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native American RAW novel - chapter (166)
166화
메리맥 강 하류 남쪽, ‘하늘의 태양’ 성채.
왐파노아그 부족 영토 최북단에 있는 성채는 마을보다는 군사 기지에 가까웠다.
그리고 강을 중심으로 아브나키 연맹 전사들과 대치하고 있어서 평소보다 많은 오백 명의 ‘하늘의 태양’ 전사가 이 성채에 주둔하고 있었다.
“드디어 끝났군.”
“그러게. 오늘도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지나가네.”
“괜히 긴장했어.”
날이 조금씩 밝아 오자 이중으로 된 성벽 위에서 밤새 경계를 섰던 전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때마침, 성벽과 연결된 계단으로 주간 경계를 설 전사들이 차례대로 올라왔다.
“충!”
“이상 무.”
“지난밤, 아브나키 연맹 전사들의 특별한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무사히 인수인계가 끝나자 주간 경계 임무를 맡은 전사들이 각자 위치로 이동하며 자리를 잡았다.
그때, 성문 중앙 양옆에 지어진 망루에서 동시에 북소리가 들려왔다.
둥! 두두두둥! 둥! 두둥!
성문 경비 탑에서 주간 경계를 책임지고 있던 백인장 전사가 움찔하더니 몹시 심각한 표정으로 전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아브나키 연맹 전사들이 쳐들어온다!”
“전투태세를 갖추어라!”
“곧 천인장님과 전사들이 올 것이다!”
한편, 성채 총 책임자가 머무는 막사에서도 그 소식이 전해졌다.
“천인장님! 정보감찰부에서 말한 대로 아브나키 연맹 전사들이 움직였습니다.”
백인장의 보고에도 ‘꺾이지 않은 산’은 평정심을 유지하며 담담하게 갑옷과 무기를 챙겼다.
“지금까지 훈련한 대로 하면 이긴다. 백인장들한테 수성전을 준비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자신을 보좌하는 백인장이 나가자 ‘꺾이지 않은 산’은 이틀 전에 정보감찰부에서 보내온 전문을 떠올렸다.
‘거짓 정보를 흘러 아브나키 연맹의 판단을 흐리게 할 겁니다. 며칠 안으로 아브나키 연맹 전사들이 쳐들어올지 모르니 수성전에 맞춰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키도 작고 체형도 왜소하지만, ‘꺾이지 않은 산’은 그 어떤 천인장보다 지략에 능했다.
더구나 회전이나 야전이 아닌 수성전은 그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전투였다.
‘꺾이지 않은 산’은 훈련소에서 배운 전략과 전술을 떠올리며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막사에서 걸어 나왔다.
“만 명의 전사가 와도 이 성채를 정복할 수 없다.”
* * *
강을 무사히 넘은 천오백 명의 아브나키 연맹 전사들이 전방에 있는 성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열로 넓게 유지한 진형.
마치 활화산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며 아브나키 연맹 전사들은 대추장들의 명령이 떨어지기만 하면 당장에라도 성벽에 돌진할 기세였다.
그때, ‘씻겨내러 가는 모래알’이 전사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오늘 저 주둔지를 정복한다!”
“돌격!”
곤봉과 돌창을 든 아브나키 연맹 전사들이 일제히 괴성을 지르며 성벽을 향해 무섭게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간중간 사다리를 든 전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아다다다다다닷! 아다다다다다다다닷!
특별한 전략이나 전술은 없었다.
오직 공격.
* * *
“그냥 대놓고 죽여 달라고 달려오는군.”
성문 위에 있는 경비 탑에서 ‘꺾이지 않은 산’은 개미떼처럼 성벽을 향해 몰려오는 아브나키 연맹 전사들이 보며 코웃음을 쳤다.
“활을 들고 대기하라!”
“내 명령에 있을 때까지 그 어떤 공격도 금한다!”
그 사이, 성벽과 아브나키 연맹 전사들이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300m, 200m, 150m…
마침내 아브나키 연맹 전사들이 ‘하늘의 태양’의 활 사정거리 안까지 들어왔다.
그런데도 ‘꺾이지 않은 산’은 공격 명령을 내리지 않고 있었다.
“아직 때가 이르다. 기다려라!”
뭔가를 기다리는 듯 ‘꺾이지 않은 산’은 차갑게 눈을 빛냈다.
그 순간, 50m까지 달려오던 아브나키 연맹 전사들이 갑자기 땅이 움푹 꺼지며 사라졌다.
으아아아악! 으악! 으아아악!
고통스러운 비명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함정에 빠진 아브나키 연맹 전사들이 땅에 설치된 나무창에 꿰어 처참한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뾰족하게 날이 선 나무창은 전사들을 가리지 않았다.
가슴이 뚫리고.
목에 박히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게다가 성채 주변에 설치된 함정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아! 내 다리!”
“여기서 꺼내 줘!”
“배에 나무창이 박혔어!”
함정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아브나키 연맹 전사들이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함정에 빠지지 않은 아브나키 연맹 전사들을 더 혼란하게 만들었다.
그때, 함정 앞에서 멈칫거리며 서 있는 아브나키 연맹 전사들을 보고 ‘꺾이지 않은 산’이 마치 이 상황을 기다렸다는 듯 아주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이다!”
“공격!”
“화살을 퍼부어라!”
성벽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하늘의 태양’ 전사들이 일제히 활을 쏘기 시작했다.
슉! 슉! 슉! 슉! 슉! 슉! 슉! 슉!
거의 직선으로 날아가는 수많은 화살이 함정에 막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브나키 연맹 전사들을 순식간에 덮쳤다.
온몸이 화살로 꼬챙이가 된 아브나키 연맹 전사들이 또다시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함정에 이어 무자비한 활 공격까지 더해지자 아브나키 연맹 전사들이 더 큰 혼란에 빠지며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였다.
사방에선 화살들이 끊임없이 날아왔다.
사상자는 계속 늘어났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
보다 못한 아브나키 연맹 대전사들이 서둘러 후퇴 명령을 내렸다.
“공격 중지!”
“부상자를 데리고 후퇴하라!”
용감하게 돌진하던 아브나키 연맹 전사들이 성벽에 아예 접근도 못 하고, 살기 위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성벽 위에 있는 ‘하늘의 태양’ 전사들이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
“우리가 이겼다!”
그리고 아브나키 연맹 전사들에 맞서 이번 수성전을 사상자 한 명 없이 승리로 이끈 ‘꺾이지 않은 산’은 그제야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시작도 안 했는데, 끝나 버렸군.”
* * *
‘하늘의 태양’, ‘발톱’ 마을.
반란을 일으킨 일리노이 연맹 전사들이 항복한 지 벌써 열흘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사나운 늑대’와 ‘날카로운 사슴뿔’은 전장을 정리하고, 거의 사백 명이 가까운 포로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오늘도 그 둘은 마을 회관에서 만나 간단히 회의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마을은 어느 정도 복구가 된 것 같아.”
‘사나운 늑대’의 눈에는 지금의 마을 상태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언제까지 그 일에만 전념할 수 없었다.
일리노이 연맹과의 전쟁도 끝나지 않고, 또 처리할 포로들도 아직 남아 있었다.
“수고했다.”
마을 복구를 책임지고 맡은 ‘날카로운 사슴뿔’이 별거 아니라 듯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뭐 한 게 있나? 마을 복구는 포로들이 했지.”
포로가 된 일리노이 연맹 전사들을 마을 복구에 전원 투입했다.
물론, 맨입으로 일을 시키지 않았다.
일리노이 연맹 대전사들이 항복 조건으로 내건 약속을 철저하게 지켜가며 일을 시켰다.
하루 두 끼.
꽤 오랫동안 굶어서 그런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지 포로가 된 일리노이 연맹 전사들은 사고 한번 일으키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렇긴 하지.”
‘사나운 늑대’가 순순히 인정하자 ‘날카로운 사슴뿔’을 입을 삐죽거리더니 무안하다는 듯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이제 포로가 오십 명 정도 남았나?”
“오십 두 명.”
“그래, 그래. 오십 두 명. 이번에는 포로들을 어디로 보낼 거야?”
‘사나운 늑대가 고민이 많은 듯 잠시 머뭇거렸다.
“포로들을 토끼 일족으로 보낼까 해.”
“토끼 일족?”
‘날카로운 사슴뿔’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도로 건설에 일손이 더 필요하다는군.”
“참나! 다른 쇼니 부족 일족들은 일할 사람이 없어서 서로 포로를 달라고 아우성인데. 그에 비해 일손이 제일 많은 토끼 부족이 그런 부탁을 해?”
‘하늘의 태양’은 지금도 각 지역의 중심 마을 위주로 도로 건설을 계속하고 있었다.
만일, 작은 마을까지 도로 건설을 한다면 아마 그 공사는 백 년이 가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하늘의 태양’은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아, 몰라. 머리 아프니까. 그건 네가 알아서 결정해.”
“그래. 그럼, 너도 이 결정에 동의하는 거로 알지. 참고로 포로 수송은토끼 일족 전사들이 직접 데리고 갈 거야.”
“잘됐네. 우리가 일일이 수송하지 안 해도 되고.”
‘사나운 늑대’가 그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그리고 정확히 사흘 뒤, 황제 폐하께서 도착할 거야. 전사들이 바로 출진할 수 있게 준비해 놔.”
“그러지.”
대답하는 ‘날카로운 사슴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같은 천인장이고, 대전사인데, 자꾸만 ‘사나운 늑대’한테 지시를 받는 게 영 찝찝했다.
‘뭔가 말리고 있는 것 같은데.’
* * *
‘하늘의 태양’, ‘아주 큰’ 도시.
도시 번화가에서 서쪽으로 조금 가면 일 년 내내 마르지 않은 계곡이 있었다.
그 계곡에는 전에는 볼 수 없는 이제 막 지은 건물이 들어서고 있었다.
“자, 물홈을 설치하게.”
“각도가 안 맞았잖아.”
“나무 재료로 만들어서 물홈이 깨질 수 있으니 조심하게.”
인쇄기를 만든 대장장이와 목수, 기술자들이 오랜만에 만나 깊게 홈이 파인 통나무를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계곡 물이 흐르는 방향에 따라 커다란 바퀴가 삐거덕거리며 아주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건물 안을 둘러본 ‘찬란한 노을’이 건설부 수장인 ‘게으른 비버’와 함께 나란히 걸으며 바깥으로 나오고 있었다.
“일단, 황제 폐하께서 주신 설계도대로 만들어 봤긴 했는데… 솔직히 될지, 안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유난히 자신감에 없는 ‘게으른 비버’의 모습에 ‘찬란한 노을’이 일부러 장난치듯 말했다.
“설마 황제 폐하를 못 믿는 거예요?”
“아니. 당연히 황제 폐하를 믿죠.”
“근데, 뭘 그렇게 걱정하세요?”
“그게 아니라 이게 생각보다 복잡해서 저희가 잘못 만들었을까 봐… 그렇죠.”
“실패하면 또 어때요? 다시 만들면 되는 거지. 그러니까 자신감을 가지세요.”
“하긴,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다시 만들면 되겠죠?”
‘찬란한 노을’이 ‘게으른 비버’의 어깨를 두드리며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그럼요. 근데, 저는 왠지 성공할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요.”
‘찬란한 노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커다란 바퀴가 좀 전보다 속도가 붙으며 힘차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바퀴가 돌아간다!”
“됐어!”
몰홈을 설치한 기술자들이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아직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때, 건물 안쪽에서 알 수 없는 굉음과 함께 여자들의 환호를 질렀다.
“성공이다!”
“다들 와서 보세요.”
“옥수수가 빻아지고 있어요.”
‘찬란한 노을’뿐만 아니라 바깥에 있던 사람들 모두 건물 안으로 우르르 들어갔다.
쿵! 쿵! 쿵!
나무로 만든 공이가 일정한 속도로 확 속에 있는 옥수수 알을 찧고 있었다.
“이거 어떻게 움직일 수가 있지.”
“보면 볼수록 신기하네.”
“이제 일일이 곡물을 빻지 않아도 되겠네.”
“이거 어떻게 움직일 수가 있지.”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이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는지 하나같이 기쁜 표정으로 축하를 건네며 서로 부둥켜안았다.
“수장님! 축하해요. 드디어 물레방앗간을 만들었네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황제 폐하께서 주신 설계대로 만든 것뿐인데.”
‘찬란한 노을’의 축하에 ‘게으른 비버’가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 * *
날이 어두워지자 시장에 있는 상점과 가게들도 서서히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늘 장사는 꽝인가 보다.”
그때, 시장 입구 쪽에 가죽을 파는 가게 주인이 뭔가를 보고 눈빛이 확 변했다.
“우리도 문 닫을 준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