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hua's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449
449화
“이놈이……!”
“감히 삼 공자님을 폄훼하다니!”
당가의 무인들이 발끈했다.
사천 당가의 삼 공자인 독룡 당적을 토룡이라 빗대어 말하면서 비웃자, 분노를 감추지 못한 탓이다.
분함에 무의식적으로 독기공(毒氣功)을 끌어올렸는지, 이를 갈며 내뱉은 음성에서는 독기가 물씬 묻어나고 있었다.
삽시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진 그때였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이오.”
곡평이 딱딱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태허도룡공(太虛道龍功)의 도력(道力)이 깃든 그 음성이 당가 무인들이 흘린 독기를 지그시 짓눌러 갔다.
그것이 신호라도 된 듯 다른 곤륜의 도사들도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흘러가는 기류가 심상치 않은 것을 읽은 그들은 이미 공력을 일으킨 채였다.
금방이라도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질 것 같던 찰나.
휙!
은형비객의 소매가 크게 펄럭였다.
우수를 옆으로 번쩍 든 그는 여전히 천휘를 정확히 직시한 채로 말했다.
“기세를 거둬라.”
담담한 음성이 그들을 강제했다.
사천당가 무인들은 먼저 물러나야 하는 것에 탐탁지 않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으나.
스으으―
결국에는 독기공을 갈무리했다.
그들에겐 무엇보다 명령이 우선이었으니.
한편 천휘는 곧장 독기공을 거두는 당가 무인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쩝, 아쉽네.”
천휘가 내뱉은 목소리는 작았다.
하지만 객잔에 짙게 드리워진 정적에 의해, 그 목소리는 모두의 귀에 쏙쏙 박혔다.
“그 애새끼가 펼치던 것 말고 당가의 다른 무공도 좀 보고 싶었는데.”
금방이라도 죽일듯한 눈으로 천휘를 노려보던 당가 무인들의 눈썹이 동시에 크게 꿈틀거렸다.
또다시 삼 공자를 무시한 건 물론이고, 자신들조차 얕보는 언사였다.
“도우……?”
천휘의 잇따른 도발에 곡평 또한 당황하면서, 그를 말리고자 할 무렵.
“안하무인인 것은 여전하군.”
은형비객이 싸늘한 말을 내뱉었다.
그의 눈빛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응축된 노기가 독기와 섞여 일렁거렸다.
천휘는 날카롭게 자신을 담는 눈동자를 정확히 마주하며 입술을 뗐다.
“왜요? 거슬리나 보죠?”
말하던 천휘가 돌연 씩 웃었다.
한쪽 입꼬리만 비틀린 조소였다.
“그럼 어디 한 번 저한테 직접 예의라도 가르쳐 주시던가요.”
“…….”
은형비객이 입을 다물고 침묵했다.
그러한 모습에 지켜보던 당가의 무인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누구인가.
은형비객이라 불리며 강호에 공포의 존재로서 군림하는 자였다.
그의 손에 명을 달리한 강호의 고수를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한데 그런 그가 저렇게나 어린 청년이 계속 도발을 하는 데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장로님께서 이걸 묵인하신다고?’
‘저 청년이 장로님께서도 쉽게 상대할 수 없는 고수라는 말인가?’
그들이 당혹감을 애써 감추며 천휘와 은형비객을 번갈아 볼 무렵.
“이 근방은 사천당가의 구역이지.”
은형비객이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약간의 협박조가 섞인 어투였다.
하지만 천휘는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는 듯 소지로 귀를 후벼 파면서 되물었다.
“그런데요?”
“사고를 일으킨다면 제아무리 자네가 무림맹 소속이라도 봐줄 수 없네.”
천휘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것참. 꼭 저보고 사고를 일으켜 달라고 하는 것 같네요.”
은형비객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직후 곡평을 바라본 그가 말을 건넸다.
“사천의 성도에 들른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곤륜까지 가는 여정에 필요한 물자를 챙기기 위해서 들렀소.”
은형비객의 눈매에 날이 섰다.
‘물자 때문에 들렀다고……?’
빈약한 이유였다.
물자를 보충하는 것이라면 굳이 사천의 성도가 아니라, 다른 곳에 들렀어도 충분할 일.
다른 목적이 있을 게 분명했다.
‘특히 저놈이 왔다는 것은…….’
그새 흥미를 잃었다는 듯 차를 홀짝이는 천휘를 힐끗 본 그가 다시 물었다.
“하면, 언제까지 머무실 겁니까?”
“하루만 머물 셈이오.”
“하루…….”
작게 중얼거린 은형비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간략하게 예를 갖춘 뒤 검은 무복을 크게 펄럭이며 몸을 돌렸다.
은형비객이 그대로 객잔을 성큼 빠져나가고, 당가의 무인들이 뒤따랐다.
이윽고 그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
“후우.”
“지독한 독기였어.”
곤륜파 도사들이 긴장감에 목 끝까지 차올랐었던 숨을 크게 내뱉었다.
식은땀이 흥건했다.
괜히 제갈세가와 함께 천하제일 세가의 자리를 두고 다투는 곳이 아니었다.
지독한 독기공과 날카로운 기파.
은형비객은 물론이고 뒤에 있던 무인들의 기세 역시 하나같이 매섭고 노련했다.
긴장감이 풀린 그들이 하나둘 의자에 앉는 그때, 곡평이 천휘를 보며 물었다.
“은형비객과 아는 사이인가?”
“잠깐 마주친 적 있었죠.”
“……좋은 인연은 아니었나 보군.”
곡평이 방금 전 상황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은형비객이 천휘를 대할 때의 태도는 날이 바짝 서 있었으니.
“……물자만 챙기고 가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군.”
본래 하룻밤 머물기로 했던 계획을 바꿀까, 생각하며 중얼거릴 때.
“에이, 뭘 물자만 챙기고 가요.”
천휘가 어림없다는 듯 끼어들었다.
그는 다 마셔서 텅 빈 찻잔을 단목린이 있는 쪽으로 내밀며, 입을 달싹였다.
“원래 계획대로 하룻밤 머물고 가야죠.”
“하나 위험은 배제하는 것이…….”
“위험할 게 뭐가 있어요.”
천휘가 그의 말을 싹둑 잘랐다.
“아까 그 사람이 말한 것처럼 여기서 사고만 안 일으키면 되죠. 모처럼 큰 도시에 들어와서 좋은 객잔에 왔는데.”
순간 적검과 설란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천휘를 바라봤다.
정론이었다.
하지만 그 정론을 다른 누구도 아닌 가장 사고를 일으킬 것 같은 천휘가 말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반면 아직 천휘에 대해서 잘 모르는 곡평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군.”
잠시 생각하던 그는 고개를 돌리며 곤륜의 제자들을 봤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은 아주 조용하게 지내도록 하자꾸나.”
“알고 있습니다.”
“네.”
곤륜의 제자들은 그 말을 꼭 따르겠다고 다짐하듯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그들의 목적은 곤륜파의 복귀였다.
괜한 일을 벌이는 건 질색이었다.
그걸 본 적검과 설란은 속이 답답하다는 듯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걸 말해 줘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이번에는 제발 평온히 지나갔으면…….’
생각과 함께 눈을 뜬 둘은 단목린이 따른 찻잔을 집는 천휘를 봤다.
직후 둘은 해탈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새 천휘의 입꼬리에는 흥미롭다는 미소가 걸려 있었으니.
‘당가, 당가란 말이지. 신교에 있을 때는 나를 죽이겠다고 무형지독(無形至毒)이랑 독인(毒人)을 만들겠다고 난리였었는데, 지금쯤이면 만들었으려나?’
천휘가 당가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으로 즐거워하고 있을 때.
저벅, 저벅.
객잔을 빠져나와 걷는 당가 무인들의 표정은 서늘하게 굳어져 있었다.
저벅, 저벅.
그렇게 사천당가의 담벼락이 있는 인적이 드문 거리로 진입하였을 때.
“장로님.”
당가의 무인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은형비객을 불렀다.
“무엇이냐?”
“이대로 물러나실 겁니까?”
무인의 목소리는 격양되어 있었다.
연이은 청년의 도발이 드높은 당가의 자존심을 크게 건듯 탓이었다.
“아무리 청해검자와 곤륜의 도사라지만, 장로님의 독공과 본대가 지닌 독과 암기라면 단번에 그들을 제압해 사과를…….”
“네 말대로 청해검자와 곤륜의 도사들뿐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지.”
은형비객의 목소리가 마치 짐승의 것처럼 그르렁거렸다.
사실 그도 마음속으론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도발하던 놈이 누군지 아느냐?”
물음에 무인의 미간이 좁혀졌다.
은형비객의 모습을 보아서는 심상치 않은 인물 같았으나, 그가 알 수 있는 건 그뿐.
청년이 누구인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소속을 드러내는 징표 같은 것도 없어서, 미남형이라는 외양만으로는 짐작 가는 게 없었던 것이다.
생각에 잠긴 무인을 본 은형비객이 두 눈을 굳히면서 입을 달싹였다.
“그놈이 바로 매화신협이다.”
“……!”
당가의 무인 모두가 숨을 삼켰다.
“매, 매화신협……?”
“녹림대제와 불사천교주를 쓰러트린 그 절세고수가…….”
“그, 그런데 어째서 화산파의 도복이 아니라 일반 무복을……?”
그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저 예의 없는 놈이라고만 생각한 자가 작금의 천하에서 그 누구보다 혁혁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매화신협이라니.
그리고.
섬뜩!
동시에 그들 모두가 등골에 소름이 올라오며, 전신의 털이 곤두섬을 느꼈다.
‘마, 만약 도발에 넘어갔다면?’
‘이미 나는…….’
그들의 이마에 땀이 삐질 흘렀다.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이었다.
은형비객은 안색이 파래진 무인들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곤 이내 미간을 좁히면서 혼잣말하듯 말했다.
“필시 아무 이유 없이 방문한 것은 아닐 텐데…….”
* * *
사천당가 본가에 도착한 은형비객은 외당을 지나쳐 거침없이 안으로 향했다.
“장로님……?”
중간에 마주친 이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은형비객에게서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탁.
그렇게 쏟아지는 시선들을 무시하고 계속 걷던 그의 걸음이 멈췄다.
큼지막한 전각의 앞이었다.
참으로 기이한 곳이었다.
창문이 단 하나도 없었으며, 오직 하나의 문만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가주님.”
그의 음성이 나직이 울렸다.
아무런 공력도 실리지 않았건만 음성은 곳곳에 전해지는 듯했다.
그리고 잠시 뒤.
끼이익―
굳게 닫혀 있었던 문이 열렸다.
은형비객이 안으로 몇 걸음 들어선 뒤,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전각의 내부 또한 기묘했다.
사방이 어둠으로 뒤덮인 공간.
곳곳에 있는 검은 천이 조금의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게 막고 있었다.
마치 무저갱과 같이, 새까맸다.
무엇이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보는 것으로는 판단이 불가했다.
그때 무저갱이 일렁거리더니, 어둠 속에서 강렬한 안광이 떠올랐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눈동자.
마치 맹호(猛虎)가 나타난 것처럼 매섭고도 강렬한 눈빛이었다.
순간 시간이 멈춰 버린 듯했다.
깊고 깊은 고요함 속.
“무슨 일이냐?”
묵직한 육합전성이 공간을 삼켰다.
“…….”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은형비객의 등에서 식은땀이 뻘뻘 흘렀다.
종종 보고 느껴 온 눈빛과 기세였다.
하지만 이 눈빛과 기세는 도저히 익숙해지지를 않았다.
오히려 보면 볼수록 숨이 막혔다.
입술을 깨물어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했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여기까지 온 목적대로 가져온 정보를 힘겹게 내뱉었다.
“전번에 말씀드렸었던 매화신협이 성도에 들어왔습니다.”
“…….”
아무 말이 없었다.
하지만 마주한 은형비객의 눈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까만 어둠뿐임에도 주변이 일그러지는 듯한 느낌이 선명했다.
‘이러한 기세라니, 설마…….’
그의 눈에 요동치는 건 공포이자 환희였다.
‘독인지경에……!’
그가 눈을 빛낼 무렵.
“적이는 어디 있느냐?”
나지막한 목소리가 일렁거렸다.
동시에 맹호의 안광이 더욱더 날카롭게 번뜩였다.
“폐관 수련에 들었습니다.”
“불러와라.”
“알겠습니다.”
은형비객이 그대로 몸을 일으켜 자리를 떴다.
“매화신협이라…….”
은형비객이 있던 곳을 가만히 바라보던 당가의 가주가 입매를 비틀었다.
“시험하기 좋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