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41
340화.
케일은 생각했다.
‘이제 기절만 하면 꿈이네. 그것도 빌어먹을 꿈. 일부러 이러는 건가?’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이곳은 꿈속이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그마치 십오 년도 훨씬 더 전의 과거였으니까.
‘그때인가?’
19살에서 20살로 막 넘어간 1월 초의 어느 날. 무너진 콘크리트 벽이 보였다.
케일은, 김록수는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한쪽이 무너져 내린 건물 안.
부서진 벽의 잔해 사이로 고개를 드니 저 위에서 흐린 하늘이 희미하게 보였다.
눈이 아니라,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정말 빌어먹을 꿈이다.
3일.
이때의 케일은, 김록수는 이 무너진 건물 안의 한편에서 3일 동안 몸을 웅크린 채 천장 구멍에서 떨어져 내리는 빗물을 마시며 버티고 있었다.
“제기랄.”
빗방울이 떨어지며 그의 눈가를 두드렸지만, 김록수는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꿈속의 케일은 욕을 내뱉으면서도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 엉망이 된 건물 안.
그 안에 수많은 시체가 보였다. 사람, 괴물 가릴 것 없이 죽어간 흔적들이 건물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수능을 마치고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펼쳐진 격변. 그 결과로 케일은, 김록수는 괴물들과 맞닥뜨려야 했다.
‘정말 그날이네.’
이 건물 안 유일한 생존자는 케일, 아니, 김록수였다.
김록수는 무너져 내려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이 건물 더미 구석에서 3일을 버텨야 했다.
첫날에는 몬스터에게 들키지 않기를.
둘째 날에는 누가 나 좀 구하러 와주기를.
셋째 날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웅크린 채로 보이는 것은 흐린 하늘과 파괴된 흔적들이었고, 들려오는 것은 비명 소리와 괴물들의 울음소리였으니까.
하지만 그에게 이런 순간은 3일로 끝이 났다.
아직 그가 능력자로서의 능력이 제대로 나타나기 전.
“어?”
손바닥 반만큼, 유일하게 바깥과 이어지던 건물 천장의 구멍.
그곳에 사람이 보였다.
“…거기 밑에, 내 목소리 들리나?”
케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빗물을 막아서며 보인 얼굴이 빛을 등져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눈동자만큼은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났다.
전 팀장 이수혁.
“들리지? 움직일 힘 있나?”
미래에는 팀장이 되었지만, 이때는 그저 초기 능력 각성자 중 한 명일 뿐이었다. 보자마자 대뜸 반말부터 던지는 게 딱 전 팀장다웠다.
케일은 전 팀장을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을, 그때처럼 꿈속에서 내뱉었다.
“…배고픕니다.”
그 말에 이수혁은 씨익 미소를 그리며 툭 던지듯 말했다.
“새끼, 멀쩡하네.”
이수혁은 천장 아래로 초콜릿 바를 던졌다. 케일이 그걸 집어 들고서 과거에 했던 말을 똑같이 내뱉었다.
“공짭니까?”
“아니.”
“저 돈 없습니다.”
“그래? 아쉽네.”
이수혁이 검을 지렛대처럼 움직이며 건물의 잔해들을 가볍게 하나씩 치워냈다. 한참 잔해들을 치워낸 그는 어느 정도 아래까지 내려오자 그보다 더 아래쪽에 있던 케일에게 검 손잡이를 내밀었고, 케일은 이를 잡았다.
이수혁이 이를 가볍게 끌어당기자, 케일은 건물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름이 뭐냐?”
“김록수요.”
“그래? 걸을 수 있나?”
“네, 아마도.”
이수혁은 미련 없이 뒤돌아서며 케일에게 고갯짓했다.
“따라와. 안전한 데까지 데려다줄 테니까.”
저 오지랖.
케일은 이때 전 팀장을 처음으로 만났다. 그리고 꽤 시간이 흐른 뒤, 그가 팀장으로 있는 회사에 신입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생각해 보면 꽤 질기고 긴 인연이었다.
케일은 훌쩍 먼저 걸어가 버리는 전 팀장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투둑. 툭.
겨울비가 계속해서 내렸다.
차가웠다.
생생하네, 꿈치고는.
케일이 그 말과 함께 씁쓸한 미소를 지었을 때,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투둑. 툭. 투욱.
물방울 떨어지는 감각이 너무 현실적인데?
이렇게 생생한 게 꿈인가?
그리고-
‘…이 축축한 느낌은 뭐지?’
꿈속에서 케일이 얼굴로 떨어지는 빗물의 감각에 이상함을 느꼈을 때, 꿈이 아닌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히 말하면 목소리는 아니었다.
“킁!”
킁?
콧물 들이마시는 소린데?
이를 깨달은 순간, 케일의 시야가 뒤집혔다. 아지랑이처럼 전 팀장과 부서진 도시의 풍경이 서서히 사라져 갔다.
그리고 마침내 어둠만이 남았을 때.
“킁. 킁! 우리 인간, 이상하다!”
검은 용의 코를 킁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케일은 이제 꿈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하아.’
훌쩍거리는 검은 용을 생각하면 일어나는 게 맞지만, 눈을 뜨자마자 처리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니 케일은 급격하게 피곤함이 밀려왔다.
제국 뒤처리에, 태양신 교단 일에, 연금술 종탑에, 더불어 서대륙 힘의 균형에 대한 고민까지.
라온에게는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쉴까?
그리 생각하며 케일이 괜히 눈을 뜰까 말까 고민하던 때, 그는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을 번쩍 뜰 수밖에 없었다.
“진짜 이상하다! 몸이 다 멀쩡한데! 14일 7시간 21분 41초 동안 안 일어난다!”
어?
며칠 동안이라고?
케일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 이, 인, 가, 간! 누, 눈 떴다!”
그리고 흠칫했다.
눈 뜨자마자 빵실빵실한 라온의 얼굴이 제 얼굴 앞에 자리해 있었고, 크고 동그란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콧물도.
“우리 인간이 14일 7시간 22분 3초 만에 눈 떴다!”
라온의 기쁨이 서린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케일은 시야를 가득 채운 검은 용의 얼굴에서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 덕에 두 번째로 흠칫했다.
“…여기가 어디야?”
라온의 머리 너머로 황금이 보였다.
푹신푹신한 침대 감촉과 달리 금으로 도배를 한 듯한 휘황찬란한 침대 천장이 보였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야의 대부분을 라온의 통통한 몸통이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 너머로 화려한 무늬가 새겨진 침대 캐노피가 보였다.
‘뭐 이런-’
케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도통 자신의 취향이과는 눈곱만큼도 일치하지 않는 디자인의 화려한 침대였다. 케일은 침대 밖의 상황이 보고 싶었지만, 침대에 둘러진 커튼으로 인해 밖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케일은 오른쪽 귓가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깼나?”
“어이구야!”
케일은 놀라서 몸을 웅크린 채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침대 멀찍이 끝자락에 창백한 안색의 고룡 에르하벤이 심드렁한 얼굴로 걸터앉아 있었다. 그것도 과일을 먹으며 팔자 좋게.
“…이게 뭐야?”
저도 모르게 케일은 속마음을 툭 내뱉어 버렸다.
‘내가 생각한 광경이 아닌데?’
케일은 혼란으로 가득 찬 제국을 예상하며 눈을 떴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왠지 모르게 호화롭고 또 여유로워 보였다.
“뭐긴 뭐야? 쉬고 있는 중이지.”
“네?”
쉰다고?
“여기가 어딥니까?”
“아딘 놈 방.”
네?
어디요?
황태자 아딘 방이요?
…이게 아딘 침대입니까?
“인간아! 배 안 고프나? 조금 있으면 최한이 먹을 거 들고 온댔다! 인간 거는 안 챙겼지만, 내 걸 주겠다! 스테이크 종류별로 다 가져올 거다! 내 거 하나, 두 개, 아니! 다 줄 수 있다!”
라온이 신이 나서 앞발로 케일이 깨어나면서 흩뜨렸던 이불을 다시 케일 목 끝까지 덮어주며 토닥였다.
케일의 표정이 점점 더 기괴하게 변해갔다. 그 와중에 에르하벤은 대충 물을 따른 잔을 내밀었다.
“마셔. 물 좀 마시고 말해. 목 아플 거다.”
“…어… 음.”
일단 케일은 물은 받아 마셨다.
안 그래도 눈 뜨자마자 말하느라 목이 아팠던 건 맞으니까. 그는 물을 마셔 조금 매끄러워진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에르하벤은 그 물음에 케일을 응시하더니, 침대에서 일어나 커튼 자락을 젖히며 입을 열었다.
“네놈이 15일째 정신을 잃은 동안, 꽤 많은 일들이 있었지.”
촤라락.
커튼이 걷혔고, 곧 황태자 아딘의 침실이 케일의 눈앞에 드러났다.
그 순간, 케일은 세 번째로 흠칫했다.
“어?”
과거 아딘이 썼을 것이 뻔한 황금으로 도금된 탁자. 그 탁자 양옆에는 마찬가지로 화려하게 장식된 기다란 소파가 각각 하나씩 놓여 있었다.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타샤?”
그 소파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다크엘프 타샤.
그녀는 케일의 부름에 답하지 못했다.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서류를 들고서-
“인간아, 타샤는 똑똑해서 일 많이 했다. 그래서 피곤하다!”
자고 있었다.
그리고 타샤의 맞은편 소파에도 한 명이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물론 서류를 들고서.
“안녕?”
허.
케일은 탄식을 흘렸다.
왕세자 알베르. 그가 다크엘프 쿼터 모습을 한 채로 케일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케일은 생각했다.
‘저 인간이 왜 여기 있지?’
황태자 아딘의 궁이라고 했다. 그곳에 왜 타국의 왕세자인 알베르가 와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다크엘프 쿼터의 모습으로?
“…왜?”
최한보고 물어볼 게 있으면 연락하라고 일러두긴 했지만. 왜?
“왜긴.”
왕세자 알베르. 그는 짙은 갈색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그의 얼굴은 피로에 찌들어 있었다. 하지만 근 이 주 만에 정신을 차린 케일의 얼굴색을 쓰윽 살펴보고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동생이 형을 부른다는데 와야지. 안 와?”
저놈의 형 동생 타령.
케일의 표정이 썩어들어 가자, 그제야 알베르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숨어서 한다더니, 아주 대놓고 제국 수도에서 방패를 펼쳤더군.”
아.
케일은 하얀 별과 싸우던 와중에 펼쳤던 거대한 은빛 방패를 떠올렸다.
아무리 로브로 모습을 가렸다고 해도, 제국민들, 특히 수도 사람들에게는 최한, 메리는 몰라도 케일의 은빛 방패는 익숙했다.
과거 무너지려던 황궁을 은빛 방패로 떠받치며 훈장까지 받았으니까.
“그 때문에 지금 왕세자 알베르 크로스만으로서 제국에 나타날 수가 없었어.”
케일이 알베르의 말을 받아 이어 말했다.
“잘못하다간 로운이 모고르 제국을 꿀꺽하려고 할지도 모른다고 타국이 생각할 수도 있고.”
“또 모고르 제국민들이 이 일을 로운의 음모로 볼 수도 있으니까.”
또 알베르가 이어 받았다.
케일은 몸을 일으켜 세워 침대 기둥에 기대며 말을 이었다.
“이번 제국에서의 일은 제가 개인적으로 성자 잭 님을 도왔다고 하는 쪽으로 해야겠군요.”
눈 가리고 아웅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뭐, 그런 식으로 처리 중이야.”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와 달리 태연한 알베르의 행동에 케일은 툭 던지듯 물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굳이 저하께서 올 이유가 있습니까?”
그 순간, 케일은 왕세자 알베르의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미소에 괜히 찝찝함이 밀려왔을 때.
왕세자가 청량한 음성으로 말했다.
“제국의 황제와 황족들이 모두 제국 지하 감옥에 구금되었다. 대귀족들도 잡혀 들어갔고.”
“…네?”
“렉스 경이 기사들과 제 동료들을 이끌고 가서 아주 제대로 황궁을 뒤집었다던데?”
누가요?
렉스 경이요?
“렉스 경이 울분에 가득 찬 눈물을 흘리면서 제국을 구하겠다며 황궁으로 달려갔다던데? 그래서 제국 사람들이 감동받았다고 하더군.”
뭐라고?
이 주간의 일이 무심하게 툭툭 케일에게로 던져졌다.
“황태자 아딘은 아마 처형될 거다. 물론 정확한 건 네가 깨어나고 난 후 정하기로 했어.”
“…무슨-”
“그리고 연금술 종탑의 지하가 개방되었으며, 이틀 전부터 대대적인 합동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다.”
이 주간, 모고르 제국은 태풍처럼 휘몰아쳤다.
“참고로 흑마법사들은 모두 다크엘프 감시 아래 감옥에 갇혔고, 그들은 아마도 죄의 경중에 따라 벌을 받겠지.”
팔랑팔랑.
알베르는 느긋하게 서류를 한 장씩 넘기며 말했다.
“아, 그리고 라온 미르 님에 대한 목격 건에 대해서는 검은 로브를 입은 동료라고 발표했다. 격전으로 인해 제대로 못 알아본 것으로 했어.”
탑주 버나드의 검은 폭풍. 그 후로 이어진 은빛 방패와 백금빛 등, 쉴 새 없는 충돌 사이로 등장한 작은 체구의 라온 미르.
멀찍이서 본 이들이 검은 존재에 대해 궁금해할 때 대충 뭉뚱그려 발표했다.
“믿을까요?”
“글쎄? 어쨌든 공식적으로 그리 말하기로 했다. 따로 찍힌 타국 영상구도 없으니까.”
어쩔 땐 이런 방식이 먹히는 법이었다. 왜냐면 모두가 정신없던 때였으니까.
“아, 현재 수도에서 제국 안의 모든 연금술 탑을 파괴하자고 시위하는 사람들이 많아.”
알베르는 찻잔을 들더니, 이를 한 모금 머금었다.
금빛으로 뒤덮인 공간에서 유독 다크엘프로서의 알베르가 눈에 띄었다.
“더불어 작년 테러 이후 닫혔던 모고르 제국 태양신 교단이 다시 신전을 열 계획이야.”
케일은 이제는 그냥 가만히 들었다.
이 주.
그동안 제국은 아주 심하게 휘몰아쳤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참고로 소드 마스터 하나는 성녀 자리를 걷어찼어. 더불어 성자 잭은 현재 성자 겸 교황이 될 것 같군.”
…하나가 뭐를 걷어차?
…성자 잭이 뭐가 될지도 모른다고? 교황?
“아, 그리고 카로 왕국의 발렌티노 왕세자와 일행은 지하에 감금되어 있었더군. 그들을 렉스 경이 구했고, 그 대가로 카로 왕국은 한동안 바뀔 제국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네.”
어쩐지 발렌티노 왕세자가 잠잠하다 했더니, 감금되어 있었구나.
케일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불어 위퍼 왕국에서 인도적 차원으로 제국 병사들을 놓아주었어. 그들이 어제 제국 수도에 도착했지.”
오.
케일은 감탄을 흘렸다.
황태자가 버리고 갔던 병사들.
그들을 다시 놓아준 위퍼 왕국, 그리고 수도로 돌아온 병사들.
이 계획은 분명 왕세자 알베르가 한 일일 터.
“병사들은 현재 수도 방어와 렉스 경, 태양신 쌍둥이 호위를 도맡아 하며 다른 제국 귀족들이 허튼 짓을 못하게 하고 있어.”
황태자에게 버려진 병사들이 누구를 지지할지, 더불어 그들이 얼마나 흑마법사를 제국에서 물리치고 싶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참고로 현재 황제궁은 비었지만, 행정을 담당하는 중앙궁 중심에 렉스 경이 자리하고 있네. 그 밖에 급한 일들을 대부분 처리했고, 현재 제국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있는 중이다.”
알베르가 입을 열었다.
“어때?”
케일의 입이 열렸다.
“오.”
짝짝짝.
박수를 쳤다.
“이 주 동안 많은 일이 있었군요.”
흐.
알베르가 실소를 흘렸다.
“많아? 그냥 ‘많은 일’이라고?”
케일은 멈칫했다.
알베르의 눈빛이 좋지 못했다.
케일은 저 눈빛을 안다. 케일이 김록수일 적 회사에서 내려준 일을 하다가 과로에 걸려 다 엎어버리려고 하기 직전과 같았다.
케일의 입이 열렸다.
“…저하.”
렉스 경이, 태양신 쌍둥이가 제국의 일을 이만큼 처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저기 간단하게 결과를 내뱉는 왕세자 알베르와 로잘린, 궁에서 오래 일한 타샤가 제국이나 타국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조용히 숨어서 고생했을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특히, 가장 실무에서 오래 많은 범위를 다룬 왕세자 알베르가 거의 모든 일을 뒤에서 도왔으리라.
‘물론 알베르 성격상 공짜는 아니었겠지.’
분명 알베르 왕세자도 제국이나 렉스 경에게서 얻는 이득이 있기에 이렇게까지 도와준 것이리라.
오랜만에 케일은 기름칠 잘된 혀를 발동시켰다.
“역시 로운을 벗어나 서대륙 어디를 가도 저하의 아름다운 밤하늘과 같은 혜안이 모두를 이롭게 하시니, 저같이 모자란 이는 그저 감동의 눈물을-”
“뭐?”
아직 띠꺼운 눈빛의 알베르에게 케일은 냉큼 말했다.
“감사합니다, 저하.”
“그래.”
알베르는 그제야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툭 던지듯 말했다.
“하얀 별이 용잡이에 환생자라고?”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화제에 케일이 멈칫했을 때, 가만히 있던 다른 이가 입을 열었다.
“그래. 환생자에 용잡이지.”
고룡 에르하벤. 그가 입을 열었다.
“에르하벤 님.”
알베르가 꽤 정중한 태도로 그를 응시하며 물었다.
“그렇다면 죽어도 다시 환생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살려두어도 언젠가 다시 노환으로 죽어 다른 이로 태어날 것이고요.”
케일은 저를 쳐다보는 창백한 안색의 고룡이 보였다. 고룡은 무언가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괴로움도 담겼지만 꽤 단호했다.
“…영혼을 파괴해야지.”
다시 환생할 수 없게 그 영혼을 파괴해야 한다.
그건 정말 잔인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고룡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동시에 침실 문이 열렸다.
달칵.
열린 문 사이로 들어서는 음식 트레이를 끌고서 등장하는 최한과 부단장 힐스만이 보였다.
최한은 케일과 눈이 마주치자 놀란 듯 굳은 채 멈춰 버렸다. 그리고 힐스만은 울 것 같은, 아니, 울면서 말했다.
“오! 이 서대륙의 보물이신 우리 은빛 공자님! 드디어 깨어나셨군요! 이 힐스만은 그 영광스러운 눈빛을 다시 볼 수 있어 기쁩니다! 모든 서대륙 인들이 보물이 깨어나신 것을 기뻐하실 겁니다. 크흑!”
…서대륙의 보물이라니.
왜 서대륙 모든 사람들이 기뻐해…….
케일은 고룡이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한숨과 함께 안쓰럽게 저를 쳐다보는 눈빛을 외면했다.
괜히 눈빛을 피해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쯧쯧. 박복한 놈.”
케일의 동공이 흔들렸다.
…목표는 작은 영웅이었는데.
그는 다시 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다시 초점을 찾으며 크게 떠졌다.
“…에르하벤 님?”
고룡의 시선을 피해 다른 곳에 시선을 두었던 케일은 에르하벤의 손이 보였다. 슬쩍 등 뒤로 옮기는 손.
그 손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케일은 창백한 고룡의 안색이 그제야 제대로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