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32
이산은 천도종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 씨 가문에 머물기로 했다. 2백 년 전 한제에 의해 이 씨 가문의 부녀자에게 잉태되어 새롭게 태어난 그는 전생도 이번 생도 이 씨 가문으로 살아온 만큼 가문에 대한 감정이 한제보다 훨씬 깊었다. 그는 남은 시간을 가문의 자손들을 보호하는 데 쓸 생각이었다.
조나라의 일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한제는 마음이 복잡했다. 대산파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대산파는 그가 수련자의 길에 오른 출발점이었다. 조나라를 떠나기 전 그곳을 한 번 둘러볼 생각이었다.
신식을 펼친 한제는 조나라 내의 크고 작은 모든 산맥과 그 산맥의 동굴들을 하나하나 훑었다. 그리고 몸을 훌쩍 날린 그의 모습이 순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제는 기억에 따라 상사산(象蛇山)이라는 곳에 나타났고 복잡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폈다. 이곳에는 진이 하나 있었는데 한제는 그것을 망가뜨리지 않고 상사산 내부로 진입했다.
그 안에는 거대한 동굴 하나 있었다. 동굴 곳곳에는 잿빛 먼지가 쌓여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누구도 머물지 않았던 것 같았다.
“대산파!”
한제가 작게 읊조리며 옥석에 내려앉은 먼지를 문지르고 그것을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그는 신식으로 사방을 훑으며 옆의 석실로 향했다.
석실 문 앞의 금제를 파괴하자 선반들이 드러났고 그 위에는 드문드문 옥패가 몇 개 놓여 있었다. 옥패는 어스름하고 약한 빛을 내고 있었다.
옆쪽 구석에는 가부좌를 튼 해골 하나가 있었는데 어떤 열상이나 부상의 흔적도 없었다. 아마 수명이 다해 늙어 죽은 자의 해골인 듯했다.
한데 그 해골의 오른손 검지는 지면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제는 해골이 가리킨 곳의 먼지를 걷어보았다. 먼지 아래에는 한 줄의 글이 남아 있었다.
대산파는 나로 끝이 난다. 선조를 보기 부끄럽구나.
한제는 침묵한 채 뒤로 몇 걸음 물러나 해골을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제자 이한제, 선배님을 뵈옵니다.”
작은 한숨을 내쉰 한제는 몸을 돌려 옥패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하나하나 집어 들며 신식으로 살폈다. 그러다 어느 옥패 앞에서 그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옥패에는 한 사람이 남긴 회고 형식의 기록이 남아 있었다.
자질이 우둔하고 수련도 부족한 나는 이생을 사는 동안 검에 대해 특별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검을 위한 삶이었다 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허나 어째서인지 신식이 검에 닿기만 하면 부서져 버렸다.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신식으로 검을 조종할 수 없으니 전투를 할 수도 없었다. 은사님께 부끄러운 마음뿐이다.
80세를 넘은 어느 날, 나는 돌연 꿈 하나를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검의 혼이 되어 세상을 휘젓고 돌아다니며 검의 지존이 되었다.
깨어난 후, 꿈속의 검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치 그것이 내 평생 추구해왔던 것이자 나의 전생인 것만 같았다. 나는 축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련을 그만두고 검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검을 만들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마치 귀신이라도 씐 것처럼 나를 통제할 수가 없었다. 모든 마음과 생각을 검을 만드는 데에만 쏟아부어서라도 반드시 꿈속의 그 검을 만들어내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10년 동안 나는 보잘것없는 무릎을 꿇어가며 기이한 돌과 철을 달라 세상에 기도했다. 몇 자루의 검을 만들어내긴 했으나 꿈속의 검은 아니었다. 만들어진 검들은 내 손으로 폐기해버렸다.
지난 1년 동안 대산파는 큰 재난을 맞았다. 강력한 적의 습격에 멸망을 코앞에 둔 상황이다.
나의 이번 삶은 대산파에서 시작되었으니 끝 역시 이곳에서 맞을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나는 마지막 검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간에 한계가 있으니 가장 단순하게 만들었다. 빠르게 검 한 자루가 완성되었다.
아득한 가운데 하늘의 뜻이 있는 법인가? 이 검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꿈속에서 보았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몸은 나의 통제에서 벗어난 듯 이 검을 쥐었고 그 순간 나는 꿈속으로 돌아가 검혼이 된 것 같았다.
내가 이 검의 이름을 금부라고 지은 것은 그 때문이다. 세속적인 이름이지만 마음에 든다.
나의 마음은 모두 검에 녹아들었다. 검을 만드는 곳에서 나와 대산파에 닥친 재난을 해결하고 웃으며 죽을 것이다. 그리고 한 줄기 검결(劍訣)을 금부 안에 심었으니, 부디 후대 제자들이 이 검을 잘 대해주길 바란다.
한제는 옥패를 내려놓고 두 눈을 감았다. 마음이 진동했다. 그가 이곳에 온 것은 직접 그 옛날의 대산파를 보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금부의 근원을 찾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전생에 검혼이었던 사람이었군. 금부가 다른 선검과 달랐던 것은 그 선배의 영혼이 검혼으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어.”
한제는 잠시 고민에 빠져 있다가 순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결명곡 밖이었다. 이곳은 그가 이전에 가지고 있던 저물대가 파괴된 곳이었다. 당시 잃어버린 검집은 이곳에서 공간의 균열 안으로 들어갔을 때 찾아낸 바 있었다.
한제는 공간의 균열을 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 그의 목표는 하나, 금부였다.
“그 검은 일반적인 철로 만들어졌어. 5백 년의 세월 동안 공간의 균열 안에서 여태 남아 있을지 모르겠군. 저물대가 파괴되면서 함께 흩어졌을지도 몰라. 당시에는 수준이 부족해 금부의 검결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 안타까울 뿐이야. 그러지 않았다면⋯⋯.”
한제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공간의 균열 안에서 신식을 펼쳐 탐지를 시작했다.
보름 뒤, 한제는 실망한 표정으로 공간의 균열에서 빠져나왔다. 아무런 수확도 없었다.
“이미 소멸되어 버린 것인가? 이제 그만 연혼종으로 돌아가 선옥을 통해 영변기에 이르러야겠군.”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오래된 전송진 앞에 나타났고 그것을 활성화시켜 조나라를 떠났다.
★ ★ ★
주작성 서쪽의 4성 수련국. 이곳은 이미 선유족에게 점거되었고 원래 이곳에 살던 수련자들은 선유족의 포로가 되어 있었다.
그 수련국의 경계 밖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밀짚모자를 쓴 그의 온몸은 금빛으로 덮여 있었다.
“이한제, 드디어 왔구나. 주작성으로 돌아온 순간부터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를 실망시키지 마라.”
그는 저물대에서 옥패 하나를 꺼내들었다.
“네가 이원봉을 죽이고 설역국을 봉인한 덕을 보았으니 나도 보답을 해야겠지. 이 옥패에는 내가 죽을 각오로 깨달은 류미의 경지가 있다. 네가 류미의 도심을 흡수하여 주작의 세력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내딛으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주작대륙 비로국 북부의 오래된 전송진에서 빛 고리가 솟아오르더니 한제가 나타났다. 그는 전송진 밖으로 나오자마자 긴 잔영을 남기며 연혼종 쪽으로 날아갔다.
★ ★ ★
한제는 연혼종으로 향하는 동안 신식을 펼쳐 많은 수련자를 봤으나, 그들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무언가를 걱정하는 듯했고 행동이 다급해 보였다.
그때, 멀리서 열 명이 조금 넘는 수련자가 다가왔다. 그들의 신식은 기이한 방식으로 하나로 연결된 채 천천히 사방을 훑었다. 그중 세 명은 화신기였고 나머지는 모두 원영기 수준이었다.
그들은 마치 탐색하듯 모든 수련자를 한 번씩 검사하고 있었다. 그들의 신식이 자신을 향해 왔지만 한제는 그들과 얽힐 시간이 없었기에 그는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열 명이 넘는 수련자들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거대한 신식에서도 그의 자취는 사라졌다.
하지만 그 수련자들은 어떤 이상도 느끼지 못하고 탐색을 계속했다.
한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연혼종 밖에 이르렀다. 연혼종을 보호하는 진은 활성화되어 있었다. 혼백으로 이루어진 검은 안개 형태의 진 안에는 수많은 혼백이 뒤엉켜 있었다.
울부짖는 소리, 비명 소리들이 그 검은 안개로부터 흘러나왔다. 아득히 멀고 그 검은 안개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움이 일게 했다.
비로국 수련자들 중 이 근처로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대부분 저 멀리 빙 둘러갔다.
존혼번
한제는 연혼종의 진을 보고 한시름 놓았다. 진이 활성화 되었다는 것은 연혼종이 아직 화를 당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두 손으로 결인을 한 한제는 쇄신술을 펼치며 큰 숨을 내쉬었다. 순간 한 줄기 검은 빛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와 30척 가량의 긴 존혼번이 되었다.
“진입!”
한제는 오른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존혼번은 거대한 깃발을 펄럭거리며 한제를 감싼 뒤 빠르게 그 검은 안개 속으로 돌진했다.
존혼번이 다가오자 검은 안개는 양옆으로 갈라지며 길을 내주었다. 존혼번은 빠르게 그 길을 따라 안으로 진입하여 검은 안개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검은 안개는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연혼종은 한제가 떠났을 당시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남은 제자의 수는 당시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줄어든 상태였다. 심지어 아홉 개의 금빛 고리도 이제는 세 개만 남아 있었다.
“돌아왔구나.”
노쇠한 목소리가 허공에서 느릿하게 들려왔다. 그러더니 핏빛 고리가 한제 앞에 나타났고 그 안에서 둔천이 걸어 나왔다.
둔천은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늙어보였고 온몸에서 짙은 죽음의 기운이 느껴졌다.
“선배님.”
한제는 굳은 두 눈으로 둔천을 살피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의 수명은 거의 꺼질 지경에 달해 있었다.
“알아보았는가? 괜찮네. 나의 수명은 앞으로 몇 년 더 남아 있어. 쉽게 죽지 않을 거야.”
둔천은 하하 웃었다. 그 웃음은 몸에 드리운 죽음의 기운을 적지 않게 흩어버리는 것 같았다.
“좋아, 자네의 수준은 지난 몇 년 동안 적지 않게 높아졌군. 벌써 선기를 흡수할 수 있게 되었으니. 충분한 선옥만 있다면 영변기에 이르는 것은 금방이겠어!”
둔천은 한제를 자세히 살피더니 내심 놀라며 두 눈을 번득였다.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선배님, 이곳에 선옥이 있습니까?”
둔천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하하 웃더니 말했다.
“천우 자네, 돌아온 것은 선옥을 위해서였군. 선옥이 아니었다면 돌아오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
한제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십억존혼번을 위해서라도 돌아왔을 겁니다.”
한제의 솔직한 말에 둔천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래, 십억존혼번은 자네 것이야. 몇 년 후 나의 혼백 역시 자네 것이고 이 연혼종 역시 자네 것이지. 자네가 싫다면 연혼종을 포기해도 좋네. 허나 내가 준 선물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한다는 것만은 명심하게. 그 답이라 함은 십억존혼번을 잘 간수하는 것이네. 그 혼번이 있는 한 우리 연혼종은 멸망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