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71
270화.
모험가와 용병을 위한 자유 도시, 리브엔시.
하지만 해가 지면 유흥과 무법의 도시가 되었다.
특히 리브엔시 동쪽은 뒷세계 조직들이 일정 거리를 둔 채 분포되어 있었다.
최한은 한 건물의 지붕 위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노을이 지네.’
하늘이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었다.
문득 몇십 년 전이 떠올랐다. 그때만 하더라도 아직 그는 별로 강하지 않았고, 어둠의 숲에는 그를 위협할 만한
상위 포식자들이 몇 있었다.
그래서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하늘이 붉게 물든 것이 보이는 순간,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2, 3일에 한 번씩 장소가 바뀌는 동굴이나 땅굴이 그의 집이었다.
‘사실 집은 아니지. 계속 머무는 곳이 아니니까.’
최한이 노을을 보며 그때의 처절함을 떠올리던 찰나였다.
“그러니까 일단 모스튜 그놈부터 족치면 되는 거네?”
최한은 케일의 거친 언사에 빠르게 현실로 돌아왔다.
“그렇습니다! 6개월 전만 해도 5 대 5였던 세력 균형이 현재는 6.5 대 3.5 수준으로 밀려났죠. 물론 3.5가 모스
튜 세력입니다!”
리브산 전직 채주는 아주 살갑게 답했다.
현재 자유 도시 리브엔의 뒷세계는 ‘모스튜의 세력’과 ‘암’의 세력이 치열하게 경쟁 중이었다.
“모스튜 세력이 꽤 오래 버티네.”
“용병 길드가 모스튜 세력을 비호하고 있기 때문이죠.”
리브엔시는 대대로 상인과 용병의 힘이 셌다.
그래서 시장도 상인과 용병 각 세력에서 번갈아 가며 재직했다. 그들은 당연히 뒷세계와도 밀접한 관계였고 부
정부패가 판을 쳤다.
‘암’이 아무리 동대륙 뒷세계 최대 세력이라고 해도 대륙 전체에 퍼져 있는 용병 길드와 척을 질 수는 없었다.
그러니 조심스럽게, 리브엔시 용병들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서서히 모스튜의 조직을 장악해 나갔다.
여유롭게 설렁설렁 움직인다고 보면 되었다.
케일은 설명을 끝낸 채주에게 던지듯 말했다.
“내려가.”
“네! 조금 이따가 뵙겠습니다!”
전 채주는 넙죽 인사를 하고는 재빠르게 사다리를 타 지붕 아래로 내려갔다. 그 모습에 최한은 케일에게 다가
왔다.
“이제 가는 겁니까?”
케일은 질문이 부쩍 는 최한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최한.”
“네.”
최한은 온과 홍을 쓰다듬으며 말하는 케일이 보였다. 쓰다듬는 손길이 좋은지 온과 홍은 케일의 손바닥에 머리
를 비벼댔다.
그 평화로운 모습을 지켜보던 최한에게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리브엔시를 시작으로 동대륙의 ‘암’을 멸한다. 그리고 지금의 ‘제국’과 ‘연금술’을 뒤엎을 생각이야.”
최한은 묘한 표정으로 케일을 쳐다봤다. 케일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암’을 멸하는 과정에서 나는 최대한 피가 흐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단 리브엔시에 기틀을 마련하고
그 뒤에는 용 혼혈과 함께 일시에 중심을 파괴하는 거야. 결국 암은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최한은 물론이거니와 온 또한 평소와 달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케일을 묘한 얼굴로 응시했다. 케일은 그 시
선을 모른 척했다. 오늘 오전에 최한, 평균 9세들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라 괜히 입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때, 최한이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그래야 합니다.”
케일은 그런 최한에게 물음을 던졌다.
“왜 그래야 하지?”
최한은 케일 등 뒤로 지는 노을을 바라봤다. 수십 년이, 매길 수도 없는 시간이 지나서야 얻은 작은 평화.
이제 노을을 보면서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
“힘들지만, 그래야 우리가 행복해지니까요.”
케일도 노을을 바라봤다.
‘암’에 의해 최한이 해리스 마을 사람들을 잃은 이상.
론이 ‘암’에 당해 가문과 아내를 잃은 이상.
라온이 감금을 당했던 이상.
라크와 아이들의 부모, 이웃들이 죽은 이상.
또한 제국과 연금술에 의해 죽은 마나 폭탄 실험으로 죄 없이 죽어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 이상.
누군가는 움직여야 했다.
진정한 평화는 지금 몸이 편하다고 얻는 게 아니다.
마음이 편해야 한다.
최고의 백수는 마음 편하게 돈 많은 놈이다.
마음이 편하려면 내 주위도 행복해야 한다. 당연한 이치이지 않은가?
문제는 자신의 주위가 이제 꽤 넓다는 것이지만.
어쩌겠는가?
해볼 만하면 해봐야지.
“그때 그냥 처맞았어야 했는데.”
“네?”
“아니다.”
최한은 케일의 평소처럼 심드렁한 얼굴이 보였다.
“너랑 내 생각이 비슷하네.”
툭.
케일은 고개를 숙였다. 온이 케일의 손등을 꾹꾹 누르며 말했다.
“나도 같은데.”
“뭐지? 뭔지 모르겠지만, 나도 같은데! 다 같은데!”
-맞다! 같다! 같은 거 할 거다!
뒤이어 홍과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최한은 케일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금 다릅니다.”
“뭐?”
“케일 님과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뭐가 다르지?”
최한은 이번에 케일의 뒤를 계속 쫓아다녔다. 그래서 보였다.
‘너무 큰일이 벌어진다.’
그런데 케일은 그걸 혼자서 다 감당하고 해결하려고 했다.
케일은 그게 옳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최한이 보기에는 아니었다. 그는 얼마 전 케일이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
을 때 론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론은 최한을 비롯한 다른 이들에게 조용히, 더 강해지자고 말했다. 동시에 다른 말도 덧붙였다.
그는 영상 통신구 너머 최한을 보며 말했다.
‘도련님은 아직 어리다. 어른스러워 보여도 이 늙은이만큼은 못 살았지. 따라다녀. 무조건 뒤를 따라다녀라. 그
러면 너도 뭔가가 보일 거다.’
최한은 론보다 오래 살았지만, 세상 경험은 론이 더 많았다.
그렇기에 론의 말을 당연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걸 우리가 채워 넣으면 도련님도 우리도 다치는 일이 줄어들 테지.’
최한은 론의 말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저는 모두가 함께, 짐을 같이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케일은 문득 김록수일 적 수하들이 떠올랐다.
케일은 저를 쳐다보는 최한과 온, 홍, 투명화하고 있을 라온을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네 말 생각해 보지.”
최한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케일의 모습이 꽤 진지해 보였기 때문이다. 보통 케일은 저렇게 심드렁한 얼
굴로 답할 때가 진심이었다. 그리고 최한의 예상이 맞았다.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지?”
이렇게 된 거 최한은 질문을 늘렸다.
“제국의 일에 제국민들을 많이 끌어들일 것 같습니다. 그러면 죄 없는 사람들이 많이 다치지 않을까요?”
지금껏 최한은 케일이 ‘혁명’이라는 과격하고 위험한 단어를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더욱이 이번엔 제국민
들까지 끌어들이려는 모습이 예삿일로 보이지 않았다.
“지금껏 케일 님 방식이 아닌 것 같습니다.”
케일이 지금까지 큰일을 많이 벌였지만, 그사이에 관련 없는 자들이 다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오히려 최
한이 보기에 케일은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을 이용할지언정 다치게 만드는 건 꺼리는 것 같았다.
본인이 피를 토하면 토했지, 타인이 다치거나 죽게 두지는 않는 성격이었다.
매번 ‘빌어먹을!’을 외치며 투덜거려서 그렇지, 최한이 보기에는 남들 구하려고 방패 펼칠 때의 표정은 진심이
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케일은 그대로였다.
그는 상당히 황당한 표정으로 최한을 쳐다보았다.
“왜 죄 없는 제국민들이 다쳐? 안 다칠 건데?”
최한은 미소가 그려지려는 것을 꾹 참으며 다른 물음을 던졌다.
“하지만, 급격한 변화에는 당연히 혼란이 나타날 겁니다.”
최한은 원래 꽤 똑똑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간 케일이 하고자 하는 바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해해 왔다. 그
는 말을 이었다.
“제국과 연금술 종탑의 만행이 밝혀지면 분노하는 제국민들이 나올 겁니다.”
만행이 밝혀지면 생기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제국과 연금술 종탑이 로운의 왕국민만 노예로 끌어들였을 리는 없으니, 타 왕국 왕국민들도 노예로
잡아갔을 겁니다. 그걸 다른 왕국들이 그냥 좌시할까요?”
왕국민 납치와 노예 매매를 덮어둔 로운 왕국이 이상한 편이었다.
“더욱이 지금은 동맹 관계지만, 브렉은 그렇다 치더라도 카로, 위퍼는 제국과 연금술이 무너지면 제국의 땅을
탐낼 겁니다.”
제국에 당했거나 한번 싸워본 카로 왕국과 위퍼 왕국은 분명 약해진 제국을 넘볼 것이다. 아무리 지금은 서대
륙의 평화를 위해 움직인다고 해도, 그때가 되면 그들은 주인 없는 제국을 당연히 탐낼 터.
최한은 저도 눈치챈 문제를 케일이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다.
케일은 새삼 최한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이놈 주인공이었지?’
그것도 꽤 영리한 주인공이었다. 어느새 잊고 있었다.
하지만 케일은 잊으면 뭐 어떠냐, 하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최한은 이제 그냥 최한일 뿐이었다.
“그래서 아래에서부터 움직이는 거야.”
‘암’과 ‘불굴 연합’을 없애는 것과 ‘제국’을 뒤엎는 건 다른 문제였다.
“제국민들의 분노를 효과적으로 하나로 모아야 돼. 또 타 왕국들이 더 큰 전쟁을 만들어 제국을 쑥대밭으로 만
들지 않게 하려고 이리 움직이는 거야.”
제국 내 폭동이 일어나선 안 된다.
그래서 케일은 ‘이야기’를 만드는 쪽을 택했다.
타 왕국이 제국을 넘봐 또 다른 전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걸 제어할 힘이 필요했으며 그러기 위해서 명분이 필요했다.
“건설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모고르의 힘을 만들어주기 위해, 더 나아가 가족을 잃었다
는 걸 알고 슬퍼할 사람들에게 마음의 안식처를 주기 위해 다 끌어모으는 거지.”
케일은 스스로가 생각해도 참 사서 고생 중이었다.
‘이러니 이십 대 후반이 되어야 백수가 가능한 거지.’
그때까지 앞으로 최소 7년은 더 남았다.
케일은 온과 홍을 쳐다봤다. 제 말이 뭔지도 모르는 표정이지만 열심히 듣고 있었다. 라온도 비슷할 것이다.
케일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온과 홍을 바닥에 내렸다. 그리고 기지개를 켜며 툭 던지듯 말했다.
“로운은 새로이 일어설 제국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줄 거다. 남들 눈에는 로운 왕국이 속도 없는 바보로 보이
겠지.”
로운 왕국은 새로이 태어날 모고르에 제안을 하나 할 예정이었다. 무력에 의한 전쟁이 아닌, 정치와 외교를 통
한 우아한 전쟁을 원했다.
알베르 왕세자는 왕국민의 피로 땅을 넓히길 원하지 않았다.
케일은 착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굳이 더 큰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방식을 택했다.
‘조만간 렉스 경과도 대화를 해야지.’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는 게 권력과 힘이다.
하지만 케일은 권력과 힘 따위 제 알 바가 아니었다. 그는 꽤 솔직한 마음을 내뱉기로 했다.
“아딘 황태자는 모고르 제국을 서대륙의 컨트롤 타워로 만들길 원해.”
쏴아아-
케일의 발끝에 고대의 힘 ‘바람의 소리’가 맴돌았다.
“하지만 나는, 음, 솔직히 말하면.”
케일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바로 지붕 아래로 떨어지며 바람에 흘러가듯이 내뱉었다.
“그냥 서대륙을 평화지대로 만들고 싶다.”
냐아아옹.
냐아옹!
온과 홍이 케일의 뒤를 따라 지붕 아래로 낙하했다.
최한은 케일의 말을 되새기고는 이내 그의 뒤를 따랐다.
바람 사이로 케일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마음이었다.
왜냐면 그래야 최한의 미래가 평화로울 테니까. 그는 케일도 자신처럼 앞으로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고 있으리
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곳이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내 터전이니까.
케일도 같은 생각이었다.
***
자유 도시 리브엔시 동쪽.
모스튜 패거리가 가진 여러 지부들 중 가장 외곽에 위치한 지부의 우두머리이자 조직 내 서열 5위인 행동대장
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제기랄!”
‘암’이 서서히 모스튜의 지역을 빼앗아 갔다.
행동대장이 현재 세력권을 아무리 분석해 보아도 두목인 모스튜가 있는 곳을 빼면 남은 지부들 중 자신의 세력
이 가장 약했다.
‘다음 차례는 나일 텐데, 씨발. 어디 드래곤이 와서 ‘암’ 새끼들 다 찢어발겼으면 좋겠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렇게 무자비하게 동대륙 뒷세계를 장악하는 단체가 있었던가. 끝없는 전투 세력을 보
유한 ‘암’이 이제 슬슬 두려워졌다.
그때였다.
쾅!
큰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씨발! 놀랬잖아!”
행동대장은 벌떡 일어서며 수하를 노려봤다. 제 밑에서 참모로 있는 놈이었다.
“대, 대장님!”
하지만 참모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행동대장의 분노를 조금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행동대장은
묘한 서늘함이 느껴졌다.
참모는 더듬더듬 말했다.
“이, 이상한 ‘암’이 쳐들어왔습니다.”
‘암.’
그 단어에 행동대장은 눈앞이 하얗게 변하며 당장 건물 밖으로 향했다.
“당장 다른 지부에 연락 돌려서 전투조 불러들여! 그리고 두목한테도 연락하고!”
그는 참모의 어정쩡한 모습을 미처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암’이라는 글자에 눈이 뒤집혀 갑옷과 도끼를 챙겨 들
고서 밖으로 나갔다.
건물 밖. 지부를 감싼 거대한 담과 담 사이 정문이 보였다.
그 정문 너머.
행동대장은 복면을 쓴 놈들과 마주했다.
“…뭐야?”
암은 암인데, 뭔가 옷차림이 이상했다. 그들이 알던 암과 달랐다.
‘왜 저리 조잡해? 술 처먹고 만들었나?’
그는 참모를 쳐다봤다. 뒤따라온 참모가 다시 한번 더 말했다.
“이상한 ‘암’이 쳐들어왔습니다.”
행동대장은 설렁설렁 정문을 향해 다가오는 놈들을 보며 냅다 외쳤다.
“뭐 하는 놈들이냐?”
그때, 다가오는 놈들 중 한 사람이 당당하게 앞으로 나섰다.
열정에 가득 찬 그는 평범한 철검을 들어 올리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우. 리. 는 진. 짜 암. 이. 다.”
케일은 여전한 최한을 보며 눈을 감았다.
지금도 발연기일 줄이야.
“뭐, 뭐야! 저 새끼 말투가 왜 저래?”
케일은 행동대장이 황당해서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게. 내 말이.
케일은 전적으로 행동대장과 같은 마음이었다.
그 순간, 행동대장의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케일은 눈을 떴다.
“헉! 이, 이, 미친!”
검은 오러를 펼친 최한이 케일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연기가 아닌, 실제로 묻는 모습을 보며 케일은 새삼스레 생각했다.
살벌하네.
열심히 하려는 최한의 기세에 케일은 저도 모르게 조금 쫄았다.
그래서 짧게 지시를 내렸다.
“직진.”
지금부터 ‘진짜 암’은 오로지 직진만 할 예정이었다.
후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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