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5
15. 직장상사를 살해하는 세 가지 방법 (12)
***
민준은 김연주를 상대로 한 심문을 통해 두 가지를 기대했다.
하나, 에델리네스와 공모하여 장태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밝히는 것. 납치에 성공 못했더라도 불발 과정과 동기를 파보면 장태준의 실체에 가까워질 것이다.
둘, 후라이팬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김연주의 증언은 애초부터 거짓이었고 둘은 꽤 가까운 사이였다. 다른 사람은 모르는 그의 비밀을 김연주는 알지도 모른다.
다만, 민준은 이 심문 과정에서 김연주가 순순히 협조해 줄 것이라고는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모든 건 그 드래곤 혼자 꾸미고 실행한 짓이에요! 전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움직인 거라구요!”
정팔은 이럴 때를 대비하여 민준이 따로 빌려 둔 사설 창고에 김연주를 가둬 놓고 있었다. 일전 다른 건으로 합동수사를 할 때 발도장 찍은 적 있는 장소다.
그는 김연주를 이송하면서 혐의를 고지했고 용의자는 필사적으로 부인하고 있었다.
민준은 그녀를 마주 보고 앉았다.
“······!”
순간 김연주는 온 몸을 짓누르는 압박감을 느꼈다.
마주친 남자의 두 눈동자는 매섭도록 차가웠다. 마주본 자신의 동공에 서리가 낄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민준은 차분하게 말했다.
“동범, 에델리네스는 이미 체포되었습니다.”
용의자의 전신 근육이 더 딱딱하게 굳는다.
“오늘 통화 내용 들어보니 둘이 퍽 친한 사이인 것 같던데요. 언제부터 알고 지냈죠?”
사무실에서 답을 듣지 못한 질문을 되풀이한다.
김연주는 간신히, 모든 용기를 끌어 모아 항변했다.
“그··· 건, 오해에요. ······다시 말하겠어요. 그 드래곤은 일방적으로 저를 위협···.”
말을 끊는다.
“그럴 리 없을 텐데요.”
그렇게 간주하기엔 김연주의 몸에서 발산되는 호르몬이 너무 짙었다. 유혹 대상이 되는 이종족과 오랫동안 밀접하게 접촉할수록 강하게 발현되는 화학물질. 민준의 코가 아플 정도로 짙은 향이라면, 답은 하나 밖에 없었다.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둘은 지금 증언한 이상의 관계였다구요. 그러니, 거짓말로 혼자만 혐의를 피하려는 얕은 수는 안 통합니다.”
시선이 그녀의 손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얼굴의 홍조가 더욱 짙어진다. 민준은 협박당했다는 헛소리를 믿지 않았다.
사실, 김연주와 망나니 드래곤의 결탁에 대한 젠킨슨 회장의 추론에는 헛점이 하나 있었다.
‘젠킨슨은 귀족에 가까운 집안 출신이고, 지구 망명도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어. 그래서 상대적으로 가진 것 없는 용들의··· 그 중에서도 어린 녀석들의 심리상태를 절반만 이해하고 있다.’
평범한 종족과 비교하면 월등한 능력과 부를 지녔음에도, 그들은 지구의 실질적 지배층인 엘더 드래곤과 신세를 비교하면서 열등감을 키웠다. 그 분노는 다른 종족을 깎아내리고 멸시함으로써 종종 표출되곤 한다.
‘그런 놈들 짓이라고 가정했을 때, 이번 사건에 이상한 점이 있다.’
김연주를 만나기 전까지 풀리지 않던 의문.
용의 유전자를 연구하는 장태준의 비밀을, 드래곤에게 누설하고자 결심했다고 치자. 그 다음은? 김연주의 생각대로 움직여 줄 적합한 드래곤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알고 찾아갔을까?
그리고 민준이 아는 ‘그런 용들’ 심리에 따르면 자신을 이용하려고 접근한 김연주 역시 갈기갈기 찢어버렸어야 맞다. 감히 위대한 드래곤을 장기말로 쓰려고 하다니! 콰르릉!
하지만 김연주는 멀쩡하게 살아 남았으며, 효성실업도 무너지지 않고 건재하고, 심지어 김연주가 실질적인 1인자 노릇까지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취합해 봤을 때 결론은 하나였다.
‘그 드래곤에게는, 김연주를 살려 둘 뿐만 아니라 도와야 할 마땅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느낀, 용을 유혹하는 호르몬 덕분에 답이 나왔다.
‘장태준을 납치하려고 드래곤을 찾아 간 것이 아니야. 시간 순서가 반대다.’
김연주는 장태준을 납치하려고 결정하기 전부터 그 드래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ISP가 발현되기 충분할 정도로 오랫동안.
“?”
이야기가 예상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느낀 정팔이 더듬거렸다.
“아··· 설마, 그럼?”
몇 시간 전, 이 오크는 민준이 용의자 후보 셋 중 어떻게 에델리네스를 정확하게 찍어냈는지 궁금해했다.
그 답은 간단했다.
에델리네스는 셋 중 유일한 레즈비언이다.
***
김연주는 몸을 부들거리면서 떨었다.
“도청으로··· 얻은 증거는 법정에서 무효···!”
다시 말을 끊어낸다.
“걱정 마세요. 자백은 다시 한번 제대로 받아 낼 겁니다. 이곳에서.”
결국 마법까지 쓰게 만드는군.
상대가 이능범죄조직 소속도 아니고 하니 가급적 덜 해로운 수단을 쓰려고 했지만 협조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민준은 투덜거리면서 멀쩡한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흑마력은 용을 잡을 때 충분히 충전해서 다시 자해할 필요는 없었다.
부글!
손가락 위에 작은 종기가 솟아오르고, 터졌다. 껍질이 까진 붉은 살갗 위 꿈틀거리는 벌레. 그걸 본 김연주는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느꼈는지 몸을 뒤튼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쉭!
숨결을 감지한 해피 버그(Happy Bug)가, 몸을 튕기며 그녀의 비강 속으로 파고들었다.
다음은 소사이어티 조직원을 심문할 때와 비슷한 과정이 이어졌다. 벌레가 뇌 속에 자리잡은 뒤 민준이 진언을 외우고, 폭력적인 자극은 환상을 만들었다. 즉각적으로 그녀를 지배하는, 잠깐의 위조된 행복이 흘렀다. 그리고 10분 후, 압도적인 감각이 완전히 물러나고.
“흐으··· 으으으!”
마치 잊었던 추위와 다시 마주한 것처럼, 김연주는 온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제, 제발···..”
울먹이며 애원한다.
“제발, 다시, 날 다시··· 돌려보내 줘······.”
그 환상 속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민준이 냉혹한 목소리로 말한다.
“자, 지금부터 하는 말은 녹취됩니다. 천천히, 차근차근, 무엇 하나 빠뜨리지 말고 진술해 보세요. 에델리네스와 결탁해서 장태준 사장을 상대로 무슨 짓을 꾸몄던 건지. 그리고, 당신이 장태준 사장에 대해서 알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서.”
민준이 정팔에게 눈길을 준다. 녹취 준비는 끝나 있었다.
“그럼, 시작할까요?”
***
민준이 알고 있던 대로, 장태준과 김연주가 처음 만난 것은 회사가 막 창립된 10년 전이었다.
장태준 사장은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사업 감각, 천재적인 아이디어로 작은 회사를 10년 만에 지금 규모로 키워냈다. 폭발적으로 확장한 만큼 초반에는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바빴다. 그때도 지금처럼 미혼이었던 둘은 하루 종일 붙어 다녔고, 밥도 같이 먹었으며, 사적인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고, 종국에는 가끔씩 잠도 같이 자는 사이가 되었다.
애매한 관계였다. 둘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은 없었다. 단지, 김연주는 장태준에게 그녀 말고 다른 여자가 없다는 것은 알았다. 그럴 시간도 없는 스케쥴이었으니까. 김연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입에 올린 적은 없었지만 김연주는 그 관계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장태준이 어느 날 이상한 소리를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내 말 오해 말고 들어줘.’
그렇게 시작된 말은, 도저히 오해할 수밖에 없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나, 얼마 뒤에 여길 떠나야 할 것 같아. 꽤 먼 곳으로 가야할 거야.’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었다. 그 고생을 해서 회사를 이렇게 키워 놓고는 떠난다고?
대체 어느 나라로 가려는 거냐고 물었지만 장태준은 확답을 피했다.
‘그러니까, 너도 이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게 좋을 거야.’
10년 가까이 일과 사생활 양면에서 함께한 남자는 정확하게 언제 떠날 것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 가야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 무엇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김연주는 화가 났지만 ‘그럼 여기에서 끝내자’고 딱 부러지게 말하지 못했다. 그랬다가는 돌이킬 수 없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대신, 평소 갈 일이 없던 바에 혼자 가서 미친 듯이 술을 퍼부었다. 그런 그녀에게 한 사람이 다가왔다. 온 몸에 문신과 피어싱이 가득한 젊은 여자였다.
자신에게 그런 성향도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마흔이 넘어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스스로를 ‘에델’이라고 소개한 여자는 몇 번의 잠자리가 이어진 뒤 자기가 드래곤이라고 밝혔다.
김연주는 한동안 에델과 장태준, 양쪽과 관계를 동시에 유지했다. 다른 종족과의 연애는 꽤나 스릴이 있었고, 장태준과의 만남은 끝이 예고되자 더욱 애달픈 한편··· 오랜 세월 만난 상대 특유의 안정감이 있었다.
‘애초에 다른 사람을 만나보라고 한 건, 태준씨가 먼저 한 말이야. 난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이라고.’
물론 동시에 둘을 한꺼번에 만나라는 말은 한 적 없었지만, 자기합리화는 달콤했다.
‘뭐라구요? 제가··· 뭐요?’
외도를 시작하고 몇 달 뒤, 김연주는 몸의 이상을 발견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장태준의 아이를 가진 것이 아닐까 달려간 산부인과에서 의외의 말을 들었다.
‘아마 환자분께는 낯선 개념일 겁니다.’
ISP 발현.
그것은 인지 너머의 어떤 존재가 그녀에게 건네는 권고처럼 들렸다. 이미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는 충분히 했다고. 그만 이 상황을 끝내라고.
직감인지 예감인지 모를 것에 이끌려, 그 날 김연주는 장태준에게 말했다.
당시의 장태준 역시 티는 내지 않았지만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그것을 무시했다.
‘나, 오늘 병원 갔다 왔어요. 제가 ISP 발현자래요. 종족은, 드래곤인 것 같아요.’
이것은 우회적인 외도의 고백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장태준은 그 말을 듣고도 전혀 놀란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너무도 담담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아, 그랬나?’
그리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장태준은 그녀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말을 꺼냈다.
‘그럼, 내가 부탁 하나 해도 되겠어?’
그리고 이어진 말을 들었을 때, 그녀가 느꼈던 복잡한 감정을 김연주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허탈함, 분노, 어처구니가 없는 탈진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약간의 희망.
장태준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혹시 괜찮다면··· 피를 좀 얻을 수 있을까?’
***
김연주가 장태준의 말을 흉내내며 따라한 순간, 민준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