 뒤를 생각하지 않은 것. 그리고….
“상처를 너 혼자만 짊어지고 가려고 한다는 거야.”
내 안에 있는 트라우마들을 혼자서 가져가려고 한 것.
밤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악몽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것.
내 상처를 굳이 타인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것.
“시끄러. 죽음이 목전에 있다고 생각한 인간이 트라우마를 지고 가는 게 뭐가 악수惡手라는 거야.”
“안 죽었잖아.”
훈수 두는 놈들은 꼭 결과론을 끼워 맞추더라.
내가 살아남은 건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고통은 나눠 봤자 배가될 뿐이다. 내 상처는 치유되지 않고, 그렇게 내가 떠나면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상처만 될 뿐이다.
…
안다. 이 모든 것들이 변명일 뿐이라는 걸.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그만큼 내 안의 상처를 이야기해야 한다. 타인을 도와준다면, 나 또한 기쁘게 도움받아야 한다.
지금 이 콜로세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나를 응원하기에. 나를 도와주고 싶기에 온 사람들이다.
나도 모르는 순간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실수.
명백한 내 실수다.
“이제 좀 인정할 생각이 드나?”
“…….”
“지금이라도 패배를 인정하면….”
“옛 말에 그런 말이 있지.”
[당신의 턴입니다.]“실수는 인정하기 전까지는 실수가 아니다.”
나는 카드를 뽑아들었다. 내 입에서 내 실수에 대한 실토를 들어내려면 나를 듀얼로 쓰러트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나는 듀얼에서 절대 져 줄 생각따위는 없다.
“전익현 너 지금 아직까지도 인정 안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