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73
한참 고민하던 그 노인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약속을 꼭 지키길 바라네.”
말을 마친 그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두 동료를 바라보더니 떨리는 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나 미간에서 금색 핏방울이 빠져나와 한제의 손에 떨어졌다.
다른 두 노인은 쓰게 웃으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바닥에 쓰러져 죽은 진백량을 살피더니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금번에 갇혀 있던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운천자를 풀어줄 수 있겠나?”
한제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금번 사이에 틈이 한 갈래 나타나더니 그 안에 들어 있던 노인이 빠져나왔다. 그 모습을 본 두 노인은 혼혈을 건넨 뒤 땅에 내려앉아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치 않겠다는 눈치였다.
금번에서 빠져나온 운천자는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하고는 표정이 굳어버렸다. 그는 어두운 얼굴로 동료들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고 이내 혼혈을 내놓았다.
이렇게 운천종의 다섯 시조 중 한 명이 죽고 네 명이 투항했다.
이 무렵, 송청은 이미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머리는 텅 비어 있었다. 워낙 상황이 뜻밖이었던지라 어느 것을 따르고 어느 것을 버려야 할지 계산도 잘 서지 않았다. 류비의 표정 역시 암담했다. 그는 시조들도 저자에게 이리 쉽게 제압당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기에 충격이 컸다.
주위를 한 차례 둘러본 한제의 시선이 송청과 류비 등에게 닿았다. 그는 위엄이 넘치는 말투로 덤덤하게 말했다.
“결단기 이상의 수련자는 한 명도 빠짐없이 혼혈을 내놓아라.”
송청은 몸을 부르르 떨며 얼른 공손하게 그러겠다고 답한 뒤 가장 먼저 혼혈을 내놓았다. 류비와 남은 두 명의 장로가 뒤를 이었다.
이제 한제의 시선은 그곳에 모인 다른 종파의 수련자들에게 닿았다. 그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짧게 말했다.
“가보도록!”
그 말에 사람들은 최대한 빨리 운천종을 떠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전 내외에는 단 몇 명의 운천종 사람들만 남게 되었다.
한제는 평온한 표정으로 모완을 안고 남원으로 내달렸다. 순식간에 처소에 도착한 모완이 막 입을 열려는 순간, 한제가 창백한 얼굴로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그의 몸은 주체할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모완은 깜짝 놀라 그를 살폈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며칠 동안은 폐관 수련을 해야겠어. 그동안 나를 좀 지켜줘.”
말을 마친 한제는 모완의 방으로 순간이동을 했고 곧바로 석주 공간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눈을 감고 호흡을 시작했다.
사실 한제의 원영은 아직 완벽하게 맺힌 상태가 아니었다. 만약 진정한 원영기에 이르렀다면 성격상 자신에게 저항한 자들을 모두 죽인 후 운천종에 있는 모든 단약을 가지고 모완과 함께 초나라를 떠났을 것이다.
지난 20일 동안 분신을 이용해 6품 단약을 섭취한 그는 원영을 맺는 데 성공했고 그 후로도 수련에 정진해 원영기 초기의 절정에까지 이르렀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하지만 본체와 합체를 하던 그때,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상황은 한제가 원한 것처럼 분신의 경지가 본체를 이끌어 본체로 하여금 원영을 맺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극의 신식이 보이는 병목 현상을 과소평가한 탓이었다.
예전에도 극의 경계를 얻은 뒤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시도한 사람은 적지 않았지만 그중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이는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극의 경계는 사실 또 다른 형태의 천벌과 같은 것으로 천벌의 위력을 드높이는 것이 인간의 힘으로 가능하겠는가.
그런 힘은 오직 비밀스럽고 변화무쌍한 하늘에 달려 있었다. 마지막 합체 과정 중 한제는 본체로 하여금 원영을 맺게 하는 데에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어쩔 수 없이 분신을 끊임없이 압축시켜 그 분신을 원영으로 만들어 본체의 단전에 심었다.
이를 통해 임시적으로는 본체를 원영기 수준에 이르게 할 수 있었고 심지어 극의 경계까지 원영기의 위력을 갖게 할 수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조치일 뿐이었다. 매번 극의 경계로 공격을 할 때마다 신식이 끊임없이 소모되었고 분신의 원영이 갖는 힘도 소모되었다.
극의 신식은 이제 더 이상 신통술이 아니라 하나의 법보 같은 존재로 변해버렸다. 법보를 사용하는 데에는 많은 영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 극의 경계를 사용하는 데에는 영력뿐만 아니라 신식과 원영의 힘까지 필요했다.
하지만 이 방법에는 장점도 있었다. 일단 30년으로 제한되었던 분신의 한계는 본체와의 융합으로 자연스레 사라졌다. 지금 한제에게는 본체와 분신의 구분이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는 원영기 초기의 절정에 이르러 있었으나, 극의 신식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쉽게 사용할 수 없는 법보가 되었다.
한제는 극의 신식을 연속적으로 사용하느라 원영의 힘을 크게 소모한 상태였다. 그는 체내의 영력을 조정하고 몇 개의 단약을 복용한 뒤에야 겨우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는 현실의 하루, 즉 석주 공간에서 7일이 흐른 뒤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극의 신식은 법보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지만 어쨌든 그는 결단기를 돌파해 원영기에 이르러 있었다. 이제 조나라로 돌아가 복수를 할 시간이었다.
그가 나오자 모완이 문을 열고 들어와 조용히 곁에 서서 말했다.
“좀 어때?”
부드러운 눈빛으로 모완을 바라본 한제가 오른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아무 문제없어.”
“원영을 맺는 데⋯⋯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거지?”
모완은 한제를 똑바로 바라보며 신중하게 물었다.
“선배, 솔직하게 말해줘. 선배와 관련된 거라면 다 알고 싶어. 알려줘, 응?”
한제는 잠시 침묵하다가 모완의 진심어린 눈을 마주보며 천천히 말했다.
“좋아,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니까. 난 화분국 사람이 아니야. 사실 내가 태어난 곳은 여기서 아주 멀리 떨어진, 조나라라는 3성 수련국이야.”
한제는 조나라에서 일들을 풀어나갔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담담한 목소리였다.
모완의 두 눈은 언제부턴가 붉어져 있었다. 한제에게 그렇게 많은 일이 있었을 줄 전혀 예상치 못한 탓이었다.
한참 뒤, 모완이 아랫입술을 깨문 채 말했다.
“이제 조나라로 돌아가려는 거야?”
한제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돌아가면 등화원 그자의 가문을 피바다로 만들어버릴 거야. 함께 가자.”
모완은 미간을 살짝 구긴 채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극의 신식을 사용할 때마다 원영의 기운이 대량으로 소모된다면서? 그럼 장기적으로는⋯⋯.”
그녀는 깊은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결심한 눈빛이었다.
“난 운천종에 남을게. 여기서는 단약의 재료도 단약을 만들 공간도 충분하니까. 6품 이상의 단약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선배에게 큰 도움이 될 거야.”
한제는 조용히 모완을 바라보다가 느릿하게 말했다.
“정말이야?”
모완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자들의 혼혈을 나에게 주면 내 안전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야. 걱정 마. 나야 여기 하루 이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지간한 일들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어. 이 운천종을 사형만을 위한 연단방으로 만들어줄게.”
한제는 모완을 바라보며 미간을 살짝 구겼다.
“만약 4성 수련국에서 찾아오면 어쩌려고?”
모완은 우습다는 듯 웃었다.
“4성 수련국들은 시간에 맞춰 약속한 단약만 받을 수 있다면 운천종이 누구 소유든 신경 안 써. 그러니까 걱정 마. 내가 알아서 할게.”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이 머무는 진흙탕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생각은 원래부터 없었던 데다가 이미 모완은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 더는 그녀에게 동행을 권유할 수도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미간을 두드려 두 번째 마혼을 꺼냈다. 마혼은 공손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한제는 그런 마혼에게 명했다.
“지금부터 넌 모완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말고 지켜라. 알겠나?”
두 번째 마혼은 허리를 숙여 명을 받들더니, 한 줄기 검은 빛으로 변해 모완의 미간 속으로 들어갔다.
흠칫 놀란 모완은 금세 한제가 이전에 말했던 마혼을 떠올린뒤 신기해했다. 자신의 미간에 쏙 들어온 작은 마혼이 그녀는 퍽 마음에 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안심할 수 없었던 한제는 오른손을 휘둘러 지금 그가 가진 것 중 가장 강한 법보인 금번을 건넸다.
“이걸 잘 활용한다면 화신기 수준의 수련자를 만난다고 해도 한동안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을 거야. 만약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마혼을 통해 나도 곧장 느낄 수 있으니 바로 돌아올게.”
모완은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성의를 거부하지 않고 순순히 금번을 받아 들어 조심스럽게 저물대에 넣었다.
이어 신식으로 운천 산맥을 싹 훑어 송청 등의 장로들과 네 명의 시조들을 찾아낸 한제는 그들에게 모두 이곳으로 모이라는 분부를 내렸다.
운천종의 원영기 수련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그들의 혼혈 중 몇 개는 한제 자신이 가지고 있었고 나머지는 한제가 폐관 수련을 하는 동안 모완이 맡고 있었다. 말하자면 지금 이 운천종은 통째로 한제의 손에 들어와 있는 셈이었다. 원하기만 한다면 당장 그들을 모두 죽여 버릴 수도 있었다.
모든 원영기 수련자들이 모인 앞에서 한제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혼혈까지 전부 모완에게 넘겼다.
네 명의 시조는 의아한 눈빛으로 모완을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송청 등은 속으로 몰래 한시름을 내려놓았다. 한제에 비하면 모완에게 자신의 혼혈이 가 있는 것이 훨씬 나았다. 어쩼든 모완은 운천종의 장로 아닌가.
모완은 그 혼혈을 받아 든 뒤 운천종의 사람들에게 살짝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소첩이 서방님을 대신하여 운천종을 관리하며 여러 선배님들을 살필 것입니다. 시조님들, 혼혈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5백 년의 기한이 다하면 반드시 돌려드리겠습니다. 또한 저는 수명을 늘리는 단약을 만들 수 있으니 유감스러운 마음을 대신해 네 창시님들께 그 약을 드리겠습니다.
다만 그 약을 만드는 것은 조금 어려운 데다가 필요한 재료들도 구하기 어려우니 50년에 한 번씩, 차례대로 하나의 단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약을 한 알 먹으면 50년의 수명을 더 얻게 될 것입니다.”
“수명을 늘린다고?”
그들에게 수명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수명을 증가시키는 단약은 분명 존재했지만 가장 낮은 등급의 단약도 6품 단약으로 구매를 하고 싶어도 워낙 비쌌다.
“여기 다섯 개가 있습니다. 한 번 보시지요.”
모완이 살짝 웃으며 작은 병에서 단약을 꺼내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세 명의 시조는 운천자에게 시선을 던졌다.
운천자는 한참이나 그 단약을 바라보더니 감탄했다.
“자네가 만든 것인가?”
모완이 미소를 지었다.
“제가 만든 것이기는 하나 재료는 서방님이 주셨습니다.”
사실 이 단약은 영기 액체로 만들어진 약이었다.
다시 만난 옛사람 (1)
운천자는 한제를 바라보며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우리 혼혈을 이 장로에게 넘긴 것을 보니 이곳을 떠날 모양이군. 시간에 맞춰 그 단약을 주기만 한다면야 5백 년 동안 이 장로를 잘 보살피겠네!”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준다면 고맙겠군!”
모완은 송청과 류비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구양자 사형은 어찌 아직 오지 않으십니까?”
송청은 한제를 힐끔 곁눈질하며 얼른 말했다.
“사형께서는 단약을 만드는 중이네. 사형은 만약 자네가 운천종에 있는 모든 5품짜리 단약을 제물로 바치기만 한다면 혼혈은 자네에게 넘긴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하셨지. 음, 분명 그리 말씀하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