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626
626
#샹그릴라Shangrila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백수광 서기는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골프장이 내 소유가 된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날카롭게 벼린 듯한 칼날 같은 시선을 마주하면서도 혁권은 한 점의 흐트러짐 없는 태도로 받아쳤다.
“실은 오늘 서기님을 뵙자고 한 건 한 가지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입니다.”
“…….”
“공안에 체포돼 비공식 조사를 받고 있는 왕민린 회장을 풀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때서야 모든 걸 알아차린 백수광 서기는 얼굴 가득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딱 잘라 거절했다.
“공안의 법 집행은 사사롭게 개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그리고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소.”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이번 일이 단순한 범죄 행위 수사가 아니라는 건 서기님께서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주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자 한순간 주변 공기가 한겨울 시베리아 벌판에 와 있는 것처럼 차갑게 얼어붙었다.
옆에 있던 정동식 이사와 통역은 백수광 서기가 분노를 터트릴까 봐 연신 눈치를 살피면서 마음을 졸였다.
그에 반해 정작 일을 벌인 혁권은 너무나도 차분하게 서 있었다.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며 화를 겨우 참은 백수광 서기는 앞에 있는 혁권을 보면서 싸늘한 어투로 말을 내뱉었다.
“중국에서 계속 사업을 하고 싶다면 말을 골라서 하는 것이 좋을 거요.”
명백한 경고가 담긴 말에 옆의 정동식 이사는 불안한 표정으로 혁권을 눈짓했다.
제발 이쯤해 두라며 반쯤 애원하는 눈빛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못 본 척하는 건지 얌전히 입을 다물 태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백수광 서기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면서 말을 계속했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 태자당太子黨을 위해 열과 성을 다했는데, 이제 와서 이런 식으로 가차 없이 내버린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겠습니까? 아마도 권력을 두려워해 눈앞에서는 바짝 엎드려 복종할지는 몰라도 진심으로 최고 지도부를 따르지는 않을 겁니다. 이렇게 쌓아 올린 권위는 거센 파도 한 번에 힘없이 허물어질 모래성에 불과할 뿐입니다.”
화가 나기도 했지만 감추고 싶었던 부분을 여지없이 헤집고 들어오는 혁권의 날카로운 지적에 백수광 서기는 입을 굳게 다문 채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최고 지도부가 원하는 강한 중국을 만들고 국민들의 불만을 가라앉히는 데도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겠지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지금까지 저지른 허물을 용서해 주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면 왕민린 회장은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국가와 당에 충성을 다할 겁니다.”
팔짱을 끼고 선 백수광 서기는 작게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걸 어떻게 장담할 수 있나?”
그러자 혁권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공안 수사를 중단하고 풀어 주신다면 그 즉시 왕민린 회장이 200억 위안의 개인 재산을 국가에 헌납할 것입니다.”
“그 말이 정말이오?”
백수광 서기는 너무 놀라 눈을 크게 부릅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200억 위안이라면 한화로 3조 원이 훌쩍 넘어가는 거액이었는데, 아무리 중국이라고 해도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액수였다.
처음에는 완다 그룹에서도 이렇게까지 많은 돈을 내놓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최고 지도부의 지시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는 일인 만큼 이 정도 패가 아니라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없다는 혁권의 강력한 요구에 결정을 내리게 된 거였다.
“원하신다면 완다 그룹 쪽 인사를 불러와 직접 확인을 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처음과 달리 조금 망설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혁권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은근한 목소리로 상대를 설득했다.
“재계 서열이 높은 완다 그룹을 해체하거나 국유화하는 것보다 왕민린 회장한테 맡기고 국가에 헌신토록 하는 게 여러모로 낫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당연히 도움을 주신 서기님한테도 보답을 할 것입니다.”
백수광 서기는 대답 대신 드넓게 펼쳐져 있는 골프장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아무리 외곽이라고 해도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북경에 이만한 크기에 중급 규모의 호텔까지 갖춘 38홀 골프장이라면 그 가치는 적어도 수십억 위안은 될 터였다.
아무리 권력 실세로 불리는 백수광 서기라도 욕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상대가 머릿속으로 저울질을 하는 동안 혁권은 겉으로는 멀쩡한 낯을 하고선 조용히 그의 결정을 기다렸다.
이미 꽤 많은 시간을 필드 한가운데 서서 대화를 나눴으나 사전에 앞뒤로 타임을 전부 비워 뒀기에 아무도 이들을 방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한참을 고민하던 백수광 서기가 마침내 결정을 내렸는지 고개를 들며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만약 김 대표, 자네가 그냥 돈만 내밀면서 나한테 이런 청탁을 했다면 고민해 볼 것도 없이 바로 거절했을 거야. 물론 우리 둘의 관계도 그걸로 끝이었겠지.”
정동식 이사의 얼굴이 사색이 됐지만 그는 무슨 배짱인지 조금의 미동도 없이 가만히 백수광 서기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부분을 일깨워 줬으니 처음에 날 화나게 했던 건 없었던 일로 해 주겠소. 그리고 방금 한 제안은 윗분들과 논의를 해 볼 테니 결과를 기다리도록 하시오.”
확답은 해 주지 않았지만 희망이 보이는 대답에 그는 반색을 하며 머리를 숙였다.
“잠시나마 무례하게 행동한 점 사과드립니다.”
혁권의 사과에 백수광 서기는 대수롭지 않은 듯 손을 흔들었다.
“뭐, 신경 쓰지 마시오. 여로모로 유익한 대화였으니까. 그럼 게임이나 이어서 즐깁시다.”
골프채를 잡고 먼저 앞장서는 백수광 서기의 등을 혁권도 기꺼이 뒤따랐다.
며칠 뒤.
결과를 기다리면서 호텔 객실에서 머물고 있을 때 혁권의 스마트폰으로 백수광 서기의 전화가 걸려왔다.
“김혁권입니다.”
-오늘 오후에 왕민린 회장이 석방될 테니까, 그렇게 알고 완다 그룹에 말을 해 두시오.
원하던 대로 일이 해결되자 혁권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얼른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때로는 아량을 베풀어야 된다는 김 대표의 이야기가 윗분들의 마음을 움직였소.
“아닙니다. 서기님께서 애를 써 주신 덕분입니다.”
슬쩍 치켜세워 주자 상대는 싫지 않은 목소리로 말을 계속 이었다.
-지난번에 약속한 것들은 최대한 빨리 이행해야 될 거요.
“염려하지 마십시오.”
-혹시나 해서 미리 말해 두는 거지만 그 전까지는 출국이 금지되어 있을 것이오.
나중에라도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한다면 바로 다시 체포해 조사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알겠소. 그럼 이만 전화를 끊겠소.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혁권이 크게 숨을 몰아쉬자 때마침 옆에 있던 정동식 이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백수광 서기 전화입니까?”
“그래.”
“결과가 어떻게 됐다고 합니까?”
바짝 긴장한 모습에 혁권이 피식 미소를 지으면서 푹신한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잘됐군요. 그렇지요?”
“오늘 오후에 왕민린 회장이 풀려날 거라는군.”
머리를 끄덕이면서 혁권이 하는 말에 정동식 이사는 두 손을 불끈 움켜쥐며 크게 기뻐했다.
“불가능하다 생각한 일을 이렇게 해내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직 안심하기에는 일러. 완다 그룹에서 약속한 것들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다면 괘씸죄까지 붙어서 오히려 더 심하게 다루어질 거야.”
“바보가 아닌 이상 왕민린 회장도 자신의 목숨이 달린 일인데 설마 한입으로 두말을 하겠습니까.”
“그렇지.”
혁권은 느릿하게 옆으로 비스듬히 기대어 팔꿈치를 괸 자세로 말했다.
“양위 대표한테 연락해서 소식을 알려 주게.”
“알겠습니다. 바로 조치하도록 하죠.”
들뜬 발걸음으로 정동식 이사가 물러났다.
백수광 서기가 전해 준 대로 그날 오후 열흘 가까이 공안에 붙잡혀 조사를 받던 왕민린 회장이 풀려났다.
하지만 같은 날 함께 조사를 받던 화신에너지공사와 대형 보험사 총수는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고 바로 재판에 넘겨졌을 뿐만 아니라 경영권을 박탈당하고 개인 재산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압류를 당했다.
둘 다 장쩌민 전 주석의 정치적 기반이 상하이방[上海幇]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재벌 그룹들이었는데, 반대 세력을 누르고 권력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최고위층의 의지가 그대로 드러난 행동이었다.
날카로운 사정을 칼날에 중국 정재계가 긴장한 채 시진핑 주석의 눈치를 보면서 바짝 땅바닥에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공포 분위기에 지레 겁을 먹은 왕민린 회장은 보유하고 있던 알짜 자산을 대거 처분하거나 은행에 담보를 맡겨 약속한 200억 위안을 최고위층에 헌납했다.
그리고 새로 신설된 국가감찰위 부부장으로 임명된 백수광한테도 차명으로 골프장 소유권을 넘겼다.
“대표님, 소유권 이전 절차가 모두 마무리됐습니다.”
정동식 이사가 손에 든 가죽가방에서 서류를 두 장 꺼내 혁권한테 건네줬다.
양위 대표가 약속했던 토지에 관한 거였고 다른 하나는 역시나 제주도에 위치한 리조트 매매 서류였다.
해안을 바로 옆에 끼고 펼쳐진 3천 평이 넘는 넓은 대지에 남유럽풍의 2층 건물 3개 동으로 이루어진 럭셔리 리조트로 완다 그룹에서 제주도를 찾는 중국인 부유층 관광객들을 노리고 만든 곳이었다.
준공식을 끝내고 이제 정식 개장만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으나 중국 최고 지도부에 헌납하기로 약속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급하게 매물로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걸 알고 혁권이 재빨리 매수한 거였다.
“흐음. 매입 대금이 350억 원이군.”
서류를 확인한 혁권이 고개를 들어 쳐다보자 정동식 이사가 얼른 말을 받았다.
“거의 헐값에 땅값만 주고 계약을 했습니다.”
“하긴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나 같아도 이 가격에 팔지는 않았을 것 같군.”
“맞는 말씀입니다. 리조트 건물을 짓는 데만 이 정도 돈이 들어갔을 겁니다.”
부유층을 고객으로 유치할 생각에 건물 안팎을 아주 고급스럽게 꾸미는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갔다.
사실 급매로 리조트가 싸게 나오기는 했지만 원래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외화 반출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바람에 ‘고속열차’로 벌어들인 영화 수입금을 한꺼번에 반출시킬 수가 없자 편법으로 완다 그룹에서 내놓은 부동산을 매입하기로 한 거였다.
“리조트에 고용되어 있는 직원이 몇 명이라고 했지?”
“35명 정도가 있었는데, 완다 호텔에서 나온 인원들은 다 중국으로 돌아가고 남은 숫자가 30명쯤 될 겁니다.”
“적은 인원은 아니군.”
“아무래도 크기도 있고 24시간 돌아가야 되는 숙박 시설이다 보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겠군.”
수긍하듯 작게 머리를 끄덕인 혁권은 매매 서류를 정동식 이사한테 돌려주면서 말을 이었다.
“언제든 개장이 가능한 상태라고 그랬지?”
“예. 원래 예정대로였다면 보름 뒤에 영업을 시작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냥 놔두면 지출만 늘어날 테니까 우선 믿고 운영을 맡길 수 있는 지배인부터 찾아보도록 해.”
“알겠습니다.”
“뜻밖에 일정이 길어지기는 했지만 소득이 나쁘지 않군.”
정동식 이사가 얼굴 가득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특히 작품을 개봉할 때마다 완다 시네마 측에서 무조건 2천 개의 스크린을 비워 주기로 한 것이 가장 컸습니다.”
“맞아.”
개봉 스크린 수가 많을수록 관객을 더 끌어들이기 쉬웠기에 그만큼 흥행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번 일로 얻은 것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린 혁권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