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641
641
하와이에 도착한 드라마 스태프와 배우 들은 아름답기로 유명한 와이키키 해변 한쪽에 위치한 고급 리조트에 짐을 풀었다.
넓은 대지에 80여 개의 객실을 갖춘 리조트에는 워터 슬라이드Water Slide와 다양한 콘셉트의 수영장 4개가 있고, 앞으로 나오면 푸르른 태평양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용 해변이 펼쳐져 있었다.
그 외에도 간단히 라운딩을 즐길 수 있는 2홀 규모의 골프 코스와 피로를 풀어 줄 스파까지 투숙객들을 위한 다양한 시설들을 부족함 없이 갖추고 있었다.
여길 혁권이 배포가 크게 드라마 스태프와 배우 들을 위해서 일주일 동안 통째로 빌려 버렸다.
덕분에 다른 투숙객들을 신경 쓸 필요 없이 모두들 편하게 마음껏 포상 휴가를 즐길 수 있었다.
“꺄~!”
“오른쪽, 오른쪽!”
쨍쨍한 햇빛이 쏟아지는 가운데 여자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상당히 넓은 풀장이라 일부는 나눠서 비치볼을 던지면서 놀았고, 수영에 익숙한 몇몇은 자유롭게 물살을 가르며 해방감을 만끽하는 한편,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은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발만 담근 채 남쪽 나라의 따뜻한 햇살을 즐겼다.
“다들 즐거워 보이네요.”
선베드에 편안한 자세로 누운 소현이 그렇게 말하자 바로 옆자리에 있던 은신영이 느릿하게 말을 받았다.
“일주일 동안이나 외국에 나와 공짜로 고급 리조트에서 놀고먹을 수 있는 기회인데 당연히 좋지.”
이미 칵테일을 한 잔 비운 은신영은 지나가는 바 직원을 불러서 마가리타를 주문했다.
“또 마시게요?”
“이 정도는 술 먹은 걸로 치지도 않아, 얘.”
“그래도 혹시 취하면 어떡해요?”
“그럼 방에 돌아가서 하루 종일 늘어져 있으면 되지. 원래 휴가는 느긋하게 즐겨야 되는 거야.”
그러는 너야말로, 하면서 은신영이 풀장 쪽을 눈으로 슬쩍 가리켰다.
“모처럼인데 물에 발이라도 담그지그래?”
“저도 사람 많은 데는 별로 안 좋아해요. 차라리 이렇게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편이 훨씬 나아요.”
“후후, 너도 나랑 같은 과구나.”
“게다가 매니저가 얼굴 타면 안 된다고 얼마나 신신당부를 하든지.”
젊은 남자 스태프들과 어울려 해변에 나가면서도 선크림은 꼭 챙겨 발라야 한다고 말하던 도형석의 얼굴을 떠올리며 소현이 대꾸했다.
“여배우는 하얀 피부가 생명이니까. 그런데 진짜 남자들은 하루 종일 나가 있을 생각인가, 연락 하나 없네.”
“해변에서 논다고 하지 않았어요? 안 그래도 서핑 한번 배워 보겠다고 우리 매니저도 엄청 기합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남자의 로망이라나 뭐라나.”
“흥, 설마 걔네들이 진짜 해양 스포츠를 즐기러 갔겠어.”
은신영이 비스듬히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보나 마나 쭉쭉빵빵 예쁜 언니들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겠지.”
“하하하.”
생각해 보니 다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아 대꾸할 말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야 지극히 건전하게 레저 활동을 하고 있을 거라고 믿어 주고 싶지만, 리조트에서 한 발짝만 나가면 바로 아슬아슬한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이 해변에 엄청나게 많을 텐데, 과연 그 유혹을 떨쳐 낼 수 있을지 실로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여기 이렇게 멋진 미녀가 둘이나 있는데 말이야. 날도 더운데 왜 굳이 고생을 자처할까 몰라.”
은신영은 패디큐어까지 완벽하게 꾸민 발끝을 꼼지락거리면서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아무튼 사람들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쉴 수 있어서 너무 좋다.”
기지개를 켜듯 양팔을 위로 쫙 뻗으면서 은신영이 내뱉는 말에 그녀는 살짝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몇 달 동안 드라마를 찍느라 정신없이 달려오다 보니 이렇게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이 행복하고 말 그대로 힐링이 되는 것 같았다.
친한 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혁권이 여기 함께 없는게 너무나도 아쉬웠다.
그렇게 선배드에 누워 일광욕을 얼마쯤 즐겼을까 갑자기 짙게 드리워진 그림자에 소현은 의아한 얼굴로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누구……?”
무심코 고개를 든 시야에 하얀 셔츠를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혁권의 얼굴이 가득 담겼다.
“재미있게 잘 보내고 있었어?”
“오…… 아니, 대표님.”
하마터면 말실수를 할 뻔할 정도로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소현은 깜짝 놀랐다.
옆에 있던 은신영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몸을 일으켰다.
“어머! 언제 오셨어요?”
“다들 여기 와 있는데 나만 빠질 수 없지 않겠어요.”
같은 소속사였기에 두 사람의 관계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은신영은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 소현을 힐끗 쳐다봤다.
“그렇지 않아도 대표님이 안 계셔서 다들 아쉬워했는데, 잘 오셨어요.”
“하하하. 그래요.”
혁권이 여전히 선 채로 대꾸하자 대충 분위기를 파악한 그녀가 커다란 비치타월로 어깨를 감싸고 일어났다.
“마사지 예약해 둔 게 있어서 전 이만 가 봐야겠네요.”
그러면서 소현에게 눈으로 인사하고 자리를 비켜 주자 혁권이 자연스럽게 소현의 옆자리를 꿰찼다.
“어때, 잘 쉬고 있어?”
“보는 대로요.”
“미안. 갑자기 일이 생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어.”
“괜찮아요. 어째든 이렇게 왔으니까 됐어요.”
그는 애정이 듬뿍 담긴 눈빛으로 소현을 바라보며서 말했다.
“밖으로 나갈까?”
“어딜 가려고요?”
“날씨도 맑은데 오랜만에 시원하게 해변 도로를 달려 보는 건 어때?”
“좋아요.”
이야기를 들은 소현은 반색을 하면서 선배드에서 일어났다.
얼른 객실로 올라가 옷만 갈아입고 내려오자 섹시한 여성이 붉은색 립스틱을 바른 것처럼 아름다운 디자인의 페라리 488스파이더에 혁권이 등을 기대고 서 있다가 그녀를 발견하곤 손을 흔들었다.
“이 차는 어디서 난 거예요?”
“공주님을 모시는데 이 정도는 준비를 해야 되지 않겠어.”
그러고는 조수석 차 문을 열어 주면서 말했다.
“타실까요, 공주님?”
능청스러운 모습에 소현은 깔깔 소리를 내고 웃으면서 스포츠 카에 올라탔다.
한쪽 손을 뻗어서 노란색 안전벨트를 매어 준 혁권이 스타트 버튼을 누르자 670마력의 엔진이 마치 성난 야생마처럼 금방이라도 앞으로 뛰쳐 나갈 것처럼 커다란 굉음을 토해 냈다.
부아아앙!
“자, 그럼 신나게 달려 볼까.”
“어서 가요!”
혁권이 가속페달을 밟자 기다렸다는 듯이 페라리가 늘씬한 차체를 뽐내면서 천천히 리조트를 빠져나갔다.
눈 깜짝할 새에 도심지를 벗어난 페라리는 양쪽으로 잎이 넓은 야자수가 심어져 있는 아스팔트 도로를 타고 해안을 따라 달렸다.
아무것도 눈에 걸리는 거 없이 탁 트인 풍광에 소현이 신나는 표정으로 한쪽 팔을 뻗었다.
손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바람을 만끽하면서 눈을 돌리니 초록빛과 바다의 푸른색이 어우러지면서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풍경이 끝없이 이어졌다.
페라리를 보고 깜짝 놀라 옆으로 비켜선 다른 운전자가 미소 띈 얼굴로 손을 흔들자 소현도 밝게 웃음을 터트렸다.
“기분 좋아?”
“네! 더 빨리 달릴 수 있어요?”
“그럼.”
혁권이 기어를 바꾸는 것과 동시에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자 계기판에 있는 RPM 바늘이 반대편으로 쫙 올라가면서 공기를 찢는 엔진음이 터져 나왔다.
“와우!”
옛날 청춘 영화처럼 두 팔을 활짝 벌린 소현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순수하게 즐거워하는 모습에 혁권 역시 기쁜 마음을 느끼면서 길게 뻗은 도로를 원없이 내달렸다.
그렇게 섬 한 바퀴를 돈 혁권은 잠시 해안도로에서 벗어나 파도가 치는 절벽 위에 페라리를 세웠다.
“하늘이 너무 예뻐요.”
소현은 손가락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돈하며 황홀감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혁권 역시 일순 감탄했을 정도로 하와이의 석양은 아름다웠다.
해가 천천히 기울어 가면서 하늘이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는데, 아무리 뛰어난 실력의 화가라도 똑같은 색감을 재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했다.
차 문을 열고 내린 소현은 절벽 끝으로 걸어가서는 싱그러운 바다 냄새를 맡으면서 황홀한 얼굴로 말을 내뱉었다.
“너무 아름다워요.”
옆으로 다가온 혁권은 차가운 밤바람에 감기라도 걸릴까 봐 입고 있던 윗도리를 벗어 그녀에게 덮어 주고는 함께 석양이 지는 바다를 바라봤다.
“이러고 있으니까. 그리스에서 우리가 처음 만났던 때가 생각나네.”
“아…….”
화보 촬영을 위해 그리스에 갔을 때 혁권을 만나 지금과 똑같이 석양이 지는 바닷가에서 서로 호감을 확인했던 걸 떠올린 그녀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보지 마요.”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이는데도 뚫어져라 쳐다보는 혁권의 가슴을 소현이 살짝 밀쳤다.
“왜, 예쁜데.”
어깨 위로 두른 손에 힘을 주어 끌어당긴 혁권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소현을 귀엽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얼굴을 가까이 대었다.
“사랑해.”
“……저도요.”
점차 좁아지는 거리에 소현이 스르르 눈을 감았다.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온 한숨은 이내 서로의 입술이 맞닿은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새롭게 태일정유 이사로 취임한 김인철은 개인 사무실에서 비정유 부분 담당 간부들을 소집해 현황 보고를 받았다.
“현재까지 나프타를 비롯한 비정유 부분 1/4분기 매출은 3,800억 원이 넘었고 최종적으로 4천억을 넘길 수 있을 거라고 예상됩니다.”
비정유 부분 사업 본부장인 김규환의 설명을 들은 김인철은 손에 든 서류를 천천히 훑어본 뒤 고개를 들면서 물었다.
“나프타 시세가 계속 오르는 중이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톤당 500달러로 전 달하고 비교해 60달러나 오른 상황입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나프타 공급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기에 앞으로 500달러 후반까지는 무난하게 상승할 거라는 것이 저희 예상입니다.”
“이런 추세라면 톤당 600달러까지 오를 수도 있겠군.”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시간이 지나 공급이 늘어나면 적당한 수준에서 안정을 찾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에둘러서 600달러는 넘지 않을 거라는 의견을 내비쳤으나 김인철의 판단은 달랐다.
“정유 업체들의 증산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사이에 화학제품들의 기본 원료가 되는 나프타 수요 역시 늘어날 테니까. 나프타 가격이 꺾기는 일은 없을 거야.”
너무나도 낙관적인 전망에 김규환 본부장은 살짝 당황한 얼굴을 한 채 김인철의 눈치를 살피면서 우려를 표시했다.
“저희만 해도 나프타 생산량을 150만 톤까지 늘리려고 하는데, 다른 업체들의 증산 물량을 생각하면 자칫 공급이 수요를 초과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도 어느 정도는 말이 통하는 것 같아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김규환 본부장은 이어진 김인철의 이야기에 눈을 크게 치켜떴다.
“하지만 늘어난 생산량만큼 우리가 자체적으로 소화를 한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겠나.”
“그게 무슨…….”
“단순히 원유를 정제해서 나프타를 판매할 것이 아니라 에틸렌Ethylene과 같은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한다면 비정유 부분의 안정성이 더욱 좋아질 뿐만 아니라 부가가치 또한 높일 수 있지 않겠냐 이거야.”
“설마 후속 공정 시설을 새로 지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맞아.”
당연하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이는 김인철의 모습에 김규환 본부장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미 나프타 생산 설비를 확충하는 데 1조 원이 넘어가는 대규모 투자가 예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시설을 만들겠다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대기업이고 태일정유가 흑자를 내고 있다지만 이건 상당히 무리수를 두는 행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