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94
한제는 다시 극의 신식을 펼쳤다. 이번에 그 붉은 번개들의 목표는 흑천이었다.
흑천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위기의 순간, 허공에서 갑자기 거대한 손이 나타났다. 그 손은 붉은 번개를 잡고 가볍게 구부렸다. 그러자 번개에 균열이 생기더니 흩어져 사라져 버렸으나, 그 손도 격렬하게 진동했다. 뒤이어 화려한 복장 차림에 약간 뚱뚱한 중년 사내가 흑천 앞에 나타났다. 한제를 본 그는 흠칫 놀라더니 기쁜 듯이 말했다.
“너였구나!”
말을 마친 그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푸른빛과 붉은빛은 곧장 그의 곁으로 돌아와 뱅뱅 맴돌았다.
중년 남자가 나타나자 흑천은 허리를 굽혀 공손하게 말했다.
“사자님을 뵙습니다.”
한시름 놓기는 했으나 흑천은 아찔했다. 그는 그 붉은 번개가 대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몸 앞에 이르는 순간, 흑천은 역외 전장에서 느꼈던 죽음의 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사자가 제때 나타나지 않았다면 자신은 이미 죽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 미치자 한제를 향한 그의 눈에서는 깊은 두려움과 더불어 보일 듯 말 듯한 안타까움도 나타났다.
“4백 년 만에 그런 수준에 이르다니, 훌륭하다. 목숨은 살려줄 테니 천역주를 내놓고 조나라 최고의 수련자로 살아가는 게 어떻겠느냐?”
중년 남자가 선심 쓰듯 물었다.
한제의 표정은 덤덤했다. 그는 저자가 나타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미 1만 리 정도 밖에 이르렀을 때 그 존재를 눈치챘다. 저자는 통천탑의 사자이자 4성 수련국 사람이었다. 틀림없이 화신기 수준일 것이다. 극의 신식을 저리 가볍게 소멸시킨 것만 보더라도 확실했다.
자신에게 석주가 있다는 것을 저 중년 남자가 눈치챘다는 사실도 한제는 복수를 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가 조나라에서 줄곧 신식으로 몸을 감싸고 다녔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다면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 있지 않은 이상 상대는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할 것이었다.
사실 사자는 약간 주저하고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계속해서 조나라 전역을 신식으로 살폈는데도 등 씨 가문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자의 존재를 찾을 수 없었는데 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보다 강한 신식을 가진 자가 아니라면 불가능했다. 하지만 자신의 경지가 지난 4백 년간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고는 해도 그는 화신기였다. 조나라에 그런 자신보다 강한 자는 없어야 했다.
한제의 경지는 원영기이지만 신식만큼은 화신기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그가 어찌 알겠는가? 그가 아니라 당시의 그 거마족 거인이 왔다 해도 한제를 발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방금 붉은 번개를 소멸시킨 과정이 일견 간단해 보였지만 사실 사신은 그때 신식에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큰 손상은 아니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상대를 바라보던 한제는 말없이 저물대에서 금빛 핏방울을 꺼냈다. 엄청난 위압감을 발휘하는 고대 신의 금빛 피였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한제는 살기 어린 눈을 번득이며 말했다. 오른손으로 살짝 건드리자 그 핏방울은 순식간에 금색 부호가 되어 하늘로 솟아올랐다.
순간, 하늘에서 우르릉 소리가 들려오더니 금색 빛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금빛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 순간 조나라 전체의 땅이 진동했다. 하늘은 그 금빛에 완전히 뒤덮였고 땅 위의 모든 생명체와 나무, 풀 할 것 없이 같은 빛으로 번쩍거렸다.
한제는 평온해 보였으나, 사실 체내의 영력은 빠르게 소모되고 있었다. 거인이 나타난 순간 그는 가까스로 손을 뻗어 중년 남자를 가리켰다.
거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눈을 번득이며 사자를 향해 커다란 손을 뻗고 가볍게 휘둘렀다.
사자는 안색이 시퍼렇게 변했다. 강렬한 위기감을 느낀 그는 곁에서 멍하니 있던 흑천을 잡아채 앞쪽으로 내던졌다. 흑천의 몸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재로 변해 버렸다. 심지어 사자의 오른손도 함께 흩어졌다.
사자는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으며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왼손으로 저물대에서 옥패 하나를 꺼내들더니 망설임 없이 그것을 깨트렸다. 그러자 하얀 빛 한 줄기가 나타나 사자를 감싸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 순간, 거인은 느릿하게 흩어졌다. 한제는 몸을 덜덜 떨며 저물대에서 단약을 꺼내 얼른 복용했다. 그리고 신식을 펼쳐 사자의 흔적을 찾았다. 그러나 한참을 집중해도 사자의 기운은 조나라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상대가 부서뜨린 옥패는 전송진과 같은 효능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미 한제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과연 4성 수련국의 신통한 법보는 상상을 초월하는군.”
한제는 혼잣말을 중얼거린 뒤 깊은 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의 추측은 상당히 정확했다. 사자가 사용한 것은 그의 종파에서 핵심 제자들에게 나누어준 옥패로 일정 범위 안에만 있다면 순간적으로 어디에서라도 그의 종파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사자는 한제가 불러낸 금빛 거인에 겁을 집어먹었다. 금빛 거인은 그가 아는 바에 의하면 거마족의 통천술(通天術)을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법술은 공포스러웠다. 4성 수련국 수련자라 해도 저항할 수 없다.
조나라에서 두 번이나 통천술을 목격했다. 어쩌면 이한제라는 녀석은 세 번, 네 번 이상 그 법술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자라면 원영기 수준에 불과하다고 해도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흑천을 통해 위기를 모면하고는 곧장 도망친 것이다.
한제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호흡을 가다듬었다. 한참 후,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오른손을 휘둘러 등 씨 가문 사람들의 머리로 만든 탑을 높이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탑과 함께 질주하듯 내달렸다.
대산 산맥 아래, 한제가 어린 시절 지냈던 마을 주민들은 한 차례 기이한 바람이 불어온 후 모두 잠들어 있었다.
한제는 이 씨 가문 집 밖에 사람의 머리로 만든 탑을 세워놓고는 그 아래 무릎을 꿇고 바닥에 이마를 찧었다.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천천히 밤이 깊어 갔다.
한제는 깊은 숨을 내쉰 뒤 오른손으로 인두탑을 내리쳤다. 순간 높이 솟아오른 탑은 재가 되어 바람에 흩어져 버렸다.
“원수는 갚았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이제 제 길을 가려 합니다.”
한제는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나 마을을 떠났다.
그가 떠난 뒤 깨어난 주민들은 시커먼 하늘을 바라보며 신성께서 보우해주시기를 간절히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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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는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고 있었다. 흡혈 마수는 저물대에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한 절벽에 이르렀다. 어린 시절 한제가 미끄러져 떨어졌던 바로 그곳이었다.
절벽을 바라보던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그 위에 앉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지난 4백 년간 겪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머릿속에 떠올라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등 씨 가문이 사라진 후 그의 마음에서는 약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한제는 자신이 이미 신선계에 발을 들인 상태로 이 길은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반드시 이 길을 걸어야만 했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한제는 힘이야말로 스스로를 지키는 유일한 길임을 깊이 깨달았다.
게다가 자신의 경지가 영변기에 이르러야만 사도환을 석주에서 다시 꺼내올 수 있다.
또한 고대 신의 기억에 존재하는 드넓은 우주와 강력한 생명들을 떠올리면 한제는 은근히 심장이 떨려왔다.
한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먼 곳을 내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호기심이 깃들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를 위해 신선계에 발을 들였고 부모가 죽은 후로는 복수를 위해 살아왔다. 그리고 그 복수를 마친 지금, 이제 자신의 꿈을 위해, 진정한 신선이 되기 위해 신선의 길을 걸을 작정이었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몸을 훌쩍 날려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눈 깜짝 할 사이에 석주를 얻었던 그 동굴에 이른 그는 동굴 안을 훑어보다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표묘종의 고계명은 밀실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폐관수련을 하는 중이었다. 그의 앞에는 구리거울이 놓여 있었다. 한데 지금 그의 얼굴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2백 년 전 이미 자신에게 한 차례 큰 화가 미칠 것을 알았으나, 안타깝게도 그의 경지로는 그 화가 무엇인지 알아낼 수도 바로잡을 수도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거대한 화가 닥쳐오는 느낌이 짙어졌다. 그리고 등 씨 가문 사람들이 하나씩 죽음을 맞았을 때, 그는 자신의 수명이 딱 열흘 남았음을 깨달았다. 만약 그 안에 자신이 죽지 않는다면 그 화는 표묘종 전체에 미칠 터였다.
오늘이 바로 열흘 째 되는 날이었다. 고계명은 평생 천지자연의 도리를 믿어온 자였다. 자신이 수련한 공법과 상당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 자신이 반드시 죽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표묘종 전체가 위험해진다.
이에 그는 며칠 전부터 표묘종에서 자신이 맡았던 일들을 정리해두었다. 이제 그에게 더 이상 걱정거리는 없었다. 얌전히 밀실 안에 앉아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사방을 둘러보던 그는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이마를 때렸다.
한 줄기 선혈이 입에서 흘러내렸다. 그의 두 눈은 흐릿해졌다가 이내 어두워졌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한 축기 수준 제자의 일반인 가족이 있는 곳을 알려달라는 등화원의 부탁을 받던 당시의 일이 떠올랐다.
그는 뭔가를 깨달으며 두 눈을 감았다. 그의 숨이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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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는 산골짜기의 오래된 전송진 밖에서 마지막으로 조나라를 바라본 뒤 진을 가동시켰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조나라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로부터 열흘 뒤, 사악한 기운을 풍기는 청년 하나가 그 진 앞에 나타났다. 그는 진을 한참 살펴보더니 그 안으로 발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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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는 조나라에서 수백만 리 떨어진 평원에서 나타났다. 그는 곧장 사방을 신식으로 훑고는 지도 옥패를 꺼내 자세히 살폈다.
잠시 후 몸을 날려 내달리던 그는 오래된 전송진 하나를 발견해냈다. 한제는 그 저물대의 주인이 자신을 쫓아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상대를 떨쳐내지 못하는 이상 안심하고 수련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오래된 전송진이었다. 그는 적지 않은 최고급 영석을 가지고 있으니 몇 번이고 진을 이용할 수 있었다.
보름 뒤, 한제는 어느 오래된 전송진에 도착한 뒤 한 차례 살피다가 그 진 안에 서서 최고급 영석 하나를 꺼내들고 진 위에 올려놓았다.
한데 그때, 갑자기 멀리서부터 검은 구름이 빠르게 접근해왔다. 그 검은 구름에서부터 천천히, 사악하고 기이한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음침한 눈빛은 한제를 똑바로 내려다보았다.
한제는 심장이 멎는 듯했다. 상대의 속도는 그의 예상보다 몇 배나 빨랐다. 또한 그의 경지는 한제로서는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짙은 위험의 기운이 사방에서 몰아쳤다.
최고급 영석으로 진을 가동하려면 10초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지금 목숨이 경각에 달린 판에 그런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한제는 발을 통해 진에 영력을 불어넣었다. 전송진이 가동되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결국 그 사악하고 기이한 청년이 따라잡은 바로 그 순간, 진에서 피어오른 빛의 원은 한제의 몸을 감싼 채 사라져 버렸다.
청년은 분노한 듯 포효하며 두 손으로 결인을 해 앞으로 돌진했다. 한제가 사라진 그 순간, 그는 진 안에서 피어오른 빛의 원 안으로 들어가더니 어떤 수단도 사용하지 않고 전송진을 다시 가동시켰다. 그의 모습 역시 빛의 원 사이에서 사라졌다.
수성(修星)의 결정
한제는 오래된 전송진을 이용해 이리저리 오가면서 갈수록 짙어지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력한 신식이 마치 폭풍처럼 자신을 훑고 있음을 똑똑히 느꼈다.
그는 눈앞에 나타난 신식이 자신을 향해 달려들 때 극의 신식을 사용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붉은 번개를 쏘아 보냈다.
두 신식이 부딪혔을 때, 상대의 신식은 아주 조금 느려졌을 뿐이었다. 다행히도 한제가 원한 것 또한 딱 그 정도였다. 전방에 밝은 빛이 나타났고 상대의 신식이 느려진 틈을 타 한제는 그 빛으로 뛰어드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