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50
그렇게 하나로 합쳐진 본원은 한제의 기억으로 가득한 한 줄기 기운이 되어 고리를 이루더니 이마에 드리웠다. 그리고 이 고리 모양의 낙인이 찍힌 순간, 추억에 잠겨 있던 한제의 눈빛은 폭발하듯 밝게 번득였다.
동시에 그의 수준은 다시금 치솟으면서 녹마의 힘을 남김없이 흡수했다. 심지어 녹마의 분혼 일부도 증폭하고 있는 한제의 원신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허나 완전한 공현기 절정에 이르게 하기에는, 아홉 번의 현겁을 마주하기에는 부족했다. 더 많은 힘이 필요했다.
두 눈을 번득이던 한제는 입을 쩍 벌리더니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러자 거대한 전갈 형태의 사당 밖에서 엄청난 힘이 몰려들었고 심지어는 사당 가장자리를 에워싼 안개까지 끌려 들어와 거대한 회오리가 됐다.
이러한 놀라운 변화는 녹마주 수련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거의 끝을 보이는 천우주와의 교전으로 인해 살아남은 수련자는 많지 않았으나, 그 대부분은 수준이 높은 편이었다. 그중 도마종은 지난 1백여 년간 7할 정도의 제자를 잃은 상태였고 그 동안 이들의 종주는 폐관수련을 이어오는 중이었다.
녹마주 중앙의 마갈 사당에서 일어난 변화를 어렴풋이 느낀 이들은 녹마의 부활에 대한 소문을 떠올렸다. 이에 곳곳에서 열 갈래가 넘는 빛이 튀어나와 마갈 사당을 향해 몰려들었다. 도마종에서도 두 갈래의 빛이 튀어나왔다. 녹마가 부활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기 위함이었다.
사당 주변의 기이한 현상은 몇 달이나 지속됐고 그 사이 엄청난 힘이 그 안으로 흡수됐다. 몰려들었던 녹마주 수련자들은 감히 다가가지는 못하고 주위에서 지켜보다가 기이한 회오리가 확산되자 뒤로 물러났다.
몇 달 동안 응집된 엄청난 힘은 전부 사당 안 한제에게 흡수됐고 그의 수준은 폭발적으로 치솟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콰쾅!
한제의 체내에서는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고 동시에 그의 수준은 공현기 절정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어마어마한 파동이 일었으나, 주위에서 휘몰아치는 힘에 숨겨졌다. 게다가 사당 근처로 모여든 녹마주 수련자들은 감히 신식을 펼치지도 못하고 있었다. 혹여 녹마의 부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쳐 감당하지 못할 분노를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에 누구도 사당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파악하지 못했다.
수준이 공현기 절정으로 치솟은 순간, 한제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오행 진신이 체내로 녹아들었고 곧장 그의 수준은 다시금 높아지기 시작했다.
뒤이어 한제는 손을 또 한 번 휘둘러 무시무시한 천둥번개 본원이 진신을 흡수했다. 그 순간, 그의 전신에서는 어마어마한 기세가 발산됐다.
한제는 강력해진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그는 천우의 혼개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임에도 공겁기 후기 수련자와도 맞붙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조차도 살육의 천둥번개를 사용하지 않을 때의 이야기였다. 만약 그가 어쩔 수 없이 그 무시무시한 살육의 천둥번개까지 사용한다면 그 위력이 대체 어느 정도일지는 한제 자신도 알지 못했다. 의도치 않게 얻어낸 이 천둥번개는 그가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강력한 힘에 한제는 굳건한 신념을 발산했고 이 신념은 그의 기운을 변화시켰다.
자리에서 일어난 한제는 뒷짐을 진 채 사당 너머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동시에 신식을 펼쳐 마갈 사당을 완전히 뒤덮었다.
운일봉 등은 이미 이곳을 벗어난 상태였다. 변운과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일이 있었지만 사실 지금 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눈앞으로 다가온 아홉 차례의 현겁이었다.
“단숨에 아홉 차례의 현겁을 통과해 공겁기에 이른다면 곧장 도마종을 멸할 것이다. 흔적도 없이 소멸시켜주마!”
한제의 눈이 살의로 서늘하게 번득였다.
지금 한제는 대존이 되기 위해 통과해야 할 현겁의 강림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직 현겁을 마주한 적은 없지만 지금 그에게는 누대(樓臺) 위에 서서 현겁이 강림하는 순간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감상할 자신감이 있었다.
현겁은 공현기에서 공겁기로 가는 과정으로 천벌과 달리 번개 형태만이 아닌 특수한 방식으로 수련자의 몸에 떨어져 차례차례 붕괴를 야기한다.
현겁을 통과하지 못하면 수련자의 육신과 혼은 그대로 소멸하기에 수많은 공현기 수련자는 현겁을 두려워했다. 차라리 영원히 공현기에 머물기를 원하기도 했다. 그 옛날 남몽도존 역시 공현기 절정에서 오랫동안 현겁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또한 대부분의 공겁기 수준 수련자는 아홉 차례의 현겁을 통과하는 데 수천 년 이상을 들이게 마련이다. 단번에 아홉 차례의 현겁을 통과할 생각을 하는 이는 거의 없었고 조금이라도 불길한 느낌이 들면 곧장 현겁을 중단했다.
허나 현겁은 재앙인 동시에 행운이기도 했다.
아홉 차례의 현겁 중 처음 세 개는 외겁(外劫), 중간의 세 개는 내겁(內劫), 마지막 세 개는 혼겁(魂劫)이라 불리는데 만약 내겁을 단숨에 통과하면 원신은 두 배로 증폭하고 외겁까지 단숨에 통과하면 세 배로 증폭한다.
아홉 현겁을 단번에 통과하면 그보다 더 배가되지만 정확히 얼마나 증폭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역사상 이에 성공한 사람은 단 둘뿐인데 둘 다 후에 대천존이 됐기 때문이다. 이들조차 당시 그 후유증으로 중상을 입어 오랜 세월 폐관수련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보통의 수련자는 여섯 차례의 현겁만 연거푸 통과해도 공겁기 초기 수준 수련자 중 강자에 속했다. 공겁기 중기 절정의 수련자에게도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허나 이에 성공한 자도 매우 드물었다. 게다가 현겁은 굉장히 기이해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가야만 했다.
두청은 몇 차례 현겁을 통과했지만 시간 간격을 둔 상태로 지금으로서는 한 걸음을 더 내딛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다음 현겁에 대비할 시간이 있기 때문이었다.
현겁은 뒤로 갈수록 강력해지고 일단 발을 들이면 다음 현겁이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그렇게 점점 버거워지는 현겁은 수련자에게는 죽음의 신호와도 같았다.
선강 대륙의 누군가가 현겁에서 죽을 가능성을 계산해본 적이 있다. 그 결과가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첫 번째 현겁에서 죽을 가능성은 1할이었다. 이 가능성은 점점 증가해 아홉 번째 현겁에서는 9할에 이르렀다.
현겁의 위력
한제는 진중한 얼굴로 한 걸음 나서더니 순식간에 건물을 나와 사당 위에 나타났다. 하늘을 향해 치켜든 전갈의 꼬리를 밟고 선 그의 백발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은 우아하기까지 했다.
“현겁은 대체 어떤 방식으로 찾아올까? 기대되는군.”
단숨에 아홉 번의 현겁을 통과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가진 그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동안, 그 수준이 빠르게 가동되며 공현기 절정의 기운을 발산했다.
이 기운은 끊임없이 응집되다가 체내에서 뿜어져 나와 주위를 에워싼 폭풍을 형성했다. 곧장 하늘로 솟구쳐 올라간 폭풍은 찰나의 순간 하늘과 하나로 이어졌다.
폭풍은 보이지 않는 압력을 형성해 한제를 중심으로 사방을 휩쓸며 눈 깜짝할 사이 반경 수백 리를 뒤덮었다. 그 범위에 남아 있던 모든 생명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 안으로 반 발짝도 들일 수가 없었다.
이것이 바로 현겁이었다. 어느 수련자가 현겁을 마주하기로 마음먹은 상황에서는 누구도 그를 도울 수 없는 것이다.
압력은 계속해서 확산해 눈 깜짝할 사이 반경 수천 리를 뒤덮었다.
녹마의 부활을 보기 위해 사당 주위에 모여 있던 녹마주 수련자들은 표정이 급변해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신식을 통해 사당 안을 살필 수는 없었지만 이들은 그 안의 누군가가 현겁을 마주하려 함을 느낄 수 있었다.
“현겁? 여, 여기에 어떻게 현겁의 위압감이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설마 녹마님이 너무 오랜 세월 진압되어 있던 탓에 수준이 대폭 떨어지신 건가?”
녹마주 수련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이 무렵, 전갈 꼬리 위에 선 한제는 여유로운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
눈발은 점점 굵어져 금세 온 세상을 뒤덮었고 반경 수천 리가 온통 눈으로 가려진 상태였다. 이어 서늘한 한기가 휘몰아졌다.
수천 리 밖으로 물러난 녹마주 수련자들은 위압감으로 뒤덮인 범위 안에 내리는 눈을 보며 웅성거렸다.
“첫 번째 현겁인 설겁(雪劫)이로군! 이 겁은 흔치 않은데⋯⋯.”
“녹마님이 설겁을 어떻게 통과하실지 보자고!”
한제는 내리는 눈을 침착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풍경을 감상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눈발은 점점 거세어졌고 한기도 갈수록 더해졌다.
잠시 후, 내리던 눈이 돌연 멈춰버렸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리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뒤이어 허공에 떠 있던 수많은 눈송이 하나하나가 예리한 칼날처럼 변해 사방에서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게 첫 번째 현겁인가?”
한제는 피식 웃더니 다소 실망한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예리한 눈발이 달려들자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그 순간, 그의 체내에서 오행의 진신이 나타났다.
한제는 거대한 전갈 꼬리 위에 아예 가부좌를 틀더니 술병을 소환했다. 천우주에서 가져온 것으로 일반인이 빚은 알싸한 술이 담겨 있었다.
술을 들이켜는 그의 모습은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한데 전갈 꼬리 위에 앉아 백발을 휘날리며 홀로 술을 마시는 그의 모습은 선강 대륙 저 먼 곳, 폐허가 된 대륙의 허물어진 조각상에 앉아 있던 중년 사내와 퍽 비슷해 보였다. 고독하고 쓸쓸하고 냉랭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한편, 오행 진신은 온몸으로 강력한 불바다를 발산했고 이는 곧장 99마리 염룡이 되어 포효하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눈발은 굉장히 예리했지만 한제의 오행 진신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 염룡과 닿자마자 눈발은 녹아내려 하얀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99마리 염룡은 주위의 눈이 모두 녹아내린 순간 하나로 융합해 몸길이가 10만 척에 이르는 한 마리 거대한 염룡으로 변했다.
이 염룡은 타오르는 화염을 발산하며 예리한 검처럼 솟구쳐 올라 하늘을 불살랐다. 이에 하늘이 타오르면서 첫 번째 현겁인 설겁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약해.”
한제는 술을 한 모금 더 들이켜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였다. 활활 타오르던 하늘이 돌연 격렬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마치 광풍에 휩쓸리기라도 한 듯 웅웅 소리를 내던 하늘에서는 아홉 개의 어마어마한 폭풍이 나타났다.
아홉 개의 회오리는 곧장 달려들어 하늘을 불사르던 화염을 흩어버렸고 동시에 한 줄기 강력한 기운을 발산했다.
콰르릉!
하늘의 분노를 담은 듯 우렁찬 소리가 수천 리 밖까지 퍼져 나갔고 아홉 개의 회오리는 갈기갈기 찢어버릴 기세로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오행 진신은 미동도 없이 한제의 뒤에 서서 회오리가 한제의 몸을 뒤덮는 것을 바라보았다.
회오리는 강력한 힘을 일으켜 한제의 몸을 휩쓸었다. 그러나 한제는 지루해 보이기까지 한 얼굴로 술만 들이켤 뿐이었다.
순식간에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아홉 번째 회오리까지 그의 몸에 떨어졌다. 그리고 어느덧 하나로 융합된 회오리가 전갈 형태의 건물 절반 이상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해진 순간, 한제가 돌연 고개를 쳐들었다.
“아직도 약해!”
한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른 사람들이 이 현겁을 어떻게 통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설겁은 그의 진신조차 전혀 흩뜨리지 못했고 풍겁(風劫)은 그의 육신을 파괴하지 못했다. 풍겁이 수백 년을 이어진다 해도 그의 육신을 어쩌지는 못할 터였다.
이는 그의 육신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덕이었다. 제사장의 개조를 통해 더욱 강력해졌을 뿐만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탄성까지 갖게 된 것이다.
한제는 손을 들어 자신을 에워싼 회오리를 가볍게 움켜쥐더니 휙 하고 바깥쪽으로 휘둘렀다.
콰쾅! 쾅!
굉음이 연이어 울려 퍼지면서 회오리는 첫 번째 층부터 아홉 번째 층까지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더니 광풍처럼 몰아치며 흩어져 사라졌다.
한제는 가만히 앉아 술을 들이켰다. 그의 뒤에 선 오행 진신 역시 서늘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볼 뿐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편, 수천 리 밖에 선 10여 명의 녹마주 수련자는 눈과 바람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겁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며 경악했다.
그때, 하늘이 낭패를 당한 사람의 얼굴처럼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어마어마한 구름이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다. 꿈틀거리는 구름에서는 요란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고 동시에 벌어진 구름 안에서 한 줄기 번개가 번쩍이며 대지를 환하게 비췄다.
천둥번개의 소리와 기세는 갈수록 격렬해졌고 구름은 더욱 많아져 곧 하늘을 완전히 뒤덮었다. 묵직한 압박감이 대지를 짓눌렀고 구름에 담긴 번개도 점점 늘어나면서 마구 날뛰었다.
허나 그 어떤 것도 한제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그는 여전히 덤덤하게 술을 마시며 힐끗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천둥번개? 정말이냐? 크하하하! 아하하!”
한제가 배가 아플 정도로 웃고 나서 그는 잠시 후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다시 술을 들이켰다.
그때, 구름 안에서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번개가 내리쳤다. 어마어마한 힘을 품은 번개는 곧장 한제를 향해 돌진했다.
그 순간, 고개를 번쩍 쳐든 한제가 낮게 호령하듯 외쳤다.
“어딜 감히!”
짧은 외침이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사이 한제 체내에서는 한 줄기 천둥번개의 의지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세상 모든 천둥번개의 주인이 내뿜는 의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