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39
39. Princess Run (14)
***
칼 후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초빙된 요원이었고, 마법사였으며, 주무기는 20mm 기관포였다.
본래 전차나 헬기에 장착하기 위해 개발되었으나 예외적으로 개인이 휴대할 수 있도록 개량된 이 무기는 트롤 외 종족은 도저히 쓸 수 없는 물건이었다. 무게도 무게지만 발열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기관포 본체보다 훨씬 무거운 탄약 박스를 등에 멘 채, 칼은 언제든 사격할 수 있도록 두 손으로 쥐고 견착을 유지하는 중이다.
주변에는 온통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터미널 옥상에서 열심히 허공을 노려보지만 트롤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곁의 인간 동료도 그 점은 마찬가지였는지 투덜거린다.
“젠장, 지랄 맞게 음산하군. 보이는 것도 없고··· 수비에는 최악의 환경이야.”
전적으로 동감이었다. 피부에 감기는 습기가 섬뜩하기 짝이 없었다. 자꾸 소름이 돋는 것은 날씨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현장 사진 봤나?”
“아니.”
“······이 업계에서 일한 지 꽤 되었지만 그런 것은 처음 봤어.”
그들은 브래들리와 죽은 동료들이 발견된 현장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발견된 것 중 가장 공포스러운 측면은 사진에 찍힐 수 없는 영역에서 나타났다.
“브래들리는 차라리 행운아였어. 나머지는 차마 입에 올릴 수도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고문당하다 죽었다고 하더군.”
둘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현장에 남은 살점과 핏덩어리는 결과물일 뿐, 그렇게 되기 전까지 그들은 생지옥을 겪어야 했다.
“···범인은 역시, 그거겠지?”
대로에서 습격한 곤충 떼는 언데드라고 했다. 더군다나 추격당하는 입장에서 굳이 시간을 들여 고문하다 죽일 이유는 하나 밖에 없다.
트롤이 거칠게 욕을 뱉었다.
“젠장, 흑마법사랑 잘못 엮이면 삼대가 재수 없는데. 그 놈들은 원한을 품으면 지구 끝까지 쫓아다니잖아! 먼저 찾아내서 죽이려고 해도 바퀴벌레처럼 숨어서 골치고.”
“그래도 우리는 괜찮지 않겠어?”
인간 동료가 발 아래를 흘깃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건물 안, 공주 옆에 붙어 있는 이를 암시하며.
그들은 지금 요원들 사이에서 전설로 불리는 자와 함께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민국 요원이 활약할 일이 많다는 것은 외계인 범죄자가 그만큼 많다는 것이고 안보가 취약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따라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거나 영웅시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요원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이름이 있었다.
예민준.
“엘더 드래곤과 같이 작전을 몇 번이나 뛰어 본 요원이라잖아.”
엉덩이 무거운 고룡들이 직접 참가하는 작전은 그만큼 중요하고도 치명적이고 위험하기 마련.
그런 현장에 용이 아닌 종족이 동원되었다는 것은, 물론 드래곤의 보조 역할에 그쳤겠지만 그래도 대단한 일이었다.
칼 후드가 알고 있는 그런 케이스만 해도 이미 다섯 손가락을 가득 채웠다.
위원회 지구대표소 폭탄테러 사건 배후 추적 및 박멸 작전.
하이잭킹 되어 모스크바 터미널에 불법 착륙한 도약선 내 인질 구출 작전.
유럽 인외종족 연쇄 납치 및 학살 사건의 주범이었던 오슬로 학파 소탕 작전.
방콕의 굴(Ghoul) 집단거주지역에서 발생한 돌연변이 감염체 확산 저지 작전.
마지막으로, 결국 신문에서는 한 줄도 보도되지 못하고 몇몇 요원들 사이에서나 쉬쉬하며 전해지는 ‘7.1사태’까지.
칼은 불안감을 억누르려고 애썼다.
“그래, 그 정도 되는 베테랑 요원이면 상대가 누구든 후려칠 수 있는 가락이 있겠지. 그러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으아아아악!”
트롤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동료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기 때문이다.
“뭐야?! 무슨 일이야?”
“누구야?!”
옥상에서 경계를 서던 다른 요원들이 급하게 달려왔다. 무릎을 꿇은 동료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절규를 계속 뱉었다. 그는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걸 함께 목격한 모두가 경악했다.
“아니?!”
손가락 끝부터 크고 작은 수포가 부풀더니 터지면서 살을 녹였다. 묽은 밀가루 반죽처럼 살점이 뚝뚝, 방울지며 아래로 흘렀다.
요원은 산채로 용해되고 있었다.
“크윽!”
그걸 보던 칼 역시 자신의 피부층 밑에 출혈의 흔적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인간처럼 그대로 녹아내리는 대신 염증이 생겼다가 아물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선천적인 회복 능력이 없는 다른 종족들은 순식간에 당했다.
“독이다!”
몇몇이 가까스로 해독 스크롤을 찢었지만 이미 손상된 몸은 회복되지 않았다.
그 때, 인천 공항 담장 쪽에서 총성이 울렸다.
“침입자!”
요원들이 독에 저항할 동안, 평소의 몇배나 되는 인원들이 모여 비상 경계 태세를 유지하던 경비대는 예상치 못한 적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쏴! 쏘라고!”
총알이 비처럼 쏟아졌다. 포탑이 회전하며 사격하는 방향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매달린 자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좀비 떼였다.
수백, 아니 수천? 그 모습을 확인한 지휘관은 이를 악물었다.
대체 어디에서 저만한 수가?
영종도로 이어지는 육로는 철저하게 통제되는 교량 밖에 없다. 하늘에서 날아온 것도 아닐 터. 텔레포트도 저렇게 많이 동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젠장, 바다군!”
그들의 넝마 같은 옷이 썩은 피부에 달싹 붙어 있었다. 바닷물에 푹 젖어 있는 것. 숨을 쉬지 않아도 움직임에 지장 없는 언데드의 강점을 활용한 것이다. 수면에 뜨지 않게 마법 등으로 비중을 높인 다음 얕은 해저를 걸어오도록 유도했으리라.
타타탓!
묵직한 총성과 함께 바닥에 불꽃과 흙이 튀었다. 갈갈이 찢겨 나가는 좀비도 있었지만 사지 한 두 군데가 떨어진 상태에서도 맹렬하게 달려오는 언데드들은 금방 담장까지 접근했다.
크아아아아!
목적 없이 풀어 놓은 움직임이 아니다. 어딘가에 조종하는 술사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오로지 터미널을 향해 달렸다. 베르미 공주가 타고 갈 도약선이 계류된 장소였다.
“요원들에게 연락해! 빨리!”
그의 지시에 따라 통신기를 잡던 경비대원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놓친 통신기에는 뭉개진 살점이 묻어 있었다.
곧, 곳곳에서 사람들이 용해되기 시작했다.
***
“지부장님, 상황 업데이트 드리겠습니다.”
“네, 형제님. 들어오십시오.”
인권연대 한국 지부장 앞에 선 남자는 방금 받은 소식을 전했다.
“용병이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방금 독과 좀비를 풀었다고 합니다.”
“좀비라··· 그 베이스는 오크나 고블린이겠죠?”
“네, 그렇습니다.”
실종되어도 사회가 관심을 두지 않는 종족들. 인권연대의 정의와 철학에도 부합하는 방법이긴 했다. 인외종족을 몰아내기 위해, 살해당한 인외종족을 무기화하여 겨누는 것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지부장은 약간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것으로 되겠습니까? 1급 재해종 언데드로도 실패했는데요. 적들도 한 번 겪어 봤으니 분명 현장에 언데드와 상극인 능력자를 배치했을 터인데.”
“그래서 이번에는 용병이 직접 손을 써서 베르미 공주를 죽일 거라고 합니다.”
독과 좀비는 말 그대로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수단이라는 뜻. 지금으로서는 차분히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화제를 돌려 묻는다.
“오만식 사장은?”
“젠킨슨 컴퍼니 본사에 감금당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곳은 드래곤이 직접 결계를 친 터라··· 저희 역량으로는 뚫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군요. 그쪽은 포기합니다.”
결국 그들에게 있어 오만식은 한 번 쓰고 버리는 패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민국에서 그를 아무리 지독하게 심문해도 꼬리가 안 밟힐 자신이 지부장에게는 있었다.
“아, 그리고 지부장님.”
“네?”
“그 북한산 창고 건 말입니다.”
얼마전 인권연대의 정보조직에서 첩보를 하나 입수했다. 젠킨슨의 제2 레어나 마찬가지인 그곳에 새로 입고된 ‘보물’에 대한 것이었다. 그들의 흥미를 돋운 부분은, 그것에 문제가 생기면 젠킨슨의 정치적 지위가 흔들리기 충분할 정도로 중요한 보물이라는 것.
그 레드 드래곤의 아킬레스 건을 물어 뜯는 것은 인권연대의 오랜 염원 중 하나였다. 권력균형에 공백이 생기고 고룡끼리 치고 박고 싸우면 당연히 그들과 연계된 정치인 및 관료, 기업인들 사이에도 혼란이 생길 것이다. 그들이 사회에 채운 족쇄가 느슨해지는 틈을 노리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도 많았다.
따라서 지부장은 몇 차례 북한산에 인원을 파견했지만, 역시나 고룡의 결계를 뚫는 것은 그들 역량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확인했다. 마지막 시도에서는 꽤나 깊숙한 곳까지 다가갔지만 갑자기 산불이 발생했다. 아마도 침입자를 몰아내기 위한 방어체계의 일부인 것 같았다. 보냈던 이들은 결국 허탕을 치고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지부장님, 사실은 그 산불이 방어 목적으로 소환된 것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남자는 젠킨슨이 그 창고에서 뭔가를 도난당했다는 소문이 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지부장은 그 이야기를 쉽게 믿을 수 없었다.
“아니, 그러면 설마?”
“네, 누군가 그 산불을 내고 고룡의 결계를 뚫었다는 짐작이 가능합니다.”
지부장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의 머릿속에는 두 가지의 의문이 떠올랐다.
하나, 왜 하필 인권연대 형제들이 창고에 접근한 그날 산불이 번지고 도난이 발생했는가?
둘, 정말로 고룡의 결계를 뚫는 데 성공한 집단이 있다면··· 그들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
***
“비서실장님! 지금 당장 슈탄인들 태워서 도약선 출발시켜요!”
“네? 하지만···!”
바깥에서 비명이 들린 순간 민준은 습격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젠장, 무식하니 용감하다고!’
민준은 즉시 위원회를 향해 ‘약식 보고’를 마친 뒤 블레어에게 나머지 말을 쏘아붙였다.
“긴급도약코드!”
비서실장이 화들짝 놀라서 그를 보았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냐는 표정.
“터미널 관리 총책임자가 외계 출타 중이니 누군가에게 맡겨 놓아야 했을 텐데, 당연히 당신 아닙니까?!”
“다··· 당신은 대체?”
베르미 공주의 도약선에 한정하여 아웃바운드 봉쇄를 해제했으므로 지금 당장 지구를 떠나도 차원 장벽에 충돌하여 으스러지는 것은 면할 수 있다.
문제는, 오직 위원회에서만 제작할 수 있고 위원회를 통해서만 구할 수 있는 도약선을 출발시키기 위해서는 코드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보통은 매번 위원회의 도약 승인을 득한 뒤 코드를 받아 입력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그럴 시간이 없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출발지 차원 터미널 총책임자가 자신의 판단 하에 긴급도약을 허가하는 별개의 코드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위원회에서 사후 조사가 들어오므로 함부로 남용할 수는 없지만···. 민준은 생각했다. 어차피 지금 같은 때 쓰라고 만든 물건이 아니겠냐고.
민준은 무전을 통해 나머지 요원에게 지시했다. 현재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인력은 베르미 공주와 수행원들을 도약선까지 안전하게 호위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사이 자신은 다른 일을 할 생각이었다.
지금 이곳에 테러를 가하고 있는 범인을 찾아내서 죽여버린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
급하게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악어가 뭐라고 소리질렀다. 이 방에 슈탄인은 그녀 밖에 없기에, 후라이팬을 제외한 누구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리고 민준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저··· 공주님?”
블레어가 후라이팬을 들고 내밀 때 공주는 작게 뭐라고 중얼거렸다. 혼잣말처럼.
이번에도 그 말을 들은 것은 조리도구 뿐이었다.
“그래. 어차피 우리는··· 곧 다시 만나게 될 테니.”
***
터미널 건물 밖으로 나와 하늘로 날아오른 민준은 곧 이 사태의 원흉을 발견했다.
‘당당하군. 알아서 찾아오라는 듯이!’
그가 바라보는 곳에 누군가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눈에 담자 마자 민준만 읽을 수 있는 언어가 떠올랐다.
– 현상금: 20만 달란트.
민준 정도 되는 장기수형자의 신고와 증언은 위원회가 현상금을 책정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
습격자의 죄목은 두 가지다. 위원회의 자산인 브래들리를 살해한 것과, 위원회와 대한민국 정부가 공동으로 지분투자한 차원 도약 터미널에 테러 행위를 벌인 것.
아마 본인은 꿈에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저지른 행위가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기분 나쁜 새끼, 이번에는 기필코 죽여버린다!’
브래들리의 살해 현장에 남겨진 ‘메시지’를 읽고 민준이 떠올린 용의자는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중 한 명은 금방 머릿속에서 지울 수 있었다.
이유는 세 가지.
첫째로, 만약 범인이 그녀라면 영어로 메시지를 남길 리 없다.
두 사람의 행복했던 시절 기억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그녀라면 전언도 그 시절 쓰던 언어로 남겼을 것이다. 그 집착이 어느 정도냐면···. 민준은 장담했다. 언젠가 재회의 순간이 온다면 상대는 당시 ‘인간’ 육신을 그대로 재현해서 나타날 것이다. 설사 본래의 몸을 돌려받았더라도 일부러 말이다. 내기를 해도 좋았다.
그리고 둘째로, 적은 흑마법을 쓰고 있다. 그것도 그의 기준으로 보면 다소 어설픈 수준으로.
그녀가 기억을 되찾으면서 수형자 시절에는 못 썼던 흑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이건 좀 이상했다. 현장에서 흑마력의 제물로 바쳐진 시신은 민준이 할 때처럼 미이라화 하거나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대신 유기물 형태로 남아있었다. 어설프다. 그녀라면 뭘 건드리든 과했으면 과했지 뭘 모자라게 할 리가 없다. 이런 흔적을 민준 앞에 보이는 것을 그녀는 ‘수치스럽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적은··· 민준이 아니라 브래들리를 먼저 죽였다.
위원회 자산을 손상시키면 현상금이 책정된다. 따라서 행동에 제약이 생기며 민준을 죽이는 일에 방해가 된다. 최종 목적인 ‘민준의 살해’ 이후 시점에 현상금이 책정되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 전에는 최대한 피해야 할 일.
따라서 그는 확신을 가지고 용의자의 정체를 추정하여 위원회에 보고했고 그들은 민준의 증언을 신뢰하여 현상금을 매겼다.
그의 눈 앞에 그 용의자가 서 있었다.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상대는 뺨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그의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 북유럽 억양이 섞인 영어였다.
“드디어, 다시 만나게 되는군. 내가 널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짐작도 하지 못할 거다!”
몇 년 전, 민준은 노르웨이에서 유래한 흑마법사 학파를 몰살에 가깝게 몰아붙인 적이 있다.
당시 추적해야 할 자들 수가 너무도 많았고 유럽 구석 구석에 꼭꼭 숨어 버린 탓에 다수의 엘더 드래곤이 협조하여 몰이사냥을 했지만 우두머리는 결국 놓쳐 버렸다.
한편, 그때 도주한 마스터는 처절한 복수를 예고했지만 그가 원한을 품은 대상은 여덟 명의 엘더 드래곤과 한 명의 쿼터 엘프였다.
따라서 학파의 마스터는 흑마법사 다운 합리적이고도 음습한 계획을 세웠다.
일단, 가장 약한 상대부터 잡아서 죽인다. 엘더 드래곤과 따로 움직이는 상황을 노려서!
“언젠가 이렇게 다시 만나서, 널 내 손으로 갈갈이 찢어버릴 날을 어찌나 간절하게 바라왔는지!”
민준의 앞에 서 있는 자는, 26개국의 정부와 여덟 명의 엘더 드래곤이 뒤를 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검거되지 않은 악명 높은 흑마법사.
동시에, 민준에게 있어서는 옛 동료의 원수였다.
그의 입이 열리고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테오 크리스티안센!”
***
인천공항이 습격을 받기 몇 시간 전.
지구와 가까이에 위치한 어떤 차원의 터미널에 한 여인이 들어섰다.
온 몸을 일체형으로 타이트하게 감싼 배틀슈트는 지구의 양식도, 이곳 차원의 양식도 아니었다. 의복도 의복이지만 워낙 인간이 드문 차원이기에 여인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단발을 단정하게 자른 그녀는 춤을 추는 듯한 경쾌한 발걸음으로 터미널의 직원에게 다가갔다. 들뜬 기분을 억누를 수가 없어 보였다. 인간 기준으로도 이 차원의 원주민 기준으로도 아담한 체격이었기에 카운터 너머 직원은 그녀를 바로 발견하지 못했다.
“저기요.”
부르는 말을 듣고 나서야 고개를 길게 뺀다. 그리고 저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인간을 발견했다.
“아! 죄송해요. 제가 못 봤네요.”
“괜찮아요. 그럴 수 있죠.”
흥얼거리는 듯한 목소리.
“도약 코드 받으러 왔어요. 위원회 허가가 이미 났을 것 같아서.”
그녀가 말한 전세기의 인식번호를 확인한 직원은 잠시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승인은 완료되었고 코드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목적지 차원이 ‘지구’라고 되어있네요?”
차원 이름 옆에는 그녀가 도착할 터미널이 적혀 있었다. ‘대한민국, 인천.’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차원은 위원회에서 제한적 봉쇄령을 내린 상태에요. 들어가는 것은 자유지만 나갈 때는 그렇지가 못해서, 한 번 진입하면 언제까지 갇혀 있어야 할지 기약이 없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
“아, 상관없어요.”
여인은 맑게 웃었다.
같은 말을 다시 한번 반복하면서.
“그런 거, 상관없어요.”
접수원은 인간 표정 읽기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비슷한 종족은 몇 번 보았기에 저것이 기쁨의 표시라고 넘겨 짚었다.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여인은 대꾸 없이 싱글벙글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그 사이 직원은 탑승자 정보를 확인하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명단이 나타내는 내용에 따르면 저 여인은 인간이 아니었다.
‘왜 이 종족이 굳이 인간으로 변신해서 다니는 거지? 상당히 불편할 텐데.’
하지만 그 의문은 금방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다. 차원계에는 실로 다양한 종족과,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취향이 존재한다. 그 모든 것의 이유를 캐내며 궁리하는 것은 시간 낭비였다. 직원은 도약 코드가 저장된 칩을 더듬이에 감아 여인에게 건넸다.
그리고 뒤늦게 생각난 듯 묻는다.
“······아! 타고 가시는 편이 정기선이 아니라 전세편이라 목적지 차원에 콜 사인(call-sign) 등록이 안 되어 있네요. 제가 임의로 넣어 드려도 되기는 하지만 혹시 바라는 이름이 있나요?”
지구의 전산에 등록될 일종의 ‘임시 편명’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여인은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단호하게 답했다.
“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