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03
202화.
로운 왕국 동북부 해안가에 위치한 우바르 영지.
그곳을 다스리는 우바르의 영주, 포플리나 우바르는 시린 바닷바람을 맞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 그녀를 후계자인 아미르 영애가 조심스레 살펴보고 있었다.
철썩, 철썩.
해군기지 부둣가를 두드리는 파도 소리가 울려 퍼지는 이곳.
어둡고 고요하던 항구가 오늘은 어두웠지만 조용하지는 않았다.
파아아앗!
또 한 번 텔레포트 진에 빛이 흘러나왔다.
포플리나 우바르 영주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어서 오십시오, 자작.”
“크흠, 반갑습니다. 영주.”
어색하게 우바르 영주의 손을 잡는 이는 동남부 아일란 후작가를 따르던 동북부 귀족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갑옷을 입은 채로 이곳에 스며들려 했다.
그는 영주의 곁을 떠나 얼른 다른 귀족들 사이로 스며들었다. 귀족들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자작은 같은 동남부 파벌의 귀족에게 눈인사도 하지 않고 해군기지만을 살폈다.
그리고 떨리는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의 귓가에는 아직도 한 사람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다.
‘방패는 부서지지 않았군요.’
어마어마했던 전투.
그 생생한 광경을 영주성 집무실에서 보았던 자작은 당장 이곳으로 달려올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그가 올 테니까.
동북부 군사사령관 케일 헤니투스.
그가 오늘 밤 이곳으로 온다.
지난번 기다란 원탁 테이블을 떠나며 케일 헤니투스가 했던 말이 자작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강한 자에게 빌붙는 것이 귀족의 근성이라면, 곧 누구에게 빌붙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 그 선택의 순간이 올 겁니다.’
살려면, 살아남으려면 빌붙어야 한다.
그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
그를 비롯한 귀족들의 눈동자는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주변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어두운 시야 사이로 보이는 희미한 광경.
해안가에 세워진 수많은 함대와 시립해 있는 해군들의 절도 있는 자세. 자세만으로도 이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훈련을 하며 준비해 왔는지 느껴졌다.
‘뒤처졌어.’
귀족들은 자신들이 뒤처졌음을, 자신들이 가진 힘이 볼품없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들은 이미 안중에도 없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강자를 기다렸다.
그때, 아미르 영애의 품에 있던 영상 통신구가 반짝였다. 그녀는 어머니를 보며 입을 열었다.
“옵니다.”
그 말에 귀족들은 긴장했다.
케일인가?
텔레포트 진이 진동했다.
우우우웅-
지금껏 우바르 해안가를 방문한 귀족들과는 차원이 다른 텔레포트 마법.
이는 대규모 이동을 말했다.
귀족들은 침을 삼켰다.
파아아- 앗.
빛이 터져 나오며 텔레포트 진으로 사람들의 형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형상이 우바르 영지에 온전히 드러났을 때, 영주는 입을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기사단장님, 그리고 마법단장님.”
로운 왕가의 문양을 견갑에 새긴 왕가 1기사단.
그리고 세상에 첫선을 드러내는 존재.
귀족들은 분명 영주의 입으로 들었다.
마법단장.
그들의 앞에, 로브를 둘러쓰고 얼굴을 가린 수십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왕세자 알베르 크로스만, 그가 만든 마법병단 중 최고만이 모인 1대대.
마법병단이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법병단의 단장은 우바르 영주의 손을 잡았다.
“반갑습니다.”
후드로 가려진 얼굴. 그 얼굴은 알베르의 이모이자 다크엘프 타샤가 인간일 때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마법사가 아니고 정령사였지만 마법병단을 이끌었다. 그러나 마법사들의 정신적 우두머리는 로잘린, 그녀였다.
현재 브렉 왕국에 가 있는 그녀를 대신해 타샤가 단장의 자리를 맡았다.
“곧 오십니까?”
타샤의 물음에 우바르 영주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 행동에 타샤는 아무 말 없이 한곳에 마법병단을 이끌고 자리했다. 그리고 그 옆에 왕가 1기사단이 섰다.
왕가 1기사단. 그들은 유독 말이 없었다. 타샤는 그럴 수밖에 없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마법병단에는 당연히 영상 통신구가 있었다. 그녀는 마법병단과 왕가 1기사단을 이끌며 그들에게 헤니투스 백작가의 전투를 보여주었다.
그 전율이 이는 광경.
타샤 그녀조차도 상상할 수 없는 존재들의 싸움. 특히 드래곤 슬레이어와 다른 이들의 싸움은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타샤는 네크로맨서 메리와 케일 일행이 걱정되어 미치는 줄 알았다.
‘기사들은 다른 의미로 미친 것 같지만.’
타샤는 힐끗 기사단장을 쳐다봤다.
고집스러우면서도 사명감이 느껴지는 얼굴. 40대의 기사단장은 아무 말도 없이 오로지 텔레포트 진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기사들도 그러했다.
그들은 소드 마스터를 보았으니까.
로운 왕국은 소드 마스터의 대가 끊긴 지 오래됐다. 그런데 새로운 소드 마스터가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그것도 용의 뼈를 타고 이끄는 자.
타샤는 이들의 심정을, 아니, 이 전투 영상을 본 모든 이들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래서 조용히 기다렸다.
철썩, 철썩.
파도 소리를 뚫고 마지막 텔레포트 진 파동음이 들려왔다.
우우우웅-
기다리던 소리였다.
귀족들은 왕가 1기사단과 마법병단으로 향했던 시선을 텔레포트 마법진 위로 돌렸다. 하얀빛이 맴돌며 마법 진 위로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아.
누군가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처음 보인 이는 한쪽 어깨에 붕대를 감은 검사였다. 누군가의 입에서 그의 정체가 흘러나왔다.
“…소드 마스터.”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그 사람이었다.
그 곁엔 검은 로브의 사람이 보였다. 지난 전투에선 투명화하고 있던 메리였지만 사람들은 대충 짐작했다.
저자가 네크로맨서구나.
그리고 하나둘.
암살자 복장의 복면을 쓴 론, 그리고 검사 차림에 대검을 등 뒤에 맨 비크로스, 고양이 두 마리에게 둘러싸인 채 고개를 푹 숙인 쥐족 혼혈 드워프 뮐러.
케일의 일행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케일 헤니투스.
그가 텔레포트 진 위에 나타났다. 사람들은 침을 삼켰다.
귀족 중 한 명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피, 피가.”
케일은 아직 그 모습 그대로였다.
오늘 해가 떠 있는 동안 치러졌던 전투.
그 전투 때 피를 쏟아냈던 그 차림새, 추레하게 느껴질 그 모습 그대로, 케일은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이 사람들을 응시했다.
그러나 귀족들은 그 모습이 전혀 추레하지도, 더러워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전장을 버티며 살아남은 자의 위압감이 느껴졌다. 더불어, 전쟁이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다.
그때였다.
우바르 영주의 입이 열렸다.
“경례.”
그 말에 귀족들은 몸을 움츠러뜨렸다.
그들의 등 뒤로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금껏 절도 있는 자세로 시립해 있던 해군들의 입이 열렸다.
“충!”
해군들이 고개를 숙이며 케일에게 경례를 했다.
해안가를 뒤흔들 정도로 우렁한 목소리였다.
그들의 경례는 동북부 군사사령관 케일을 향한 인사였다.
그 모습에 귀족들이 우왕좌왕하다 또 다른 소리를 들었다.
철컥, 철컥.
밤하늘에 반짝이는 검날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사단장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기사들도 검을 뽑아 들었다.
그들은 소리를 내는 대신, 검을 움직였다.
채앵.
검들이 하늘을 찌르며 존재감을 뿜어냈다.
기사들의 인사.
그들이 따라야 할 자들을 향한 인사였다.
공중에 하나둘 작은 빛의 구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법병단에서 피어오른 불빛들이 곧 귀족과 병사들 위로 향했다.
어두웠던 해안가에 빛이 떠올랐다.
케일은 가만히 이 광경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 잘 보이는군.”
그의 입에서는 존댓말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그 행동에 어색함을 느끼지 못했다. 자연스러웠기에 모두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 알아차릴 틈이 없었다.
“많네.”
케일은 귀족들을 응시하며 딱 한마디를 던졌다.
귀족들은 빛이 비추는 해안가에서 저들을 쳐다보는 케일의 눈빛이 너무나도 잘 느껴졌다. 내려다보는 눈빛.
그럼에도 귀족들은 감히 제대로 입을 열지 못했다.
케일이 가진 무력의 질은 왕가에 버금갔다. 어느 방면에선 왕실을 넘었다. 더불어 그는 현재 영웅이다.
로운 왕국의 모든 이들이 해가 진 지금까지도 오늘 낮에 있었던 전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의 입에선 꼭 케일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무엇보다도 그의 분위기가 달랐다.
이전 대회의장에서와는 차원이 다른, 지배자의 기운이 느껴졌다. 강자에게 누구보다도 민감한 자들, 그들은 고개를 숙였다.
‘웃긴 놈들.’
케일은 살아남기 위해 제 발로 빌붙으려는 자들을 대충 훑어보고는 병사들을 바라봤다.
긴장과 걱정, 그럼에도 희망이 서린 얼굴들.
케일은 입을 열었다.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출정을 준비해라.”
그 말이 시작이었다.
해안가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예상했던 명령. 긴장감이 해안가를 뒤덮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케일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일 밤.”
조금의 망설임도 없고, 아주 당연하다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는 적을 몰살한다.”
몰살.
모조리 다 죽인다.
그 단어가 병사들의 머릿속에 깊이 박혔다.
그 순간, 누군가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을 따릅니다!”
왕가 1기사단 기사단장. 그가 검을 세워 심장 위에 대며 외쳤다. 반드시 수행한다는 의지가 담긴 음성. 그 음성에 답하듯 우바르 영주가 손짓했고 병사들이 외쳤다.
“명을 따릅니다!”
어두운 밤. 해안가가 어느 때보다도 긴박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긴장과 함께 알 수 없는 전율과 고양감이 들어찼다.
몰살.
그 명령을 완수한다.
케일의 명령이 모두의 머릿속에 똑똑히 박혀들었다.
***
다음 날 밤, 케일은 깔끔한 모습으로 갑판에 서서 론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바닷바람에 그의 머리칼이 흩날렸다.
“배는 중대형 선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 300척 이상으로 짐작된다고 합니다.”
고래족들이 보내준 정보는 속속들이 케일의 손아귀로 모였다. 케일은 그 정보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였다.
이제는 방심하지 않을 작정이다. 그 의지의 표현이 이번 전투다.
“또한 지금은 아니지만 항해 초반 그들을 이끌던 선두의 선박들은 처음 보는 형태를 하고 있었으며, 그 배들이 북부 해안가의 얼음을 깬 것으로 추정됩니다.”
분명 드워프가 만든 물건일 터. 케일은 고개를 숙였다.
“설명.”
그의 말에 뮐러가 경기할 듯 놀라며 얼른 입을 열었다.
“아마도 화염의 드워프족이 만든 배일 것 같습니다. 그들은 마법 장치에는 약하지만 순수한 기계 장치의 제작에서는 꽤 유명하다고 들었습니다.”
“약하다고?”
“사실, 약하다기보다는 못한다고 보면 됩니다.”
마법 장치를 만들지 못하는 드워프. 정령을 다루지 못하는 엘프와 같았다. 그래서 그 부족에 대해 설명하는 뮐러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조금 불쌍한 종족이었으니까.
그러나 케일은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마법으로 날려 버리면 되겠네.’
마법과 상극이면 마법병단으로 죽이면 될 터.
그러나 동시에 그의 머릿속은 투구의 기사와 곰족들이 들고 있던 마법 스크롤을 떠올렸다.
마법 스크롤. 상대가 마법력도 강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분명 투구의 기사가 배로 텔레포트된 것은 그곳에 마법사와 치료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들도 없애 버려야 한다.
삐이이- 삐이이이-
“사령관님!”
아미르 영애가 가죽 갑옷 차림으로 케일에게 달려왔다. 그녀의 품에서 영상 통신구가 붉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동시에 케일은 배로 다가오는 작은 배를 보았다.
그 배 위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냐아아아옹.
냐아아옹.
기다리던 울음소리에 케일은 미소를 그렸다.
온과 홍이 최한과 비크로스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들이 탄 작은 배가 케일의 배로 다가왔다.
스스스스-
음산한 바람 소리가 케일의 귓가를 가로질렀다.
그 사이로 아미르 영애가 보고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적의 함대가 3차 경계선을 넘었다고 합니다.”
총 4개로 구성된 경계선 중 3차 경계선.
적은 곧 4차 경계선으로 다가올 터.
케일은 4차 경계선 지점에 멈춰 선 배의 갑판에 서서 바다를 내려다봤다.
-다 했다.
평균 9세들의 합작품.
스스스스-
꼭 바람에 나뭇잎이 부대끼듯, 바다 위에선 듣기 힘든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그 바람 소리는 4차 경계선 근처 바다를 점점 뒤덮어 나갔다.
안개.
안개가 바다를 뒤덮고 있었다.
유일하게 부표를 놓아 위치를 표시해 둔 4차 경계선.
안개로 뒤덮인 밤바다에서, 4차 경계선은 보이지 않았다.
적들에게 4차 경계선은 보이지 않는 죽음의 경계선이 되리라.
케일은 명령했다.
“소리를 죽여라.”
작전명은 귀신.
그의 배를 시작으로 로운 왕국의 함대에 소리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적막만이 바다를 가득 채웠다.
귀신들이 다가올 적들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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