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62
“어떤 부귀를 원하느냐?”
한제는 시선을 거두고 덤덤하게 되물었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은 하늘의 뜻을 거슬러 살아가면서 세상의 압박에 억눌려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산을 만나면 오르고 강을 만나면 넘고 바다를 만나면 건너는 것처럼 세상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요. 아버지께서 제게 수련을 금하신다면 저는 일반인들 중 지존이 되고 싶습니다!”
아들의 말에 한제는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원한다면 그리 하거라!”
이평은 성장하고 있었고 한제의 훈도 아래 점점 자신만의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아버지만을 따르던 아이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자신만의 생각이, 자신만의 이상이 있었다.
평은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냥 쉽게 지존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스스로 해내고 싶습니다!”
“그래.”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의 뒤로 늘어진 그림자로부터 허상이 튀어나와 이평의 그림자로 녹아들었다.
“그것과 함께라면 이 염운성에서 네가 하지 못할 일이란 없을 것이다.”
한제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아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서재 밖으로 나갔다. 힘이 빠진 듯 등만 보이는 그의 뒷모습은 약간 비틀거렸다.
이평은 입을 벌려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이내 속으로 삼켰다. 그저 속으로만 묵묵히 중얼거릴 뿐이었다.
‘아버지, 제게 뭐든 줄 수 있다 하셨으면서⋯⋯ 그러면서 어찌 수련은 안 된다 하십니까? 제 수련은 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약속을 위한 겁니다. 평생 아버지의 곁에 있겠다는 약속 말입니다. 아버지, 아버지는 지독하게 외롭지 않습니까? 한데 어째서⋯⋯?’
달빛이 정원에 선 한제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그는 덤덤하게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침상에 누웠다.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난 그날이 최대한 늦게 왔으면 좋겠구나. 아니, 차라리 영원히 몰랐으면 좋겠다.”
그날 밤, 평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헤어짐
사흘 뒤, 기수성 밖에 누군가가 접근해왔다. 검은 옷을 입은 그는 상당히 노쇠해 보였고 기수성에 들어서자마자 손가의 지부로 향했다.
기수성의 손가 지부에 속한 모든 수련자들은 밖으로 나와 그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영변기 수련자가 온다는 소식만 들었던 세 장로는 검은 옷의 사내를 보자마자 찬 숨을 들이마시며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사내는 손계명이었다. 당시 한제의 일로 인해 손가에서 큰 공을 세운 그는 당시보다 수준이 더 높아져 영변기 후기에 이르러 있었다. 손석은 그를 차기 가주로 임명했다.
손계명은 별다른 말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자는 어디 있지?”
다른 자들은 모르는 듯했으나 손계명은 이번 일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다. 한 번의 눈빛으로 금단을 파괴하는 것 정도야 자신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허나 한 번의 발걸음만으로 원영기 수련자 셋을 물리치는 것은 그로서도 불가능했다. 더구나 전해들은 바로 상대는 신통력도 부리지 않고 그런 일을 해냈다. 그렇다면 상대는 문정기 수준이더라도 보통의 수련자는 아닐 것이다.
손가는 기수성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었기 때문에 한제 부자가 어디에 사는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손계명은 안내를 받아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가주님, 그자는 미친 자입니다. 감히 다음에는 봐주지 않겠다는 둥의 이야기를 하다니. 우리 손가에서는 언젠가⋯⋯.”
푸른 옷의 장로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손계명이 미간을 팩 찌푸리며 외쳤다.
“닥쳐라!”
장로는 흠칫 놀라 얼른 입을 다물었다.
“겨우 그런 작은 일로 섣불리 입을 놀렸다가는 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리도 사리분별이 안 되느냐! 우리 손가의 모든 것은 참혹한 대가를 통해 얻은 것이다. 만약 너희가 계속 이런 식으로 군다면 언젠가는 우리 손가에 큰 재난이 닥칠 것이야!”
손계명이 꾸짖듯 말했다.
“할아버님, 손가는 그 선배님의 비호를 받고 있으니 아무리 강한 적이 온다 해도 손가를 건드릴 수는 없을 겁니다.”
입을 연 사람은 술집에서 시비를 걸었던 그 보라색 옷의 청년이었다.
손계명은 그 청년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운가 녀석이로구나. 이번 일은 너로 인해 생겨났으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거라. 네 녀석도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보라색 옷의 청년은 운무봉으로 운해성(雲海星) 운가 사람이었다. 운해성은 나천성역의 5대 주성 중 하나인데 운무봉은 타고난 재질이 너무도 부족해 수련을 할 수 없었기에 외부자 신분으로 운가의 상단과 함께 염운성에 왔다가 이곳에 머물렀다. 일반적인 가문의 수련자는 영변기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이상 수련성을 떠날 수 없었지만 운가와 같은 규모가 큰 가문이라면 이런 제한을 무마할 방법이 있게 마련이었다.
운무봉은 자신의 가문에서는 목소리도 낼 수 없었지만 밖에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운가 사람이라는 신분 덕분에 그는 염운성과 같은 수련성에서는 좋은 대우를 받았다. 운가는 운해성 최고 가문으로 당시의 환가보다도 세력이 더욱 강력했기 때문이다.
운무봉은 속으로 차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 나천성역의 북쪽 지역에서 감히 자신을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운가 전체를 적으로 돌리고 무사할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한제의 저택 1천 척 앞에 이른 손가 사람들은 손계명을 따라 움직임을 멈추었다.
손계명은 어두운 얼굴로 저택의 편액을 바라보았다.
“이 씨로군.”
그는 일전에 기수성에 진입한 순간부터 신식으로 사방을 훑었지만 어떤 이상한 기운도 느끼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고민하던 손계명은 몸을 날려 1백 척 정도 다가가더니 포권을 하며 낭랑하게 외쳤다.
“손가의 손계명일세. 도우를 만나러 왔네!”
그의 목소리에는 선력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에 저택 안의 모든 사람은 그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잠시 후, 저택 안에서 잘생긴 머슴 하나가 나와 손가 사람들을 훑어보면서 말했다.
“어르신께서는 다들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손계명이 입을 열기도 전에 그의 뒤에 선 누군가가 냉소했다.
“하! 콧대도 높군! 우리 손가를 맹인 취급이라도 하는 건가!”
차게 웃음을 터뜨린 붉은 얼굴의 노인은 곧장 저택 안으로 쳐들어갔다.
손계명은 그를 말리려다가 ‘이가 저택’이라는 편액을 바라보더니 뭔가 생각에 잠겼다.
화신기 수준인 붉은 얼굴의 노인은 대문 안으로 들어선 순간,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고 말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저택에서 뿜어져 나와 그의 심신을 진동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 엄청난 힘에 노인은 선혈을 한 움큼 토해내고는 몇 걸음이나 밀려났다.
이를 본 손계명의 표정이 급변했다. 찰나의 순간, 그는 문정기 수준의 기운을 느꼈다. 더욱이 그 기운은 그에게 무척 익숙했다.
손계명은 망설임 없이 붉은 얼굴의 노인을 붙잡아 뒤쪽으로 내던진 뒤 저택을 향해 포권을 하며 공손하게 말했다.
“선배님의 수련을 방해했습니다. 저희는 곧장 물러나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소매를 휘둘러 자신과 함께 온 모든 손가 사람들을 데리고 삽시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기수성의 손가 지부 대전 안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손계명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든 손가 사람들에게 명하건대, 앞으로 이가 저택 1만 척 안으로는 얼씬도 말아라! 명을 어긴다면 수준을 폐기하고 가문에서 쫓아낼 것이다!”
손계명은 아직까지도 심장이 쿵쾅댔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분 정도 되니까 눈빛 한 번, 걸음 한 번으로 그런 일이 가능했겠지!’
손가 사람들은 손계명의 그런 반응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세 장로 중 푸른 옷의 노인은 하얗게 얼굴이 질린 채 원신이 거의 붕괴 직전에 놓인 붉은 얼굴의 노인을 보더니 흠칫 놀라며 물었다.
“가주님, 그⋯⋯ 그자는 대체 누굽니까?”
손계명은 차게 코웃음을 쳤다.
“겁도 없는 녀석들 같으니. 감히 그분을 건드리려 했던 것이냐? 그분은 너희도 잘 알고 있는 분이다. 우리 선조께서도 공손한 태도로 대하는 분이란 말이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우리 손가는 오늘날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설마 그분이⋯⋯.”
흠칫 놀란 푸른 옷의 노인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
손계명이 짧게 고개를 끄덕인 순간, 모든 손가 사람의 얼굴 역시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이번 한 번만 그냥 넘어가주지. 허나 다음은 없어!’
이 말이 귓가에 울려 퍼지는 듯했다.
운무봉의 얼굴도 창백하게 질렸다. 그는 가문 상단 장로에게 이 염운성에 남겠다고 말했을 때, 장로가 해준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장로는 염운성에서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환가를 뒤집어놓고도 천가와 허가가 감히 끼어들 수도 없게 했던 허목이라는 자였다.
허목이라는 이름은 지난 30여 년 동안 북역 전체에 퍼져나갔다. 환가에서 벌어졌던 전투는 너무나 충격적이라 소문만으로도 수많은 수련자가 공포에 떨었을 정도였다.
운무봉은 멍한 상태로 손가 저택에 마련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의 방에는 청희가 창백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체내의 수준이 봉인돼 일반인과 다를 것 없는 상태로 손가에서 축출된 그녀는 운가에 잘보이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의 손에 붙잡혀왔다.
운무봉은 멍한 얼굴로 촛불을 바라보며 마음을 안정시키려 애썼다.
“다 너 때문이다! 너만 아니었다면 내가 허목의 아들을 건드렸을 일도 없었어! 다 너 때문이야!”
운무봉은 몸을 돌려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청희를 주시했다.
청희는 말없이 냉랭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녀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운무봉의 뒤쪽을 바라보았다. 이에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운무봉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지만 그 순간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쓰러졌다.
“선배님⋯⋯.”
청희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포권을 했다.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온 한제는 그녀 옆에 앉더니 술주전자를 들어 한 모금 들이켜더니 덤덤하게 말했다.
“자질이 훌륭하구나! 내 아들과 60년의 세월을 함께해준다면 원영기에 이를 수 있도록 해주마. 동의한다면 고개를 끄덕이거라.”
순간 청희의 머릿속에 이평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녀는 붉어진 얼굴로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사흘 뒤, 이평은 떠났다. 그의 곁에는 청희가 함께 있었다.
이평은 나름의 이상을 품은 채 기수성 밖으로 나갔다. 그는 평안한 일생을 원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다채로운 삶이었다.
이평이 떠난 그날 밤, 한제는 홀로 술을 마셨다. 그의 수준으로는 어지간해서는 취할 수도 없었건만 그날 밤만큼은 정말로 취하기까지 했다. 8백여 년 만에 처음으로 취한 날이었다. 또한 그의 얼굴은 어떤 술법을 부린 것도 아닌데 더욱 늙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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