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658
658
#쿠데타
“김종원 회장이 쓰러졌다고?”
면바지에 얇은 가디건을 걸친 채 소파에 앉아 있던 혁권이 눈을 크게 뜨면서 되묻자 백성균이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응급수술을 받고 현재 태일병원 VIP 병실에 입원해 있는데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심각한 거야?”
“태일그룹 측에서 정보 유출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어서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예정된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그룹 주요 임원들이 소집돼 비상 대책회의까지 한 걸 보면, 병세가 많이 안 좋은 것이 분명합니다.”
태일그룹의 권력을 한 손에 틀어쥐고 제왕적인 경영을 수십 년간 이어 온 김종원 회장이었기에, 좋든 싫든 갑자기 그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다면 큰 혼란과 불안감을 야기시킬 수밖에 없었다.
당장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다면 태일그룹 주가부터 크게 출렁거릴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발생했군.”
손가락 끝으로 앉아 있는 소파 팔걸이를 가볍게 두드리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린 혁권은 이내 고개를 들어 백성균을 봤다.
“병명이 뭐야?”
“뇌졸중이라고 합니다.”
이야기를 들은 혁권이 미간을 찌푸렸다.
중요한 기관인 뇌에 심각한 손상을 끼치는 뇌졸중이라면 예상보다 상황이 더 안 좋은 걸 수도 있었다.
“이러면 태일그룹 후계 구도가 더욱 복잡해질지도 모르겠군.”
그러자 앞에 서 있던 백성균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혼란을 겪기는 하겠지만 태일건설 사장을 맡고 있는 장남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경영을 이어받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야심이 많은 김인철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그래 봤자 김성균 사장과 비교해서 그룹 내부의 지지 기반이 약해 경영권을 차지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일반적으로 볼 때 오랫동안 태일건설 사장직에 있으면서 그룹에 관여한 데다 장남인 김성균 사장이 경영권을 이어받는 것이 타당해 보이는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혁권의 생각은 달랐다.
소파 등받이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 그는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뗐다.
“후계 구도에서 좀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친형까지 교통사고로 위장해 거침없이 살해한 놈이야.”
“······.”
“그런 놈이 눈앞에서 그룹 후계자 자리를 빼앗기는 걸 그냥 두고만 보고 있을 것 같아? 틀림 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태일그룹의 경영권을 손에 쥐려고 할 거야.”
이야기를 들은 백성균은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군요.”
그는 손끝으로 턱을 매만지다가 흠, 소리를 내면서 백성균에게 말했다.
“일단 김종원 회장이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알아내도록 해.”
“알겠습니다.”
머리를 숙이며 대답한 백성균이 물러나자 혁권은 습관적으로 담배 케이스를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그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벽면이 완전히 통유리로 되어 있는 창문 앞에 서서 먼 곳에 시선을 두었다.
그렇게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을 때 안주머니에 넣어 둔 스마트폰 진동이 울렸다.
발신인 이름에 김덕현 전무의 이름이 떠 있는 걸 확인한 그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는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무슨 일인가?”
-큰일 났습니다, 대표님!
마치 누군가한테 쫓기는 사람처럼 상당히 다급한 김덕현 전무의 목소리에 그는 미간을 좁혔다.
“큰일이라니?”
-방금 시에라리온에서 급보가 들어왔는데 수도인 프리타운에서 쿠데타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쿠데타라는 말에 혁권의 머리털이 쭈뼛 곤두섰다.
“지금 쿠데타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반군인 PASL이 패퇴를 거듭해 기니 국경지역으로 밀려나면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쿠데타가 터졌다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바로 냉정을 되찾은 혁권은 애써 차분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육군 참모총장인 쿰부야 대장이 로사니 소장과 함께 반기를 들었습니다. 프리타운에 있는 사무소의 보고에 의하면 대통령 궁을 비롯해 시내 곳곳에서 총성과 폭음이 끊이지 않고 들려오고 있답니다.
“이런······.”
로사니 소장이라면 시에라리온 남부를 맡고 있는 3군단장이었다.
거기다가 군부 실세 중에 하나인 쿰부야 육군 참모총장이 쿠데타를 주도하고 있다니 상황이 심상치가 않았다.
“쿰부야 대장은 코로마 대통령의 측근인 걸로 아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맞습니다. 하지만 쿰부야 대장이 군부를 장악하고 있는 걸 견제한 코로마 대통령이 친인척인 두테 국방장권한테 힘을 실어 주면서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스스로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권을 탈취한 만큼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이인자가 생기는 걸 견제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숙청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상대가 대응하기 전에 재빨리 끝을 냈어야 되는데, 그걸 못하는 바람에 오히려 쿠데타를 부치기는 꼴이 되고 만 거였다.
손에 든 스마트폰을 고쳐 쥐면서 혁권이 물었다.
“프리타운에 있는 직원들은 어떻게 됐나?”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서 사무소를 폐쇄하고 숙소에 모여 있도록 조치를 했습니다.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시내 고급 아파트를 현지 숙소로 사용하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안전이 보장됐다.
“직원들 안전이 최우선이야. 상황이 더 안 좋아지면 프리타운에서 직원들을 탈출시킬 수 있는 방법을 미리 생각해 두도록 해.”
-알겠습니다.
돈은 또 벌면 됐지만 사람 목숨은 그렇지 않았다.
“광산 쪽은 어때?”
-아직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습니다만 3군단이 쿠데타에 가담한 상황이라 당분간은 모아 강Moa River을 이용한 물자 보급을 중단시켜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혁권은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물자를 탈취당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는 것이 좋겠지. 그런데 그렇게 하면 광산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나?”
우려를 나타내자 대안을 생각해 둔 것이 있는지 김덕현 전무가 얼른 말을 받았다.
-지금처럼 보급이 어려워질 때를 대비해서 한 달 정도 버틸 수 있는 물자를 광산에 비축해 놨으니 당분간은 괜찮을 겁니다. 그리고 부족한 물품들은 임시로 수송기를 이용해 보급을 해 주면 되고 말입니다.
“그러면 되겠군.”
다이아몬드 광산 부근에 비포장이지만 상당히 긴 임시 활주로를 만들어 뒀기에 어렵지 않게 수송기가 이착륙할 수 있었다.
물론 수로를 이용하는 것보다 한 번에 가져갈 수 있는 물량도 적고 비용도 비싸게 들어갈 테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중국에서 날아온 미세먼지 때문에 온통 희뿌연 하늘을 바라보면서 사뭇 진지한 얼굴로 그가 물었다.
“이번 쿠데타가 성공할 것 같나?”
앞으로 계속 현지에 위치한 다이아몬드와 보크사이트 광산을 운영해야 되는 혁권 입장에서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특히나 두테 국방부 장관을 통해 현 대통령인 코로마하고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다면 입장이 곤란해질 수도 있었다.
채굴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여차하면 현 정부를 버리고 쿠데타를 일으킨 쿰부야 참모총장 쪽으로 재빨리 배를 갈아타야 됐다.
-3군단 말고도 몇몇 부대들이 쿠데타에 가담했지만, 코로마 대통령이 직접 관리하는 친위대가 있기에 아직은 섣불리 결과를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700명이 약간 넘는 친위대는 대대규모에 불과했지만, 최측근에서 코로마 대통령의 안위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인 만큼 가장 좋은 대우를 받고 최신 장비로 무장되어 있었다.
“쿠데타 군의 규모는 얼마나 되지?”
-정확한 건 알 수 없지만 트리폴리 외곽을 방어하던 1연대가 쿰부야 참모총장의 지시에 따르고 있고 3군단 주력이 주둔지를 이탈해서 수도를 향해 북상 중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걸음을 옮겨 소파로 간 혁권은 김덕현 전무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쿠데타가 터지자 코로마 대통령이 PASL 반군을 소탕 중인 2군단을 급히 프리타운으로 불러들였다는 소문도 있다고 합니다.
제대로 된 정보가 없이 온갖 소문과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상황인 것 같았다.
잠시 뜸을 들이면서 생각을 정리한 혁권은 차분히 지시를 내렸다.
“지금부터 회사를 비상체제로 운영하고 쿠데타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끌어 모으도록 해. 그리고 새로 들어오는 소식이 있으면 나한테 바로 보고하고.”
-광산은 어떻게 할까요?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고 결정을 내리도록 하지. 아틀라스사와 경비대에 연락해서 광산 주변 경비를 강화시키라고 해.”
-예. 말씀하신 대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혁권은 몸을 뒤로 기대면서 굳은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쿠데타라니,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발생했군.”
얼마 있지 않아 CNN을 비롯한 주요 외신들이 시에라리온에서 쿠데타가 벌어졌다는 뉴스를 내보내기 시작하면서 하나둘 구체적인 현지 정보가 들어왔다.
거실에 켜 놓은 커다란 텔레비전에서는 정부군과 쿠데타군이 프리타운 시내에서 현재 교전 중이라는 자막이 아래에 흐르며, 여자 앵커가 아까부터 똑같은 내용을 계속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고 있을 때 하킴이 가까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보스, 김덕현 전무가 찾아왔습니다.”
“김 전무가?”
“예.”
어쩐지 불길한 느낌에 미간을 찡그린 혁권은 리모컨 버튼을 눌러 텔레비전을 끄면서 말했다.
“들어오라고 해.”
밖으로 나간 하킴은 얼마 있지 않아 얼굴이 잔뜩 굳어 있는 김덕현 전무를 데리고 다시 돌아왔다.
“대표님.”
“그리로 앉아.”
“네.”
빈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김덕현 전무를 보며 그가 말했다.
“회사 상황실에 있어야 될 사람이 여길 온 걸 보니 뭔가 일이 생긴 모양이군.”
시선을 받은 김덕현 전무가 무겁게 머리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프리타운에 있는 직원들과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무슨 소리야? 유선이 안 되더라도 비상시를 대비한 위성 전화기를 가지고 있을 거 아냐?”
혁권이 소파 팔걸이를 손바닥으로 내려치면서 언성을 높이자 김덕현 전무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상황을 설명했다.
“1시간 전까지만 해도 위성 전화기로 통화를 했습니다만 그 이후로 전화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숙소로 쓰고 있는 아파트는 비교적 안전한 구역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외국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데다 주변에 외국 대사관들이 밀집해 있어 정부군이나 쿠데타군 양측 다 쉽사리 건드리기 어려운 곳입니다.”
“그런데 왜 연락이 안 되는 거야!”
“면목이 없습니다.”
직원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라고 여러 차례 이야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일이 터진 것에 무척 화가 났지만, 자신만큼 김덕현 전무도 걱정이 될 터였기에 애써 감정을 가라앉히면서 평정심을 유지했다.
“무슨 일인지 짐작되는 거라도 없나?”
“워낙 현지 정보가 부족한 상황이라······.”
“끄으응.”
답답한 상황에 혁권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낮게 침음을 내뱉었다.
“위험 지역이라 현지 직원들 모두 군 출신으로 뽑았고 이럴 때를 대비한 매뉴얼도 여러개 준비해 놨으니 별일 없을 겁니다.”
위로를 한답시고 김덕현 전무가 이야기를 했지만 혁권의 표정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