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679
679
“어째서? 철광산을 가졌을 때의 이점은 자네도 방금 말했지 않나?”
시선을 받은 김덕현 전무는 차분한 목소리로 이유를 설명했다.
“분명 톤코릴리 철광산을 운영하게 된다면 많은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거기에 비례해서 저희가 떠안아야 될 위험 역시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위험이라고?”
의아한 듯이 되묻는 혁권의 말에 김덕현 전무가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현재 저희 회사의 가장 큰 장점이자 취약점은 시에라리온에 모든 사업장이 몰려 있다는 겁니다. 관리적인 측면에서는 유리할지 몰라도 이번 쿠데타처럼 돌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자칫 사업 기반을 한꺼번에 다 잃어버릴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으음.”
그도 충분히 알고 있는 문제였기에 팔짱을 낀 채 낮게 침음을 내뱉었다.
사실 혁권이 위험을 감수하고 시에라리온 쿠데타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다행히 코로마 대통령이 쿠데타 세력을 제압했지만 복잡하고 불안한 정치 상황을 감안할 때 언제 또다시 시에라리온에서 이런 사태가 벌어질지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지난 몇 년간만 생각해도 PASL 반군하고 벌인 내전에 이번 쿠데타까지 정권이 바뀔 뻔한 위기가 두 번이나 있었으니, 김덕현 전무의 걱정이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이대로 그냥 놔두자는 건가?”
몸을 앞으로 당겨 앉은 김덕현 전무는 뜻밖의 방법을 제시했다.
“어렵게 획득한 지분을 방치하는 건 너무 비효율적인 일인 데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시에라리온 정부가 몰수하거나 헐값에 국유화시킬 수가 있으니, 차라리 다른 업체에 매각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매각을 하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자 김덕현 전무가 얼른 말을 덧붙였다.
“네. 마침 전 세계 경기가 살아나면서 철광석을 비롯한 원자제 가격이 전체적으로 오름세이니 지분을 내놓는다면 관심을 보이는 곳이 많을 겁니다.”
확실히 혁권 스스로도 욕심을 가질 만큼 매장량이 풍부하고 채굴도 쉬운 톤코릴리 철광산은 매력적인 매물이었다.
“자네가 그런 말을 하니 좀 의외군.”
“…….”
“누구보다 자원 개발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 않나. 그런데 다들 탐을 낼 광산을 매각하자고 건의하니 뜻밖이라서 말이야.”
그러자 김덕현 전무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솔직히 말씀드린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너무나도 아까운 생각이 가시질 않습니다. 하지만 과한 욕심은 언제나 독이 되는 법이지요.”
“그렇지.”
수긍을 한 혁권은 담배를 한 개비 꺼내 입에 물었다.
김덕현 전무가 품속에서 지포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 주자 그는 하얀 연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뱉으면서 말했다.
“우리가 지분을 매각한다고 하면 시에라리온 정부가 그걸 승인해 줄지 모르겠군.”
돈만 챙겨서 빠져나간다고 탐탁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었는데, 톤코릴리 철광산 말고도 앞으로 현지에서 사업을 계속 이어 나가야 하는 걸 감안하면 시에라리온 정부하고 껄끄러워지는 건 그리 좋은 일이 아니었다.
“시에라리온 정부 입장에서는 철광산을 누가 운영하느냐는 것보단 하루라도 빨리 채굴이 재개되어 부족한 세수를 조금이나마 확보할 수 있는 것이 더욱 중요할 테니, 그리 큰 반발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방금 전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약간의 뇌물을 건넨다면 더욱 일이 쉽게 해결되겠지요.”
“지분을 판다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 것 같나?”
“절대적인 비교 대상은 아니지만 8년 전 중국의 산동철강이 톤코릴리 철광산 지분 25%를 15억 달러에 매입했으니 최소한 그때보다 많이 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운 채 혁권은 눈을 반짝였다.
“그럼 30억 달러가 넘는군.”
“철로를 비롯한 기반 시설이 모두 갖춰졌고 언제든 채굴을 재개해 바로 철광석을 캐낼 수 있는 상태라는 걸 감안하면 그것보다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을 겁니다.”
그냥 던진 이야기가 아니라 나름 시장 상황과 톤코릴리 철광산의 가치를 계산해서 내놓은 액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두 눈을 가늘게 뜬 채 한참을 고심하던 혁권은 이내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일단 양쪽 다 가능성을 열어 두고 톤코릴리 철광산 지분을 매입할 의사를 가진 곳이 있는지 한번 찾아보도록 해.”
“알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혁권은 반밖에 피우지 않은 담배를 탁자에 놓여진 크리스털 재떨이에 비벼서 껐다.
책상 앞에 앉아 심각한 얼굴로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던 박상빈 비서실장은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부장 검사 출신으로 태일그룹 법무팀에서 일하는 이근홍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몸을 일으켰다.
“바쁠 텐데 오라고 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일단 자리에 앉지.”
가운데 소파에 앉은 박상빈 비서실장은 이근홍을 보며 말했다.
“차는 뭘로 마시겠나?”
“커피로 주십시오.”
인터폰으로 차를 시키자 얼마 있지 않아 여직원이 쟁반에 원두 향이 진하게 나는 커피를 두 잔 들고 들어와 탁자에 내려놓고 나갔다.
한쪽 다리를 반대편 무릎에 올린 박상빈 비서실장은 바로 용건을 꺼내지 않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이 변호사, 자네한테 할 이야기가 있는데 절대 외부에 발설하지 않고 비밀을 지켜 줄 수 있겠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이근홍은 약간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무덤까지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작게 머리를 끄덕인 박상빈 비서실장은 옆에 놔둔 서류봉투를 꺼내 탁자에 올려놨다.
“읽어 보게.”
봉투를 열어 안에 들어 있던 서류를 꺼내 내용을 확인하던 이근홍은 이내 크게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고는 박상빈 비서실장을 봤다.
“실장님, 이건…….”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댄 박상빈 비서실장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이근홍의 시선을 받으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회장님이 차명으로 관리하고 있던 비자금과 주식 계좌 목록일세.”
정확한 건 서류를 더 살펴봐야 되겠지만 얼핏 본 것들만 계산해도 족히 수천억 원은 넘는 엄청난 거액이었다.
최측근들도 몇 명만 알고 있을 김종원 회장의 비밀을 보게 된 이근홍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걸 왜 저한테 보여 주시는 건지…….”
“이 지분들을 모두 정리하려는데 자네가 도와 줬으면 좋겠네.”
“설마 실명 전환을 하시려는 겁니까?”
이근홍의 물음에 박상빈 비서실장은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외부에 드러나서 좋을 것이 없는 비자금인 데다 무엇보다 세금 부담이 클 테니 그럴 수는 없지.”
“그렇지요.”
수긍하는 얼굴로 이근홍은 머리를 끄덕였다.
세무당국에서 차명 지분과 계좌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서 다르지만, 최악의 경우 그동안 발생한 수익 90%와 재산 가액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야 될 수도 있었다.
거기다가 금융실명제법 위반에 따른 법적 처벌까지 받아야 되는 걸 생각하면 자발적인 실명 전환은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그럼 어떻게 하시려는 겁니까?”
“조세 회피처에 만들어 둔 페이퍼 컴퍼니로 지분과 자금을 모두 넘길 생각일세.”
“그리한다고 해도 비용은 물론이고 세금이 만만치 않게 나올 텐데요?”
앞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면서 박상빈 비서실장이 말했다.
“실명 전환을 하는 것보다는 부담이 적지 않겠나?”
“그럴 겁니다.”
이근홍은 잠시 말이 없다가 눈치를 살피면서 입을 뗐다.
“차명 계좌들을 정리하려면 회장님의 허락이 필요한데…….”
혼수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는 김종원 회장이 이런 지시를 내리는 건 불가능했기에 묻는 말이었다.
“자넨 몰랐겠지만 회장님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시기 전부터 극비리에 추진하던 작업일세. 그리고 사모님과 장남인 김성균 사장님의 허락을 받고 하는 일이니 아무 염려 할 필요 없네.”
“…….”
괜찮다고 하지만 불법적인 요소가 훨씬 더 많은 일이었기에 이근홍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머뭇거리는 모습에 박상빈 비서실장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은근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이 변호사, 자네가 우리 그룹에 들어온 것도 벌써 4년째지?”
“……예.”
뜬금없는 물음에 이근홍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 정도 그룹 업무에 익숙해졌을 테니 이제 조금 더 큰일을 맡을 때가 됐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최 실장이 이번 총선에 여당 후보로 공천을 받아 출마하게 됐다는 건 자네도 알고 있을 거야.”
“네.”
“공석空席이 될 그룹 법무팀장 자리에 자넬 추천할까 하는데 맡아서 해 볼 마음이 있나?”
“……!”
태일그룹 법무팀장이라면 이사급 대우에 기본 연봉만 수십억 원 이상 받는 아주 높은 자리였다.
돈도 많이 줬지만 재계 서열 상위권에 들어가는 태일그룹의 후광을 받아서 정관계로 진출할 수도 있었다.
말 그대로 돈과 권력을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를 주겠다니 어느 누구라도 솔깃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근홍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소파 끝으로 몸을 당겨 앉으면서 말했다.
“정말 그렇게 해 주실 겁니까?”
의도한 반응에 박상빈 비서실장은 입가에 미소를 짓고는 머리를 끄덕였다.
“자넬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번 일을 맡길 수 있겠나.”
잠깐 고민하던 이근홍은 이내 결심을 굳힌 듯 박상빈 비서실장을 봤다.
“언제까지 일을 끝내면 되는 겁니까?”
“빠를수록 좋네.”
“저 혼자서는 힘들고 별도의 팀을 꾸려야 될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전권을 줄 테니까 필요한 인원이 있으면 자네가 알아서 선발해서 일을 진행하게.”
상체를 바로 세우면서 박상빈 비서실장이 말을 이었다.
“대신 차명계좌의 존재가 외부에 알려져서는 절대 안 되니 보안을 철저히 유지해야 되네.”
“알고 있습니다.”
일이 잘못된다면 제일 먼저 다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 될 테니 이근홍은 정색을 한 채 대답했다.
바보가 아니었기에 단순히 김종원 회장이 몰래 소유하고 있던 차명 지분과 계좌를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룹 후계 구도하고도 관련된 일이라는 걸 이근홍은 눈치챌 수 있었다.
잡음 없이 일을 잘 처리한다면 말 그대로 황금 동아줄을 잡고 승승장구하는 거지만 자칫 삐끗했을 경우에는 모든 걸 잃고 희생양으로 전락할 터였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나한테 바로 연락하게.”
“예.”
그만 나가 보라는 듯이 박상빈 비서실장이 머리를 끄덕여 보이자 이근홍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있을 때마침 타 부서에 볼일이 있어서 잠시 자리를 비웠던 이두현 과장이 막 비서실 안으로 들어왔다.
“과장님 오셨어요?”
“응. 아, 이거 나중에 총무과에 좀 보내 줘.”
“네.”
그러고 제 책상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이근홍이 안쪽 비서실장실에서 나오다가 그와 딱 마주쳤다.
어라, 하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자 먼저 그를 알아본 이근홍이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했다.
황급히 함께 머리를 숙인 이두현 과장은 말을 붙일 새도 없이 그대로 비서실 밖으로 나가 버리는 것을 보면서 근처에 있던 여직원에게 물었다.
“저 사람 법무팀에 있는 이 변호사님이잖아?”
“예. 실장님이랑 얘기할 게 있으셨나 봐요.”
“무슨 얘기? 법무팀이 나서야 할 정도로 큰 사고가 터진 것도 없을 텐데…….”
“그냥 차만 마시고 가셨을 수도 있죠.”
“헛소리. 그 양반이 그렇게 한가한 사람인 줄 알아.”
‘그럼 제가 어떻게 알아요.’ 하고 억울한 듯이 여직원이 입술을 삐죽였다.
아무래도 더 이상 정보를 캐낼 수 없을 것 같았기에 이두현 과장은 그냥 궁금해서 그랬다고 건성으로 사과하고는 재빨리 제자리에 와서 앉았다.
그러고는 문이 닫혀 있는 비서실장실을 보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박상빈 비서실장과 법무팀 이근홍 변호사의 만남이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수상했다.
특히나 사장단 회의를 통해 당분간 그룹을 공동 경영하기로 했지만 와병 중인 김종원 회장의 두 아들 사이에 후계자 다툼이 이제 노골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더욱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한 이두현 과장의 눈가가 슬며시 가늘게 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