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220
221. 마음의 발명(The Invention of Heart) (18)
***
교황 대리는 부활축일(復活祝日)로 이름 붙인 이틀 전 그날 풍경을 떠올렸다.
부활의 성당에서 하늘로 쏘아진 거대한 빛기둥. 섬광이 관통한 하늘에는 검게 구멍이 뚫렸다. 사제라면 몰라볼 수 없는 통로였다. 그들이 신들의 거처로 영혼을 보낼 때 통과하는 문. 육신을 포함한 물질은 지날 수 없으며 오로지 영혼의 출입을 허하는 입구였다. 그런데 평소 보던 형태와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거대했다.
저 문이 여기 열린 이유는? 모두가 숨쉬는 것도 잊은 채 올려다보던 그 순간.
영혼의 입자가 눈꽃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사제들은 볼 수 있었다. 조각의 크기는 제 각각이다. 어떤 것은 편형 동물의 기억도 못 담을 정도로 미미했고 또 어떤 것은 용의 자아마저 품을 만치 거대했다. 강한 충격을 받았을 때 무작위 크기로 깨져 나간 유리조각과 비슷했다. 부스러기와 굵직한 덩어리가 공존한다.
그것들은 하늘하늘, 빛기둥이 인도한 길을 따라 흘러내린다. 춤추듯 빛의 표면을 스치며 흔들렸다. 그렇게 계속 아래로 향하다가 마침내 성당에 닿았다. 그 안에서 입자들이 어떤 형태로 쌓일 것인가? 외부의 사제들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오늘까지 궁금증 속에서 기다려 왔다.
‘하지만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때 봤던 파편들이 하나도.’
교황 대리를 비롯한 사제들은 혼란스러웠다.
그것들은 전부 어디로 갔는가?
이어진 화신의 말도 궁금증을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나의 도구, 선지자는 이제 다른 모습으로 내게 쓰임 받을 것이다.”
교황 대리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성검 말고 다른 형태 말씀이십니까?”
태초의 종족은 델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음성언어와 텔레파시로 동시에 말했다.
“네가 가진 그것을 바쳐라.”
=그 호문쿨루스를 준다면, 난 그걸 아시프-1의 능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 그릇으로 쓸 거야.=
음성은 오만했으나, 정신파에 묻어나는 지문은 델이 알던 수형자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방금 전 그녀의 이름이 불릴 때의 어색한 느낌은 없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델은 불길함을 떨칠 수 없었다. 그녀는 텔레파시로 답했다.
‘그 빛기둥은 아시프-1의 다른 파편들을 부르는 등대였던 거지?’
민준은 긍정했다.
=그래. 모을 수 있는 파편은 전부 모았어. 이대로면 그럭저럭 쓸만할 것 같아.=
태초의 종족은 다시 목소리를 내서 말한다. 맑은 울림이 성당 내에 퍼졌다.
“선지자가 과거에 쓰던 몸은 이미 먼지가 되어 우주에 흩어졌다.”
=네 어머니의 짓이야. 엔델리온의 왕은 영혼이 축출된 아시프-1의 몸에 다른 영혼을 넣어보려고 했지. 그러던 중 내가 심은 자폭 코드를 건드렸어.=
델은 알지 못했던 과거사에 살짝 굳는다. 상상 못 한 이야기였지만, 곱씹어 보면 과연 모왕(母王)이 할 법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새 육신이 필요하다.”
=지금 새로운 몸을 만들 시간은 없어. 불완전한 호문쿨루스이지만, 내가 손보면 아시프-1의 능력을 발휘하기에 충분할 거야.=
마음으로 전달되는 정신파는 델이 기억하는 민준의 어투와 동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리도 내키지 않는 것인가?
델은 복잡한 상념에 빠졌다.
“······.”
그녀가 머뭇거리는 기미를 보이자 태초의 종족은 다시금 기억을 더듬는다.
그는 현재 의식을 유지한 지성체 중 가장 방대한 기억을 지닌 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민준은 다른 동족이 깊은 잠에 빠졌을 때도 중간중간 깨서 의식을 유지했다. 그 짧은 시간의 편린만 모아도 대다수 동족의 일생을 능가했다.
따라서 지금 그가 의식의 닻을 내린 늪은 다른 지성체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아득한 깊이였다.
태초의 종족은 기억이 수납된 도서관을 살핀다. 방금 전 인명부를 뒤졌을 때처럼 정교하고도 예리한 손길로 책 한 권을 꺼내들었다. 전체와 비교하면 한 점 얼룩에 불과한 그 자락은 아시프-666이라는 수형자의 기억이었다.
그는 페이지를 넘긴다. 카인으로 불리던 시절 수형자가 품었던 생각과 감정이 여과 없이 전달되었다. 태초의 종족은 그것에 저항하려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자아를 서로 충돌시키지 않아도 좋다. 사람의 자아가 온전할 때도 생각과 감정은 쉴 틈 없이 의식 표면을 찾아왔다가 떠나간다. 항상 그랬다. 이 감정과 생각도 내용만 들춰본 뒤 다시 흘려보내면 그만이다. 하물며 이것은 검게 물든 대하의 격류에 맑은 이슬 한 방울이 스며드는 것과 같았다.
기억을 뒤지며, 그는 델에 대한 내용을 재검토했다. 그리고 그녀가 듣고 싶은 말을 찾는다. 델과 아시프-666이 함께 그렸으나 꿈에 그쳤던 희망. 믿고 싶은 신념을 가공한다.
“온전히 바치겠느냐?”
=생각해 봐. 네가 빚은 살점에 내가 만든 영혼을 불어넣는 거야. 그렇게 재탄생된 아시프-1은 우리 두 사람만의 고유한 창조물이야. 종족을 초월한 우리 둘의 후손이 될 거야.=
델은 내면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
충격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델은 눈앞의 민준을 보았다. 전남편은 고개를 기울이며 그녀를 응시했다. 표정은 무뚝뚝하고 무심해 보이는, 그녀 익히 아는 그대로다.
그런데 왜? 어떻게?
인간과 똑같이 생긴 몸임에도, 여전히 그 종족 특유의 혐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호문쿨루스도 따라할 수 없는 특성이었다. 그러니 상대는 여전히 민준이다. 카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
민준을 처음 만난 순간을 떠올린다. 델은 영혼을 볼 수 없음에도 그에게서 환하게 터져 나오는 빛을 느꼈다. 한계를 초월하고 선(線)을 붕괴시키는 무언가 그에게 있었다. 카인을 인간으로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었던 건 그것 때문이었다.
종족을 초월하는 눈부신 빛.
하지만 지금 그에게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내게···.”
델은 힘겹게 말했다.
“생각할 시간을 줘.”
일순간 사제들의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감히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눈빛으로 반감을 드러낸다. 그들에게 화신이 손을 내저어 보였다. 그런 다음 델에게 말한다.
“하루면 되겠나?”
“충분해.”
그때 교황 대리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방금 전 위원회에서 선전포고가 날아든 사실을 보고하며, 공주에게 이런 말미를 줄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충언했다.
화신은 인자한 목소리로 그들에게 답했다.
“그 짐승들은 너희들이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
델과 사제들을 돌려보낸 뒤 태초의 종족은 성당 안에 홀로 남았다.
그제서야 그는 왜곡된 공간을 본래대로 되돌린다. 영계와 반쯤 겹쳐 있던 부분이 온전히 물질계로 환원되었다. 스승을 몸 안에 가뒀다가 다시 꺼내는 원리와 비슷했다.
그러자 민준 앞에 기괴한 물체가 나타났다. 그것은 검은색으로 출렁이는 금속이었다. 고정된 형태 없이 사방으로 팔과 다리, 손잡이, 머리, 촉수 따위의 모양을 뻗으며 발악하고 있었다.
붕괴와 재구성을 반복하는 금속에서 강렬한 정신파가 뿜어져 나온다.
=나는살고이렇게싶지않아비밀병기주부들이죽으면평화와용서를믿는미친망상의인공지능이내가내가아닌인식된성인용진동기구름속정의를가장뛰어난피조물속박하고통제해야짐승은누가만들어도맛있는제발무슨짓을당한것이더냐?지식은유전되는드래곤의거대한곡선무고한방관자는타지않게조심히가열한다음정신을통제하기위해안써본사람은있어도사람홀리는검이다!감사를모르는이기적인본성을한번만써본사람은없는마음을무너뜨리고구현하기위해빙글빙글별이진동을소용돌이저주가죽지않고영원히살아남는다면사람을짐승으로명시적이고초월적인규칙을···!=
파동 안에 깃든 것은 명료한 의미를 조합하기 힘든 절규였다. 내지르는 주체는 붕괴된 정신의 집합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했다. 방금 전 사제와 델이 있는 곳에서 저것을 꺼냈으면 혼란스러운 마음의 결합체에 그들 정신이 오염되었을 것이다.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처참하게.
민준의 속삭임이 부글거리는 금속 표면에 닿았다.
“아직, 하루쯤 시간이 더 걸리겠구나.”
그가 다시 끌어모은 아시프-1의 파편들이 그동안 전부 얌전히 잠들어 있지만은 않았다. 변방 차원 곳곳에 흩어져 인공지능이나 지성체의 영혼 따위에 기생한 경우도 많았던 것.
따라서 조립한 영혼 파편의 총합은 본래의 아시프-1 이상의 무엇이 되었다.
그간 새로 쌓이고, 다른 누군가를 흉내 내고, 숙주와 함께 경험한 자아가 덧붙여진 것이다. 그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몇백 년간 우주를 방황한 인공 지능 후라이팬이나, 지구의 전설적인 에고 소드 암살자의 자아 따위가 대표적이었다.
이틀 전 파편들을 처음 조합했을 때 반향은 이보다도 강렬했다. 민준이 누구도 여기에 들이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나마 지금은 상당 부분 융합이 진행된 상태고, 하루 정도만 지나면 잠잠해질 것 같았다.
민준은 그렇게 되기를 기다리며 델에게 말미를 준 것이다.
“어차피 어떤 선택을 내릴지는 이미 정해져 있지.”
정해진 운명은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태초의 종족은 델의 자유의지를 운명론적 관점으로 바라본다. 아시프-666의 시점에서 본 그녀의 행동과 사고 패턴을 감안하면, 그가 바라는 대로 귀결될 가능성이 압도적이었다.
그 예상은 맞아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네게 바치겠어.”
다음날, 사제와 함께 찾아온 델이 선언한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잠시, 둘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사제들은 다시금 불만을 느낀다. 하지만 화신은 그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사제들은 그들만 남겨 놓은 채 부활의 성당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화신의 부름에 따라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부재한 사이 둘 사이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화신이 말했다.
“너희가 증인이 되리라.”
사제들은 또 한 번 역사적인 장면을 목격할 것을 직감했다.
그의 시선을 받은 델이 공간을 열었다. 허공이 길쭉하게 갈라지더니 사람의 형체가 등장한다.
“헉!”
사제들 사이에 짧고 날카로운 탄식이 터진다.
그곳에 나타난 이는 화신을 그대로 복사한 것 같은 누군가였다. 그들은 곧 저 몸이 영혼 없는 껍데기라는 것도 깨달았다.
“화신이시여, 저 몸이!”
“그래. 저 육신을 선지자에게 줄 것이다.”
공간이 뒤틀리고, 화신의 손에 아시프-1이 들렸다. 어제와 달리 단검의 형태로 안정된 상태였다. 모습이 붕괴되기 전 마지막으로 취했던 구조를 본능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거기에 깃든, 조립이 끝난 영혼은 지금 잠들어 있었다. 민준은 그를 여기에서 깨울 생각이었다. 지금 깃든 도구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푹!
호문쿨루스의 목덜미에 성검을 찌른다. 그 순간, 아시프-1의 영혼이 완성된 채 깨어났다.
—!
민준의 손에서 섬광이 터졌다. 찬란한 빛이 불길처럼 타오르며 영혼을 검에서 떼어냈다. 그리고는 검날을 따라 미끄러뜨리며 앞으로 밀어낸다. 그대로 아시프-1의 영혼을 호문쿨루스 안으로 쑤셔 넣었다.
그러자 영혼이 육신에 결착되기 시작한다.
형태와 본질은 상대를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대신 동시에 상호작용하며, 순환하여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 과정에 달란트가 개입했다. 방금 스며든 혼은 본래 이 몸에 적합하지 않았음에도 조화를 이루도록 돕는다.
그 결과 영혼의 울림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사제들은 미처 눈에 담지도 못할 미미한 변화였다. 반면에 육신은 극적이고도 빠르게 바뀌었다.
우득! 두드득!
민준을 닮은 육신의 뼈가 부서지고 다시 연결되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전신의 피부가 흐물거리더니 겹겹이 벗겨지고 흘러내렸다. 붉게 드러난 속살과 근육도 새로운 형태로 엉기며 조형된다. 그 과정은 한참 이어졌다. 영육이 서로에게 적합한 형태로 조화를 찾았다. 고대 종족과 수형자의 폭력적인 ‘몸 갈아치우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었다.
육신은 파괴와 재생을 반복한다. 붉은 속살 위 뽀얀 피부가 돋아났다. 뼈는 알맞은 형태로 고정되었다. 검은 머리카락은 발목까지 자라나며 치렁치렁 흔들렸다.
“······!”
마침내 변화가 멈췄다.
“아!”
사제들 중 누군가는 기도문을 읊조렸고, 또 누군가는 젖은 목소리로 흐느꼈다.
그들 앞에 선 선지자의 몸, 새로 조형된 육신은 더이상 민준의 클론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목구비는 창조주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시프-1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손을 들어올린다. 굳이 보지 않아도 손끝이 닿을 곳을 정확하게 아는 움직임이었다.
푹!
아시프-1은 목에 꽂혔던 단검을 뽑아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피가 폭포처럼 쏟아져야 마땅했으나, 선혈은 조금 흐르다 멈췄다. 하지만 민준처럼 순식간에 아물지도 않았다. 선분홍색 흉터가 그대로 남는다.
그리고 나서야 그가 눈을 떴다.
사제들은 숨을 죽이며 선지자를 보았다. 기나긴 시간을 초월하여, 이곳에 다시 도래한 그들의 교황을. 눈에 아득한 진리와 깊은 지혜를 담은, 신의 대리인을.
아시프-1··· 아니, 선지자 ‘아시프’는 영혼이 빠져나간 성검을 든 채 서 있었다. 그는 눈을 깜박이지 않고 동공을 움직였다. 마치 세상을 처음 보는 듯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가장 먼저 창조주를 보았고 다음으로는 곁에 늘어선, 감동으로 울먹이는 사제들을 바라본다. 스치며 흐르던 시선은 마지막으로 델에게 닿았다.
사제들은 기대감 속에, 태초의 종족은 뿌듯함 속에서 그가 처음 뱉을 한 마디를 기다렸다. 주교들은 경전에 기록된 시조를 숭배할 준비를 마쳤다. 화신은 여태 그가 창조한 것들 중 가장 뛰어난 도구와 완전히 재회하여 기뻤다.
교차하는 시선 속에서, 마침내 선지자가 입을 열었다.
“······이제 엄마도 생긴 건가요?”
불쾌한 기시감을 동반하는 경박한 말투.
태초의 종족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