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754
754
승리무역과의 거래는 별다른 문제없이 순조롭게 끝났다.
CIA와 국정원에서 적극적으로 돕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돈을 넘겨주고 항구에 잔뜩 야적되어 있는 석탄을 가져오기만 하면 됐다.
그렇게 실어 온 석탄은 러시아산으로 바뀌어 국내에 있는 화력발전소에 전량 납품됐다.
이런 가운데 혁권이 소유한 여러 회사들 중에 인터내셔널 매니지먼트는 하루가 다르다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크게 성장하고 있었다.
뒤에서 자금을 넉넉하게 지원해 주고 백수광 부부장하고 꽌시 관계를 맺어 꽁꽁 닫혀 있던 중국 시장의 빗장을 다시 연 그의 영향이 컸지만, 회사를 실제로 꾸려 나가는 정동식 이사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었다.
매니저 일보다 사업이 더 적성에 맞았던 것처럼 소속 연예인들을 잘 관리하면서 방송국이나 영화사 들을 상대로 뛰어난 영업 수완을 보였다.
기존에 있던 연예인들의 인지도를 차곡차곡 올려 나갈 뿐만 아니라 거물급 배우와 가수를 추가로 영입하면서 덩치를 키웠다.
매니저팀뿐만 아니라 홍보팀을 비롯한 여러 개의 부서를 새로 만들면서 직원 숫자도 어느새 60명이 넘어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직원이라고는 정동식과 김수나 달랑 두 명뿐이었던 영세한 기획사였던 걸 생각하면 정말 몰라볼 정도로 눈부신 발전이 아닐 수 없었다.
“중국 방송국 세 곳과 이번 달부터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는 왕은정 작가의 신작에 대한 판권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한 달에 몇번 쓸까 말까 한 인터내셔널 매니지먼트 대표실 소파에 앉은 혁권은 정동식 이사의 말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직 홍보를 위한 데모 영상도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벌써 판권 계약이 이루어졌다고?”
“그렇습니다. 계약 액수도 상당히 커서 모두 합쳐 2,200만 위안, 한화로 35억 원가량 됩니다.”
아직 촬영도 끝나지 않은 작품이라는 걸 감안했을 때 그 정도면 판권 가격을 꽤 비싸게 받은 거였다.
정동식 이사가 얼굴 가득 미소를 띤 채 이야기를 이었다.
“이번에도 대표님께서 만들어 둔 중국 쪽 인맥의 영향력이 컸습니다.”
자연스럽게 혁권에게로 공을 돌리자 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것보다는 자네와 직원들이 일을 잘해 준 덕분이겠지. 아무튼 우리로서는 좋은 일이군.”
“덕분에 방송을 시작하기도 전에 제작비 상당 부분을 회수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번 작품에 책정된 제작비가 얼마라고 그랬지?”
“90억입니다.”
이야기를 들은 혁권은 소파 등받이에 어깨를 기댄 채 짧게 탄성을 흘렸다.
“그럼 벌써 제작비의 3분의 1이 빠진 거군.”
“현재 중국 내 다른 지방 방송국들하고도 판권 협상을 하고 있는 데다 최근 중국 내에서 급성장 중인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인 아이치이(IQIYI) 측하고도 접촉 중이라 만약 일이 성사된다면 추가로 큰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이치이는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가 100% 지분을 가지고 있는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로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자국은 물론이고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의 영상 콘텐츠 저작권 수천 개를 소유한 거대 미디어 기업이었다.
매달 5억 명의 이상의 가입자들이 아이치이를 통해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즐겼는데, 새로 제작하는 신작이 이곳을 통해 서비스 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인지도 상승과 수익을 기대할 수 있었다.
상체를 바로 하며 혁권이 관심을 보였다.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온 건가?”
“아닙니다. 중국에서 수익을 더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고민하다가 아이치이가 일본 방송국과 합작 드라마를 만드는 등 콘텐츠 확보에 열을 올리는 중이란 걸 알아내고 저희 쪽에서 먼저 제안을 했습니다.”
“정 이사가 생각한 거야?”
“예.”
“잘했어. 자고로 노력없이 현실에 그냥 안주한다면 서서히 도태되는 걸 피할 수 없는 법이지. 성과가 없더라도 괜찮으니까 마음껏 일을 해 보도록 해.”
“감사합니다.”
힘을 실어 주는 말에 정동식 이사는 절로 고무된 표정을 지었다.
잠시 뒤 보고를 다 끝낸 정동식 이사가 서류를 챙겨 인사하고 막 대표실을 빠져나갔을 때, 안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스마트폰이 작게 진동했다.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한 혁권은 통화 버튼을 누르고 사무적인 말투로 물었다.
“무슨 일이오?”
그러자 샌더슨의 목소리가 스마트폰 스피커를 타고 그의 귀에 들렸다.
-반갑지 않은 건 알지만 그래도 너무 딱딱한 거 아니요?
“바쁘니까 용건만 간단히 말하시오.”
-후후후. 알겠소.
낮게 웃은 샌더슨은 이내 진지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오늘 백악관에서 UN 대북 제재를 어기고 북한하고 몰래 거래를 해 온 중국, 러시아 회사 여섯 곳과 열 명의 사람들을 제재 리스트에 올린다는 발표가 있을 거요.
눈을 반짝인 혁권은 손에 든 스마트폰을 고쳐 쥐면서 말했다.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걸 시작하는 거요?”
-불필요한 잔가지들을 빨리 쳐 내야지 존슨 당신의 가치도 올라가고 북한으로 들어가는 달러 유입을 통제하기도 쉬워지지 않겠소.
이미 예정되어 있던 일이었기에 그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한동안 시끄러워지겠군.”
-밀수 루트가 끊겨 나가면 북한 당국이 지금보다 많은 물량을 그쪽에 넘기려고 할 텐데 당분간은 괜히 불똥이 튀지 않게 몸을 사리도록 하시오.
“소나기는 피하는 것이 낫겠지.”
그는 작게 머리를 끄덕이면서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다.
CIA와 국정원에서 뒤를 봐 준다지만 갑자기 어떤 돌발 변수가 발생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니 이럴 때는 눈에 띄지 않게 바짝 엎드려 소나기가 지나가는 걸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었다.
거기다 북한과의 거래는 자신이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다지 아쉬운 생각도 없었다.
-참, 그리고 한 가지 더 알려 줄 것이 있소.
“말해 보시오.”
-당신과 친분이 깊은 백수광 부부장이 어쩌면 비리에 연루돼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될지도 모르겠소.
뜻밖의 이야기에 혁권은 스마트폰을 손에 든 채 이맛살을 찡그렸다.
“그게 무슨 소리요?”
-서슬 퍼런 국가 감찰위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사천성 부성장 왕명광이 거꾸로 조사를 주도하고 있는 백 부부장을 치려고 은밀하게 일을 꾸미고 있소. 비리 의혹을 터트려서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처벌하는 국가 감찰위의 도덕성에 상처를 입히겠다는 속셈인 거지.
“중국은 인터넷과 언론이 검열을 받아 철저히 통제되고 있는데 어떻게 백 부부장을 공격한다는 거요?”
-외국 미디어를 이용하면 간단히 해결되는 거 아니겠소. 먼저 외국에서 불씨를 당긴 후에 중국 내부에 있는 불만 세력들이 일제히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다면 아무리 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 시진핑 주석이라도 무척 곤란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소?
“으음······.”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혁권은 낮게 침음성을 흘렸다.
부정부패 청산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무수히 많은 정적들을 쳐 내고 개헌을 통해 국가 주석 10년 연임 제한을 없애 장기 집권의 길을 연 시진핑 주석은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일련의 과정에서 외부로 거의 드러나지 않았으나 몇 번씩 쿠데타 시도가 있었을 정도로 불만 세력 또한 급속히 늘어났다.
특히나 기존에 권력을 나누어 쥐고 있던 기득권층인 혁명 원로들과 정치 파벌인 상하이 방의 반발이 컸다.
지금은 강한 권력 아래 바짝 엎드려 숨을 죽이고 있었지만 틈이 보이면 언제든지 굶주린 늑대 떼처럼 들고 일어나 시진핑 주석을 물어뜯으려고 할 터였다.
-정보에 의하면 백 부부장이 신문출판 광전국 시절에 중국 굴지의 IT기업 중 하나인 텐센트가 미디어 부분에서 사업을 확장시켜 나는 걸 도와주고 그 대가로 프랑스 파리에 수천만 달러짜리 호화 저택과 슈퍼 카 여러 대를 뇌물로 받은 걸 폭로할 것 같소.
샌더슨의 이야기대로 된다면 부패조사와 감찰을 맡고 있는 백수광 부부장으로서는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시진핑 주석은 측근이라도 정치적인 부담을 덜기 위해 백수광 부부장은 반대 세력한테 희생양으로 던져 줄 가능성이 컸다.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져 백수광 부부장이 권력 중추에서 밀려난다면 꽌시 관계로 사업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혁권도 중국 시장에서 지금처럼 승승장구하기가 어려워질 터였다.
빠르게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그는 미심쩍어하면서 물었다.
“나에게 왜 이런 정보를 주는 거요?”
-존슨 당신한테 미안한 것도 좀 있고, 우리 입장에서는 골수 중화중심론자에, 분쟁이 격화되고 있는 남중국해 문제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왕명광 부성장과 주변 세력들이 힘을 얻어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오.
혁권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쓰게 웃었다.
역시나 자신들한테 이득이 있으니까 이런 중요한 정보를 흘려 주는 거였는데 그게 아니라면 CIA가 구태여 말을 해 줄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빚을 갚는다는 씨도 안 먹힐 이야기를 하는 것보단 더 믿음이 갔다.
“어찌 됐건 중요한 정보를 알려 줘서 고맙소.”
-서로 돕고 사는 거 아니겠소. 조만간 인터넷 매체를 시작으로 폭로 기사가 나올 테니 손을 쓰려면 빨리 움직이는 것이 좋을 거요.
“알겠소.”
통화를 끝낸 혁권은 팔짱을 낀 채 심각한 얼굴로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옆에 있는 인터폰을 버튼을 눌렀다.
“하킴 있지? 잠깐 들어오라고 해.”
-예.
인터폰이 끊어진 후 바로 하킴이 노크를 하고 대표실 문을 열었다.
“부르셨습니까?”
“급히 북경에 가야 될 일이 생겼으니까 비행기를 대기시키도록 해.”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그날 오후, 혁권은 중국 북경에 도착해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최고급 호텔에 짐을 풀었다.
갑자기 결정된 북경 행이었지만 언제든지 타고 갈 수 있는 비즈니스 제트기가 김포 공항에서 대기 하고 있었기에 이동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런 편의성 때문에 비즈니스 제트기를 이용해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바로 움직일 수 있는 걸 생각하면, 매달 수억 원의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객실 소파에 앉은 혁권은 하킴이 가져다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면서 입을 열었다.
“만나기로 한 곳에 예약은 미리 해 놨겠지?”
“예.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VIP룸을 잡아놨습니다.”
“수고했어.”
마음 같아서는 바로 상황을 귀띔해 주고 싶었지만 전화 통화는 얼마든지 도청될 수도 있었기에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할 때까지 참았다.
하필이면 오늘 백수광 부부장이 출장을 가서 자리를 비운 상태였는데, 저녁이나 되어서야 북경으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나마 친분이 깊은 혁권이 아니었다면 오늘 바로 만나는 약속을 잡기 어려웠을 터였다.
그때 라미가 얇은 서류 봉투를 하나 손에 들고 가까이 다가왔다.
“보스, 방금 배달된 겁니다.”
기다리고 있었는지 혁권은 눈을 반짝이면서 한쪽 팔을 내밀었다.
“이리 줘.”
단단히 밀봉되어 있는 봉투를 찢고 안에 든 내용물을 꺼내자 호화로운 저택과 값비싼 슈퍼카가 찍힌 사진 몇장과 함께 A4 용지 두 장 분량의 기사 초고가 나왔다.
바로 인터넷 매체를 통해 터질 거라는 백수광 부부장에 대한 폭로 기사와 증거 사진들이었는데, 샌더슨에게 이야기를 해서 받아 낸 거였다.
기사를 천천히 훑어본 혁권은 예상한 것보다 더 치명적인 내용에 이마 가운데 깊은 주름살을 만들었다.
특히나 백수광 부부장의 비리 내용을 거론하면서 시진핑 주석과 중국 정부의 도덕성을 비판하고 있었기에 더욱 치명적이었다.
“끄으응. 이게 공개되면 후폭풍이 만만치가 않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