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628
628
“VIP 고객들이 우리 리조트를 찾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 공세를 펼치는 겁니다.”
뭔가 획기적인 이야기가 나올 줄 내심 기대하고 있던 혁권은 약간 김이 새는 것을 느끼며 답했다.
“음, 일단 이름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
“그리고 이게 가장 중요한 건데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운영하는 겁니다.”
실망스러운 기색을 보이던 혁권은 이어진 말에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카지노라고?”
“그렇습니다. 중국인들이 도박을 즐기는 건 예전부터 유명한 일입니다만, 본토에서는 카지노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대부분 마카오로 넘어가서 유흥을 즐기곤 했습니다. 오죽했으면 마카오 관광객의 거의 대부분이 중국 본토에서 오는 사람들이라는 말까지 있었겠습니까. 실제로 지난 10년간 본토 관광객들 덕분에 마카오 카지노 사업이 몇 배로 커진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최근 중국 정부의 부패 청산 정책 일환으로 실시된 도박 산업 단속에 중국 관광객들의 마카오 체류 허용기간이 7일에서 5일로 대폭 줄어들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중국에서 가깝고 무비자 체류가 되는 제주도로 도박꾼들이 몰려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에 크게 흥미를 보였다.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다는 것이 크게 작용했겠군.”
“그런 것도 있지만 중국 정부의 감시를 받지 않고 거액을 환전하고 전 세계 어디든지 간단하게 송금할 수 있다는 점이 큰손들의 관심을 끌었을 겁니다.”
“어째서 그렇지?”
의아한 얼굴로 묻자 박종호 지배인이 살짝 굳은 목소리로 이유를 설명했다.
“단순히 카지노에 와서 도박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뇌물이나 지하 자금의 검은돈을 세탁하는 창구로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거액이 움직이는 카지노만큼 검은돈을 돌리기 좋은 것도 없지.”
그때서야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혁권이 작게 머리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하지만 곧 다른 의문점이 생각난 듯 그가 머리를 갸웃거렸다.
“카지노 운영권을 획득하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말이야.”
상당한 이권이 걸려 있는 데다 법적인 제한까지 있었기에 카지노 운영권을 받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자 지배인이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건 염려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
“저도 이곳에 내려와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이미 외국인 전용 카지노 운영 허가를 받아 둔 상태였습니다.”
눈을 크게 뜬 혁권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게 정말이야?”
“예. 허가 서류를 따로 빼서 보관해 뒀으니 원하시면 지금 당장이라도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허가 일자가 리조트 건설 전인 걸 보면 완다 그룹에서도 처음부터 카지노 운영을 염두에 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예 일반 객실을 만들지 않고 스위트룸만 집어넣은 거군.”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카지노 운영권이 있는 걸 알았다면 매입 금액이 더 높아졌을 텐데 그러지 않은 걸 볼 때, 한꺼번에 많은 부동산을 급하게 처리하다 보니 미처 챙기지 못한 것 같았다.
어찌 됐건 혁권 입장에서는 숨겨진 보물을 찾은 기분이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그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앞에 있는 박종호 지배인을 봤다.
“운영권까지 있으면서 왜 리조트에 카지노를 설치하지 않은 거지?”
카지노를 운영하려면 별도의 시설이 있어야 되는데 현재 세워진 리조트에서는 그런 공간이 전혀 없었다.
“원래는 함께 개장을 하려고 했지만 약간의 문제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문제?”
혁권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원래 리조트 부지와 붙어 있는 도유지 1,500평을 매입해서 카지노 객장을 비롯한 여러 부대시설을 만들려고 했는데, 시민 단체와 도의회의 반대에 부딪쳐서 계획이 진행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차선책으로 별관 건물 하나를 용도 변경하는 것도 마침 있었던 지방 선거와 맞물리는 바람에 도지사가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더군요.”
“반대를 하는 이유가 뭐야?”
“이미 8개나 되는 카지노가 운영되고 있는데, 또다시 카지노가 개장하게 되면 제주도가 자칫 도박 천국이 될 수 있고, 처음 기대하고 달리 카지노 업체들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겁니다.”
“기존 파이를 나눠 가져야 되는 다른 카지노 업체들의 견제도 한몫했겠지.”
“그렇습니다.”
“결국 리조트가 정상적으로 영업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건 원래 계획대로 카지노를 여는 것에 달려 있다는 거군.”
상황을 납득한 혁권은 지금까지 들은 정보들을 정리하는 것처럼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잠시 동안 침묵이 흐르는 사이 박종호 지배인 역시 아무 말 하지 않고 조용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무언가 결정을 내린 혁권이 고개를 들고는 입을 열었다.
“카지노 문제는 내가 해결해 줄 테니까, 자네는 인원 확충을 비롯해서 리조트 개장에 차질이 생기지 않게 만반의 준비를 끝내도록 해.”
“알겠습니다.”
“바쁠 테니 그만 나가 봐.”
“그럼 편히 쉬십시오.”
자리에서 일어난 박종호 지배인이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다가 바로 하고는 객실을 나갔다.
그렇게 혼자 남은 혁권은 소파 팔걸이를 손끝으로 천천히 두드리면서 잠깐 생각하는 듯싶더니 이내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등록되어 있는 이름들을 쭉 넘기면서 누군가를 찾았다.
엄지손가락을 몇 번 움직인 끝에 마침내 목록 중간에서 멈춘 그가 통화 버튼을 누르자 긴 신호음이 울리고 남성의 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 김 대표, 오랜만이오.
전화를 건 상대는 바로 야당 국회의원인 안기헌이었다.
태일건설을 상대하기 위해 처음 인연을 맺은 이후 정기적으로 적지 않은 돈을 후원하면서 끈을 계속 이어 두고 있었다.
“바쁘신데 연락을 드린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하하하.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 대표 전화라면 설사 일이 있더라도 미루고 받아야 되지 않겠소.
상대의 대답에 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제아무리 콧대 높은 국회의원이라도 돈 앞에는 장사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안부 전화를 한 건 아닌 것 같고. 무슨 일이오?
“혹시 제주도 도지사님하고 친분이 있으십니까?”
-제주도라면 서문종 도지사를 말하는 거요?
“그렇습니다.”
-서 지사하고는 사적으로 대학 선배이기도 하고 신문 기자로 재직할 때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요.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서 지사님하고 만날 수 있도록 주선을 좀 해 주시겠습니까?”
-그거야 뭐가 어렵겠소. 한데 갑자기 서 지사는 왜 만나려는 거요?
뭔가 흥미로운 냄새라도 맡은 듯 상대가 관심을 보이자 혁권은 대충 얼버무리는 대신 사실대로 말해 주었다.
물론 진짜 중요한 것은 예의 바른 웃음 뒤에 숨긴 채였지만 말이다.
“제주도에서 새로 사업을 하나 하려는데 몇 가지 애로 사항이 있어서 조언을 좀 구하려고 그럽니다.”
-그런 거라면 내가 미리 서 지사한테 잘 부탁한다고 미리 이야기를 해 두겠소.
“감사합니다.”
-우리 사이에 뭘 이 정도 가지고 그러시오. 나중에 시간이 되면 밥이나 한번 같이합시다.
“그러시죠. 참, 그리고 곧 동작구에 사무실을 여신다고 들었습니다.”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주민들의 민의民意도 수렴할 겸 사무실을 내기로 했소.
“잘하셨습니다. 미리 바닥 민심부터 차근차근 다져 두면 아무래도 나중에 분명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오.
“저도 힘이 닿는 만큼 도와드릴 테니 언제든지 말씀을 하십시오.”
-이거, 김 대표가 그렇게 이야기를 해 주니 든든한 것 같소이다.
“그러면 조만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럽시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소파 등받이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 혁권은 리조트 운영의 열쇠를 쥐고 있는 서문종 제주 도지사를 어떻게 회유할 것인지 차분히 생각했다.
혁권이 묵은 객실에 마련된 킹사이즈 침대는 그야말로 구름 위에서 자는 것처럼 무척이나 푹신하고 편안했다.
오죽하면 게으름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혁권마저도 아침에 일어나야만 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덕분에 평소보다 5분 정도 늦어 버린 혁권이 방을 나와 제일 먼저 한 일은 리조트 주위를 한 바퀴 도는 것이었다.
“후욱, 훅…….”
규칙적으로 팔을 흔들며 유연하게 굽힌 무릎으로 땅을 박차는 몸짓이 가벼웠다.
새삼스럽지만 러닝머신 위에서 뛰는 것보다 제대로 된 흙을 밟는 것이 운동엔 도움이 되는 게 확실했다.
러닝화의 쿠션이 무릎에 가해지는 충격을 완화시켜 주고, 몸이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공기를 가르면서 느껴지는 바람이 전신의 근육을 더욱 활발하게 긴장시켰다.
워낙에 넓은 부지라 두세 바퀴를 돌았을 즈음에는 혁권의 등이 땀으로 흠뻑 젖어 버렸다.
숨을 고르면서 발을 멈춘 혁권은 손목에 시계 대신 찬 애플 워치로 시간과 달린 거리를 확인했다.
“이제 들어가실 겁니까?”
함께 뛴 하킴이 깨끗한 수건을 갖다 주면서 묻자 혁권은 코웃음을 쳤다.
“무슨 소리야? 이제 겨우 워밍업을 끝낸 참인데.”
이게 워밍업이면 아예 철인 8종 경기 예행연습이라도 하실 셈인가 싶었다.
“적당히 하십시오. 오늘도 스케줄이 잡혀 있는데 아침부터 체력을 낭비하시면 어쩝니까.”
“그래도 말이야, 이렇게 맑은 공기와 자연을 앞에 두고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몸이 쑤셔서 못 견디겠다고.”
“그 말씀엔 동의합니다만…….”
혁권은 여전히 할 말이 남은 듯한 하킴을 뒤로하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음. 역시 사람은 흙을 밟고 살아야 된다니까.”
요 근래 사업 문제 때문에 계속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바쁘게 지내다가 제주도의 녹음을 마주하니 가벼운 해방감마저 느껴졌다.
“이참에 아예 별장을 하나 지어 버릴까.”
위치만 따지자면 지금 있는 자리가 제일 좋겠지만 이미 리조트가 들어섰으니 아쉬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풍경 좋은 곳에 위치한 또 다른 땅이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여름에는 바다에서 낚시를 하고, 겨울엔 눈 내리는 걸 보면서 느긋하게 쉬는 거야. 그럼 참 좋지 않겠어.”
그렇게 혼자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백성균이 건물에서 나와 가까이 다가왔다.
“운동은 다 끝나셨습니까?”
“할 말이라도 있나?”
“서문종 도지사에 관한 자료가 도착했습니다.”
마침 기다리고 있던 거였기에 수건으로 얼굴에 묻은 땀을 닦아 내던 혁권은 눈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이리 줘 봐.”
건네받은 서류철을 펼친 혁권은 안에 적혀 있는 내용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흔히 찌라시라고 불리는 증권가 소식지를 만드는 곳을 통해 입수한 자료였는데, 꽤 많은 돈을 지불한 만큼 하루 만에 만들어진 것치곤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제법 들어 있었다.
특히 도지사로 있으면서 야당 내부의 일에 관심을 기울이며 몇몇 국회의원들과 아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 시선을 줬다.
“욕심이 아주 많은 인물이군. 하긴 정치인치고 더 큰 권력에 대한 욕구가 없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겠지.”
서류철을 다 살펴본 혁권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백성균을 봤다.
“카지노 개장에 반대한 도의원과 시민 단체 명단도 따로 뽑아 놨겠지?”
“예.”
“지난번처럼 다 된 밥에 재를 뿌리지 않도록 미리 뒷돈을 넉넉하게 찔러 줘서 입을 다물게 만들어 놔.”
“알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혁권은 서류철을 돌려주고는 다시 산책로를 따라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