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 Mechanic Player RAW novel - Chapter 211
211화
“고, 공대장님.”
망연자실한 눈으로 밖을 바라보고 있는 사내들.
당장이라도 뒤따르고 싶었지만 용기를 내지 못했다.
체념을 한 채 슬그머니 개방된 도어를 닫는 그들.
이내 자리에 앉은 사내들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굽어보던 당당함과 오만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
참으로 태세 전환이 빠른 이들이었다.
“여기 무슨 일 있습니까?”
뒤늦게 A 구역에서 넘어온 관리자가 파티션을 젖히며 물은 말이었다.
기체가 심하게 요동을 치니 혹시나 해서 와 본 것이다.
그런 그를 향해 태정이 별일 아니라는 듯 입을 열었다.
“아무 일 없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아뇨. 앞엔 전혀… 그런데 자리가 비는 것 같은데. 백두산 공대장님과 제닉스의 한 분은 어디 가셨습니까?”
“화장실에 간 것 같습니다.”
“두 분이 다요?”
“네.”
“음. 일단 알겠습니다. 기체가 불안정한 것 같으니, 돌아오면 자리에 착석해 계시라 전해 주십시오.”
관리자가 돌아간 후 태정이 양태식을 돌아보며 말했다.
“걱정되십니까?”
“일을 너무 크게 벌리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야, 말로 해도 충분했을 텐데.”
“미리 기선 제압을 좀 했다고 생각하십시오. 저들의 태도를 보니, 가서도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날 것 같은데. 미리 하나 잡아 놓으면 아래 서열에 대변을 해 주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네만. 공대장 하나 잡았다고, 저 기세등등한 자들이 수긍을 할지 모르겠군. 백두산의 길드 마스터는 만만치 않은 인물이야. 더군다나 연결되어 있는 길드만 해도 몇 개인지 가늠이 되지 않지.”
“그들이 두려우십니까?”
“나야 개인이니 겁날 게 뭐가 있겠는가. 훈련 기간 동안 길드원들에게 해코지나 하지 않을까 그게 걱정인 거지.”
“그런 것이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제가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요.”
“그 말은, 청룡대주처럼 하겠단 뜻인가?”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죠. 그런데 저런 놈들을 상대하는 방법은 따로 있습니다.”
“그게 뭔가?”
“보이콧입니다.”
“보이콧? 여기서 웬 보이콧?”
“국가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힘입니다. 1년에 한 번, 실패 시 압도적인 전력 차이가 날 수도 있는 이 국가전에선 인맥도 뭣도 아무 쓰잘데기가 없습니다. 얼마나 많이 킬을 낼 수 있고, 또 아군에 도움이 되는지가 중요한 것이죠.”
“그거야 당연한 말이지.”
“그럼 톱 텐의 입장에서 저희와 백두산 중 하나를 택하라면 어딜 택하실 것 같으십니까.”
“그야 당연히…….”
“저희겠죠. 톱 텐 정도면 금사자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미 모두 전해 들었을 겁니다. 뭐 모른다면 보여 주면 되는 것이고요.”
“그래서 놈들이 시비를 걸어오면 우린 참가를 하지 않겠다?”
“그게 아니죠. ‘놈들과 함께한다면 우린 참가를 하지 않겠다’입니다. 그럼 팽을 당할 백두산은 똥줄이 타서 저희 앞에 와 고개를 숙일 겁니다. 1년 대계가 수포로 돌아갈 테니까요. 백두산의 서열이 17위인 건 국가전 버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데, 이번에 그걸 받지 못한다면 서열은 당연히 곤두박질치겠죠. 전력 역시 약화가 될 것이고요. 그럼 이후 있을 영지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일리가 있는 말이야. 근데 자네 뭔가 평소와 다르게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군.”
“아시잖습니까. 제가 가진 특성이 여기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것을요. 그들은 절 필요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백두산에 있는 모든 법사의 광역기를 끌어모아도, 제 스킬 한 방보다 못할 테니까요. 그리고 이건 톱 텐 아래 다른 길드에도 똑같이 적용이 되는 말입니다.”
태정의 말은 사실이었다.
워 메이지들이 대규모 공성에 꽃이라고는 하나, 그건 메카닉이 존재하지 않을 때나 통하는 얘기였다.
일단 범위부터가 넘사벽이었다.
가장 약한 천무만 해도 축구장 2, 3개는 씹어 먹고도 남는 수준.
그 이상은 무려 킬로미터 단위였다.
어디 그뿐인가.
그에겐 어지간한 원딜은 재 보지도 못할 캐논포와 분당 수천 발을 갈길 수 있는 발칸포가 있었다.
그냥 기본만 해도 이 정도인 것이다.
여기에 폭격기나 전투기, 천신병과 휴머노이드 부대까지 포함시키면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군대나 다름이 없었다.
눈에 거슬리면 서열 17위의 따위는 바로 짐 싸 보내 버릴 수 있는 전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리도 자신을 할 수밖에.
태정이 양태식 등을 안심시키고 있을 때, A 구역은 한바탕 난리가 난 상태였다.
“저게 뭐냐?”
“사, 사람 아니야? 사람 같은데?”
비행기 날개 위 사람 두 명이 서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한 명은 서 있고 한 명은 머리채가 잡혀 나풀거리고 있는 상태.
어떻게 저들이 저곳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매우 위태로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대체 저들은 저곳에 어떻게 올라가게 된 것일까.
“누구지? 어디서 많이 본…….”
“엇. 저거 백두산 박기태 아냐? 잡혀 있는 인간.”
“어? 진짜네? 저 인간이 저기 왜 올라가 있냐.”
종이 인형처럼 나부끼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박기태였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을 지나 B 구역으로 걸어 지나갔던.
기내에 있어야 할 그가 왜 저곳에 있는 것일까.
문제는 나머지 한 사람이 누군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 저 사람은 뭐야?”
“글쎄. 처음 보는 얼굴인 것 같은데.”
모두가 의아해하는 가운데, 누군가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아! 저 사람 그거다. 아까 마지막에 탑승했던. 그 팀 말이야.”
“뭐? 진짜?”
“그래. 옷 더럽게 못 입는다고 아까 너희가 깠었잖아.”
“오. 그러고 보니 차림새가 형편없긴 한데. 근데 왜 저 사람이 백두산 공대장의 머리채를 잡고 있냐.”
“그냥 잡고 있는 게 아닌 것 같은데? 저거 쳐 맞고 있는 거 아냐?”
창문이 없는 B 구역과는 다르게 일반 좌석에 앉은 A 구역 헌터들은 외부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형편없다고 생각한 팀의 일원이 길드 서열 17위의 공대장을 패고 있는 상황.
기습을 당했다 해도 믿기가 힘들 정도인데, 그의 몸이 붉게 빛나는 걸로 봐선 스킬까지 쓰고도 당하고 있는 눈치였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흠씬 두들겨 맞고 있는 박기태의 모습.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광경이었다.
“여기! 잠깐 와 보십시오.”
누군가 관리자를 호출했다.
그러자 갤리의 문이 열리며 인솔자가 등장했다.
“무슨 일입니까.”
“저기 밖에 좀 보십시오.”
모여 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관리자가 다가가 창밖을 바라봤다.
그러자 날개 위 위태롭게 서 있는 두 명의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그가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아, 아니? 저 사람들이 저길 왜?”
인솔자의 반응은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에 가서 확인을 했기 때문이다.
화장실을 갔다고 한 이들이 왜 저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일까.
바로 그때.
“어어어!? 날아간다!”
“x 됐다.”
날개 위에 서 있던 두 명의 사내가 종이 인형처럼 날아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창문에 볼을 붙인 채 급히 후방을 살피는 사람들.
하지만 이미 그들은 시야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애초에 아무 장치 없이 이 정도의 강풍을 버티며 서 있는 것이 신기한 것이었다.
비상임을 깨달은 인솔자가 급히 B 구역으로 달려갔다.
“어떻게 된 겁니까!?”
밑도 끝도 없이 묻는 그를 사람들이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사내가 답답하다는 듯 백두산 간부들을 바라봤다.
“백두산 길드 공대장님 어디갔습니까.”
“그게…….”
“제닉스 길드장님, 이거 설명 가능하시겠습니까.”
“그게…….”
둘 모두 난감한 입장이었다.
한쪽은 쪽팔려서고 다른 한쪽은 일을 벌인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솔을 책임지고 있는 사내에게 그런 것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날개에 서 있다 뒤로 날아갔습니다. 추락을 했다고요! 왜 아무도 안 말린 겁니까? 대체 도어를 왜 열었냔 말입니다. 대체 왜!”
사내가 x 됐음을 직감한 표정으로 소리치자 가만히 듣고 있던 태정이 입을 열었다.
“그리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훈련이 있기도 전에 사람이 죽었는데 걱정을 하지 말라니요? 당신들은 사람 한 명 잃은 것일지 몰라도 이곳을 책임지고 있는 나는 끝장이란 말입니다.”
“그들은 살아 있습니다.”
“뭐라고요?”
“살아 있다고요.”
“그걸 어떻게 자신합니까? 여긴 지상으로부터 수천 미터 상공입니다. 비행 스킬의 임계고도를 훨씬 초과해서 설사 장비가 있다 하더라도 무조건 떨어집니다.”
“알죠. 근데 우리 청룡대주가 있는 한 추락은 없습니다.”
확신에 찬 대답이었다.
“자신할 수 있습니까?”
“200% 자신합니다. 기다려 보시죠, 곧 돌아올 테니.”
태정은 전적으로 한상진을 믿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능력이었다.
대지로부터 임계고도가 정해지는 비행 마법과 다르게 한상진의 천상제는 활성화된 지점이 시작점이었다.
즉 이론상으론 임계점이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최대 고도에 이르러 계속 재전개를 하면 되는 것이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한대로 상승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체가 버틸 수 있는 환경이란 전제가 따라붙으니까.
물어보진 않았지만 신체적 능력이 극에 달한 그라면 아마도 대류권 상부에서 성층권 하부까지는 무리 없이 쏘다닐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외부에선 한상진의 기운이 제라드를 통해 파악이 되고 있는 상태였다.
모두가 초조한 채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살아 있을까?
그 의문은 기내 전체로 퍼져 수시로 A 구역에서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 안 돼. 알려야겠어. 시간이 너무 흘렀어.”
체념을 한 인솔자의 입에서 절망적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바로 그때였다.
쿵! 쿵쿵! 쿵!
갑자기 기체 한곳에서 소음이 일기 시작했다.
진원지는 비상구였다.
가장 먼저 반응을 한 것은 바로 옆에 있던 백두산 길드의 사람들이었다.
도어 창을 확인하자마자 그들이 기겁을 하며 물러섰다.
“허, 허억!”
“왜, 왜 그러십니까?”
급히 인솔자가 다가갔다.
그러자 그는 왜 그들이 그런 반응을 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귀신 같은 몰골 하나.
그것은 최소 사람이 아니었다.
안면이 완전히 뭉개져 차마 볼 수가 없을 정도의 얼굴.
시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그 얼굴은 창을 두드리고 있었다.
쿵! 쿵! 쿵!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운 광경이었다.
하지만 이내 귀신의 얼굴이 사라지고 그와 대비되는 멀쩡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놀라서 입을 뻥긋거리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씨익 웃는 사내.
그는 한상진이었다.
쉬익! 탁!
털썩.
“공대장님!”
“주, 죽은 것 아냐?”
잠깐 마실(?)을 다녀온 박기태의 몰골은 최소 사망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분노에 찬 이들이 벌떡 일어나 살기 어린 눈빛을 보내 보지만, 자신도 이리될까 무서워 금세 다시 앉아 버린 그들.
나름 현실 감각이 있는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대신해 인솔자가 따져 물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잘한 짓입니다.”
“뭐, 뭐요?”
“숨은 붙어 있으니 끌고 가 치료나 좀 하시죠.”
“…….”
황당해하는 그를 뒤로하고 한상진이 태정 앞에 포권 했다.
“다녀왔습니다, 형님.”
“좀 심한 것 아니냐.”
“어딜요. 워낙 약골이라 제대로 패지도 못했습니다. 사내 자식이 겁은 많아 가지고 오줌을 지리지 않나.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형님.”
“그래.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태정의 치하를 받은 한상진은 자리에 앉으려다 무엇이 생각난 건지 돌연 뒤를 돌아봤다.
“앞으로 알아서들 처신하거라. 또 한 번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될 시엔, 이 청룡의 분노가 너희들의 영혼까지 찢어발겨 버릴 것이다. 그땐 아마 백두산이 아닌 십두산으로 살아가게 되겠지. 으하하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