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609
609
비대한 체격에 살짝 머리가 벗겨진 중년인 완다 시네마 대표 양위는 와락 이맛살을 구긴 채 책상 너머에 서 있는 부하직원을 노려봤다.
“저쪽에서 조정해 달라는 배분 비율이 얼마라고!”
잔뜩 화가 난 시선에 인터내셔널 미디어 네트워크와 계약을 맡은 정청 본부장이 머뭇거리다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5 대 5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양위가 손바닥으로 앞에 있는 책상을 세게 내려치면서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탕!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해!”
“죄, 죄송합니다.”
“독점 수입권을 가지고 있어서 배려를 해 줬더니 이것들이 아주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배분 비율을 바꿔 주지 않으면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미친. 영화관에 걸 작품이 한국 것밖에 없는 줄 알아. 마음대로 하라고 해!”
단단히 기분이 상한 양위가 거친 말투로 소리치자 정청 본부장이 조심스레 이야기를 했다.
“한 가지 더 아셔야 될 게…… 인터내셔널 미디어 네트워크에서 다른 업체와도 접촉을 하는 낌새가 있습니다.”
“이것들이 정말!”
양위는 눈썹 끝을 치켜 올린 채 짜증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 이대로 계약을 하지 않았다가 다른 업체가 한국 영화로 대박을 친다면 상당히 곤란한 일이었다.
특히나 계속 1위를 유지하고 있다지만 최근 2, 3위 업체인 광둥다디[廣東大地], 상하이롄허[上海聯和], 중잉난팡[中影南方] 등의 거센 추적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그중에서도 10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영화계를 좌지우지했던 국영기업인 중잉싱메이[中影星美]는 예전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완다 시네마와 치열한 점유율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아니지만, 중국인들의 감성에 맞고 인기 많은 한류 배우가 출연해 흥행 가능성이 높은 한국 영화가 경쟁 업체에 독점 공급 되는 건 완다 시네마 입장에서 껄끄러운 일이었다.
“주제도 모르고 함부로 설치지 못하도록 버릇을 단단히 고쳐 놔야지 아무래도 안 되겠어.”
눈을 매섭게 번득인 양위는 고개를 들며 말했다.
“장덕천 부장한테 연락해서 오늘 저녁에 식사나 함께하자고 해.”
“알겠습니다.”
음식이 잔뜩 쌓인 접시들을 양손에 가득 들고 들어온 종업원들이 차례대로 줄을 지어 테이블에 온갖 호사스러운 요리들을 늘어놓았다.
저 가녀린 팔뚝에서 어떻게 힘이 솟아나오는지 모르겠지만 가뿐하게 무거운 접시를 들고 소리도 없이 움직이는 것이 마치 묘기를 보는 것만 같았다.
옛날 궁녀들처럼 미소를 띤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는 치파오를 입은 여종업원들이 별실을 나가자, 오늘 자리를 마련한 주인 격인 양위가 먼저 장덕천 부장에게 술을 권했다.
“자, 내가 먼저 한잔 따라 드리죠.”
그러면서 자신의 술잔도 함께 채운 그는 테이블을 꽉꽉 채운 요리들을 향해 손짓하면서 말했다.
“여기 주인이 산둥지방 출신인데 어린 나이에 요리를 배우겠다고 혼자 올라와 북경의 전통 있는 가게에서 30년 동안 스승에게 칼 쓰는 기술을 배운 뒤 차린 요릿집이랍니다. 나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었는데 아는 사람만 아는 맛집이지요.”
“호오, 그렇습니까.”
장덕천 부장은 술을 조금 홀짝인 뒤 흠, 하고 제법 술이 입맛에 맞는 듯 눈썹을 치켜 올렸다.
“어디 한 입 먹어 볼까요.”
“그러시죠. 저도 점심을 일찍 먹은 터라 배가 출출하던 차입니다.”
길쭉한 젓가락으로 제일 가까이에 있는 접시부터 장덕천 부장이 손을 가져다 대자 양위 역시 음식을 입에 집어넣고 맛을 즐겼다.
반주를 곁들여 가면서 어느 정도 속이 채워졌다 싶을 즈음, 슬슬 양위가 본론을 꺼낼 준비를 했다.
“갑자기 장 부장을 보자고 한 건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어서요.”
그러자 장덕천이 네프킨으로 입가를 살짝 닦아 내면서 물었다.
“뭔지 말씀해 보십시오.”
“인터내셔널 미디어 네트워크라고 알고 계실 겁니다.”
“…….”
인터내셔널 미디어 네트워크를 거론하자 장덕천 부장이 얼굴을 살짝 굳혔으나 양위는 이런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채 계속 말을 이었다.
“남의 나라에 와서 사업을 하면서 분수도 모르고 설치는 버릇을 좀 고쳐 주려고 하는데 장 부장이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양위가 눈짓을 하자 옆에 앉아 있던 정청 본부장이 두툼한 돈 봉투를 하나 꺼내 장덕천 앞에 내려놨다.
돈 봉투를 잠시 내려다보던 장덕천은 고개를 들고는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쪽하고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반주로 나온 술을 한 모금 마시면서 아무런 생각도 없이 양위가 대답했다.
“새로 한국 영화 수입권을 확보했다기에 배급 계약을 맺으려고 했는데, 글쎄, 이익 배분을 5 대 5로 해 달라고 하지 뭡니까. 일은 우리가 다 하는데 가만히 앉아서 이익을 절반이나 가져가겠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대충 상황을 파악한 장덕천은 앞에 놓인 돈 봉투를 다시 양위한테 밀었다.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도움을 드릴 수가 없겠습니다.”
거절을 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 했기에 양위는 순간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왜……?”
“지금까지 알고 지낸 친분이 있으니까 충고를 드리는 겁니다만 함부로 인터내셔널 미디어 네트워크를 건드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때서야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은 양위가 정색을 하며 물었다.
“내가 모르는 사정이라도 있는 거요?”
그러자 장덕천은 말해야 할지 말지 가늠하는 듯한 눈으로 그를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그 회사는 얼마 전에 중앙당 서기처로 영전해 가신 백수광 서기님과 연이 닿는 곳입니다.”
단지 그것만으로 모든 설명이 다 되었다고 생각하는 건지 장덕천은 이 이상 말해 줄 마음이 없어 보였다.
“정말입니까!”
설마 여기서 백수광의 이름이 튀어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양위가 놀라 입을 벌렸다.
“그런 뒷배경이 없다면 어떻게 한국 영상물에, 한정된 거라지만 일반 업체가 독점 수입 쿼터를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으음.”
듣고 보니 틀린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양위는 낮게 침음성을 흘렸다.
거기다가 백수광이라면 시진핑 주석의 측근으로 떠오르는 실세였기에 부딪치면 손해를 보는 건 이쪽이었다.
특히나 최근 중앙당과 완다그룹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상태였기에, 자칫 잘못했다가는 불똥이 엉뚱하게 튈 가능성까지 있었다.
양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걸 보며 장덕천이 아직 식사가 다 끝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늘 한 이야기는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그럼 전 먼저 일어날 테니 천천히 나오십시오.”
너무 놀란 나머지 장덕천 부장이 몸을 돌려 별실을 나가는데도 양위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 뒤에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어깨를 힘없이 늘어뜨리자 눈치를 보고 있던 정청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잠시 고민하던 양위는 이내 축 처진 목소리로 말했다.
“어쩔 수 없지. 저쪽에서 원하는 조건대로 계약을 해.”
눈을 동그랗게 뜬 정청은 굳어 있는 정청의 얼굴에 더 이상 말을 붙이지 못하고 머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지시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정말 완다 시네마에서 그 조건을 받아들였단 말이야!”
-그렇습니다. 바로 계약을 맺자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허어.”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북경에서 걸려온 전화에 정동식 이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채 자신도 모르게 감탄성을 흘렸다.
과연 완다 시네마에서 요구를 받아들일지 회의적이었는데, 정말로 혁권이 장담한대로 되자 놀라는 걸 넘어 허탈한 마음까지 들었다.
5 대 5 배분이라니 모르기는 해도 이렇게 좋은 조건으로 중국 극장에 영화를 거는 건 할리우드 블록버스트라도 어려울 터였다.
들뜬 마음을 애써 가라앉힌 정동식 이사는 귀에 댄 수화기를 고쳐 쥐면서 얼른 지시를 내렸다.
“내가 내일 북경으로 갈 테니까 모레쯤 약속을 잡도록 해.”
-알겠습니다.
일단 전화를 끊은 정동식 이사는 자꾸만 슬며시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부여잡고 심호흡을 했다.
무서울 정도로 일이 잘 풀리고 있었지만 이런 때일수록 침착해야 된다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렇게 겨우 평정심을 되찾고 난 뒤에야 다시 혁권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울리는 동안 어떻게 이 좋은 소식을 알려야 할지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그는 달칵, 하는 소리가 들리고 혁권이 전화를 받자 그 동안 준비하던 것이 무색하게 바로 입이 먼저 움직여 버렸다.
“대표님, 됐습니다, 완다 시네마에서 저희 요구를 들어줬어요!”
-그런가.
앞뒤 다 잘라먹고 바로 본론부터 얘기했음에도 불구하고 혁권은 무슨 말인지 다 안다는 듯 놀라지 않는 반응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될 줄 예견이라도 한 사람처럼 심드렁하기까지 한 태도였다.
“이렇게 좋은 이야기가 어디 있습니까. 전 너무 좋아서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제 시작인데 뭘 이런 걸 가지고 흥분하고 그래.
잔뜩 흥분한 자신과 달리 너무나도 차분한 혁권의 모습에 정동식 이사는 졌다는 듯이 머리를 가볍게 내저었다.
“전 너무 떨리는데 아무렇지도 않으시다니 역시 대표님은 배포가 크십니다.”
-이야기했지 않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우리라고 말이야.
“분명히 그러셨지요.”
-다른 업체들하고도 협상을 하고 싶지만 완다 시네마에서 요구 조건을 맞춰 줬으니 일단은 그쪽하고 계약을 하는 것이 좋겠지.
자신감 가득한 태도에 정동식 이사는 내심 혀를 내두르면서 말을 받았다.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이니까 아무래도 다른 곳하고 손을 잡는 것보다 여러 가지로 이득이 많을 겁니다.”
-한동안 한한령 때문에 중국 시장이 꽉 막혀 있었고 이번이 첫 번째 영화 배급이니까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겠지.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완다 시네마하고 계약을 진행시키도록 해.
“알겠습니다.”
-언제 북경으로 갈 건가?
“내일 바로 출발할 생각입니다.”
-가능하면 춘절春節 연휴 기간에 영화를 상영할 수 있도록 협상을 해 봐.
춘절은 중국에서 가장 큰 명절로 음력 정월 초하룻날을 일컫는 말이었다.
국가에서 지정한 연휴는 사흘이지만 영토 끝에서 끝까지 가려면 며칠이나 걸리는 중국의 특성상 보통 2주에서 한 달 가까이 쉬곤 했다.
주머니가 두둑하고 오랫동안 쉬는 만큼 당연히 외부 활동이 많았기에 외식과 오락 업체 입장에서는 가장 큰 대목이었다.
당연히 춘절 기간 동안 상영되는 영화는 다른 때보다 훨씬 더 많은 흥행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정동식 이사 역시 이런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머리를 끄덕였다.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노력만 해서는 안 돼. 어떻게든 확답을 받아 내란 말이야.
“예. 반드시 성사를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대답을 하는 정동식 이사의 목소리에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춘절까지 기한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중국 영화관에 걸 작품 확보에도 차질이 없게 하도록 해.
“염려하지 마십시오. 중국에서 흥행이 될 만한 것들로 6개 정도 추려서 이미 교섭에 들어갔으니, 이번 주 안으로 판권 계약이 다 마무리될 겁니다.”
-잘했어. 일이 있으면 수시로 보고하고 북경에 가서 계약을 잘 끝내고 와.
“네.”
수화기를 내려놓은 정동식 이사는 벅차오르는 마음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