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56
그 말에 산마는 껄껄 웃었다.
“크하하! 궁금하면 어디 해보아라!”
환무정은 두 눈을 감았다. 류미의 경지와 그녀의 체내에 있던 선력을 모두 거둔 지금, 환무정은 비록 수준이 원상태로 완벽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좀 전까지와는 확연히 달랐다. 다만 산마에게 대적할 수 있을지는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었다. 허나 도망치더라도 상대의 신통력에서 완벽히 벗어날 수는 없을 터였기에 그는 체내의 한 줄기 무상천마도에 모든 희망을 걸기로 했다.
흡수한 류미의 경지를 자신의 만환천상도에 결합시켜 만들어낸 무상천마도의 기운은 너무도 적었으나, 환무정은 이 기이한 기운을 두 눈에 응집해 체내로 발산했다. 그의 얼굴은 점점 고통으로 일그러져 갔고 그 순간 그의 몸도 빠르게 오그라들어 눈 깜짝할 사이에 해골과 같은 상태가 되었다.
뒤이어 그의 뼈도 모두 녹아내려 흩어져 버렸고 마지막으로 그의 육신도 모두 사라지고 저물대 하나만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환무정이 흩어져 버린 순간, 짙은 회색 기운이 사방으로 피어올랐다. 그 안에는 환무정의 원신이 들어 있었다.
회색 기운이 솟아오르는 사이, 노인의 원신은 점점 투명해지다가 이내 흩어져 사라질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그 순간, 한제의 마음속에 강렬한 위기감이 차올랐다.
한편, 산마는 흥미로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재미있는 신통력이로군. 아주 재미있어!”
무상천마도는 무엇이든 형태 없는 천마로 만드는 신통술이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마혼이 될 수 있고 마혼은 형태를 가지지 않는다. 그러니 생명을 가진 마념을 만환천마도에 녹여 넣으면 세상 어느 곳이라도 마음대로 갈 수 있는 무상천마가 될 수 있는 셈이었다.
환무정의 육신은 사라졌고 원신은 흩어졌지만 사방의 끝없는 허공에서는 두려운 기운이 흘렀다. 그 기운에는 음양이의의 수준보다 결코 약하지 않은 힘이 깃들어 있었다. 환무정은 무상천마도를 전력이 아닌 일부만 발휘했음에도 그 신통함은 실로 놀라웠다.
한데 바로 그때, 한제의 정수리에서 한 덩어리의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크하하하! 신명나게 놀아보자꾸나!”
산마는 한제의 육신에서 튀어나가더니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면서 입을 쩍 벌렸다. 순간 사방에서 이제 막 흐릿하게 나타나려던 무언가의 반 정도가 산마에게 삼켜졌다.
“보양식이로구나! 내 입맛에 아주 딱 맞는다. 그런 신통력을 가지고 있는 녀석인 줄 알았다면 살려두고 싶었겠지만 이미 저 녀석과 약속했으니 안타깝구나!”
말을 마친 산마는 또 한 번 입을 벌려 무언가를 꿀꺽 집어삼켰다.
먼지는 먼지로 흙은 흙으로
한편, 산마가 빠져나간 후 몸에 대한 통제권을 회복한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류미에게로 다가갔다.
류미의 두 눈은 여전히 감긴 상태였고 그녀의 몸에는 한줌의 생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의 수준은 문정기에 이르러 있었으니 경지와 원신은 진즉 융합되어 있었을 테지만 환무정에게 경지를 흡수당하면서 그 경지에 융합된 원신까지 빠져나간 상태였다. 또한 산마가 흡수하면서 환술로 만들어진 허상도 사라져 버렸다.
허공에서 허상처럼 나타난 환무정의 표정도 씁쓸했다. 만약 류미의 경지가 성과를 거둔 뒤에 흡수했다면 진정한 무상천마가 되어 이렇게 산마의 보양식으로 전락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속으로 한숨을 내쉰 환무정은 달아나려 했다.
“어딜 가려 하느냐?”
산마의 잔인한 외침에 마기가 사방을 뒤덮더니 환무정을 꿀꺽 삼켰다. 천지를 진동시킬 정도로 수준 높은 수련자였던 환무정은 허무하게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사라져버렸다.
“이한제, 난 이미 약속을 지켰다!”
산마는 음산한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짧게 툭 내뱉더니 눈 깜짝할 사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적막에 가까운 고요함이 사방을 가득 메웠다.
환가 사람들은 침묵을 깰 엄두도 내지 못했다. 오늘 본 모습들에 그들은 너무도 놀랐고 한제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속 깊이 뿌리내렸다.
한제는 덤덤한 눈으로 류미를 한참이니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때, 환봉신이 조심스레 앞으로 한 발 나서며 말했다.
“도우, 류미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이 저물대를 자네에게 넘기라고 했네.”
한제는 고개를 들어 환무정의 육신이 흩어져 사라졌을 때 땅으로 떨어진 저물대를 보았다. 그 안에는 단약 하나와 옥패 하나뿐이었다.
한제는 옥패 안에 신식을 주입했다.
“단약은 아이의 원기에 대한 해독약이야. 번개류의 신통력을 가진 수련자라면 반 정도는 해독할 수 있을 거야. 스승님은 내게 네 도심에 잔영을 남기라 했는데 당시 난 그러지 못했고⋯⋯ 이번에도 그러지 못했지.”
가벼운 바람이 살랑 불어 먼지와 모래를 쓸고 류미에게 이르렀다. 류미의 이마에서 작은 조각 하나가 떨어져 바람에 실려 날아갔다. 이어서 더욱 많은 조각들이 몸에서 떨어져 나와 흩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그녀의 몸은 조각들로 흩어졌다. 흩어진 조각들은 마치 춤을 추는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끊임없이 하늘 위로 날아갔다.
그 조각들은 공중에서 류미의 허상을 이루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대지를 훑어보더니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고 이내 웃음을 머금은 채 점점 먼 곳으로 날아가 사라졌다.
“…”
한제는 말없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생사의 윤회 위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지. 당시의 원인은 오늘과 같은 결과를 낳았구나. 먼지는 먼지로 모래는 모래로 돌아가는 법. 이 모든 것은 하나의 기억이자 한바탕 꿈과 다를 것이 없으니⋯⋯.”
한제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그녀는 정말 죽은 것인가?”
한제는 더는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류미가 정말 죽었든 죽지 않았든 그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먼지와 모래는 그저 제자리로 돌아왔을 뿐이다.
한제의 뒷모습은 환가 사람들의 시야에서 점점 사라졌다. 허나 그 모습은 그들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고 남을 것이었다.
한제는 환가를 멸족시킬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는 그저 피곤했다. 너무도 피곤했다. 이는 육체가 아니라 마음이 피곤한 것이었다.
8백 년 동안 그는 너무도 많은 일을 겪었다.
★ ★ ★
나천성역의 우주. 어두운 얼굴의 탐랑이 사방을 쏘다니고 있었다. 그의 몸에는 수많은 낙인이 뒤덮여 있었다. 낙인이 새겨질 당시를 떠올릴 때마다 머리가 저릿해지고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빌어먹을 이한제, 그 녀석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이 낙인들이 발작하여 난 곧장 죽어버리고 말겠지.”
염운성 낙월촌(落月村)에 한 가족이 이사를 왔다. 이상한 가족이었다. 젊고 창창한 청년과 갓난아이, 단 둘뿐인 가족이었다. 이들은 무척 조용히 지냈고 시간은 천천히 흘러 어느덧 5, 6년이 지났다.
비단을 펼쳐놓은 것처럼 하늘이 파란 날이었다. 많지 않은 구름 덕분에 하늘의 푸름이 더욱 돋보였다.
기련봉(祁連峰) 아래로는 구불구불한 작은 강이 몇 리나 뻗어 큰 강으로 흘러들었다.
“그해에 이 강의 물이 얼마나 달았는지 몰라. 게다가 기련봉에 때때로 구름이 걸려서 산봉우리에 올라가면 구름 속에 폭 빠진 것 같았어. 소문으로는 그 구름을 마신 사람은 몸이 튼튼해져서 10년 동안 어떤 병에도 걸리지 않는대.”
한 소년의 목소리가 마을 안에서 흘러 나왔다.
열너덧 살 정도 된 소년은 씩씩하고 늠름했다. 그는 지금 일고여덟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5년 전의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나를 봐. 지난 몇 해 동안 한 번도 아팠던 적이 없잖아. 다 그때 아버지가 날 데리고 구름을 마시게 해서 그래. 구름을 마실 때 기분이 얼마나 좋고 편안한지 너희는 말해줘도 모를 거야.”
소년은 약간 득의양양해져 손짓 발짓까지 더해가며 말했다.
곁에 있던 아이들은 모두 잔뜩 흥분한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소년의 이야기에 다들 구름을 마시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습이었다.
“이평, 너는 그 구름이 꼭 필요할 것 같은데? 근데 안타깝네. 5년 전 하늘이 노해서 구름을 없애지만 않았어도 너도 아버지를 따라가서 구름을 마셨을 거고 그럼 너도 10년 동안은 병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말을 하던 소년의 눈빛이 닿은 아이는 대여섯 살 정도였는데 얼굴이 창백했고 몸도 나약해 보였다. 키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작았다. 꽤나 잘생긴 얼굴이었으니 병색이 완연하지만 않았다면 인형처럼 귀여웠을 터였다.
거친 천으로 된 옷을 입은 아이는 흥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한테 말해봐야겠어. 날 데리고 기련봉에 올라가달라고 말이야.”
그러자 이야기를 해주던 소년이 히죽 웃었다.
“기련봉에는 더 이상 구름도 없는데 가서 뭐하려고? 나를 따라서 매일 검법을 수련하면서 몸을 튼튼하게 단련하면 어른이 된 후에는 검을 차고 강호를 쏘다닐 수 있을지도 모르지.”
소년의 웅대한 포부에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소년이 더욱 많은 이야기를 풀고 있으려니 마을 안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여기저기서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도 들려왔다.
“좋아, 오늘의 무림대회는 여기까지 하자. 밥 먹고 다시 모이는 거야!”
소년의 말에 아이들은 떠나기 싫은 듯했지만 결국 하나둘 집으로 향했다.
이평이라 불린 아이는 마을로 걸어가던 와중에도 흥분한 눈빛으로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기련봉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마을 입구에서 한 사내와 마주쳤다. 사내는 듬직한 몸집에 손에는 사냥용 덫과 활을 들고 어깨에는 노루 한 마리를 짊어지고 있었다.
사내는 아이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 씨네 아이로구나. 오늘도 무림대회인가 뭔가 하며 놀았니?”
아이는 부끄러운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주 씨 아저씨, 안녕하세요.”
사내는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과연 예술가의 아들답구나. 아주 잘생겼고 예의도 바르니 말이다. 집에 가는 길이지? 가자 나도 마침 너희 아버지와 상의할 일이 있거든.”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 뒤 사내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잠시 후, 마을 북쪽의 간소한 집에 이른 아이는 쪼르르 달려가며 외쳤다.
“아버지! 주 씨 아저씨가 왔어요.”
방 안에서 한 청년이 나왔다. 거친 천으로 만든 옷을 입은 청년의 두 손에는 굳은살이 가득했다. 평범한 외모의 청년에게 특별한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었고 아들과도 그리 닮아 보이지는 않았다.
방문 밖으로 나온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형님, 오늘 수확이 아주 좋으십니다.”
아이는 방 안으로 들어가 하얀 찐빵 하나를 들고 돌아와 작은 걸상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
주 씨 사내는 어깨에 짊어졌던 노루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웃었다.
“운이 좋았지. 이 녀석을 마주쳤으니 말이야. 하하하!”
사내의 말에 청년은 빙그레 웃으며 곁에 앉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형님 실력이라면 노루 한 마리 잡는 것쯤이야 어려운 일도 아니겠지요.”
주 씨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