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50
사방은 고요했다.
허이국은 일이 미묘하게 흘러가는 것을 보고 먼 곳으로 날아가 조심스럽게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심 저 사내에게 한제가 진다면 자신은 대항해야 할지 투항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흡혈 마수는 공중을 선회하면서 사내를 주시했고 뇌와 또한 먼 곳에 앉아 배를 부풀리면서 냉랭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의의 사내는 한제를 한 번 훑어보고는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그 역시 당연하게도 한제의 수준을 파악한 상태였고 특히 그의 곁에서 날갯짓을 하고 있는 나비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
‘비천한 종족의 일원은 아닌데 대체 어떻게 여기에 온 걸까. 몸에 흐르는 기운으로 볼 때는 선인도 아니고⋯⋯. 저자는 대체 누구지?’
청의의 사내는 한제를 건드리지 않고 한 손을 뻗어 제단을 가리켰다. 순간, 제단 아래의 대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 순간, 검은 연기가 줄기줄기 튀어나와 허공에서 잔인한 몰골의 안개 마수로 변했다. 대문 안쪽에는 그 여인의 허상도 있었는데 그 허상은 밖으로 나오지는 않고 그 안에서 냉랭한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기만 했다.
안개 마수가 나타나자 바닥에 꿇어앉아 있던 선선족 사람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하지만 그들은 노예 각인의 힘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안개 마수들은 두 눈을 번쩍 뜨더니 날카로운 눈빛을 번득였다. 뒤이어 녀석들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자 청의의 사내가 손으로 지면을 가리켰다. 그러자 안개 마수들은 곧장 지면을 향해 돌진했다.
이 광경에 한제의 눈빛이 굳어졌다.
한 마리의 안개 마수는 발이 다섯 개 달린 새로 변해 가까이 있던 선선족 사람을 붙잡고 하늘로 날아올랐다가 뒤쪽으로 내던졌다. 그리고는 곧장 그의 몸을 관통했다.
선선족 부족원의 몸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고 피 안개로 변해 그 안개 마수에게 흡수되어 버렸다.
그 선선족 사람은 죽을 때까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했다. 눈빛에서는 살고 싶어 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노예 문양의 힘은 너무도 강력했다.
다른 마수들도 선선족 사람들에게 달려들어 그들은 삼키고 흡수했다. 순간 피비린내가 사방으로 가득 풍겼고 짙은 슬픔과 무기력함이 느껴졌다.
죽어간 모든 부족원들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했고 그들은 죽음을 맞이한 순간 비통해했다.
‘이것이 우리 부족의 운명이란 말인가!’
타산은 두 무릎이 찢긴 채 바닥에 꿇어 엎드려 있다가 안간힘을 써서 고개를 들고 다른 사람들이 굴욕적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야수의 포효 같은 소리가 그의 목구멍에서 흘러나왔고 그의 얼굴에서는 푸른 정맥이 울룩불룩 솟아올랐다. 대대손손 전해져 내려온 노예 각인의 힘에 저항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청의의 사내는 그저 냉담한 얼굴로 이 광경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선선족의 선조 노인은 바람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곁에 있던 청년 하나가 안개 마수에 붙잡혔고 허공에서 몸부림치다가 마수에게 잡아먹혔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번쩍 쳐든 노인의 얼굴에 방금 죽은 청년이 흘린 따뜻한 피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 피는 뺨을 따라 흘렀고 노인의 두 눈에는 짙은 슬픔이 드러났다.
“어째서⋯⋯.”
노인이 중얼거렸다.
바로 그때, 한 마리 안개 마수가 날아와 노인을 붙잡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순간, 노인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힘이 솟구쳐 올랐고 노인은 짙은 슬픔이 담긴 눈으로 청의의 사내를 바라보며 크게 외쳤다.
“어째서!”
노인의 외침이 허공을 가득 채운 그 순간, 엎드려 있던 선선족들이 분분히 고개를 번쩍 쳐들고는 청의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 하나하나의 눈빛에는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슬픔과 분노가 어려 있었다.
“어째서라니? 안개 마수들의 먹이가 되는 것이 바로 너희들의 사명이다. 물론 너희들을 모두 죽일 생각은 없다. 어쨌든 번식은 해야 하니까 말이야.”
사내의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때, 안개 마수 한 마리가 먼 곳으로 돌진했다. 녀석의 목표는 저 멀리 건물 안에 숨어 있던 한 아이였다.
청의의 사내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긴 했지만 안개 마수를 저지하지는 않았다.
“크흐흐! 이것이 선인에게 충성한 대가란 말인가? 크크큭.”
선조 노인은 비참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다른 안개 마수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한제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오른손을 들어 허공을 후려쳤다. 그러자 노인을 삼키려 하던 안개 마수가 곧장 붕괴했다.
목숨을 건진 노인은 곧장 아이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던 안개 마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안개 마수는 이미 그 근처에 이른 상태였다.
“머… 멈춰!”
지면에 엎드려 있던 선선족 사람들은 하나둘씩 몸부림을 치며 고개를 들었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안간힘을 쓰는 그들의 입에서 짐승의 포효와도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두 무릎이 찢어진 타산 역시 시뻘건 두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용을 쓰고 있었다. 뼈가 산산조각 난다 해도 멈추지 않을 기세였다.
“우리 선선족을 뭐로 여기는 것이냐! 우리는 현음정을 수만 년이나 지켜왔다. 그 대가가 고작 이것이란 말이냐? 고작 안개 마수의 먹이가 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란 말이냐? 그렇다면 난 그 숙명에 맞설 것이다. 몸을 불사르고 뼈를 부수더라도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타산의 목구멍에서 마침내 포효가 아닌 말이 터져 나왔다.
그뿐만 아니라 지면에 엎드려 있던 다른 선선족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미간에서 나타난 식물은 격렬하게 번득였다.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용을 쓰는 모습이었다.
청의의 사내는 여전히 냉랭한 얼굴로 경멸하듯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당시 너희는 패배했고 그에 따라 노예가 됐다. 이것이 바로 너희들의 운명이다! 그 운명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말을 마친 그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순간, 펑 하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지면서 선선족 사람들은 체내에서 피 안개를 분출했다. 몸부림을 치며 일어나려던 그들은 그대로 멈춰버렸다.
오직 타산만이 이를 갈며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의 몸에서는 무언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두개골도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청의의 사내는 눈을 번득이며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이를 본 한제는 또다시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런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청의의 사내는 내력이 불분명한 선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긴 한숨을 내쉬며 거대한 인장이 된 조각을 뱉어냈다.
인장은 곧장 타산과 청의의 사내 사이로 날아갔다.
사내는 눈을 서늘하게 번득이더니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선기가 충만한 문양 하나를 소환해냈다. 그 문양은 한제를 향해 날아들었다.
“끼어들지 않을 줄 알았는데 보기보다 상황 판단을 못 하는 자로군.”
청의의 사내는 몸을 날려 자신이 내던진 문양 뒤를 바짝 따라 한제에게 돌진했다.
한제는 오른손을 인장 쪽으로 뻗었다. 그러자 인장은 곧장 진동하면서 허공에서 선회하더니 청의의 사내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한제는 타산에게 다가가 그의 체내로 한 줄기 원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리고 타산의 몸을 건물 쪽으로 향하고 있는 안개 마수에게로 내던졌다.
이어서 한제는 몸을 돌리며 손가락 두 개를 펼친 뒤 맹렬하게 휘둘렀다. 순간, 그 힘은 선인이 쏘아 보낸 문양을 무너뜨렸다. 무너진 문양은 곧장 한 줄기 파문이 되어 흩어졌다.
이때 거대한 인장이 된 조각은 청의의 사내 쪽으로 떨어졌고 사내는 싸늘한 얼굴로 결인을 그림과 동시에 체내의 선원(仙元)을 가동했다. 순간 그의 손에 하얀색의 긴 창이 하나 나타났다.
그 창은 짙은 선기를 번득이면서 곧장 인장이 된 조각을 찔러 들어갔다.
쾅!
거대한 굉음과 함께 청의의 사내는 뒤로 밀려났고 거대한 조각 역시 진동하며 뒤로 수십 척 정도 밀려났다.
“비천한 것들아, 나와 함께 싸워라!”
청의의 사내는 신중해진 얼굴로 낮게 외쳤다.
그의 목소리가 울리자 일어나려 몸부림치던 선선족 사람들은 곧장 본능의 명령에 따라 하나둘씩 날아올랐다.
눈에는 슬픔과 저항의 빛이 어려 있었지만 그들의 몸은 번개처럼 빠르게 한제를 에워쌌다.
한제는 재빨리 몸을 뒤로 물렸다. 나비가 된 사신차는 한제의 그림자라도 된 것처럼 그에게 바짝 붙어서 함께 물러났다.
이 세 번째 사신차가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확실히 알지는 못했지만 한제는 뒤로 물러나며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려 나비에게로 쏘아 보냈다. 이어서 한제는 손을 들어 청의의 사내를 가리켰다.
나비에게서는 어떤 변화도 일지 않았다. 그저 팔랑팔랑 날갯짓만 계속할 뿐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날갯짓이 조금 빨라진 상태였다. 오색찬란한 가루는 나비가 날갯짓을 할 때마다 떨어져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청의의 사내는 경계하듯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일찍이 그는 저 나비에 신경을 써왔기에 약간의 변화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 공격을 해왔을 터였다.
기령(器靈)
한편, 선선족 사람들은 뜻대로 되지 않는 몸으로 일제히 날아올라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눈에는 더욱 짙은 저항의 빛이 드러났지만 노예의 낙인을 이겨내기는 힘들 듯했다.
그때, 나비가 날갯짓을 하며 한제를 떠나 앞쪽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날갯짓을 멈추었다가 순간 다시 가볍게 움직였다.
그저 한 번의 가벼운 날갯짓이었다. 하지만 멀리서 경계하고 있던 청의의 사내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지만 그의 머리카락은 뒤쪽으로 마구 휘날리는 중이었다.
“윽!”
체내에서 펑 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사내는 뒤쪽으로 한참이나 밀려 나갔다. 뒤이어 그의 몸에서 피가 분출됐고 그 피 안개는 허공에서 응집되면서 붉은 나비가 됐다. 그리고 나비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날갯짓을 했다.
펑!
다시 무언가 터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가슴팍에서 피 안개가 터져 나왔고 그 피 안개에서 붉은 나비가 나타나 날갯짓을 했다.
펑! 펑! 펑!
이런 상황은 반복됐고 그때마다 사내는 큰 부상을 입었다. 그의 눈에는 충격과 두려움이 들어찼다. 심지어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체내의 모든 선원도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그는 아무런 힘도 쓸 수가 없었다.
펑!
피 안개에서 나비가 다시 나타나 날갯짓을 했고 청의의 사내는 또 한 번 뒤로 떠밀렸다. 지금껏 무려 1만 척 이상 이렇게 떠밀려왔고 그는 한계가 다가옴을 느꼈다.
“천둥, 폭발!”
뒤로 밀려나던 청의의 사내가 찢어져라 외쳤다. 그러자 그의 체내에서 콰르릉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오른손이 살덩이로 변해 무너져 내렸다. 그 안에는 파멸적인 힘이 배어있었다.
사내의 얼굴은 창백해졌지만 잠시 체내의 선원을 통제할 수 있게 됐다. 이때의 그는 이미 혼비백산한 상태로 몸보다는 정신적인 충격이 컸다.
‘저건 대체 무슨 법보지?’
그는 평생 이토록 기이한 법보를 본 적이 없었다. 나비의 날갯짓 한 번에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이렇게 무너져 내리다니…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훌쩍 날려 제단으로 향했다.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찬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사신차와의 기이한 감응을 통해 아직 가장 강력한 공격은 가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바로 그때, 한제의 곁에 있던 오색찬란한 나비가 가볍게 왼쪽 날개를 휘적거렸다. 그러자 엄청난 속도로 도망치던 청의의 사내는 제단의 대문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발끝에서부터 흩어지기 시작했고 이는 순식간에 머리까지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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