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48
447화.
최한은 처음 이 세상에, 어둠의 숲으로 떨어진 날로 돌아온 것은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환각이지만 진짜 같네.”
바스락 부서지는 나뭇잎의 감촉도, 뺨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과 그 바람에 섞인 숲의 냄새도. 모두 진짜 같았다.
숲의 냄새.
언뜻 아름답게 보일 이 단어 속에 비린내와 썩은 내가 담겨 있었으니까.
숲의 싱그러움과 짙고 독한 것이 섞인 어둠의 숲 냄새.
약한 짐승과 몬스터들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이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피비린내가 늘 섞여 있었다.
처음 이곳에 왔던 최한은 이 냄새의 정체를 알지 못했지만, 이제 늙어버린 최한은 이 냄새의 정체를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는 수많은 죽음을 넘나들었으니까.
그렇기에 아무렇지도 않았다.
최한은 고개를 숙여 여전히 손에 들린 지갑 속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이건.”
다만, 가족들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지금의 자신이 이제는 무뎌진 과거를 다시 아프게 찔렀다.
“조금 괴롭네.”
그는 환각보다 지나간 시간의 흐름이 더 서글펐다.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지만, 그렇다고 숨길 수 있는 마음도 아니었다.
‘나이가 들기는 했어.’
과거를 그리워하는 자신의 모습에 최한은 스스로가 꽤 많이 늙었음을 여실히 느꼈다.
‘하지만 다행이야.’
최한은 ‘다행’이라는 단어가 제 마음을 표현하기에 맞는 표현이라 생각했다.
다행히 그는 최정수의 기억 속에서 세월이 흐른 핏줄의 모습을 마주하기는 했다. 자신의 흐릿한 기억 속 가족은 없었고, 몇몇 친척들의 늙은 모습을 본 것이 전부지만, 그래도 참으로 다행이었다.
지갑을 쥔 최한의 손에 힘이 빠졌다.
“…지갑 좀 들고 다니라고 했지.”
얼굴도 기억나지 않건만, 엄마의 목소리는 기억났다.
엄마의 말에 후딱 지갑을 챙기던 자신에게 아빠가 용돈을 주었는데. 그랬는데.
최한은 가족사진을 소중히 지갑 안에 넣고는, 지갑을 안주머니에 고이 집어넣었다. 그리고 걸음을 옮겼다.
‘어서 환각을 빠져나가야 한다.’
자신이 이리되면 혼자 남겨진 케일이 얼마나 난감해할지 눈에 선했다. 물론 라온이 빨리 돌아온다면 상황이 다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최한은 이제 김록수가, 케일이 가족이었다.
원래도 가족과 같은 이라고 생각했지만, 최정수의 기억을 보고 난 후 케일은 진짜 가족이 되었다.
‘아, 진짜! 김록수 너랑 나랑 왜 생일도 같냐?’
‘안 그래도 너랑 같은 날에 태어났다는 걸로 짜증 나니까 입 다물고 있어.’
‘…와, 상처. 김록수 말 엄청 차갑게 하네.’
‘닥쳐.’
최정수와 김록수는 생일이 같았다.
‘야, 야, 록수야.’
‘징그럽게 부르지 마.’
‘아, 생각할수록 아깝네. 나보다 김록수가 늦게 태어났으면 동생 삼는 건데.’
‘헛소리는 너 혼자 벽 보고 해라.’
‘와, 팀장님! 김록수가 하나뿐인 동기에게 하는 말 좀 들어봐요! 너무 냉정해!’
‘얼어 죽을.’
그 기억 속 최정수가 가졌던 감정은 형제애였다. 그는 김록수를 자신의 동생처럼, 형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 모든 기억을 본 최한은 최정수는 물론이거니와 김록수도 진짜 조카처럼, 그리고 형제처럼 느껴졌다.
‘최정수와 나는 다르다.’
단순히 최정수의 기억을 본 것만이 아니라 진짜 그가 되어 겪은 것이지만, 최한은 최정수와 자신을 혼동하지 않았다.
대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였다.
그중 하나가 최정수가 가진 능력이었다.
바스락.
최한은 아주 작은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나무들이 서 있는 숲 안쪽. 나무 그림자에 가려진 어두운 곳에서 최한은 저를 바라보는 적의 눈빛을 포착했다.
‘과거의 나는 못했지.’
과거의 그는 저 눈빛을 보지도 못할 정도로 패닉에 빠진 채 숲을 돌아다녔고, 그 결과로 맹수의 먹잇감이 되었다.
‘달리고 또 달렸었지.’
저 맹수를 피하려고 달리고 또 달렸다. 나뭇가지에 긁히고 교복 바짓단이 찢기든 말든 그는 쉼 없이 달렸다.
목 끝까지 숨이 차올랐고, 얼굴에 땀이 흐르는지도 몰랐다.
그저 달렸다.
그러다 넘어졌다.
넘어지며 한 바퀴 구른 그는 안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어 두었던 지갑이 떨어진 것도 모르고 달렸다.
‘그때의 기억이-’
그 순간의 기억이 최한의 머리를 덮은 순간.
“아.”
최한의 시야가 뒤집혔다.
순식간에 장면이 바뀌었다.
“크르르르-”
떠올리던 기억 속 장면이 최한의 눈앞에 펼쳐졌다.
도망치다 땅바닥에 엎어진 최한의 눈동자에 여유롭게 다가오는 맹수가 보였다.
가냘픈 먹잇감의 마지막을 감상하듯 괴물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최한은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과거의 최한은 이때 울었다.
‘흐흐흑. 크흑.’
다시 일어나 도망칠 용기가 없었다.
‘…아빠, 엄마…….’
넘어진 게 너무 아팠고, 다가오는 저 괴물이 너무 무서웠다.
아무리 어릴 때부터 고대 무술을 습득하고 체력을 길러왔다고 해도, 고작 소년인 최한에게 이 순간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다 놓고 싶었다.
그러나 과거의 최한은 놓을 수 없었다.
다시 일어나야 했다.
그렇게 일어나야만 했던 그때가 지금의 최한 앞에 다시 펼쳐졌다.
콰직.
맹수의 큰 발에 최한의 지갑이 짓밟혔다. 그때, 과거의 최한은 저 안에 있던 가족사진이 떠올랐고 차례로 가족들의 얼굴이 생각났다.
그러자 마음속에서 강한 욕구가 일어났다.
‘살아야 한다!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최한은 손을 더듬다 주위에 있던 돌멩이를 주워 맹수에게 던졌고, 운 좋게 그 돌멩이가 맹수의 눈을 맞혔다.
그 덕에 최한은 다시 도망칠 수 있었다.
도망친 최한은 며칠 뒤 지갑을 다시 찾으려고 했지만, 맹수에게 짓밟혔던 지갑은 잃어버린 채 영영 찾을 수 없었다.
최한은 다시금 맹수의 발에 밟힌 지갑이 보였다.
“…안 돼.”
환각인 것을 알지만, 아니, 어쩌면 환각이기에 최한은 돌멩이를 주워 들어 이를 맹수에게 던졌다.
그가 던진 돌멩이는 기억처럼 맹수의 눈에 부딪혔다.
“크아아아!”
맹수가 머리를 털며 한쪽 눈을 뜨지 못했다.
이를 지켜보던 최한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재빨리 발을 내디뎠다. 과거와 달리, 앞으로 나아갔다.
뒤돌아 맹수를 피하는 것이 아닌, 맹수에게로 향했다.
지갑은 저렇게 짓밟혀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다. 이번에는 구해내고야 말리라. 지나 버린 수십 년의 세월을 인정한 최한이기에, 과거의 기억을 다시 밟고 싶지 않았다.
“아.”
그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발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저 제자리걸음이었다. 힘차게 발을 앞으로 뻗었지만, 여전히 그의 발은 같은 자리만을 맴돌았다.
환각임에도 과거는 바꿀 수 없구나.
쿵. 쿵.
세게 발을 굴러도 걸음은 맹수에게 닿지 못했다.
최한의 얼굴이 점점 더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의 발은 그의 뜻을 따라주지 않았다. 눈을 부여잡은 괴물이 거칠게 움직일 때마다 지갑이 짓밟히고 또 짓밟혔다.
저 안의 사진도 구겨지고 찢겨지리라.
‘…아빠, 엄마…….’
과거 자신의 울음소리가 최한의 귓가를 맴돌았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지갑에 꽂혀 있었다. 그를 감싼 숲이 점점 더 어둡게 변해갔다.
그 순간이었다.
촤르르르-
앞으로, 맹수를 향해 끊임없이 다가가려던 다리에 붉은 사슬이 얽혀들었다. 붉은 사슬은 은밀하지만 빠르게 최한의 두 다리를 옭아맸다.
“아.”
그리고 최한을 뒤로 끌어당겼다.
그의 기억처럼, 맹수를 피해 도망가던 어린 최한처럼, 그의 몸이 점점 더 맹수에게서 멀어졌다.
“제길!”
최한이 다리를 털며 붉은 사슬을 떼어내려 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그는 두 손을 뻗어 사슬을 잡아당겼다.
촤르르르-
하지만 최한의 두 손도 곧 어둠 속에서 나타난 붉은 사슬에 붙잡혔다. 최한은 다리, 손, 팔, 어깨, 배까지 모든 곳을 옭아매는 붉은 사슬을 보았다.
그는 과거처럼 점점 더 맹수에게서 멀어졌으며, 점점 더 어두워지는 세상을 보았다.
이 어둠은 꼭 첫날 어둠의 숲에서 겨우 맹수를 피해 도망쳐 마주했던 밤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또 무언가가 나타나 저를 죽일까 봐 무서워 오들오들 떨며 겨우 버텼던 밤. 가족사진을 떠올리며 울었던 밤. 흐느낌 사이로 가족들 이름을 부르며 잠들지 못했던 밤.
맹수에게서, 짓밟힌 지갑에게서 멀어진 최한에게 그 밤과 같은 어둠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 하하-”
최한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
웃지 않고 배길 수가 없었다. 그는 두려울 때 우는 법을 이제 잊어버렸다. 무서워서 울다가 괴물이 오면 안 되니까.
입을 꾹 다물고, 참다 참다 깨문 입술에 피가 나면 손으로 그걸 황급히 닦아 바로 흙에 손을 비볐다. 피비린내가 괴물을 불러오면 안 되니까.
그러나 그때는 웃지도 못했다.
내 웃음소리가 괴물을 불러오면 안 되니까.
“하하하-”
최한은 웃었다.
그는 사슬에 붙잡힌 손을 움직였다. 부들부들 떠는 손은 천천히 최한이 원하는 것을 붙잡았다.
붉은 사슬. 어둠에서 뻗어 나오는, 그를 어둠으로 끌어들이는 그것을 손에 꽉 쥐었다.
그리고 어둠으로 걸어갔다.
촤르륵, 촤륵.
최한은 붉은 사슬들을 제 두 손 안에 붙잡고는, 그 사슬을 타고 어둠 속으로 향했다.
어둠은 그에게 수많은 것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대부분이 괴로웠던 순간이었고, 그 순간들은 모두 홀로 보내야 했다.
최한은 그 어둠을 묵묵히 걸어갔다. 마침내 어둠에 그의 팔다리마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하하-”
그는 웃었다.
“이 순간만 보내면 새벽이 왔지.”
밤은 반드시 지난다.
붉은 사슬마저 보이지 않는 어둠. 그러나 최한의 손에는 사슬이 있었다. 그 손이 주먹을 그러쥐며 어둠을 두드렸다.
콰앙! 쾅! 콰앙!
최한은 어둠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손이 아려왔다. 어둠 속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다. 손이 까지며 흘러나온 피이리라.
쾅! 콰앙!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이 어둠을 끝내야 하니까.
콰앙, 쾅!
쩌저적.
마침내, 최한은 어둠 속에서 미소 지었다. 찾았다. 어둠을 끝낼 방법을 찾았다.
그의 손이 크게 휘둘렸다.
콰아앙!
끝내 최한은 부서지는 어둠을 보았다.
붉은 돔이 깨지고 있었다.
최한은 그 깨진 돔 너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붉은 사슬은 손에서 버렸다. 피 칠갑이 된 손이 앞으로 나아갔다.
“어, 어떻게 이걸-?”
당황한 환각사의 목소리가 최한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러나 손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에는 잡아냈다.
“크윽!”
환각사는 제 팔을 움켜잡은 최한의 손을 보았다. 피로 뒤덮여 제 색깔을 잃어버린 손의 아귀힘이 환각사의 팔을 마비시킬 것 같았다.
그녀는 팔에서 시선을 떼어 최한을 바라봤다. 그 순간, 숨을 들이마셨다.
깊고, 아주 깊은 검은 눈동자가 보였다.
소년과 청년 사이에 있는 이의 눈동자라기엔 너무나도 깊어 말라비틀어진 것처럼 보이는 눈동자.
최한의 눈동자를 본 환각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때, 검은 눈동자는 환각사 너머로 안도의 미소를 짓고 있는 가족을 보았다.
“괜찮냐?”
최한은 케일의 물음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
지금은, 이제는 괜찮다.
아니, 좋다.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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