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93
그 무렵, 무극종 장로들의 눈에는 경외심이 가득했다. 그들은 한제의 수준을 짐작할 수도 그 신통력을 꿰뚫어볼 수도 없었다. 그 강력함에 이들은 한제를 우러러보게 된 것이다.
“7급 성역에서도 나와 겨루고 싶은 자가 있나?”
한제는 세상을 채운 오래된 기운을 거둬들였다. 수련성의 혼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듯 대지는 경미하게 진동하면서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다만 여전히 그치지 않는 비와 번쩍이는 천둥번개는 방금 있었던 일이 환각이 아니라 현실이었음을 알려주었다.
한제의 목소리에도 적막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깊은 적막은 점점 형태 없는 위압감이 되어 갔다.
나서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적막을 깨고 한 노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 도우는 무극종에서 8급 종파끼리의 시합에 내보내려 했던 세 명의 제자를 다치게 했네. 이 일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할 것이야!”
무극종의 종주였다.
그의 눈빛은 실체를 갖춘 것처럼 두 갈래 날카로운 빛이 되어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하늘이 콰르릉 하고 울렸고 심지어 빗물도 그대로 허공에 멈췄다.
눈빛의 힘만으로 이런 일을 해내는 것은 어지간한 쇄열기 수준 수련자로서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천쇠를 겪은 이라야 가능할 터였다.
노인의 시선을 받은 순간, 한제는 세상 모든 것이 그 노인의 것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눈빛은 꼭 하늘의 위엄 같았다. 천둥번개는 자연스레 갈라지고 빗방울은 멈췄다.
한제 자신도 그 눈빛에 바르르 떨리는 심신을 어쩌지는 못했다. 억눌러 놓았던 체내의 상처가 금방이라도 폭발할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고 저 멀리 선 노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콰르릉! 쾅!
더욱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상이 포효했고 광기 어린 위압감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크윽!”
대련장에 가까운 수련자들은 성난 파도에 휩쓸리는 조각배가 된 듯한 느낌에 반사적으로 체내의 힘을 가동했다. 그러지 않으면 엄청난 위압감에 그대로 잠식되어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천매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한 줄기 살기(煞氣)를 뿜어냈다. 한제를 돕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녀가 기운을 발산한 순간, 무극종의 종주가 오른손을 휘둘렀다.
쾅!
폭발음과 함께 이천매가 뿜어낸 살기는 그대로 밀려났다.
모은미 역시 서늘한 눈빛으로 온몸의 원력을 동원해 쇄열기 수준을 드러내는 한편 결인을 그린 오른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저항할 수 없는 압박감에 힘을 발산할 수 없었다.
무극종 종주의 힘이 온 세상을 짓누르고 있었다.
일파의 주인, 그것도 8급 성역 종파의 주인답게 그의 수준은 만만치 않았다.
모은미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고 상대의 위압감에 깃든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에 그녀는 묵직한 압박감 속에서 두 손으로 오래된 결인을 그렸다. 곤허의 성녀들 사이에서만 대대로 전해지는 결인이었다.
그 순간, 허상에 유리병이 하나 나타나더니 맹렬하게 떨렸고 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를 압박하던 위압감을 밀어냈다.
모은미는 곧장 몸을 훌쩍 날렸다. 그러나 얼굴은 한층 더 창백해진 상태였다. 부상을 당해 육신이 붕괴하고 원신 역시 크게 상했기에 신통력을 완전히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자신의 위압감에서 벗어나는 모습에 무극종 종주는 흠칫 놀랐다.
한데 거의 동시에 이천매 역시 놀랄 만한 기운을 뿜어냈다. 요기를 품은 살기는 엄청난 힘으로 무극종 종주의 위압감을 그대로 찢어냈고 이천매는 곧장 옆으로 몸을 날렸다.
허공에는 그녀가 마수들과의 전장을 떠나기 전에 신비의 인물이 준 옥패가 떠 있었다.
한편, 두 여인이 몸을 날린 순간, 한제가 오른발을 한 걸음 내딛었다. 그 한 걸음으로 그는 세상에 녹아들었고 수련성과 하나가 된 듯 오래된 기운을 발산했다.
“아무도 나설 필요 없다.”
이어서 한제는 오른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 손짓에 강력한 기운이 이천매와 모은미를 부드럽게 감싸 제자리에 세웠다.
“첫 번째 천쇠를 겪은 자와는 이미 싸워본 적이 있지.”
한제의 체내로부터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아침 해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어두운 밤을 찢어낼 만큼 날카롭고 거친 빛이었다.
그 순간, 노인의 힘에 의해 갈라졌던 천둥번개가 다시 응집되었고 허공에 멈췄던 빗방울도 다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헛!”
무극종 종주는 짧은 헛숨을 토해냈다. 동시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그 순간 빗방울은 그대로 무너져 내려 하늘로 솟아올랐다.
“8급 성역 종파의 시합에는 내가 나가겠다. 허나 그전에 너는 귀원종에 일어난 일에 대해 내게 설명해야 할 것이다!”
한제는 상대의 생각을 꿰뚫어보았다. 상대가 드러낸 살기가 거짓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무극종 종조는 돌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막 무슨 말인가를 하려던 그는 갑자기 표정이 변해 고개를 번쩍 쳐들고 먼 곳을 내다보았다.
콰르릉! 쾅! 콰쾅!
요란한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한 줄기 빛이 날아들었다.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기운이 깃든 빛이 떨어지는 순간, 묵직한 목소리가 하늘 가득 울려 퍼졌다.
“네놈이 감히 내 신통력에 대항하려 하느냐?”
“태상장로!”
무극종 사람들은 분분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포권을 했다.
한제는 고개를 들었다. 온몸에서 금빛을 번득이는 그의 두 눈 역시 금빛으로 빛났다.
“그러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한제의 눈에서 맹렬히 뿜어져 나온 금빛은 순간 세상의 빛을 대체하며 하늘과 대지를 금색으로 물들였다. 쏟아져 내리는 비 역시 금빛을 띠었다.
이 순간, 한제는 떠오르는 태양이 된 듯했다. 그의 몸에서 발산되는 금빛은 태초의 규칙으로 충만한 아침 햇살 같았다.
하늘을 채운 목소리와 함께 달려든 긴 빛에서 회색 옷을 입은 백발노인이 나타났다. 허공에 선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고 두 눈에는 천도를 깨달은 듯한 빛이 맴돌았다.
그가 다가오는 동안 하늘과 땅의 기색이 변했고 구름과 바람은 뒤로 나가떨어졌다. 세상 모든 힘이 그의 통제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붉은 빛의 고리가 노인의 피부 위에서 은은하게 번득였다.
잔야(殘夜)
노인을 본 수련자들은 심신이 요란하게 떨렸다.
그의 피부에서 번득이는 빛의 고리는 첫 번째 천쇠를 완벽하게 넘긴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보호막으로 엄청난 강자임을 뜻하기도 했다.
노인은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숙여 냉랭한 눈으로 한제를 내려다보았다.
“배짱이 대단하구나!”
노인은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툭 내뱉더니 저 아래 대련장에 선 한제를 향해 손을 세차게 후려쳤다.
콰쾅!
그 손짓에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굉음이 울렸고 쏟아져 내리던 빗방울이 수증기가 되어 흩어지면서 붉은 빛이 줄기줄기 나타났다.
빛들은 서로 교차해 원신을 뒤흔들 무궁무진한 규칙이 깃든 거대한 그물을 형성했다. 규칙으로 이루어진, 규칙의 그물이었다.
이 순간, 노인은 어부가 한제는 물고기가 된 듯했다.
대지는 어느새 바다가 되어 있었고 거대한 그물은 물고기를 낚아 올리는 규칙의 우리가 되었다.
한제의 심신 역시 바르르 떨렸다.
규칙의 그물이 내던져진 순간, 한제는 두 눈으로 금빛을 번득이며 날아올랐다. 허나 물고기가 노련한 어부의 그물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은 법. 그는 그물에 사로잡혀 규칙의 우리에 갇히게 될 운명이었다.
하지만 하늘도 거스르는 한제가 상대의 의도대로 되도록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깨달음을 얻었을 당시, 그는 그물에 걸렸으면서도 끊임없이 몸부림친 끝에 마침내 도망치는 데 성공한 물고기를 본 적이 있었다.
자신 역시 그 물고기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몸부림쳐 세상의 규칙으로 만들어진 이 그물로부터, 백발노인으로부터, 그리고 천도로부터 벗어날 생각이었다.
도망칠 곳이 없는 것처럼 규칙의 그물이 세상 전체를 뒤덮은 그 순간, 한제의 몸에서 발산되는 금빛도 점점 밝아졌다.
바다가 된 대지로부터 튀어 오른 그는 해수면 위로 솟아오르는 아침 해와도 같았다.
생애 처음으로 만들어낸 신통력인 잔야력에는 태초의 규칙이 깃들어 있었다. 쇄열기였던 당시에는 이 신통력을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힘을 그가 감당할 수 없었다. 때문에 그는 특정한 상황이 아니면 원력의 소모 없이 잔야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진실과 거짓의 경지를 깨닫고 도과를 삼켜 수준이 대폭 상승했으며, 미간에 규칙의 반점까지 응집시킨 상태였다.
또한 두 번째 신통력까지 깨달은 그는 더 이상 그런 구애 없이도 잔야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비록 완벽한 위력을 발휘할 수도 없고 사용할 수 있는 시간도 길지 않았지만 예전에 비해 한층 나아진 것만은 분명했다.
‘게다가 만약 잔야력을 발휘하느라 모든 원력을 소진해버린다 해도 내게는 흡혈마수라는 최후의 보루이자 필살기가 있다.’
규칙의 그물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한제는 씩 웃으며 두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대지가 흔들리면서 허상의 바다가 나타났다. 진짜 바다는 아니었지만 눈 깜짝할 사이 엄청난 파도가 일면서 온 세상이 어두워졌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백발노인은 흠칫 놀라더니 이전보다 한층 신중한 표정으로 한제를 훑어보았다.
한제의 강력함을 확인한 그는 상대를 무극종의 사람으로 만들어 절대 멋대로 굴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에 공격의 목적은 상대를 떠보는 데서 교훈을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저 천둥벌거숭이에게 세상의 광활함과 무극종의 무서움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제가 잔야력을 발휘한 순간 노인은 전의를 드러냈다.
‘아주 기이한 규칙과 놀라운 신통력이로구나!’
이 무렵, 온 세상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수련자들은 덜덜 떨었다. 심지어 무극종 종주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둠 속에서 규칙의 그물은 바다를 관통해 곧장 한제에게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규칙의 그물이 한제 근처에 이른 순간, 허상의 바다가 거친 파도를 일으키더니 한 줄기 금빛이 느릿하게 떠올랐다.
빛은 곧 세상을 뒤덮은 어둠을 빠르게 몰아냈다. 이어서 더 많은 금빛이 떠올랐고 잠시 후에는 아침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세상이 금빛으로 뒤덮였다. 어두운 밤은 그 햇살에 찢기듯 물러났다. 그리고 아침 해가 해수면 위로 절반쯤 떠올랐을 때, 묵직한 목소리가 사방팔방에 울려 퍼졌다.
“잔야!”
그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아침 해 안에서 흐릿한 인영이 나타났다. 한제의 인영이었다.
“크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