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627
627
서울로 돌아온 혁권은 며칠 휴식을 취하고는 제주도로 내려왔다.
곧장 차를 타고 달려온 곳은 제주도에서도 그리 흔치 않을 정도로 넓고 평평하여 광활하기까지 한 토지 한복판이었다.
사유지임을 증명하듯 경고 문구가 적혀 있는 팻말을 지나쳐 자동차를 세워 둔 곳에서도 한참을 걸어야 겨우 끄트머리에 닿을 수 있었다.
혁권은 다른 곳들보다 지대가 높아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장소에 서서 저만치 떨어져 있는 해변과 여기까지의 거리를 가늠하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떴다.
적당한 거리 덕분에 시야에 걸리적거리는 것 없이 바다 풍경을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최고 장점이고, 교통이 불편하다는 사소한 단점이 있긴 했지만, 어차피 차로 이동할 사람에게는 그렇게 고민할 거리도 아니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 덕분에 제멋대로 자라난 유채꽃들이 노란색의 군집을 이루고 있는 것 또한 마음에 들었다.
만약 이곳에 제대로 된 정원을 조성한다면 제주도 특유의 맑은 공기, 따뜻한 날씨와 어우러져 굉장히 아름다운 정경이 만들어질 것임이 분명했다.
혁권은 선글라스 아래로 눈을 휘고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혼잣말을 하듯 입을 열었다.
“마음에 드는군. 아주 멋진 곳이야.”
그러자 이번에 함께 인수한 리조트 직원으로 안내를 맡은 한용수 과장이 옆에 있다가 얼른 말을 받았다.
“원래 호텔을 세우려고 매입해 둔 토지라 지형이 평평하고 바다가 바로 앞에 보일 정도로 풍광이 아주 뛰어난 곳입니다. 근처에 해안도로가 닦여 있어서 접근성도 뛰어나고 말입니다. 아마 지금 제주도에서 이만큼 주변 여건이 좋은 땅을 구하려면 정말 어려울 겁니다.”
부동산으로 성장한 재벌이라서 그런지 확실히 땅 하나는 제대로 보는 것 같았다.
“호텔로 짓기에는 면적이 좀 작지 않나?”
“주변 토지를 추가로 매입할 계획이었습니다만 중국 본사에서 자금 문제로 중단 지시가 내려와서 사업 진행을 멈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외화 유출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증가하는 기업 부채에 중국 정부가 제동을 걸면서 그동안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덩치를 크게 키워 가던 중국 기업들의 거침없는 행보가 주춤해졌다.
완다 그룹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특히나 최고위층하고 관계가 틀어지면서 다른 기업들에 비해 더욱 자금 융통이 어려워졌다.
그 여파가 제주도에서 진행 중이던 사업에까지 미친 거였다.
“그렇군. 저기 있는 둔덕까지 내가 소유한 땅이라고 그랬지?”
넓은 유채꽃밭 너머 오래된 고목 한 그루가 그림처럼 서 있는 낮은 언덕을 혁권이 한쪽 팔로 가리키면서 묻자 한용수 과장이 머리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진한 꽃내음을 맡으며 그가 천천히 산책하는 것처럼 발걸음을 옮기자 수행들도 그림자처럼 뒤를 따랐다.
어쩌다 보니 얻게 된 땅이었지만 이렇게 직접 보니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한참을 더 머문 혁권은 다시 차를 타고 이번에 함께 인수한 리조트로 향했다.
일행이 이동하는 동안 리조트에서는 새로 바뀐 주인을 맞이하느라 다들 아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개장을 바로 코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바닥이며 건물의 타일 사이 하나하나까지 때 낀 것 없이 반짝거렸으나, 매니저는 그래도 성이 안 차는 듯 여기저기를 들쑤시면서 완벽함을 추구했다.
평소라면 유난이라고 불만을 터트렸을 직원들도 날이 날이다 보니 기합이 바짝 들어간 얼굴이었다.
“자, 이제 곧 도착하신다니까 본관 입구로 다들 모이세요!”
그러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내며 양쪽으로 줄을 서서 활짝 열어 둔 정문 앞에 섰다.
갑자기 주인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어서 혹시나 개장도 하지 않았는데 제대로 일도 해 보지 못하고 해고를 당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이도 있었고, 잘 보이겠다며 아침부터 다림질을 열심히 한 깨끗한 유니폼을 입고 최대한 앞자리를 확보하려는 사람도 있어서 소란스러움이 가라앉질 않았다.
인원수가 많다 보니 이들을 관리하느라 계속해서 목이 터져라 바쁘게 돌아다닌 매니저는 갑자기 전화를 한 통 받더니 이젠 진짜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표정으로 달려 나갔다.
왜 저러지, 하고 고개를 빼서 살피던 사람들의 눈에 멀리서 검은색 차량의 행렬이 죽 이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일렁이던 소음이 기적같이 딱 멈추고, 이내 잘 닦인 길을 매끄럽게 미끄러져 들어오던 차량들이 입구에 차례대로 멈춰 섰다.
조수석에 타고 있다가 먼저 내린 하킴이 얼른 차 문을 열어 주자 노타이 정장에 짙은색 선글라스를 낀 혁권이 밖으로 나왔다.
“대표님, 어서 오십시오.”
도열해 있던 직원들 사이에서 50대쯤 되어 보이는 중년 사내가 앞으로 나와 가장 먼저 인사를 했다.
바로 리조트를 운영하기 위해서 얼마 전에 새로 영입한 박종호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텔 체인의 부지배인 출신으로 경험이 풍부하고 실력도 뛰어난 인재였다.
불과 이틀 전에 첫 만남을 가지고 지금 다시 보는 것이었으므로 짐을 푸는 것만으로도 빠듯한 시간이었을 텐데, 한 점 흐트러짐 없는 태도와 빳빳하게 풀을 먹은 셔츠 깃은 그가 얼마나 유능한 사람인지 대신 말해 주는 듯했다.
“다시 보게 되어 반갑군. 새 직장은 마음에 드나?”
“예. 시설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매우 훌륭합니다.”
다행이군, 하면서 혁권은 곧장 발걸음을 옮기는 대신 그 자리에 서서 리조트의 전체적인 모습을 쭉 훑어보았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남유럽의 휴양지를 연상시키게 하는 건축양식으로, 본관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이층짜리 건물이 날개처럼 배치되어 있는 형태였다.
어느 건물을 선택하든 최적의 풍경을 만끽하게 설계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진입로 주변엔 넓은 잔디밭과 잎이 넓은 나무, 관목 들이 심어져 있어 산책로까지 완벽했다.
그리고 한쪽에는 푸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커다란 수영장도 만들어져 있었다.
워낙 부지 자체가 넓었기 때문에 굳이 바깥에 나가지 않고 리조트 안에만 있어도 전혀 답답함을 느낄 수 없는 구조는 휴양 컨셉에 딱 들어맞았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음, 그러지.”
혁권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박종호와 함께 본관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넓은 로비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혁권의 눈길을 끈 건 천장에 매달려 있는 커다란 샹들리에Chandelier와 천연 대리석 바닥이었다.
어지간한 특급 호텔 못지않을 정도로 아주 고급스럽게 꾸며진 모습에 혁권은 살짝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부유층을 타켓으로 리조트를 만들었다고 하더니 정말 공을 엄청 들인 것 같군.”
그러자 옆에 있던 박종호 지배인이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원래 중국 사람들이 화려한 것 좋아하기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일부러 더 이렇게 꾸몄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천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초대형 샹들리에는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행스러운 건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실내 디자인에 크게 어색하지 않고 나름대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거였다.
엘리베이터 역시 원목과 황금색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여유롭게 만들어진 복도는 두꺼운 카펫이 깔린 채 조명 기구나 그림을 걸어 격조 있는 분위기를 풍겼다.
“여깁니다.”
박종호 지배인은 마치 귀족의 별장을 연상시키는 문 앞에 서서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거의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길쭉하고 커다란 입구는, 귀한 손님을 위해 특별히 제작되어진 것이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듯했다.
“보시지요.”
그러면서 박종호 지배인이 문을 양쪽으로 크게 열어젖히자 일순 시야가 환하게 밝혀졌다.
전면의 한 벽이 완전히 유리창으로 되어 채광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바다와 정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시야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바닥에는 푹신한 러그가 깔려 있었고, 실제로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겠지만 멋스러운 벽난로, 천장에는 장식품의 기능까지 겸하고 있는 듯한 세련된 장식의 샹들리에 느낌이 나는 조명이 매달려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하얀 대리석 벽이 창문 너머로 보이는 푸른 바다와 절묘하게 색 조합을 이루고 있어 어딜 보나 화려하기 짝이 없는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난잡하다거나 과하다는 느낌 없이 정돈되어 보이는 효과가 있어 실로 감탄사가 나오기에 충분했다.
“우리 리조트에서 제일 좋은 객실입니다.”
“멋지군.”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침실과 사우나가 갖춰진 욕실이 있고 테라스로 나가시면 잘 가꿔진 정원은 물론이고 드넓은 바다를 한눈에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이 정도면 웬만한 호텔 스위트룸보다 낫군.”
천천히 객실 내부를 둘러본 혁권은 거실 한쪽에 있는 가죽 소파에 앉으면서 말했다.
“지배인도 그쪽에 앉게.”
“예.”
한쪽 다리를 반대편 무릎에 올리면서 몸을 뒤로 살짝 기댄 혁권은 앞에 있는 박종호에게 시선을 주며 물었다.
“제주도에 내려온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다 살펴보지 못했겠지만, 자네가 보기에 전체적인 리조트 상태가 어떤가?”
마치 이런 질문을 예상이라도 한 듯이 박종호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차분하게 대답했다.
“앞서 말씀을 드렸다시피 완다 그룹에서 특별히 신경을 써서 준비를 했는지, 리조트 시설과 종업원들의 교육 상태는 나무랄 데가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혁권은 눈을 반짝이면서 관심을 보였다.
“자세히 설명을 해 봐.”
“우선 갑작스러운 리조트 인수로 고용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직원들의 동요를 가라앉히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리고 완다 그룹 소속 중국인 관리자들이 떠나면서 생긴 빈자리를 메워야 합니다. 지금처럼 어수선한 상태로는 개장을 해서 손님을 받는 건 자칫 시작부터 안 좋은 이미지를 만들 수 있어 곤란합니다. 물론 원활한 서비스를 위해 직원들을 추가로 고용해야 되겠지요.”
박종호는 혁권과 눈을 살짝 맞춘 뒤 자신의 말에 집중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곤 계속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가장 큰 문제는 예전과 달리 제주도를 찾는 중국 관광객들의 숫자가 크게 줄었다는 겁니다. 특히 저희가 유치하려고 하는 부유층 고객들의 방문이 거의 끊어지다시피 한 상태라 객실을 채우는 것이 쉽지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 조치가 일부 완화되면서 관광객들이 다시 돌아오는 추세라고 들었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일반 관광객들이라 스위트룸뿐인 우리 리조트하고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대답을 들은 혁권은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하긴 1박에 못해도 6천 위안(한화 100만 원)은 내야 되는데, 그걸 쉽게 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겠지.”
“그렇습니다.”
뜻밖의 난관에 혁권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처음부터 리조트 운영 계획을 잘못 잡았다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 당시만 해도 호텔 객실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제주도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았고, 무엇보다 사드 보복 같은 일이 벌어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까 말입니다.”
박종호 지배인의 말대로 당시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변수였을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에 시세보다 훨씬 싼 가격에 리조트를 급하게 처분하려고 한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자 혁권은 입맛이 썼다.
“그리고 완다 그룹은 일반적으로 영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 네트워크를 통해 리조트를 운영하려고 했기에, 우리하고는 입장 자체가 다르다고 봐야 될 겁니다.”
고급 호텔과 백화점 체인을 계열사로 두고 있는 완다 그룹이라면 돈 많은 VIP 고객들을 유치하는 건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닐 거였다.
답답한 마음에 절로 튀어 나오려는 한숨을 속으로 삼키면서 혁권이 말했다.
“골치 아프게 됐군. 이제 와서 객실을 다시 전부 개조할 수도 없잖나.”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해도 수익성이 크게 떨어져 적자만 누적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거야?”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해결책이 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있다고 하자 그는 소파 등받이에서 몸을 떼며 박종호 지배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