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98
한제는 더는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오른손을 움켜쥐었다. 요석설은 다시 봉인되어 저물대로 들어갔다.
다시 혼자 남은 한제는 기이한 눈빛을 번득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요령의 땅 안에 이토록 많은 비밀이 있었다니⋯⋯. 내 수준은 천운자 등에 비하면 한참 떨어져. 한데 천운자는 어째서 나를 이곳에 들여보낸 걸까?”
한제는 생각에 잠겼다. 황룡의 초상은 물론, 똑같이 생긴 두 명의 묵비에 이어 능천후를 닮은 사내까지, 이 요령의 땅에 오래 머물수록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천운자는 천운에 따라 움직이지. 그가 나를 이곳에 들여보내려 한 데에는 분명 목적이 있을 거야. 백미의 말대로라면 천운자의 오랜 제자 대부분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들이 사라진 것이 혹시 요령의 땅과 관련된 것일까?”
한제는 저물대를 문지르며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다가 말을 이었다.
“어찌됐든 내 힘만 충분하다면 무엇도 내 도심을 흐트러뜨릴 수는 없겠지.”
한제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원신은 체내에서 산마의 혼에 계속해서 깊은 낙인을 새기는 중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그 낙인은 산마의 혼 깊은 곳에서 천천히 굳어져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연혼 부족 부족원들이 늘어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연혼술을 익히고 있었다. 또한 이 원고 시대의 전장에는 수많은 혼백이 있다. 비록 대부분은 땅속 깊은 곳에 숨어 있었지만 연혼 부족 부족원들은 깊은 구멍을 파고 들어가 연혼술을 수련했다.
이는 연혼술을 수련하는 방식의 하나로 또 다른 방법으로는 화요군 안에서 죽음을 맞이한 요병들의 혼을 흡수하는 것이 있다. 다만 연혼술 수련에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루고 구양화의 시험을 통과한 후 허락을 득해야만 화요군으로 파병될 수 있었다.
연혼 부족은 매우 빠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었다. 번데기가 언젠가 나비로 피어나는 것처럼, 연혼 부족 역시 언젠가 고치를 찢고 나와 아홉 개의 군을 모두 두려움에 떨게 만들 것이다.
한제는 하루 종일 산마에 낙인을 새기면서 금제들을 만들어 금번에 봉인했다. 지난 10년 동안 만든 금제가 9999개 조에 이르렀다.
일찍이 이곳에서 존혼번을 펼친 상태라 1억 개의 혼백은 검은 구름이 되어 하늘을 뒤덮은 채 곡성을 냈고 이것은 연혼 부족의 특수한 상징이 되었다.
한제는 사신차에 걸려 있는 다섯 개의 봉인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했다. 사신차는 선계의 물건이었고 제작자는 이것이 절대적으로 강한 법보라고 기록했다.
이름이 사신차인 것 역시 그래서였다. 조금 거칠어 보이기는 하지만 그 위력만큼은 확실히 믿을 수 있었다. 영변기 중기였을 때 억지로 하나의 봉인을 푼 것만으로도 사신차는 영변기 후기 절정에 이른 수련자를 위협할 정도였다.
이제 문정기에 이르렀으니 두 번째 봉인을 풀어내려 했다.
신식으로 두 번째 봉인을 한 번 훑은 순간, 그 안에 존재하는 우레에 그대로 튕겨 나오고 말았다. 허나 이미 예상하고 있던 터라 체내의 선력으로 금세 그 우레를 처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한제는 두 번째 봉인이 억누르고 있는 것이 어쩌면 우레와 관련된 힘일지도 모른다고 짐작했고 두 번째 봉인에 대한 흥미는 더욱 커졌다.
당시 마탑 앞에서 문정기 후기 수준의 노인이 발휘한 풍우뇌전의 신통력을 떠올릴 때마다 심장이 떨려왔다. 그중 가장 강했던 것이 바로 검은 우레였다. 그 우레가 없었다면 노인이 발휘한 신통력의 위력은 반으로 깎였을 것이다.
한제는 두 번째 봉인을 열 자신이 있었으나, 우레의 힘을 분석한 결과 두 번째 봉인을 풀 경우 혼수의 힘에 구수권이 무너질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구수권은 당시 고대 신의 땅에서 탁삼 휘하에 있던 상고 시대 수련자들이 협조의 대가로 준 물건 중 하나로 지난 수백 년 동안 큰 도움이 되었다. 한제가 수준이 부족할 때에도 사신차를 다룰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구수권 덕분이었다.
하지만 한제의 수준이 높아지고 사신차의 봉인이 풀리게 되면 구수권은 사신차의 혼수를 제한하지 못할 것이다.
한제는 고민 끝에 저물대에서 구수권을 꺼냈다. 허공으로 떠오른 구수권에는 수많은 문양과 상고 시대 짐승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고 몇 개의 미세한 금도 나 있었다. 당초 사신차를 흡수하면서 생긴 흔적이었다.
한제는 또다시 잠시 망설였다. 구수권으로 제한할 수 없다면 자신의 힘으로 혼수를 완벽하게 제압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사신차는 더 이상 사용할 수가 없다.
한제의 곧 결단을 내린 듯 구수권을 쥐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연혼 부족으로부터 1만 리 떨어진 광활한 평지였다.
한제는 구수권을 흔들면서 결인을 그려 앞으로 뻗었다. 구수권에서는 검은 빛이 발산되면서 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사신차가 나타났다.
거칠고 예리한 가시가 잔뜩 돋은 사신차가 나타나자마자 그 위에서 눈부신 빛이 번득이면서 혼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몸집이 1천 척에 이르는 녀석은 마치 작은 언덕 같았다.
“크오오!”
새빨간 두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며 녀석은 불굴의 의지를 담은 포효를 내지르더니 한제에게로 맹렬히 달려들었다.
콰르르!
녀석의 움직임에 공간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허나 한제는 침착하게 오른손을 들어 앞을 두드렸다.
그 손짓에 마치 하늘에서 강림한 듯한 거대한 손바닥이 혼수의 몸을 내리쳤다.
쾅!
혼수의 거대한 몸이 바닥에 떨어지며 모래 먼지가 고리 형태를 이룬 채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지면이 흔들렸다.
고개를 든 혼수는 격렬하게 포효하며 한제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반면 혼수를 바라보는 한제의 눈빛은 덤덤했다. 처음 혼수를 마주했을 때와 달리 지금은 그 혼수를 옴짝달싹 못하게 속박할 수 있었다.
오른손을 허공에 뻗어 혼수를 억누른 한제는 왼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낸 뒤 허공에 붉은 문양을 그렸다.
문양은 천천히 굳어졌다. 이 문양은 사신차를 제작한 사람이 남겨놓은 것으로 총 일곱 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는 이것들을 전부 그려내면 이 사신차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중 두 개는 네 번째 봉인을 풀어야만 알아낼 수 있었다.
한제는 다 그린 문양을 손으로 튕겼다. 그러자 문양은 붉은 빛이 되어 돌진하더니 바닥에 억눌린 채 계속해서 발버둥치고 있는 혼수의 미간에 찍혔다.
“캬아아아!”
혼수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미친 듯이 포효하며 몸부림을 쳤다.
이때, 한제가 움켜쥐었던 오른손을 살짝 풀었다. 그러자 속박에서 풀린 혼수는 더욱 분노한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며 낮게 그르렁거렸다. 눈에 담긴 불굴의 의지는 더욱 짙어진 상태였다.
한제는 냉랭한 눈으로 혼수를 바라보면서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시커먼 빛이 그 결인으로부터 번득였다.
“열려라, 첫 번째 봉인!”
검은 빛은 결인을 따라 날아가 혼수의 몸에 찍혔다. 그러자 혼수의 몸에서 쩌적 하는 소리가 나더니 거대한 기운이 곧장 체내로부터 용솟음쳤다.
그 순간, 혼수는 높이 솟아오르며 세상을 집어삼킬 듯 시뻘건 입을 벌렸다.
한제는 꼼짝도 않고 다시 오른손을 들어 앞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거대한 손바닥이 나타나 춤을 추듯 움직였고 혼수의 입은 펑 소리와 함께 찢어졌다.
혼수는 얼른 몸을 뒤로 물리더니 수많은 검은 빛으로 나뉘어 사방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더니 한제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한제는 두 손을 동시에 휘둘렀다. 그러자 두 개의 붉은 문양이 나타났다.
그 무렵, 검은 빛은 모두 한제 체내로 침투해 원신을 향해 돌진했다. 허나 한제는 냉소를 흘렸다.
“까부는군.”
한제는 혀를 차고는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의 정수리로부터 원신이 튀어나와 혼수의 목을 단단히 틀어쥐었다. 이어서 원신이 두 개의 붉은 문양을 쥐더니 그대로 혼수의 이마에 찍었다.
혼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몸을 부르르 떨었고 강렬한 기운을 미친 듯이 뿜어냈다.
한제는 원신을 몸으로 되돌린 뒤 두 눈을 떠 혼수를 바라보았다.
새로운 변화
화요군과 금요군(金妖郡)의 경계, 항상 혼탁한 기운으로 뒤덮여 있어 화요군에서도 금요군에서도 관리하지 않는 곳의 커다란 산맥.
그 산맥 깊은 곳에 하얀 성이 하나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성루였다. 사방은 높이가 1백 척에 달하는 하얀 돌로 둘러져 있는데 혼탁한 공기 속에 솟아 있어서 그런지 신비로움이 한층 강했다.
한 줄기 검은 그림자가 이 혼탁한 공기 속으로 빠르게 날아오더니 허공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공손하게 말했다.
“선조 어르신을 뵙습니다. 20년 전 고요군에서 종적을 감추었던 이한제의 위치를 파악했습니다.”
이에 성루 안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그자의 수준은?”
검은 그림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그것이⋯⋯ 아직 살피지는 못했습니다. 천요군 안에 사로잡혀 있던 그의 동료가 모두 말살되어 어떤 소식도 전해오지 못한 터라… 알아본 바로는 현재 고요의 사자로 임명되었다고 합니다.”
“고요의 사자라⋯⋯ 하하! 내가 눈여겨 본 이는 달라도 뭔가 다르군. 세 개 소대와 선위(仙衛) 한 명을 보내라. 반드시 생포해오도록!”
검은 그림자는 얼른 짧게 대답한 뒤 몸을 훌쩍 날려 사라졌다.
성루 안에서는 왜소한 노인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한제, 잘 훈련시킨다면 내 선위 한 명을 늘릴 수 있겠군! 아직 문정기에 이르지만 않았다면 선위가 충분히 생포해오겠지.”
한제의 두 눈은 혼수에 고정되어 있었다. 세 번째 붉은 문양이 찍힌 혼수의 체내에서 폭발하는 기운에 한제 역시 약간 긴장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혼수는 몸을 격렬하게 떨었고 눈에서는 점점 강렬한 붉은 빛을 3척 정도까지 내뿜었다. 그러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낮은 포효를 내지르며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쩌적 하는 소리가 체내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한제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당시 혼수의 봉인을 푸는 방법이 기록된 옥패에서 언급했던 중요한 사항이 떠올랐다.
일곱 문양을 하나씩 그려낼 때마다 혼수가 진화할 수 있도록 자극이 가해진다고 했다. 이 자극이 극한으로 치달았는데도 봉인이 풀리지 않으면 혼수의 몸이 터져 죽음에 이를 수도 있고 봉인이 일찍 풀려 진화가 중단되면 위력이 정점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다.
때문에 반드시 진화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봉인을 풀어야만 혼수는 사신차의 이름에 걸맞는 위력을 갖게 되는 셈이었다.
제작자는 재료를 모두 준비해둔 뒤 선제급의 강자를 찾아가 사신차를 사용하게 하려 했다. 그래야만 각각의 사신차를 활성화시키는 데 어떤 변고도 생기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는 옥패에 선제라 해도 사신차를 완벽하게 활성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라는 말도 남겨놓았다.
한편, 혼수의 몸은 끊임없이 줄어들었는데 그 체내의 기운은 더욱 두려운 수준으로 높아져갔다. 사방의 평원에는 바람도 그쳤고 맑았던 하늘도 점점 어두워져가고 있었다. 땅에서는 수많은 모래알들이 미미하게 진동했다. 마치 어떤 신비로운 힘에 이끌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한제는 혼수의 기운이 이미 문정기 초기에 이르렀으며, 이제는 점점 문정기 중기로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혼수의 몸은 1천 척에서 1백 척으로 줄어들었고 두 눈에서 번득이는 붉은 빛은 7척까지 뻗어 나갔다. 그 빛 속에서는 흐릿한 안개가 맴돌았다.
한제는 굳은 눈빛으로 결인을 그려 시커먼 빛을 두 손으로 쏘아 보냈다. 그러면서도 번득이는 눈으로 혼수를 주시했다.
바로 그때, 혼수의 눈에서 번득이던 붉은 빛이 수축하더니 파멸에 가까운 광기 어린 기운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한제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두 손을 앞으로 뻗으며 외쳤다.
“열려라, 두 번째 봉인!”
혼수의 체내에서 솟아오르던 기운이 정점에 이른 순간, 검은 빛이 번쩍 하고 혼수의 몸에 떨어졌다. 그러자 혼수의 떨림이 즉시 멈추었고 하늘을 뒤덮을 듯하던 파멸의 기운도 진정되어 갔다.
“캬오오오!”
혼수가 하늘로 고개를 들며 포효하자 하늘에서는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수많은 번개가 내리쳤다. 혼수의 신통력으로 만들어진 현상이었다.
천둥번개는 모두 혼수의 몸에 떨어져 끊임없이 번득였다. 수많은 번개들은 마치 하나로 연결된 긴 선 같았다.
혼수의 몸은 번개의 구체에 감싸인 채 천천히 엎드렸고 눈 깜짝할 사이 기린과 비슷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혼수는 선계에서 기린보다도 더 희귀한 뇌수(雷獸)였다. 녀석의 머리에서는 하나하나의 뿔이 번개의 파직 소리와 함께 느릿하게 솟아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