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protagonist! RAW novel - Chapter 29
29화. >
29화.
아르고스가 작동을 시작한 이후. 내 일상생활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흐음······. 역시 이 정도 설비로는 역부족인가.”
곤란한 표정으로 아지트에 설치되어 있던 설비들을 바라보았다. 미국에서 정식 출시한 G-1과 하루가 갈수록 급증하는 아르고스의 운영체제들로부터 수집되는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매일같이 과부하에 걸리며 고장이 나 버리는 연산 설비들을 보고 있자니 한숨만 나왔다. 이제 안정적인 데이터 처리를 위해서는 설비를 대대적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자 수신음이 들려왔다.
– 관리자님. 데이터 분석에 필요한 연산 능력이 부족합니다. 설비 과부화를 줄여 안정적이고 원활한 정보 수집을 하기 위해서 감시 범위를 축소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아르고스가 보내는 메시지를 보면서 나는 혀를 짧게 차고는 G-1에 대고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해. 지금부터 정보 감시에 대한 범위는 뉴욕, 워싱턴D.C 두 곳으로 제한한다.”
– 최고 관리자의 명령 확인. 지금부터 감시 범위를 축소합니다.
그러자 터질 듯이 맹렬하게 돌아가던 장치들의 냉각 장치들의 기세가 조금은 약해졌다.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시계를 문득 바라보았다. 벌써 학교에 가야 할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하아······. 이놈의 학교도 진짜 지긋지긋하네.”
3학년 때 학교를 완전히 뒤집어엎은 전적 때문에 내 소문은 자자했지만, 근래에는 쥐 죽은 듯이 조용히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요즘 같은 반 친구들이나 선생님도 나를 평범한 시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실하게 수업을 듣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매번 머릿속에서 앞으로 뭘 어떻게 할지에 대한 상상과 고민을 하며 시간을 때울 뿐이었다.
“민수야! 김민수! 너 또 딴 생각하지! 수업 시간에 집중 좀 하자 제발!”
“네에~ 죄송합니다.”
또 상념에 빠진 나를 보고 엄한 눈으로 혼을 내는 선생님을 보며 말했다. 어차피 고등학교까지 학교를 얌전히 다닐 생각은 없었지만, 아직은 학교를 그만둘 때가 아니었다. 의무 교육인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괜히 그만둬서 이목을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힘이 없는 상태에서 여러 사람의 눈에 띄는 것은 매우 위험한 짓이라는 것을 이준희 회장이 귀에 박히게 설명했기 때문에 자제하고 있었다. 으음······. 그러고 보니 널리고 널린 판타지 소설들을 보면 괜히 주인공이 힘을 숨기는 것이 아니었네.
“김민수!!!”
“넵! 이번엔 듣고 있었습니다!”
또 넋을 놓고 있는 나를 보고 소리를 빽 지르는 선생님을 보며 내가 외쳤다. 하지만, 내 말을 믿지 않는 듯 선생님은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그래? 내가 방금 뭐라고 했는데?”
“······.”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선생님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나는 애써 시선을 피하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지만, 통하지 않았다.
“넌 오늘 남아서 화장실 청소하고 가!”
“아~ 선생님! 한 번만 봐 주세요.”
그 말에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선생님의 완고한 태도에 결국 화장실 청소를 예약하고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는 당장이라도 학교를 때려치울까 하는 충동이 들었다. 그리고 또 그런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면 ······.
“자! 여러분. 이제 추석까지 한 2주 정도 남았네요. 오늘은 추석 때 여러분 가족들이 한데 모여 송편도 만들고, 보름달도 보며 즐겁게 지내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서 그려보도록 할게요.”
“아아아! 또요?”
어디선가 새하얀 도화지를 한가득 가지고 와서 그림을 그려보자고 할 때다. 요즘 들어서 담임 선생님이 자꾸 저렇게 그림을 그려보자고 하는 통에 다른 아이들도 진절머리가 난 참이었다. 그림을 그려도 대충 그리면 한 되고 물감까지 이용해서 바탕까지 전부 칠하게 만드는 통에 못 해도 완성하는데 거의 2교시에서 심하면 3교시는 잡아먹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컴퓨터로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선생님을 보면 일을 하는 건지 인터넷으로 농땡이를 부리는 건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하아······. 진짜 내가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학교 때려치우고 만다.”
어쩐지 학교에 다니면서 얼른 그만둬야지 하는 생각만 하게 되는 것 같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새하얀 도화지를 받은 나는 연필로 대충대충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심혈을 기울여 열심히 그려서 대작을 완성해도 잠깐 벽에 전시하다가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게 될 것이라는 건 안 봐도 뻔했다. 그런데 왜 여자애들은 맨날 이런 걸 그릴 때마다 영혼을 불태우며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걸까?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
“으어어어······ 죽겠다.”
혼자 화장실 청소를 하다 뒤늦게 집에 돌아온 나는 침대에 몸을 던지며 신음했다. 혼자서 한 층 전체를 모두 청소하려고 하다 보니 시간도 오래 지체되었지만, 그보다 온몸이 나른하고 피곤했다. 생각보다 중노동에 지친 나는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민수는 이때 깜빡 잠이 들어버린 것을 이후에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어쩌면 막을 수 있었던, 역사적 비극을,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사실에 말이다. 그가 저녁도 먹지 않은 채로 깜빡 잠이 들어버린 시간 동안, 지구 저편에서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AA11. 아메리칸 항공 11편이 7시 30분에 탑승을 마감할 예정입니다. 승객 여러분들은 게이트 7번으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AA11······.]보스턴 국제공항. 하루에도 수만 명의 사람이 드나드는 혼잡한 공항에 5명의 중동 인들이 은밀하게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따로 줄을 서서 비행기에 탑승했다. 유심히 그들을 바라봤다면 수상함을 느낄 수도 있었겠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을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Allāho akbar. (알라를 위하여)”
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한 곳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아니었다. 로건 국제공항, 워싱턴 델러스 국제공항, 뉴어크 리버티 국제공항 등 여러 공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네 대의 비행기들은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이륙을 허가받고 상공을 향한 질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첫 번째 비행기가 이륙을 시작한 시각은 아침 8시였다.
*
아르고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헤라의 명령을 받고 암소인 이오를 감시하던 거인으로, 100개나 되는 눈을 가진 그 거인의 경계를 단 한 순간도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명칭에 걸맞게 스마트폰 G-1에 내장된 아르고스의 눈 프로그램 역시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흘러들어오는 정보들을 감시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감시망에 이상 정보가 감지되었다.
[We have some planes. Just stay quiet and you’ll be right] (우리는 비행기들을 납치했다. 조용히 있으면 별일 없을 것이다.)스마트폰 G-1에 내장된 마이크로 들려온 어눌한 영어. 그 순간 아르고스 시스템 전체가 활발하게 작동을 시작했다.
순식간에 수집된 정보에 대한 분석을 시작한 아르고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율적으로 여러 정보를 수합해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테러 가능성 99.99%로 추정. 긴급 사태에 대한 선제 대응 필요. 가용 수단 확인]하지만 아쉽게도 아르고스의 기능은 아직 감시 시스템에 국한되어 있었다. 다른 기능을 구현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고, 가용 설비 자체도 부족했기 때문에 민수가 아직 완벽하게 그 기능을 완성한 것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아르고스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였다.
[최고 관리자에 대한 긴급 호출을 시행합니다.]*
우우우웅. 우우우우웅.
요란한 소리를 내며 미친 듯이 진동을 떨어대는 소리에 나는 게슴츠레 눈을 떴다. 깜깜해진 밖을 보면 한밤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기에 의아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긴급 경고. 비행기 납치 발생. 높은 확률의 테러 위협 감지.
“뭐! 뭐야?”
G-1에 미친 듯이 들어오는 문자를 보며 나는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순식간에 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G-1의 배경화면에 오늘 날짜와 시간이 눈에 들어오자, 머릿속에 마치 벼락이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병신 같은······.”
나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병신같은 일이었다. 아무리 내가 IQ 81의 머저리라고 해도 이런 것을 까먹을 수 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오늘은 2001년 9월 11일. 밀레니엄이라 부르는 2000년대가 열리며 발생한 미국의 최악의 참사인 9.11 테러의 날이었다.
“아르고스! 당장 미국 정부에 경고라도 날려!”
문자를 확인한 나는 아르고스가 있는 아지트로 전력 질주하며 G-1으로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온 대답은 잔혹했다.
[저에게는 그런 기능이나 권한이 없습니다.]“젠장! 젠장!”
아르고스 시스템 전체와 감시 기능을 가진 아르고스의 눈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데만 꼬박 2년이 걸렸다. 그 이상의 기능을 무리해서라도 집어넣지 못한 게 뼈저리게 후회되었지만, 지금 나에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미친 듯이 내 아지트로 달려가는 것뿐이었다.
“허억······허억.”
가쁜 숨을 헐떡이며 나는 아지트 입구에서 잠깐 기댔다. 스마트폰 액정에 비친 시간은 9시 41분이었다. 평소라면 10분은 걸릴 거리를 고작 5분 만에 주파했다. 하지만 여전히 시간은 촉박했다. 정확한 충돌 시간은 모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대의 비행기들이 뉴욕과 워싱턴을 향해 돌진할 것이다. 수백 명의 승객과 승무원들을 제물로 삼아서······.
나는 황급히 사무실 안에 들어가 서랍장 깊은 곳에 보관하고 있던 검은 USB를 집어 들고는 컴퓨터 단자에 꽂아 넣으며 외쳤다.
“아르고스! 최종 관리자의 권한으로 명령한다. 지금부터 모든 자원을 할당해서 뉴욕과 워싱턴, 그리고 그 일대에서 경로를 이탈하거나 이상 반응을 보이는 항공기들을 찾아내!”
내 말에 아르고스는 우려 섞인 듯한 문자를 보냈다.
– 제가 은밀하게 감시를 진행할 수 있는 곳은 아르고스의 운영체제 안에서입니다. 그 외부로까지 감시 영역을 확장하게 된다면, 그 흔적이 남게 될 것입니다.
“상관없어. 진행해!”
– 최고 관리자의 명령 확인. 지금부터 감시 영역에 대한 모든 제한을 해제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AA 11편 항공기 한 대가 뉴욕의 중심부에 맹렬한 속도로 들어와 110층의 초고층 빌딩인 일명 쌍둥이 타워 하나에 정통으로 충돌했다. 그와 동시에 아르고스의 감시망에 감지된 현장 상황이 모니터 화면에 떠올랐다.
– AA 11 항공기. 세계 무역센터에 충돌. 자살테러의 가능성 98%. 추가 테러의 발생 가능성 매우 높음.
“미친······.”
이전 생에도 본 적이 있는 순간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어린 시절, 뉴스에서 녹화된 장면을 보았을 때도 충격적인 영상이었지만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참혹한 현장을 보는 내 마음이 착잡해졌다. 아무 말 없이 멍하니 모니터 화면의 광경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아르고스가 또 다른 메시지를 띄웠다.
– 추적 완료. 현재 2대의 비행기가 경로를 이탈하고 뉴욕과 워싱턴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항공편명은?”
– UA175, UA77입니다.
나는 그 말에 고민에 휩싸였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쌍둥이 빌딩이라는 세계 무역 센터에 2대, 그리고 펜타곤에 1대가 충돌한다. 그리고 이후에 납치된 나머지 하나는 승객들의 격렬한 저항으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인적이 드문 어딘가로 추락한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 세계 무역 센터에 1대가 충돌했고, 지금 경로를 이탈한 2대의 비행기는 모두 테러를 성공적으로 끝마칠 것이 확실했다.
“진짜 지랄 맞네······. 씨발! 어떻게 까먹어도 이런 걸 까먹지.”
내가 생각해도 기억력에 욕이 나왔다. 그래도 이 상황에서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었다.
“아르고스. 내가 아까 꽂은 USB 있지? 그거 작동시켜.”
– 새로운 프로그램 감지. 프로그램명 도미네이터(Dominator). 실행.
해킹 프로그램 도미네이터. 잘만 사용하면 양자 기반의 컴퓨터조차도 해킹할 수 있다는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는 극악의 해킹 프로그램으로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지식으로 그 기능을 일부 구현한 버전이었다. 아마 지금 이 시대에 현존하는 모든 보안 프로그램을 무력화시키는 데에는 충분할 것이다.
“지금 뉴욕과 워싱턴에 가장 가까운 대공 미사일들을 찾아.”
내 물음에 잠깐 뒤에 아르고스가 답했다.
– 뉴욕 항구에 대기 중인 구축함 윈스턴-처칠 호. 그리고 워싱턴 연방 방위군 미사일 기지에 각각 대공 미사일들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그 말에 잠깐 주저하던 나는 명령을 내렸다.
“두 곳 모두 도미네이터를 이용해 해킹해 관리자 권한을 획득해. 그리고 대공 미사일을 발사해서 지금 납치당한 항공기들을 모두 격추해라.”
내 명령에 아르고스는 일순간 작동을 멈추더니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너무 극단적인 조치라고 판단됩니다. 다른 대안을 찾는 걸 권장합니다.
“아니. 최대한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 진행해.”
– 도미네이터 프로그램까지 실행한다면, 이곳의 위치는 물론 최고 관리자의 신원까지 노출될 수 있습니다. 모든 흔적을 완벽히 지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르고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자꾸 명령을 지체하는 아르고스를 고함치듯 불렀다.
“최고 관리자의 권한으로 하는 명령이다. 당장 미사일 해킹 시작해!”
그러자 잠깐 고민하는 것 같던 아르고스가 G-1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 최고 관리자의 명령 확인. 프로그램 도미네이터 가동.
끝
ⓒ 군만두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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