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148
148
# 작전 Ⅰ
-스텐바이 큐!
부조정실에 있는 프로듀서의 콜에 맞춰 FD가 손짓을 하자 스튜디오에 앉아 있던 미모의 아나운서가 카메라를 바라보면서 멘트를 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의도 전망대의 손현아 아나운서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태일증권 수석 애널리스트인 오세민 씨께서 나오셨습니다.”
고급스러운 스트라이프 정장에 빨간색 넥타이로 포인트를 준 30대 중반의 남자가 살짝 머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오세민입니다.”
“오늘 주식시장에서는 아주 큰 이슈가 있었죠?”
대본에 적힌 대로 손현아 아나운서가 질문을 던지자 오세민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예. 코스피에 상장되어 있는 TC인터내셔널이 상한가를 기록하면서 주가가 크게 상승했습니다.”
“마감 시황을 보면 주당 300원에서 500원으로 훌쩍 뛰었는데,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가 있나요?”
“장 개장과 함께 발표된 공시 때문입니다.”
“어떤 내용이었기에 그렇죠?”
“시에라리온에서 매장량이 큰 다이아몬드 광산 채굴권을 획득했다는 겁니다.”
“다이아몬드라고요?”
시청자들을 집중시키기 위해 손현아 아나운서가 조금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자 오세민이 능숙하게 말을 받았다.
“그렇습니다. 추정 매장량만 무려 4억 1,600만 캐럿에 달하는, 근 10년 내에 발견된 광산 중에 가장 큰 대형 광맥입니다.”
“4억 1,600만 캐럿이라니…… 이야기만 들어서는 잘 상상이 안 가는데요?”
“간단히 돈으로 환산하면 40~50억 달러 정도는 가뿐하게 넘을 겁니다. 물론 확인 매장량은 이것보다 더 적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엄청난 액수인 건 분명하지요.”
“말씀을 들으니까 확 와 닿네요. 그런데 TC인터내셔널이 어떤 회사인데 이런 큰 광산 개발권을 획득하게 된 거죠?”
“지금은 소유권이 바뀌며 계열 분리가 됐지만, 원래는 대기업인 태일그룹에 속한 손자회사였습니다.”
“아, 그렇군요.”
“자원 개발과 탐사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인데, 그동안 별다른 실적을 올리지 못하다가 이번에 대박을 터트린 거지요. 그리고 광산이 있는 시에라리온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되는데요. 아프리카 서부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국가로, 정식 명칭은 시에라리온 공화국입니다. 대표적인 다이아몬드 산출지로 전 세계 생산량의 거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입니다.”
“그럼 광맥이 경제성을 갖추고 실제로 다이아몬드가 채굴될 가능성이 아주 크겠군요.”
“그렇게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정말 대단한 호재가 아닐 수 없는데요. 이후 TC인터내셔널의 주가가 어떻게 될 것으로 보십니까?”
여자 아나운서의 물음에 오세민이 은색 안경테를 손으로 쓰윽 추켜올렸다.
“그동안 TC인터내셔널이 저평가된 것도 있고, 무엇보다 이번에 개발권을 획득한 시에라리온 다이아몬드 광산의 잠재 가치를 감안했을 때…… 주당 5천 원 이상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들은 손현아 아나운서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오세민을 쳐다봤다.
“지금 주가가 500원 대인데 너무 높은 거 아닌가요?”
그러자 오세민이 머리를 가로젓고는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앞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이번에 획득한 다이아몬드 광산의 가치가 수십억 달러에 이릅니다. 이 광산이 정상적으로 개발에 성공해서 채굴이 본격화된다면 TC인터내셔널은 그야말로 황금 알이 낳는 거위가 될 것입니다. 그걸 생각한다면 주당 5천 원도 아주 보수적으로 잡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렇군요. 오세민 애널리스트께서 오늘의 핫 종목인 TC인터내셔널의 목표 주가를 주당 5천 원으로 제시하셨습니다.”
나름 인지도가 있는 주식 전문가가 텔레비전 방송에 나와 노골적으로 매수를 추천하자, 그때까지 긴가민가하던 개미투자자들까지 TC인터내셔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택 거실 소파에 앉아 주식 방송을 보던 김인철은 흡족한 얼굴로 텔레비전을 껐다.
“제법 그럴듯하게 썰을 잘 푸는군.”
그러자 함께 있던 이동철이 얼른 말을 받았다.
“언변이 좋은 데다 미국에서 MBA(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까지 따서 주식 방송을 시청하는 개미들한테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친구입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내일 장이 다시 열리면 매수에 나서는 개미들이 크게 늘어날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저놈한테 얼마나 주기로 했지?”
“착수금 5억에 작업이 끝나면 그만큼을 더 주기로 했습니다.”
“10억이라…….”
“개미들이 몰려들어서 주가를 끌어 올릴 걸 감안하면, 그리 큰 액수는 아닙니다.”
“뭐, 좋아. 돈을 벌려면 투자가 필요한 거니까.”
“맞습니다.”
“괜히 내 밥그릇에 잡놈들이 숟가락을 들이미는 건 짜증 나니까 엉뚱한 짓을 못하도록 감시를 잘해.”
“이미 사람을 붙여 놨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작게 머리를 끄덕인 김인철은 뒤로 등을 기대면서 말했다.
“시장 감시 위원회 반응은 어때?”
시장 감시 위원회는 상장주식 및 선물, 옵션거래에서 매매와 호가 상황에 이상한 움직임이 있으면 그걸 감시하고 조사 분석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임무를 맡은 기구였다.
작전을 다 끝내기도 전에 시장 감시 위원회에서 조사에 나서거나 거래 유의 종목으로 지정된다면 일이 다 어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습니다.”
“그쪽에서 끼어들면 일이 골치 아파지니까 약을 확실하게 쳐놔.”
“예.”
“내일이면 1천 원을 넘어서겠지?”
“방금 나간 방송에 미리 손을 써 둔 기자들의 기사까지 올라가면 상한가로 출발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무난하게 넘어설 겁니다.”
김인철은 탐욕에 가득 찬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정말 돈 벌기 쉬워. 안 그래?”
“그러게 말입니다.”
“바로 앞이 개미지옥인 줄도 모르고 미끼에 홀려 우르르 덤벼드는 꼴이라니…… 정말 멍청하단 말이야. 하긴 이러니까 영원히 밑바닥을 못 벗어나는 거겠지.”
하찮은 버러지를 보는 듯 그의 목소리에 진한 경멸이 깔려 있었다.
“저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뭐가?”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 수가 너무 작습니다.”
말을 들은 김인철이 미간을 찌푸렸다.
“HK펀드인가 뭔가 하는 것들을 포함해서 외국계 투자자들이 가지고 있는 주식을 계속 움켜쥐고 있는 거야?”
“그렇습니다.”
자칫 기껏 끌어 모은 개미들이 떨어져 나갈 수 있었기에 대주주 지분은 마지막까지 건드릴 수 없었다.
대신 차명으로 확보해 둔 주식을 이용해서 주가를 끌어 올리고 수익을 극대화시켜야 했는데, 막판에 뜻밖의 장애물이 등장했다.
바로 외국계 투자자들이 TC인터내셔널 주식을 사들여서 가지고 있는 거였다.
회사의 미래 가치를 높이 보고 외국인까지 투자에 나섰다는 식으로 이용할 수도 있었으나 문제는 이들이 보유한 지분이 무려 31%나 된다는 것이다.
이건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대주주 지분을 제외하면 시장에 풀린 주식의 절반이 넘는 물량이었다.
작전을 위해 김인철이 차명으로 가지고 있는 지분이 20%가 조금 안 되니까 얼마나 많은 주식을 보유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실제로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한 TC인터내셔널 지분은 10% 남짓 정도였다.
유동 주식이 적으면 그만큼 주가를 끌어 올리기가 쉬웠다.
하지만 자신들 외에 다른 곳에서 이렇게 많은 주식을 가지고 있다면 작전을 진행하는 데 위험 요소가 될 수도 있었기에 꺼림칙했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 작전을 벌이기 전에 몇 번이나 접촉해 지분을 매입하려고 했지만 거절당하고 말았다.
이처럼 꼬여 있는 지분 관계를 떠올린 김인철은, 못마땅한 얼굴로 소파 팔걸이 끝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다가 이내 고개를 다시 들었다.
“혹시 작전을 눈치챈 거 아니야?”
그러자 이동철이 살짝 얼굴을 굳히고는 신중한 태도로 대답했다.
“지금까지 보이는 행태로 볼 때 그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젠장. 어디서 날파리들이 꼬여서 사람을 짜증 나게 만드는군.”
“그래서 제가 상황이 깔끔하게 정리될 때까지 작전을 보류하자고 한 겁니다.”
“내가 일을 힘들게 만들었다는 거야!”
무심코 말을 내뱉었던 이동철은 화가 난 듯 눈썹을 치켜 올린 김인철을 보곤 황급히 머리를 숙였다.
“아, 아닙니다. 제가 그만 말실수를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봐, 이 전무.”
“예.”
갑자기 은근하게 변한 그의 말투에 이동철은 오히려 불안해졌다.
“내가 요즘 개를 키우는데 말이야. 이것들이 주인을 알아보고 애교를 피우거나 배를 발랑 까뒤집으면서 쓰다듬어 달라고 하면 꽤 귀엽단 말이지.”
“아, 예…….”
“그런데 하자는 대로 다 해 주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제 주인을 몰라보고 조금씩 기어오르기 시작해. 언젠가 한 번은 내가 먹이를 주는데 감히 으르렁거리면서 송곳니를 드러내더라고. 물론 물려고 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손등에 상처가 생겼단 말이지.”
김인철은 마치 아직도 흉터가 남아 있는 것처럼 제 손을 들어 보였다.
당연히 아무것도 없이 미끈한 손등이었지만, 이동철은 왠지 모르게 점점 뒷덜미가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내가 어떻게 했을 것 같아?”
대답해 보라며 김인철이 물끄러미 이동철을 바라보았다.
마치 파충류처럼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눈동자에 소름이 끼쳤다.
분명 그 개는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지.
때려 죽였을까? 아니면 도살업자한테 넘겼을까?
제 손으로 칼을 휘둘러 마구 썰어 댔을지도 모른다.
김인철이라면 충분히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무서운 확신이 그의 머릿속에 먹물처럼 새카맣게 번져 나갔다.
“개라는 건 말이야. 주인에게 얌전히 복종하면 그걸로 돼.”
김인철은 사시나무처럼 떨며 식은땀을 흘리는 이동철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입꼬리를 히죽 말아 올렸다.
눈동자는 전혀 웃음기가 없이 건조하게 메말라 있는 채였다.
“……물론 사람도 마찬가지지.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
“예, 옛.”
바짝 긴장한 채 말까지 더듬는 이동철의 모습에 김인철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싸늘한 분위기를 깨며 이동철의 품속에서 스마트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이동철이 당황해하면서 급히 스마트폰을 끄려고 하자 김인철이 턱을 들며 말했다.
“급한 연락일지도 모르잖아. 그냥 받아.”
“죄송합니다.”
스마트폰을 꺼낸 이동철은 몸을 살짝 뒤로 돌리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그렇습니다. 뭐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인 이동철은 뒤늦게 김인철이 있는 걸 깨닫고 목소리를 죽인 채 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누고는 스마트폰을 귀에서 뗐다.
“누군데 그래?”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이동철이 대답했다.
“HK펀드 투자 담당자라는 자였습니다.”
말을 듣자마자 김인철이 눈을 치켜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