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227
228. 마음의 발명(The Invention of Heart) (25)
***
황금 비늘의 해츨링이 어머니에게 묻는다.
레어 안에 울리는 맑은 목소리.
“어머니, 왜 저 사람들은 변신을 풀지 않아요? 단 한 번도?”
모친이 미소지었다.
아들은 근래 방 바깥으로 드나들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그래 봤자 활동 범위는 레어 안으로 한정되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흥에 겨워 구석구석 탐험하고 다녔다.
그렇게 며칠 보다 보니 이상한 점이 눈에 띈 모양이다. 이 레어에서 일하는, 부모의 권속들 말이다.
저들은 왜 폴리모프를 해제하지 않을까?
모친이 그런 오해를 풀어주었다.
“저들은 지금 변신한 상태가 아니란다. 원래 저런 몸이야.”
“어? 왜요?”
“저 권속들은 드래곤이 아니라 엘프니까.”
훗날 로드가 될 해츨링은 부화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당시 알껍질 너머로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세상에는 드래곤 말고도 다양한 종족들이 살아간다고 했다. 엘프도 그중 하나라고.
하지만 그 설명이 의문을 다 해소하진 못한 것 같다.
“엘프라도 드래곤으로 변신하면 되잖아요. 그럼 여기서 지내기 더 편할 텐데.”
“용은 엘프로 변신할 수 있지만 엘프는 용으로 변신 못해.”
“왜요?”
“그런 거대한 몸을 유지하기에는 마력이 부족하든.”
“왜요?”
“엘프에게는 드래곤 하트가 없어. 그러니 평생을 노력해도 구현할 수 있는 마법 규모에 한계가 있지.”
“왜요?”
“드래곤 하트는 오직 용에게만 허락되었기 때문이란다.”
“왜요?”
둘의 대화를 듣던 젠킨슨의 정신은, 해츨링의 몸 속에서 혀를 찼다.
‘미치겠다. 오늘도 또 시작이군.’
육아 과정에서 피할 수 없다는, 이른바 ‘왜요 지옥’이다.
자유로이 떠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뒤 로드의 질문은 그칠 줄을 몰랐다. 자신도 어렸을 때 이 정도였는지 젠킨슨이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짚어보게 될 정도로.
오늘은 용이 다른 종족에 비해 유별나게 강한 이유에 꽂힌 모양이다.
이런 질문에 응할 때 대부분의 부모들은 한 마디로 퉁 쳐버린다.
– 왜냐면, 용은 위대하니까.
그는 로드의 부모도 비슷하게 대꾸하리라 예상했다.
“왜냐면, 우리만 그렇게 진화했기 때문이지.”
‘음?’
젠킨슨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벌써부터 그런 개념을 가르쳐? 조기 교육이 지나치지 않나?
“왜요? 왜 드래곤만 특별해요? 왜 우리만 이렇게 강해요?”
“이유 같은 건 없어. 우연이 겹친 결과야. 우리는 무작위의 확률이 만든 길을 따라, 다른 종족보다 훨씬 강한 몸을 지니고, 월등하게 똑똑한 두뇌를 얻고, 다른 종족에서는 비슷한 개념도 찾아볼 수 없는 심장을 가지게 된 거지.”
역시나 로드는 그 말까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해츨링에게 무작위 확률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시킬까?
모친은 레어의 한쪽 구석을 보았다.
휙!
방 모서리에 고인 어둠에서 오리할콘으로 만든 장난감 큐브 세 개가 날아왔다. 해츨링의 이갈이를 대비하여 선물로 받은 물건이다. 잇몸이 간질간질할 때마다 깨물고 놀 수 있도록.
아직은 그런 시기가 오지 않았기에 은색 표면은 잇자국 하나 없이 반질반질하고 깨끗했다.
“던져 보렴?”
해츨링은 시키는 대로 했다. 레어 바닥에 은빛 직육면체 세 개가 무작위 분포를 그리며 구른다.
권유에 따라 로드는 그 일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던질 때마다 흐트러지는 모양이 달라지지?”
“네.”
“이런 모양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던졌니?”
“아니요, 그냥 던졌어요.”
“이런 게 우연이야. 그냥 던지다 보면 이렇게 아무 의미도 없는 모양이 나오지. 그런데··· 한 번만 더 던져 보렴.”
로드가 마지막으로 장난감을 던졌을 때 모친이 개입했다.
아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슬그머니.
우웅!
마력 파동이 장난감을 감싸고, 땅으로 떨어진 세 개의 큐브는 각각 꼭지점 하나씩을 맡아 완벽한 정삼각형 구도로 배열되었다.
“무한에 가까운 횟수를 던지다 보면 이런 경우도 생기지 않겠니? 흔하지는 않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야. 누가 이렇게 되지 못하게 방해하지 않는 한 말이야. 물론 결과물은 희박하고도 특별하지. 앞서 던진 모양과 한 눈에 구별이 될 만큼.”
“···끄응.”
“드래곤은 이렇게 태어난 거야. 누군가의 의도가 개입된 게 아니야. 그냥 우연히 그렇게, 특별한 존재가 된 거야.”
“하지만.”
드래곤 로드가 처음으로 모친의 말에 반기를 들었다.
“지금 이건, 어머니가 ‘만진’ 거잖아요.”
“······?!”
“이건 우연이 아니잖아요.”
성룡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아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큐브를 슬쩍 건드렸는데, 감각이 어찌나 예민한지 바로 알아차린 모양이다.
어머니는 들뜬다. 우리 애, 혹시 천재가 아닐까?
그 기쁨을 숨기면서 설명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저걸 수백억, 수천억 번 던질 수는 없으니 이해하기 쉽게 보여준 거란다. 정말 그 정도로 많이 던지다 보면 저런 모양이 우연히 나올 수 있겠지. 드래곤도 그렇게 우연히 진화한 거야. 지금 내가 한 것처럼 ‘누가 만져서’ 생긴 결과물이 아니라.”
하지만 로드는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표정이었다.
껍질 속에서 들은 이야기를 생각해도, 그리고 레어 안에서 본 권속들 생김새를 고려해도 드래곤은 다른 종족에 비해 너무도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드래곤이 특별하다는 이야기는 이미 귓구멍에 비늘이 덮이도록 들었다.
그런데, 왜 하필 드래곤만 특별할까?
“우연이요?”
로드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우리가 위대한 게 단지, 어쩌다가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라구요?”
그 말에는 드래곤 스스로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한 부분은 하나도 없다는 것처럼 들렸다.
말투에 깃든 의문을 파악하고, 모친이 설명했다.
“다만 우리가 남들보다 빠르게 진화한 건 사실인 것 같더구나. 드래곤도 옛날에는 저 엘프만큼 몸집이 작았다고 해. 내 생각에는 드래곤 하트가 영향을 끼쳤을 거야. 세대를 이어갈수록 더 강한 힘을 품게 된 심장에 맞춰 몸도 바뀌어 간 거지.”
“왜요?”
“우리는 드래곤 하트를 대를 이어 계승하니까.”
“으음. 머리가 아파요. 잘 모르겠어요.”
“그건 아직 생각하지 않아도 좋아. 네가 우리의 심장을 계승하는 날은··· 정말 멀고 먼 미래일 테니.”
어쩌다보니 젠킨슨도 그 대화를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드래곤 하트 덕분에 빠르게 진화했다라. 재미있는 가설이군.’
곱씹어보니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세상에 어떤 종족도 드래곤 같은 방식으로 힘을 계승하지 않는다.
본래 생물이 죽고 남기는 시신은, 그가 평생 포식한 에너지의 총합과 비교할 수 없는 초라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 필사적으로 용도를 찾아 봤자 식량, 거름, 땔감 따위가 고작이다.
또한 생물은 끊임없이 자연계 엔트로피 증가에 기여하는 식으로 생존한다. 그들이 먹어서 섭취한 것들은 열과 힘에 담겨, 더욱 무질서한 방향으로 흐트러진다. 몸 속에 축적되는 양에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드래곤만 예외다.
그들은 평생 흡수한 에너지 일부를 드래곤 하트에 차곡차곡 저장한다. 심장이라는 한정된 영역 내에서 엔트로피는 한계를 모르고 감소한다. 에너지는 무질서하게 흐트러지는 대신 결정 속에 정교하게 짜맞춰 배치되고, 응축된다. 심지어 사후에는 후대에 전승되기까지.
세상에 용 말고 이런 생물은 없다. 죽고 나서도 엔트로피의 증가라는 우주 법칙에 이토록 효율적으로 저항하는 존재는 달리 찾기 힘들다.
자연계에 드래곤 하트 말고 이런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 기이한 건, 이렇게 축적된 마나를 계승자가 100% 활용할 수 없다는 거지.’
이론적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두 고룡의 드래곤 하트를 독자(獨子)가 상속받았다면 그는 단번에 둘을 능가하는 괴물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심장을 흡수한 드래곤은 마나와 그걸 담은 그릇을 완전히 활용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젊은 용이 그걸 상속할 경우 천 살이나 이천 살 정도 먹은 고룡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있어도, 죽기 직전의 천수를 누린 고룡 수준으로 단번에 도약할 수는 없다는 뜻.
그들은 그저 물려 받은 마나 일부만 뽑아 쓰고 그릇을 한정적으로 늘린 채 생(生)을 살아낼 뿐이다. 그리고 죽으면 평생 저장한 마나를 또 심장에 담아 계승한다.
세대가 바뀔수록, 계승이 이어질수록 드래곤 하트의 마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지만 정작 심장의 주인은, 살아있는 드래곤들은 그걸 완전히 활용하지 못한다.
‘왜 이런 식으로 진화해야 했을까?’
정작 몸 주인은 다 쓰지도 못할 막대한 에너지를 축적할 이유가 무엇인가?
‘지극히 비효율적이야.’
모순을 때문에 의아해하는 젠킨슨과 달리, 해츨링의 생각은 아직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다. 그는 고룡의 정신과 다른 부분에 집중한다. 로드의 걱정은 젠킨슨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내가 드래곤 하트를 계승한다고? 그건, 아버지 어머니가 죽은 다음의 일이잖아.’
그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해츨링은 자신의 일부가 상실되는 느낌을 받았다.
갑자기 ‘왜요 폭격’을 멈추고 입을 다문 아이를 본 모친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한 듯 웃었다. 잔잔하고도 따스한 미소였다.
그녀는 날개로 로드를 부드럽게 덮었다. 어머니의 피막에 얼굴을 비비며 해츨링은 기원했다. 자신의 부모가 기나긴 시간동안, 자신이 이 레어에서 독립하고 나서도 오랫동안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기를.
자연이 허락한 드래곤의 긴 수명이 축복을 온전히 발휘하기를.
‘······.’
그 강렬한 소망에 강제적으로 공감하던 젠킨슨은,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는 걸 느꼈다.
‘그랬지. 로드의 부모는 둘 다 전쟁 때···.’
그 사실을 깨우치고 깊은 근심에 빠진다.
만약 그 시점의 시간까지 겪게 된다면. 또한 그 시간대까지의 이어지는 기나긴 여정을 젠킨슨이 고스란히 체험한다면. 지금처럼 현실 같은 시간 감각이, 이런 속도가 이어진다면.
젠킨슨은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과연, ‘나’로 계속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젠킨슨은 가슴 한켠이 뻐근해졌다. 해츨링의 걱정과 슬픔이 필터 없이 그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로드의 부모가 이미 사망한 역사적 사실을 앎에도, 한켠으로는 그들이 죽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혼란스러운 감정의 소용돌이 앞에서, 고룡은 위기감을 느꼈다.
‘이건··· 정말로 위험하다!’
고룡은 자문한다.
이 꿈은 과연, 몇 년 동안 지속될 것인가?
***
황금색 예복을 입은 남자가, 어머니에게 묻는다.
찢어지는 바람결 사이로 울리는 경쾌한 음성.
“어머니는 제가 썩 마음에 들지 않으시나 봅니다?”
그렇게 질문한 이는 하늘을 가로지르며 비행 중인 교황이었다.
아시프-1의 질문에 델은 기습을 당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인간으로 변신한 채 교황과 나란히 날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 파동이 느껴집니다. 아주 복잡한 감정이요.”
여전히, 그녀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부활한 아시프-1은 접촉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상대의 정신 세계를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는 것 같다.
과연 위원회에서 우주 최악의 범죄자로 선언할 만한 이능이다.
“···카인이 한 말 때문이야.”
“아버지가 왜요?”
“널 보면 그때 그가 한 이야기가 생각나.”
델은 아직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민준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자신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아시프-1의 화법에 말이다.
그녀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내가 아는 카인이라면, 아무리 날 설득하려는 이유로라도 절대 그런 말 안 했을 거야.”
“왜요?”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델은 전남편의 말을 복기했다.
– 생각해 봐. 네가 빚은 살점에 내가 만든 영혼을 불어넣는 거야. 그렇게 재탄생된 아시프-1은 우리 두 사람만의 고유한 창조물이야. 종족을 초월한 우리 둘의 후손이 될 거야.
교황은 허공에 파도치는 긴 머리칼 사이로 의아한 눈빛을 흘렸다.
“왜요?”
“내가 바라는 걸 이용하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그런 말까지 들먹이는 걸, 내가 아는 카인이라면 수치스럽게 생각했을 거야.”
교황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한다.
“······하긴, 수치심 또한 ‘사람’의 것이긴 하죠. 자, 도착했습니다. 저기입니다.”
아시프-1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린 델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곳에는 백 척이 넘는 우주 모함과, 그것들에 구속된 어린 엔델리온들이 있었다.
전투가 끝나고 나서 전함을 도심에서 떨어진 평야에 내려놓게 한 뒤, 아시프-1은 그들을 잠재웠다. 그 상태로 교인들을 보내 고대 종족 포로들을 제압하고 감옥으로 이송시켰다.
델과 아시프-1이 지면에 내려섰다.
“깨울까요?”
“아니, 그 전에 저 흉측한 구속구부터 풀어주자.”
전투 중에 아시프-1이 인도한 대로 휘고 부서지기도 했지만, 아직 그들의 몸과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부분도 많았다.
파앗!
델은 몸을 다시 허공에 띄운다. 섬광이 번쩍인 뒤, 지면의 아시프-1은 사방을 가리는 그림자를 보았다.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태양과 하늘을 등진 거대 생물이 떠 있었다.
엔델리온의 본체로 돌아간 델은 아래로 촉수를 뻗었다. 그와 동시에 강력한 힘이 공기 속에 퍼졌다.
끼이익! 철컹!
콰르르!
염동력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어린 엔델리온들을 우주 모함에서 분리시켰다. 민준과 아시프-1은 전함을 이 상태로 교인들에게 넘길 계획이었다.
둥실!
그녀의 촉수짓을 따라 염동력이 물결친다. 이번에는 구속구를 부술 때보다 부드러운 파동이었다. 델의 본체와 비교하여 무척 왜소한, 고작 직경 2~3km 남짓의 촉수 생물들이 힘을 잃고 늘어지며 떠올랐다.
스륵!
델의 칠흑 같은 눈동자가 움직였다. 눈길을 받은 아시프-1이 정신파를 울렸다.
그러자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났다.
“어··· 여기가 어디?”
그들 마지막 기억은 차가운 대기권 밖에서 몸이 배에 묶이는 장면이었다.
구속구에서 뻗어 나온 수천 개의 드릴, 그것이 살점에 파고 들던 끔찍한 고통과 함께 의식이 끊겼었다.
그 뒤로 차원을 뛰어 넘었던 것도, 몸에 묶인 배를 이리 저리 끌고 날며 폭발시킨 것도, 머릿속 음성에 따라 착륙한 것도 기억에 없었다.
난폭하게 잘려 나간 공백을 뛰어 넘어 정신을 차리니 그들 앞에는 어른 엔델리온이 한 명 나타나 있었다. 아이들은 상황을 가늠할 수 없는 혼란에 빠진다.
잠시 후, 두려움에 질린 목소리로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주저하며, 아주 힘겹게.
양육자들의 의도에 따라, ‘몸갈이’ 개념을 교육 못 받은 아이들은 상대의 신체적 특징을 자기들 상식에 맞춰 해석했다.
따라서 아이는 예의를 갖추며 묻는다.
“할머니는··· 누구세요?”
“······.”
델은 잠시 대꾸를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