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Iron-blood Sword Hound RAW novel - Chapter 500
5
휘이이이잉-
건조한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에 휘날리는 검은 피풍의, 그리고 회색빛의 긴 수염.
비키르는 하얗게 펼쳐진 소금사막 위를 걸어가고 있었다.
홍문(鴻門).
한때는 광활한 녹지였던 곳.
하지만 지금은 바위와 소금만이 가득한 황무지.
비키르는 고개를 돌려 사막의 지평선 너머를 돌아보았다.
“…….”
쓸쓸하고 또 고독하다.
나이는 많은 것들을 풍화시킨다.
감정도, 욕망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젊은 시절과 다를 바 없이 펄떡이는 감정 하나가 있었다.
호승심(好勝心).
누가 더 강한가.
이는 칼밥을 먹고 사는 무인이라면 죽을 때까지 놓지 못할 욕심이자 미련이리라.
그래서 비키르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 모든 속박과 굴레를 벗어던지고, 아주 아주 오래 전부터, 지난 유구한 세월 동안 꾹 참고 억눌러 왔던 본능에 몸을 내맡긴 채로.
휘이이이잉-
소금기 섞인 바람이 불어온다.
마치 장막처럼 휘몰아치는 폭풍의 자락을 칼로 베어 넘기자 그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이 열렸다.
비키르는 찾던 것을 발견했다.
‘칼침의 무덤’
지면에 삐쭉 튀어나온 송곳 같은 외형의 이 탑은 밤하늘의 흑빛과 혈액의 붉은빛을 동시에 머금고 있다.
그것은 예전에 봤을 때와 조금도 다름없는 모습으로 여전히 그곳에 우뚝 서 있었다.
비키르는 길게 기른 수염에 붙은 소금 알갱이들을 털어 내며 중얼거렸다.
“……진정한 바스커빌은 ‘칼침의 요람’에서 태어난다.”
이것은 바스커빌 가문 내에 전해져 내려오는 유명한 문구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사실 숨겨져 있는 문장 하나가 있다.
“……진정한 바스커빌은 ‘칼침의 무덤’에서 죽는다.”
이 문구의 존재를 아는 바스커빌은 아마 현 시점에서는 자신뿐일 것이다.
이윽고, 비키르는 칼침의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하나하나가 송곳처럼 뾰족한 계단들이 높고 가파르게 솟아 있었다.
이것 역시도 여전한 풍경이었다.
지독하게도 쓸쓸하고 숨 막히며 외로운 공간.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전신이 날카롭게 저며지며 포(脯)를 떠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바닥과 벽, 천장에는 수없이 많은 칼들이 박혀 있는 것이 보인다.
그것들을 타고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은 붉고 비릿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비키르는 계속해서 계단을 타올랐다.
한 걸음에 한 계단.
그렇게 저며지고 깎여 나가고 도려내어지고 닳아 가며,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그리고 이내 마주하게 되었다.
탑의 최상층부에 있는 철(鐵)의 옥좌를.
그러자 쇠와 쇠가 부딪치는 듯 무겁고 쨍쨍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칼침의 무덤. 검의 극의(極意)를 좇는 이들이 마지막으로 찾아오게 되는 곳.]그리고 그곳에는 두꺼운 철갑을 걸친 한 남자가 길게 기른 흰색 수염을 늘어트리고 있었다.
하얗게 센 눈썹 밑, 흰자위여야 할 곳은 텅 빈 암흑이 들어차 있고 그 중앙에는 태양처럼 붉은 눈동자가 차갑게 타오른다.
칼날처럼 오똑한 콧날에 강퍅하게 다물린 입술, 검푸르게 죽은 피부는 바싹 말라서 해골 위에 겨우 덮여 있는 듯했다.
몸에 두르고 있는 시커먼 중장갑과 거대한 대검은 그가 구축하고 있는 아성(牙城)을 더욱 더 견고해 보이게 만들었다.
비키르는 그의 얼굴을 이미 알고 있었다.
케인코르소 레 바스커빌.
군웅할거의 난세를 겪어본 구(舊) 칠백작이자 멸망의 시대조차도 미처 어쩌지 못했던 인류 최강의 사나이.
그는 새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분명 처음 보는데도 낯익은 얼굴이로다. 지고의 영역에 다다른 초인의 직감은 시공조차 초월하는가.]비키르는 그의 말에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옛날 생각나는군. 저자를 처음 만났을 때에는 일검(一劍)을 받아 내는 것조차도 버거웠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악마와의 전쟁이 끝난 뒤로 딱히 자신의 힘을 시험해 볼 일이 없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였다.
…차앙!
비키르는 평생을 함께해 온 애검 바알제붑을 뽑아 들었다.
이윽고, 두 개의 검이 맞부딪친다.
케인코르소는 커다란 톱날대검을 휘둘렀고 비키르는 휘몰아치는 거대한 참격의 소용돌이 사이로 바알제붑의 송곳과도 같은 긴 검신을 찔러 넣는다.
바스커빌 제 구식(九式)과 바스커빌 제 구식(九式).
그것들이 맞부딪치는 것은 아주 찰나의 순간 벌어진 일이었다.
아홉 개의 이빨과 아홉 개의 이빨이 맞닿는 순간.
“……!”
비키르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움직임을 멈추었다.
조금 뒤늦었다.
마도심연에서 본 수많은 진리의 구결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말이다.
그동안, 실로 오랜 세월 동안 막혀 있었던 무언가가 뻥 뚫렸다.
…빠직!
시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아홉 개의 이빨들이 사납게 뒤엉키는 도중 작은 빛무리 하나가 반짝인다.
먼지와 가스, 구름, 별무리가 부유하는 공간에서 튀어나온 이빨.
바로 열 번째 이빨이었다.
너무나도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지만 그것은 분명 아홉 개의 이빨 옆에 붙어 있었다.
…번쩍!
그것에 몸을 관통당하는 순간, 케인코르소는 생각했다.
[……마지막인가.]이 생각에 화답하듯.
빠각!
그동안 함께해 왔던 그의 애병 ‘프라가르흐’의 검신이 반으로 쪼개졌다.
케인코르소는 부러져 나가는 톱날검을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렇군요. 이제 성불하시렵니까. 축하드립니다.]프라가르흐에 깃들어 있던 검은 기운이 하늘 높이 올라간다.
케인코르소의 몸 역시도 붉은 먼지로 변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검신(劍神)은 되지 못하였으나 검선(劍仙)은 될 수 있었다. 후손을 위한 이정표 역할 정도면 만족할 수 있지.]그는 칼과 칼이 부딪쳐 만들어 낸 참격의 폭풍에 자신의 몸을 실어 날려 보냈다.
한평생을 칼에 미쳐 산 자의 최후다웠다.
…….
……이윽고.
폭풍이 가라앉았다.
남아있는 사람은 한 명. 비키르 하나뿐이었다.
[네 탄생이 곧 칼의 탄생과도 같고 네 죽음이 곧 칼의 죽음과도 같을 것이다.]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케인코르소의 목소리가 아스라이 멀어져 간다.
바로 그때.
“으이구! 이 화상아!”
뒤에서 시끄러운 핀잔 소리가 들린다.
비키르가 화들짝 놀라 돌아본 곳에는 익숙한 면면들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이리로 올 줄 알았다니까.”
“예전에 한번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이후로 이곳을 쭉 감시하고 있었지.”
“다들 의부증이 너무 심해요…….”
“우리 쪽에는 추적술의 대가인 간수 출신도 있다고.”
“엇, 나 말하는 거야? 간수 출신은 맞는데 추적은 잘 못해. 체포라면 몰라도.”
까뮤, 아이옌, 돌로레스, 싱클레어, 키르코.
저쪽 세계에서부터 함께해 왔던 동료들이 이곳에 모두 모여 있었다.
“호, 혼자 오려 했는데 어떻게…….”
드물게도 말까지 더듬는 비키르.
그 앞으로 걸어 나온 이는 바로 까뮤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데려왔어야지. 자기는 여는 법도 모르잖아, 마도심연으로 가는 문.”
“…….”
비키르는 입을 다물었다.
까뮤는 제멋대로 칼침의 무덤 안까지 들어왔고 이내 나선형의 층계 제일 밑바닥에 새겨져 있는 거대한 술식의 흔적을 바라보았다.
“……마나륜 열 개의 흔적이라.”
까뮤는 바닥에 새겨져 있는 마법진과 마나 사출의 발사흔(發射痕)을 살폈다.
“완전소생의 술과도 비슷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고결하고 위대하며 강한 술식이야. ……세상에 이런 마법이 존재했다니. 대체 목적이 뭐였을까?”
“이것은 마치 진리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까뮤 언니도 알지 못하는 것을 제가 알 수는 없겠지만…….”
마법에 일가견이 있는 싱클레어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이옌, 돌로레스, 키르코 역시도 머리를 맞대었다.
“흔적만으로도 알 수 있다. 뭔가 거대한 폭발이 있었던 것 같군.”
“듣기로는 이 일대가 울창한 숲지대였다고 해요. 아마 이 폭발 때문에 소금 사막이 되어 버린 게 아닐까 하는데…….”
“운석 같은 게 떨어졌나? 그렇다면 인류 역사에 남겨진 두 번의 공백기와도 연관이 있는 것일지도.”
그리고 이 모든 의견들을 하나로 종합한 이는 바로 까뮤였다.
“그야 다시 한번 가 보면 알겠지.”
마도심연으로의 2차 탐험.
이 의견만은 비키르의 것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 * *
비키르와 까뮤는 다시 한번 마도의 심연에 도달했다.
‘창조주의 다섯 손가락’ 구역을 지나자 익숙한 글귀가 보인다.
-모든 것들은 마도의 심연에서 태어나 마도의 심연으로 되돌아간다.
-언젠가 별들이 움직이는 운명의 날이 오면 새로운 층위로의 문이 열리고 모든 것들이 필연적 종말을 맞이하게 되리라.
무간허무의 수문장과도 같이 서 있는 두 구절.
까뮤는 망령목의 뿌리를 뻗어 기둥과 기둥 사이에 있는 자물쇠들을 비틀어 땄다.
그렇게 8개의 문을 열자, 비로소 비키르는 무언가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것은 한 명의 인간, 여성체의 형상을 취하고 있는 영체(靈體)였다.
비키르는 그 존재를 보는 순간 직감할 수 있었다.
‘모성(母性)’.
지금 눈앞에서 환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존재가 바로 자신의 머나먼 조상, ‘최초의 어머니’라는 것을.
그리고 어머니는 비키르에게, 아들에게 말했다.
[보고 싶었단다.]“…….”
비키르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마음에 걸려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단다. 몇 세대가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너희들은 내 딸이고 아들이니까.]어머니는 아들을 꼭 안아 주었다.
그리고 따듯하고 촉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비키르의 물음에 어머니는 대답했다.
[머리채를 잡으러 간단다.]“……?”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는 비키르를 향해, 어머니는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살아라.]“…….”
[내키는 대로. 실컷. 마음껏 살아라. 이 세상을 명랑하게 한번 누려 보거라.]어머니는 비키르가 이곳에 온 목적을 이미 알고 이해하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비키르는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저도 함께 가면 안 됩니까?”
그 질문에 어머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참 뒤, 아주 한참 뒤에 삶의 마지막 순간이 오거든 이 장소로 오거라.]“…….”
[그전까지는 흔한 시시덕거림이나 평범한 자기만족을 즐기거라. 그것이 곧 최고의 명랑함이고 인식이며 사랑이란다.]그것이 어머니와의 마지막이었다.
* * *
비키르는 마도심연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아주 긴 시간을 이 세상에서 보냈다.
아름다운 아내들과 명랑한 자식들, 그들과의 행복한 시간들이 마치 아홉 구름의 꿈처럼 흘러갔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 세상의 모든 홍진(紅塵)이 시간의 사토에 뒤덮여 더는 풀썩이지 않게 될 무렵.
비키르는 그제서야 세 번째로 마도의 심연을 찾아왔다.
핏-
첫 번째 방문에서는 완전소생의 술과 10식의 진리를 깨우쳤다.
두 번째 방문에서는 최초의 어머니를 만났다.
세 번째 방문에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 ……. …….”
비키르는 아무런 말도 없이, 눈앞에 나타난 먼지와 구름, 별빛의 계단을 하나 하나 걸어 올랐다.
그리고 그 계단의 종점(終點), 마도심연의 끝에 앉아 있는 누군가를 마주하게 되었다.
‘창조주의 다섯 손가락’.
거대한 다섯 손가락 너머로 빛나고 있는 끝자락의 옥좌(玉座), 아니 성좌(星座).
그곳에는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손에 쥔 몇 개인가의 유리알을 만지작거리며.
“……. ……. …….”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당최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