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159
“그… 런 건 아닐걸?”
“아냐. 내가 볼 땐 넌 마히타보다 훨씬 천재야. 그냥 게을러서 일찍 사회로 나가고 싶지 않은 것뿐이지.”
“…….”
지금의 오디에겐 어떤 말도 들리지 않을 거 같다.
동생의 성과로 오디는 더욱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그럼에도 마냥 주눅 든 모습이 아닌 것은 아마도 오디의 엄마가 따로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일 테다.
은근히 본인 목도 빳빳해지는 것이 내 앞에서 동생 자랑도 하고 싶은 것 같고.
귀여우니 봐주자.
디베이트 주 대항전에서 1
3시간 만에 도착한 숙소에 짐을 풀었다.
그래도 주 대항전이라 학교에서 돈 좀 준 모양이다.
보통 작은 대회에 갈 때는 하급의 모텔에서 지내는데, 오늘은 상급의 모텔이다.
별 등급이 무려 5점 만점에 3.7이나 된다.
우리도 각자 300불이란 거금을 내놔야 했지만, 사실 대회 참가비에 교통비, 2박 3일간의 숙박비와 식비까지 합하면 인당 천 불은 족히 든다.
우리 클럽 운영비로는 턱도 없다.
할머니 교장 샘이 큰맘 먹고 지원을 해 줬을 거다.
이런 큰 대회에 이 정도 인원이 참가한 것부터가 역대급이니 기대를 건 것이겠지.
열심히 해야겠다.
코치들 두 명이 한 방을 쓰고, 학생들은 남자 3명에 여자 1명이기에 아리아 혼자 방을 쓰고, 우리 셋이 한 방을 쓰게 되었다.
3명이라 그런가, 우리 방은 사이즈가 좀 크다.
퀸 사이즈 침대 2개에 소파 베드 1개.
저 둘은 같은 인도인이니 한 침대로 몰아넣어도 되지 않을까?
방을 스윽 보던 오디가 재빨리 침대 하나에 몸을 던진다.
곧바로 아벤이 다른 쪽 침대를 점거한다.
“야, 내가 덩치가 제일 크잖아. 그냥 너희 둘이 한 침대 쓰면 안 돼?”
“어, 안 돼. 제이든, 너 솔직히 우리 둘이 인도인이니 한 침대 몰아넣으려고 했지? 그렇게 치면 너희 둘이 9학년이고, 난 12학년이니까 너희 둘이 한 침대 써라.”
“아벤, 넌 대회 안 나가잖아.”
“난 감독이야, 감독.”
“…그냥 가위바위보 하자.”
“됐어! 내가 그냥 소파 베드에서 잘게. 각자 침대 하나씩 써.”
“오오, 오디. 웬일?”
“나야 솔직히 참가에 의의를 두는 거지만 제이든은 1등을 할 수도 있을 텐데 괜히 컨디션 망가지면 안 되잖아.”
“야! 그렇게 말하면 나는 뭐가 되냐?”
“뭐긴, 못된 12학년 프레지던트지.”
오디의 말에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짓던 아벤이 조용히 소파 베드를 편다.
“알았다, 알았어. 내가 소파 베드 쓴다. 됐냐?”
“땡큐, 아벤.”
“역시 우리의 프레지던트!”
“참 나, 니들 꼭 수상해라. 알간?”
오디가 이렇게 순발력을 발휘할 줄이야.
덕분에 침대 하나를 혼자 편히 쓸 수 있어 좋긴 하다.
― 20분 후 출발할 거야. 랩탑 꼭 챙기고, 충전기도 잊지 말고.
미스터 크롭스키에게서 전체 이메일이 왔다.
“충전기?”
“아, 제이든. 너는 그때 없었구나? 저번 대회 때 산티노가 충전기 안 가져와서 게임 중간에 랩탑이 꺼져 버렸잖아. 거의 이긴 게임이었는데 완전 망해 버렸지. 산티노 멘탈 나가서 난리였어.”
“그런 일이 있었어?”
“어, 그러니까 잊지 말고 챙겨.”
“오케이. 배터리는 빵빵하지만, 일단은 챙길게.”
주립 대회는 일단 참가 인원수가 엄청나다.
스테이트 챔피언십 출전 자격 대회에서 부문별 2등 안에 들거나, 일반 디베이트 대회에서 3번 이상 6등 안에 들어야 한다.
디베이트 대회는 정말 많다.
같은 날에도 여러 군데에서 디베이트 대회가 열린다.
그러니 3번 이상 6등 안에 드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다.
웬만한 주 하나가 우리나라 전체보다 크다는 걸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모이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작은 주는 수백 명 정도겠지만 큰 곳은 수천 명 단위다.
우리가 있는 곳은 평균 수준으로 4천 명 정도라고.
주 대회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보여서 내셔널로 가는 것이 아니라 주 대회는 여기서 끝이다.
주 대회와 내셔널 대회는 각기 독립적이라는 뜻.
내셔널의 참가 인원은 훨씬 많아진다.
모든 학군에서 부문별 6명까지 참가가 가능한데, 혹시 결원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2명을 더 뽑아 둔다.
그래서 해마다 참가자 수가 수만 명 수준이다.
미국 전역의 디베이트 가입자만 14만 명 정도 된다니 그 규모를 알 수 있다.
이제까지 8―40개의 학교들이 모인 대회에 참가했던 것과 비교하면 차원이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거다.
심사 위원들 역시 수준이 다르다.
대부분이 경력이 오래된 코치와 교사들이 맡는다.
그들의 경력은 모두 인터넷에 오픈된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심사를 맡은 심사 위원들이 그동안 디베이트 심사 위원을 몇 번이나 했는지,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는지, 증거를 제시하며 피력을 하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지, 아님 감정에 호소하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지 등등을 미리 알아볼 수 있다.
물론 심사 위원 성향을 찾아볼 시간에 하나라도 더 발표 준비를 하는 것이 낫다.
기본만 하면 된다.
깔끔하고 단정한 차림과 말투, 행동이면 최소 점수가 깎일 리는 없으니.
이번 디베이트 스테이트 챔피언십 LD 파트 주제는,
― 정부는 모든 시민에게 보편적 기본 소득을 제공해야 하는가? ―
이다.
이제까지와 다르게 진짜들이 모인다고 생각하니 은근히 긴장이 되었다.
준비는 끝났다.
하지만 ‘만일의 사태’라는 것이 있잖은가.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긴장을 풀고 있는데 아리아가 다가온다.
“헤이, 제이든.”
“어.”
“저기 저 애 보여?”
“누구? 곱슬머리 파란색 양복?”
“어. 걔가 앤드류라는 앤데 작년에 파이널 리스트까지 올라간 애야. 그리고 저쪽에 금발 머리를 초록색 핀으로 올린 애 있지? 올리비아라고 쟤는 작년에 내셔널에서도 등수 안에 들었어. 논리에 강해서 상대가 조금만 약점을 보이면 물고 늘어져. 대신 인간적인 면모를 내세우는 상황에선 좀 약한 면이 있지.”
“…….”
“그리고…. 아, 저기 인도인, 뿔테 안경 쓴 애는 자료 준비를 엄청 잘하는데 생각보다 말발은 약해. 예전에는 자기가 준비한 거 보여 주고 싶어서 여기저기 막 뿌렸는데 자기 걸로 남이 올라가는 거 몇 번 당하고는 지금은 안 준대.”
“…….”
“그리고 저기, 쟤는 알지? 내 약혼자 해럴드. 저 새끼도 작년에 파이널에 올랐어. 과외를 많이 받아서 그런 거지, 머리가 좋지는 않아. 9학년 때부터 주구장창 해 왔는데 작년에 처음으로 파이널에 든 거야. 순발력도 약하고…. 암튼 멍청해. 신경 쓸 거 없어.”
.
.
.
11학년 아리아.
평소 디베이트 클럽 모임에는 잘 오지 않았지만, 대회만 나가면 1등을 거머쥐었던 아이다.
종목이 나와 같은 LD(Lincoln and Douglas)다.
한마디로 우린 경쟁 상대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조언들을 아끼지 않는다.
“고맙다.”
“뭘. 아, 너 내셔널도 나가지?”
“어. 너도 가잖아.”
“올해는 빠질까 고민 중.”
“왜?”
“네가 있어서?”
“뭐래, 암튼 수고해라.”
“그래, 너도.”
“나야 언제나 잘 하지.”
“하, 재수 없어. 그래도 이번엔 내가 너보다 위일 거다. 내가 공부라는 걸 했거든.”
평소엔 준비 하나 없이 기본으로 치렀다는 말인가?
엄청난 자신감이네.
나한테 몇 번 발리고는 내가 나가는 대회는 피해서 나가더니 열 좀 받았던 모양이다.
디베이트 공부를 다 했다는 걸 보면.
하지만 어차피 같은 학교 학생들이 상대편으로 붙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 대학은 지역의 유망한 학교로….”
“지금부터 High School Speech League State Championship을 시작하겠습니다. 각 부문(event)별로 라운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디베이트와 퍼블릭 포럼 및 링컨―더글라스 파트는 지금부터 5라운드까지 치를 것이고, 스피치는 예선전으로 4라운드까지 있습니다. 시 낭송이나 문학 감평은…(중략)…예선을 통과한 자들은 토요일 오전 7시 쿼터파이널(준준결승)을 치르고, 10시에 세미파이널(준결승)을 할 것이며, 점심 식사 후 1시부터 파이널(결승)이 있을 것입니다. 수상은 오후 4시부터 약 2시간에 걸쳐 있습니다. 그럼 모두의 무운을 빕니다.”
엄청나게 빡빡한 일정.
대회를 개최하는 대학교의 교수가 나와 학교 소개를 한 후 본격적인 사회자의 말이 이어졌다.
학교 소개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이곳에 모인 학생들에겐 살짝 관심 밖의 학교.
찾아보니 순위가 대략 600위 정도다.
― 삐.
곧이어 각자의 1라운드 방이 배정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날카로운 인상의 백인 여자 심사 위원이 있다.
“안녕하세요, 제이든 패터슨입니다. 더글라스(반대 입장, Negative position) 역이고요.”
“좋아요, 저쪽으로 서세요.”
“네.”
―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서는 백인 남자아이.
눈만 굴리며 멀뚱히 서 있다.
안 그래도 날카로운 인상의 심사 위원 얼굴에 짜증이 올라온다.
“이름은?”
“아, 닉 클로어입니다.”
“링컨(찬성 입장, Affirmative position) 역이고?”
“네.”
“저쪽에 서요.”
“네.”
볼 것도 없이 이겼네.
심사 위원이 여러 말을 건네기 전에 미리 내 정보를 한 번에 전달하는 것이 좋다.
어떻게 스테이트 챔피언십까지 올라왔는지 신기할 정도다.
“이미 숙지하고 있겠지만 게임 시간은 50분입니다. 각자 모두 발언 12분, 질문과 반론은 각기 3분씩이며….”
빠르게 게임의 룰을 짚어 주는 심사 위원.
이미 알고 있는 정보지만 진지하게 듣고, 고개를 약하게 끄덕여 다 알아들었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나를 보는 심사 위원의 눈빛이 곱다.
“더글라스, 모두 발언하세요.”
링컨 쪽 발언이 끝나고 내 순서가 돌아왔다.
“네. ‘정부는 모든 시민에게 보편적 기본 소득을 제공해야 하는가?’에 대한 반대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빈부 격차가 갈수록 심화되면서 지난 몇십 년 동안 많은 나라에서 이 문제를 두고 심도 깊은 고민을 했습니다. 실질적으로 몇 나라에서 실험을 했죠. 대표적인 것이 1970년대 말 캐나다의 Dauphin Experiment 실험과 1990년대의 노르웨이의 유일 피트만 실험입니다. 결과적으로 실험은 실패했습니다. 단기적인 데다 지역이 제한되었다는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이 실험으로 노동 시장의 유연성이 얼마나 떨어지는지를 확인했으며…(중략)…또한 금융 지원의 지속 불가능성이 있습니다. 모든 시민에게 기본 소득을 제공하려면 정부의 재정 부담이 상당히 증가할 것이며, 이 자원들은 결국 세금으로 충당해야 합니다. 기본 소득에 만족하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세금 확충에 대한 문제가 불거질 것이며, 이는 기업의 생산성, 고용 창출, 경제 성장을 제약할 수 있습니다. 또한…(중략)…결론적으로 기본 소득 제공은 구현 방식과 시기, 경제적 및 사회적 요인 등등 복합적인 이유를 충분히 검토한 후 결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여 저는 이 안건에 반대합니다.”
심사 위원의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간략하게 심사평을 적는 듯한 모습.
“링컨, 더글라스의 의견에 반론 준비하세요.”
“아… 그게… 없습니다.”
“없다고요?”
“…네.”
이번 판의 포기 선언이나 마찬가지인 말이 튀어나왔다.
잠시 벙찐 심사 위원이 낮게 한숨을 쉬고는 1분간 휴식을 선언했다.
.
.
.
1라운드가 끝났다.
4분간의 휴식 후 곧바로 시작된 2라운드.
그렇게 5라운드까지 게임이 진행되었다.
오후 9시.
4시부터 시작된 주 예선전이 드디어 끝났다.
기분이 묘했다.
오늘 내가 만난 5명의 선수들이 모두 너무 쉬웠다.
이제까지 참가했던 디베이트들을 통틀어도 가장 쉬웠다고 할 수 있다.
주(state) 대회에서 이럴 수가 있나?
내셔널 대회보다 어렵다는 것이 주 대회이다.
내셔널 대회는 단 한 번의 출전 자격 대회(national qualified debates competition)를 치른 후 학군마다 6명씩 올라온다.
인간 수는 많지만, 상대를 잘만 만나면 쉽게 결승까지 올라간다는 뜻.
물론 결승에선 진짜들의 싸움이겠지만.
하지만 주 대회는 나름 엄선된 사람들이 참가한다.
누군가 작정하고 ‘이번 대회는 네가 1등’이라고 점찍어 놓고 밀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
뭐지?
“내일 오전 7시 준준결승전을 시작합니다. 제시간에 교실을 찾아가지 않는다면 기권으로 간주, 자동 탈락 될 것이며…(중략)…그럼 편안한 밤 되십시오.”
나를 이곳으로 부른 신이 도움을 준다는 생각은 애초에 버렸다.
딱 한 번, 베티가 진심으로 적의를 품었을 때의 속마음이 들려왔던 것을 제외하곤 신은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았으니까.
뭐, 내가 모르게 뭔가를 도와줬을 수도 있지만 내 기억엔 딱히 없다.
그나마 노력한 만큼은 보상을 받고 있으니 그걸로 만족하는 중일 뿐.
죽을 만큼 노력해도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
“…든?”
“…….”
“…했냐고!”
“…어?”
“뭘 그렇게 넋을 놓고 있어? 잘 했냐고?”
“어, 오디. 뭐, 그럭저럭.”
“칫, 잘 했다는 소리네.”
“너는?”
“나?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이번에도 도망쳤다. 그냥 마히타 합격 파티에나 있을걸. 집에 갈 때까지 할 일 없이 놀게 생겼네. 내가 말이지, 2라운드에서….”
오디의 본격적인 푸념이 시작되려는 찰나 아벤이 미스터 크롭스키와 함께 환한 표정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