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845
845
꽝!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시게루는 손바닥으로 책상을 세게 내려치고는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그래서 놈이 일본 땅을 밟는 걸 보고도 하지 않고 그냥 놔뒀다는 거야!”
갑자기 불려 와서 날벼락을 맡게 된 간부는 연신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그게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 있지 않은 데다가 한국은 비자 면제 국가라서 미처 파악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위험인물은 걸러 냈어야 될 거 아냐!”
“······죄송합니다.”
스스로도 억지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라도 화를 풀지 않으면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았기에 시게루는 짜증을 있는 대로 쏟아 냈다.
“한심해서 정말. 당장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놈이 마음대로 국외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해.”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알아들었으면 그만 나가 봐!”
“예.”
괜히 불똥이 더 튈까 봐 얼른 대답을 한 간부가 밖으로 나가자 시게루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한쪽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눌렀다.
“그 자식하고 엮이고 난 다음부터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군.”
그러자 앞에 조용히 서 있던 우에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릅니다.”
“무슨 소리야?”
눈을 치켜뜨며 쳐다보다 우에다가 차분하게 이야기를 했다.
“어찌 됐건 일본 내로 들어왔으니 이제 독 안에 든 쥐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치안망을 총동원해서 색출에 나선다면 오래지 않아 꼬리가 잡힐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감히 날 우롱하다니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은 놈이야.”
부득부득 이를 갈던 시게루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이 일은 당분간 총리 관저에도 비밀로 하고 은밀하게 처리하도록 해.”
“그러면 경찰을 비롯한 다른 기관들의 협조를 받기가 어려워질 겁니다.”
“나도 알고 있어.”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은 시게루는 갈라진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었다.
“가뜩이나 고베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계신데 이 일까지 아셔서 좋을 것이 없지 않겠어.”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참, 자동차가 터진 건 어떻게 처리했나?”
“일단 단순 사고로 정리를 했습니다. 언론에서도 그렇게 보도를 내보내도록 조치를 취했습니다.”
시게루는 옆으로 기댄 손으로 턱을 괴며 음, 하고 낮게 수긍했다.
“잘했어. 이번 일은 최대한 조용히 묻어 버리는 게 나으니까.”
같은 시각, 부산에 가 있던 히로시게가 오야봉인 겐이치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고베로 돌아왔다.
부하 두 명과 함께 입국장을 나오자 마중을 나온 조직원들이 앞으로 다가와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형님.”
운동선수를 방불케 할 정도로 건장한 체격에 머리를 짧게 깍은 사내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니 공항에 있던 사람들이 조금씩 시선을 피하며 뒤로 물러섰다.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검은 선글라스를 벗지 않고 있던 히로시게는 위압감을 느낀 일반인들이 거리를 벌린 덕에 어느새 휑해진 주변을 힐끔 쳐다보더니 마중을 나온 시바야마에게 짧게 말했다.
“가지.”
인사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바로 걸음을 옮기는 히로시게의 얼굴을 석고상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조직의 보스이자 직계 오야봉인 겐이치가 피습을 받아 죽었으니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뒤를 따르는 조직원들 역시 분위기를 알기에 입을 꾹 다문 채 공항 청사를 나섰다.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 뒷좌석에 올라타자 곧장 출발해서 고베 시내로 향했다.
가죽 시트에 몸을 기댄 히로시게는 옆에 나란히 앉은 시바야마한테 시선을 주며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야봉은 지금 어디에 모셨어?”
“경찰에서 부검을 해야 된다고 해서 현재 시내에 있는 대형 병원 영안실에 안치해 놓고 있습니다.”
“신사에 참배를 하러 가다가 습격을 당했다고?”
“그렇습니다.”
“일이 그렇게 될 때까지 경호원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야!”
“······.”
괜히 변명을 해 봤자 화만 더 돋울 뿐이었기에 시바야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겁도 없이 누가 이런 짓을 벌인 거야?”
“아직 확인 중에 있습니다.”
“여태 그것도 하나 못 밝혀내고 뭣들 한 거야?”
한심하다는 듯이 짧게 혀를 찬 히로시게는 이내 정색을 하며 말했다.
“스미요시카이에서 손을 쓴 거 아니야.”
도쿄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스미요시카이는 휘하 조직원들만 8천여 명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큰 조직이었는데, 야마구치 구미하고는 경쟁 관계에 있어 충분히 의심할 만했다.
“가능성이 가장 크기는 하지만 일이 터지고 나서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 일단은 지켜보는 중입니다.”
“하긴 그건 좀 의아하군.”
이 정도 일을 벌였다면 어떤 식으로든 후속 행동을 보이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리고 예전과 달리 야쿠자들이 구역 다툼에서 벗어나 기업 경영을 통해 이득을 취하는 형태로 조직이 바뀐 이후로는 서로 별다른 갈등을 일으킨 적이 없었기에 더욱 이번 일이 충격적이고 의구심이 들었다.
“조직 내부 분위기는 어때?”
“좋지 않습니다.”
눈을 가늘게 뜨며 히로시게가 물었다.
“나카모토 때문에 그런 거야?”
“예. 후계 자리에 대한 욕심을 공공연히 드러내면서 세력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소두목급 간부 서너 명이 이미 그쪽으로 넘어갔다고 합니다.”
“으음.”
일그러진 히로시게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오사카에 기반을 가진 나카모토는 조직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일곱 명의 부두목 가운데 한 명으로, 차기 오야봉 자리를 두고 그를 위협할 수 있는 강력한 경쟁자였다.
지금까지는 겐이치의 직계인 히로시게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불의의 습격을 받아 오야봉이 죽어 버리는 바람에 이제 후계자가 누가 될지 안갯속에 빠져들게 됐다.
“제길.”
낮게 욕설을 내뱉은 히로시게는 눈동자를 사납게 번들거리면서 말했다.
“우리 쪽 간부들을 단속하고 지시를 내리면 바로 움직일 수 있게 조직원들을 준비시켜 놓도록 해.”
“알겠습니다.”
시바야마의 대답을 들으면서 히로시게는 머리가 아픈 듯 손가락으로 관자놀이 부근을 문질렀다.
요 며칠 사이에 연이어서 벌어진 일들 때문에 신경성 두통이 도진 것만 같았다.
저절로 찡그린 인상이 되어 말이 없어진 그를 보며 시바야마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고 승용차는 더욱 속력을 내어 고속도로를 달려갔다.
고베 시내에 위치한 종합병원 영안실 앞은 검은색 상복을 입은 야쿠자 조직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일본 암흑가를 좌지우지하는 야마구치 구미의 오야봉이 죽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직 본가에 정식으로 장례식장을 차리지 않았기에 조문객들이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병원 안팎에 경찰 병력이 쫙 깔려 있었다.
넓은 대기실이 비좁아 보일 정도로 많은 사람 수에도 불구하고 주변은 기이할 정도로 조용했다.
이따금 귓속말을 하거나 속닥이는 소리는 들렸지만 누구 하나 크게 말을 하지 않았으며, 특히 간부급이 아닌 일반 조직원들은 기침이라도 나올까 지극히 조심하는 태도였다.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 속에서 누군가 제일 줄에 위치한 간이 의자에 앉은 나카모토 옆으로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형님, 히로시게가 방금 공항에 도착했답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카모토가 미간에 주름을 지었다.
“그럼 조금 있으면 이쪽으로 오겠군.”
“예.”
나카모토의 표정에 떨떠름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는 짧은 한숨을 내뱉으며 간이 의자에서 일어나 왼편 복도 끝자락에 있는 남자 화장실로 향했다.
청소할 때 쓰는 약품 냄새가 나긴 했으나 그럭저럭 깨끗하고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릴 걸 예상했는지 꽤 넓은 공간이었다.
뒤를 따라온 부하 둘이 밖에서 대기하는 동안 나카모토는 혼자 소변기에서 볼일을 본 후 손을 씻었다.
쏴아아.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에 물비누를 묻힌 손을 천천히 문지르며 나카모토는 세면대 앞에 붙어 있는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살폈다.
피습 소식을 들은 이후부터 계속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우고 있다 보니 눈가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리 눈에 띌 정도는 아니지만, 가까운 이들이 본다면 충분히 한마디씩은 던지고도 남을 터였다.
“이거 원. 몰골이 말이 아니군.”
손수건으로 젖은 손을 닦은 그는 거울을 보면서 조금씩 새치가 보이는 귀밑머리와 콧수염을 단정하게 다듬었다.
좀 있으면 히로시게도 온다는데 그 앞에서 흐트러진 꼴을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안주머니에서 평소 즐기는 말보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제자리에 서서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담배 끝이 빨갛게 타들어 가면서 니코틴이 몸 안에 들어가자 긴장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화장실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
태연하게 세면대 옆자리로 와서 거울을 보며 선 사내는 놀랍게도 혁권이었다.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운 채 나란히 서서 머리를 매만지고 있는 혁권을 슬쩍 곁눈질하는 나카모토의 얼굴이 살짝 굳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바깥에 있는 부하들이 허락을 받지 않고 아무나 화장실 안으로 들여보낼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권이 이렇게 버젓이 들어와 자신의 옆에 서 있다는 건 무언가 일이 생겼다는 의미였다.
최악의 경우 경쟁자인 히로시게가 보낸 해결사일 수도 있었기에 나카모토는 바짝 긴장하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상당히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오랫동안 야쿠자 생활을 하며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 요행은 아닌 듯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이름이 뭐지?”
그러자 혁권이 피식 웃으면서 몸을 옆으로 돌려 나카모토를 마주 쳐다봤다.
“역시 눈치가 빠르군. 반갑소. 나카모토, 아니 문정남 씨.”
재일교포 3세로 어린 시절부터 뼈에 사무치는 차별을 받아 왔기에 일본인으로 귀화를 한 이후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본명을 거론하자 나카모토는 눈에 힘을 주며 그를 사납게 노려봤다.
“어떻게 그 이름을 알고 있는 거지? 아니, 네놈은 누구야!”
“워워, 진정하라고. 난 그쪽하고 싸우려고 온 것이 아니야. 오히려 도움을 주려는 사람한테 이러면 안 되지.”
“무슨 헛소리야.”
“야마구치 구미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지, 어때?”
“······!”
생각지도 못한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나카모토는 이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었다.
“이제 보니 미친놈이었군.”
“못할 것 같은가 보지.”
“어떤 의도로 나한테 접근했는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들어줄 수가 없으니까 헛소리는 그만하는 것이 좋을 거야.”
“내가 저기 영안실에 누워 있는 겐이치를 죽였다고 하면 어쩔 거야?”
와락 인상을 찡그린 나카모토는 이내 표정 없는 혁권의 얼굴을 한참 동안 아무런 말 없이 쳐다보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정말이구나.”
“난 농담을 그리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야.”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모습을 드러내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먼.”
“자신이 있으니까. 이렇게 찾아온 거 아니겠어.”
“그런 걸 보고 오만이라고 하지.”
“글쎄, 과연 그럴까.”
“내가 지금이라도 고함을 질러서 바깥에 있는 조직원들을 불러들이면 넌 그 순간 죽은 목숨이야.”
핏발이 선 눈으로 위협을 가했지만 혁권은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넘기면서 말했다.
“그렇게 해서 그쪽에 득 될 것이 없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