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236
236
토롱카를 마을에 남겨 두고 다이아몬드 광산으로 돌아오자 방어선 구축 작업이 상당히 진행되어 있었다.
모래주머니를 쌓아서 만든 진지가 곳곳에 만들어졌고 광산을 빙 둘러서 적대 세력의 접근을 차단할 수 있는 원형 철조망이 쳐졌다.
그리고 반군을 공격할 때 부서졌던 망루도 어느새 다시 세워져 있었다.
“일찍 돌아오셨군요.”
M4 카빈 자동소총을 어깨에 비스듬하게 멘 래리가 웃으면서 앞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됐습니다. 한데 공사가 꽤 많이 진척된 것 같군요.”
혁권이 주위를 둘러보며 묻자 래리는 한쪽 손을 들어 연장을 든 채 일을 하고 있는 인부들을 가리켰다.
“인부들 덕분에 일을 빨리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
의아한 표정을 짓자 래리가 어떻게 된 건지 자초지종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반군들이 다시 공격해 오는 걸 대비해서 방어 시설을 만든다고 하니까 인부들이 자청해서 일을 돕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일당 대신 식량을 조금 주고 작업을 돕도록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백여 명이 넘는 인부들이 스스로 나서 돕는다는 건 아주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돈 대신 식량을 준 것도 어차피 내전 때문에 프리타운 정부에서 발행하는 화폐의 가치가 폭락한 상태였기에 오히려 현물이 더 나았다.
물론 광산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이쪽에서 식사를 제공하겠지만 나중에 가족들한테 가져가면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참. 그리고 대령님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반군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다고 합니다.”
대령은 아틀라스사 사장인 타머의 별명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계속 신경을 쓰고 있던 문제였기에 그는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여길 쳐들어오기라도 한다는 거요?”
“아마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첩보에 의하면 코이두에 있던 병력이 이쪽으로 남하할 조짐이 있다는군요.”
“으음.”
예상은 한 일이었지만 부근에서 가장 큰 도시인 코이두 병력이 움직인다는 이야기에 혁권은 자신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첩보가 사실이라면 상당히 대규모로 반격을 해 올 거라는 뜻이었다.
“규모는 얼마나 된다고 합니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1개 대대급은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대대급이라면 최소 400~500명 사이라는 뜻이었다.
아군이 치우 팀까지 다 합쳐도 100명에 훨씬 못 미치는 걸 생각하면 절대적인 열세였다.
“하지만 상황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닙니다.”
래리의 말에 그가 시선을 들어 상대를 바라봤다.
“숫자가 많기는 해도 주력은 프리타운 부근에서 정부군과 한창 전투 중이기 때문에 이리로 오는 병력 대부분이 최근에 강제로 징집한 병사들입니다. 그래서 실질적인 전투력은 그리 높지 않을 겁니다. 거기다가 중화기도 거의 없는 데 비해 저희는 장갑차는 물론이고 경공격 헬리콥터까지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까. 쳐들어온다면 이곳이 놈들의 무덤이 될 겁니다.”
강한 자신감을 보인 래리가 이를 드러내며 웃자 혁권도 살짝 불안했던 마음을 지울 수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반군들이 다이아몬드 광산을 위협해 올 텐데 이 정도로 위축이 된다면 사업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래리 씨만 믿겠소.”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단순한 허풍이 아니라 이미 앞선 전투에서 실력을 보여 줬기에 래리의 이야기를 듣자 그는 마음이 든든해졌다.
며칠 전까지 반군 지휘관이 쓰던 방에 들어간 혁권은 손에 들고 있던 HK416자동소총을 탁자에 올려두고 허리에 찬 탄띠까지 끌러 옆에 놔뒀다.
그리고 신고 있던 군화의 지퍼를 내려 훌훌 벗어 던지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른한 해방감이 몰려왔다.
그대로 깜빡 잠이 든 혁권은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눈을 떴다.
띠리리. 띠리리.
몸을 바로 하고는 건빵 주머니에 넣어 둔 위성전화기를 꺼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보스, 저 함단입니다.
통신 상황이 별로 안 좋은지 치직거리는 잡음이 섞여서 들렸지만 이야기를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고개를 창밖으로 돌린 그는 어느새 어슴푸레 날이 어두워져 있는 걸 보곤 탁자에 있는 랜턴 불을 켰다.
-말씀하신 걸 알아봤는데 케네마에서 해안 지역 항구까지 강을 따라 아직 수로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확실해?”
전화기를 고쳐 쥐면서 그가 되묻자 함단이 바로 대답했다.
-은완코와 함께 직접 선착장에 가서 배가 움직이는 걸 확인했습니다. 이쪽은 반군도 없어서 비교적 안전하다고 합니다.
“배는 많이 있나?”
-그렇지는 않고 300톤급 선박 한 척이 일주일에 한 번씩 강을 오간다고 합니다.
“300톤이라…… 그리 크지는 않군.”
-그래도 여기서는 제일 큰 배라고 하더군요.
시에라리온의 경제 상황을 생각한다면 300톤짜리 배도 여기서는 아주 귀한 것일게 분명했다.
“다른 건?”
-나머지는 고기잡이 용도의 쪽배이거나 10톤 이하의 소형 선박들뿐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설명을 다 들은 그는 몸을 뒤로 기댄 채 고심에 찬 표정을 지었다.
혁권이 갑자기 수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보급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은 큰 무리가 없지만 앞으로 다이아몬드 광산을 정상 운영하게 되면 필요한 물자가 늘어날 것이 틀림없었다.
거기다가 추가로 확보해야 될 보크사이트 광산에 대한 것도 고려를 해야 됐다.
가볍고 부피가 작은 다이아몬드 원석과 달리 보크사이트는 제련을 해서 금속 괴塊 형태로 만든다고 해도 비행기로 운송을 해서는 크게 이윤을 남기기 어려웠다.
하지만 육로는 항구까지 거리가 멀고 무엇보다 중간에 무장 강도나 반군의 습격을 받게 될지도 몰랐기에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수로를 이용한 운송이었다.
배를 이용한 운송은 한꺼번에 많은 화물을 옮길 수 있고 비용도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굳이 케네마까지 안 가더라도 광산에서 50킬로미터 남짓만 이동하면 바다로 곧장 이어지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만약 이 루트를 개척할 수 있다면 항공 수송에만 의지하는 것보다 훨씬 보급이 여유로워질 터였다.
하지만 당장은 곧 있을 반군의 공격을 막아 내는 것이 먼저였기에 이 문제는 잠시 뒤로 미뤄 두기로 했다.
“수로 이용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고 다시 보고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참. 그쪽에 있는 정부군 지휘관 말이야.”
-사무엘 대위 말씀이십니까?
“맞아. 기름칠을 잘하고 있겠지?”
-예. 수시로 돈과 필요한 물건을 챙겨 줘서 그런지 요즘에는 저희가 부탁하는 일이라면 두말하지 않고 들어주고 있습니다.
“잘했어. 보급 거점으로 케네마는 꼭 필요한 곳이니까 사무엘 대위를 잘 구워삶아 놓도록 해.”
-염려하지 마십시오.
“계속 수고하고 더 할 이야기가 없으면 이만 끊지.”
-몸조심 하십시오, 보스.
“그래.”
통화를 끝낸 혁권은 어깨를 늘어뜨리고는 길게 숨을 내뱉었다.
며칠 뒤 경고를 받은 대로 일단의 반군 병력이 다이아몬드 광산으로 접근해 왔다.
탁자에 커다란 지도를 펼쳐 놓고 둥글게 모인 일행은 다들 심각한 얼굴로 각자 팔짱을 끼거나 짝 다리를 짚은 자세로 서서 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다.
혁권은 한편에 밀어 놓은 머그잔을 들고 커피를 마시려다 이미 차갑게 식은 것을 깨닫고는 인상을 쓰며 다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맞은편에 선 헬리콥터 조종사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그는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중년의 베테랑으로, 러시아 출신 용병이라 말할 때마다 강한 악센트 때문에 영어도 러시아어처럼 들리게 하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정리를 하면 광산 북서쪽 40킬로미터 지점에서 반군으로 보이는 차량 행렬을 포착했다 이 말이군.”
“그렇습니다.”
“차량이 몇 대나 됐나?”
래리의 물음에 조종사는 머뭇거리는 것 없이 바로 대답했다.
“픽업트럭 세 대에 트럭이 열 대였습니다. 그리고 픽업트럭에는 전부 기관총이 장착되어 있었습니다.”
“전부 다 병력이 탑승해 있었나?”
“화물칸에 덮개가 씌워져 있어서 그것까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혁권과 나란히 서 있던 태영준 팀장이 약간 서툰 영어로 입을 열었다.
“보급 물자가 실려 있는 걸 감안하더라도 지난번에 들어온 첩보대로 최소 1개 대대 이상이겠군요.”
“그렇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
그를 비롯해 모여 있는 사람들 모두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만만치 않은 숫자였다.
그나마 픽업트럭에 장착된 기관총 말고는 별다른 중화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위안이었다.
헬리콥터 조종사가 표시해준 반군의 위치를 바라보며 래리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르면 오늘 저녁, 늦어도 내일에는 놈들이 이곳에 도착하겠군.”
곧 전투가 있을 거라 생각하자 실내에 살짝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때 팔짱을 낀 채 한참 동안 지도를 들여다보던 혁권이 고개를 들었다.
“우리가 화력이 더 강한 상황인데 굳이 광산 외곽에 구축해 놓은 방어선에서 수세적인 작전을 벌일 필요가 있을까요?”
“무슨 말씀입니까?”
래리와 다른 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혁권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다들 알고 있다시피 광산 부근을 제외하며 사방이 수목으로 울창하게 우거진 숲입니다. 전투가 벌어진다면 그것들이 전부 반군의 움직임을 가려 주는 엄폐물이 될 테니 아군의 장점인 화력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의 소화기 사정거리 안에 착륙장으로 쓰는 공터가 들어가서 어쩔 수 없이 경공격 헬기를 케네마로 돌려보내야 되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듣고 보니 혁권의 지적이 맞았다.
소화기는 어렵더라도 싸고 성능이 탁월해 반군들이 선호하는 무기인 RPG-7이라도 쏜다면 충분히 위협이 됐다.
사정거리가 무려 500미터나 됐기에 숲에서 발사해 아군이 운용하는 500MD 경공격 헬기를 맞힐 수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사방을 포위한 채 압박한다면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몰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어쩌자는 겁니까?”
래리의 물음에 그는 손가락으로 지도의 한 부분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숲으로 들어오기 전에 여기 주위가 탁 트인 넓은 분지에서 선제공격을 해 놈들을 괴멸시켜 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애써 방어선을 만들어 둔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용병 지휘관 중 한 명이 이의를 제기하자 그가 바로 말을 받았다.
“방어선은 광산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지, 꼭 거기에서 적과 싸워야 된다는 법은 없는 것 아니겠소. 그리고 아군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전투를 치르는 것이 가장 훌륭한 전술일 것이오.”
그러면서 혁권은 의견을 묻듯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는 래리를 바라봤다.
시선을 받은 래리는 작게 헛기침을 하곤 입을 열었다.
“그리 나쁜 생각 같지는 않군요. 시야가 트인 분지라면 장갑차를 비롯해 아군이 보유한 중화기를 더 잘 활용할 수 있고 공중에서 경공격 헬기의 지원 사격도 가능할 테니 말입니다.”
책임자인 래리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다른 용병 지휘관들도 머리를 끄덕였다.
“저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방어전보다는 화끈한 공격이 낫지요.”
얼추 의견이 모아진 것 같자 혁권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럼 맞서 싸우는 걸로 하고, 구체적인 작전을 지금부터 생각해 봅시다.”
그 뒤로 한참 동안 머리를 맞대고 작전을 논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