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49
448화.
케일의 눈동자가 환각사의 팔을 잡고 있는, 붉은 피로 물든 손으로 향했다. 그때, 최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케일은 최한을 한 번 쳐다봤다가 등을 돌렸다. 곧바로 그의 걸음이 빠르게 테라스로 향했다.
“…지금 나를 네가 해결하겠다고?”
환각사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곧 더 큰 소리가 이어 들려왔다.
콰앙! 붉은 돔이 완전히 산산조각 나는 소리였고, 또한.
쿵!
케일은 테라스 창이 있는 벽을 쳐다봤다. 벽에 큰 금이 갔다.
“크으윽!”
그리고 환각사가 벽에 처박혀 있었다.
“…살벌한 자식.”
분명 최한이 집어 던졌음이 확실했다. 그러나 케일은 뒤돌아 최한을 확인하지 않았다.
타닥, 그의 발이 테라스의 난간을 디뎠다.
위이이잉, 위이잉, 여전히 경고음이 성 전체를 울렸고, 그 사이로 케일의 등 뒤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가게 둘 것이라 생각했나!”
곰족 왕 사예르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에 케일은 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바람 가르는 소리가 사예르의 빛 화살임을 눈치챘다.
‘그래서 어쩌라고?’
케일은 멈추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콰아앙!
빛 화살이 난폭하게 넘실대며 빛나는 검은 오러와 부딪쳐 폭발했다. 사예르의 시선이 빛 화살을 없애 버린 검은 오러의 주인에게로 향했다.
뚜욱, 뚝. 손등의 핏방울이 홀 위에 떨어졌다. 그 피의 주인 최한은 사예르를 무심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저번에 못 끝낸 싸움을 끝내야 하는데 말이야.”
최한은 모고르 북쪽 연금술 탑에서 사예르와 싸웠었다. 그 순간이 떠오르자, 사예르는 두 손에 빛을 머금었다.
언제라도 싸울 수 있게.
하지만 상대는 싸울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먼저 해결해야 할 게 있어서.”
그 말과 함께 최한의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이런!”
사예르가 얼른 몸을 움직였지만, 그보다 최한이 빨랐다. 그의 검은 오러가 붉은 연기와 함께 수인을 맺고 있는 환각사에게로 향했다.
“크윽!”
환각사는 수인을 맺던 것을 멈추고 몸을 굴렸다. 콰아앙! 그녀가 있던 자리에 검은 오러가 꽂히며 그 자리가 무너져 내렸다.
그곳을 바라보던 환각사는 이내 눈을 크게 떴다.
‘어디 있지? 최한이 어디-’
최한이 보이지 않았다.
“컥!”
그녀는 제 뒷덜미를 움켜쥐는 힘을 느꼈다. 동시에 피비린내가 코끝을 자극했다. 등 뒤로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았다.”
최한은 환각사의 팔을 움켜잡았다. 케일에게 해결한다고 말했다.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이 환각사를 막아야 한다.
그의 눈동자에 사슬처럼 얽힌 팔찌가 보였다. 금색 팔찌. 최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까 전 팔을 붙잡았을 때 얼핏 본 것은 역시 제대로 본 것이 맞았다.
“안 돼!”
빛으로 만든 사예르의 창이 최한을 향해 쏘아져 왔다. 환각사는 제 팔을 잡은 최한에게서 몸을 비틀며 남은 한 손으로 최한의 급소를 노렸다.
상당히 숙련된 무도가의 모습이었다.
“내가 가진 게 환각뿐인 줄 알아?”
“그걸 내가 알 필요는 없다.”
환각사의 뒷덜미를 잡았던 손이 다른 것을 움켜쥐었다. 금색 사슬 팔찌 위로 피가 번져갔다.
콰직! 최한의 손에 금색 사슬 팔찌가 끊어졌다.
“커헉!”
순식간에 환각사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리며, 그녀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러나 최한은 저를 노린 빛 창을 피해 뒤로 물러나야 했다.
“엘리!”
사예르가 황급히 그녀의 몸을 부축했고, 그사이 최한은 고개를 돌렸다. 테라스 밖으로 날아오르는 케일이 보였다.
“…까마귀.”
그 곁을 따르는 수십, 수백 마리의 검은 새들이 눈에 담겼다. 최한은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할 일이 명확했다.
그건 케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테라스 난간을 박차고 공중으로 솟구치며 입을 열었다.
“영지민들을 한곳으로 모아.”
까악. 까악.
마치 검은 장막처럼 케일을 따라 움직이던 까마귀들이 일제히 곳곳으로 흩어졌다. 동시에 가샨은 입을 열었다.
“케일 님이 명령하셨습니다. 영지민들을 한곳으로 모으라고 하십니다!”
“알겠어요.”
타샤는 망설임 없이 바람으로 몸을 휘감은 채 다크엘프들을 데리고, 도망치는 영지민들에게 향했다.
발렌티노 왕세자는 기사들에게 어서 그 뒤를 따라가라 손짓하면서도 불안한 얼굴로 가샨에게 물었다.
“불을 피해 도망쳐야 하지 않겠나? 지금 저, 저 다가오는 시뻘건 불이, 저 붉은 강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케일 공자가 다른 말은 없나?”
동서남북, 네 불기둥에서 시작되어 거침없이 다가오는 불길이 보였다. 마치 강처럼 흘러오는 붉은 액체에 발렌티노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걸 누구라도 해결해 주길 원했고, 그걸 해줄 만한 이는 지금 케일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도망치는 영지민들은 지푸라기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없었다. 엄청난 세금을 물리는 영주가 자신들을 구해주겠는가? 도망가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자신의 살길은 스스로 찾아야 했다. 그리고 평범한 영지민들에게 그 살길은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저 강처럼 밀려오는 불을 피해, 재앙을 피해 그저 도망쳐야 했다.
까악까악.
그때였다. 문득 까마귀 소리가 들린 것은.
“어?”
엄마 손을 잡고 도망치던 아이는 고개를 들었다. 까마귀가 그들 위에서 날고 있었다.
“엄마, 엄마.”
아이의 엄마도 고개를 들려다 멈칫 움직임을 멈췄다. 골목길 코너에서 다크엘프가 나타났다. 그는 걸음을 멈춘 가족들을 보고는 손으로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에 가세요! 까마귀가 안내해 줄 겁니다!”
갑자기 들린 말에 순간 혼란을 느끼던 여인은 저도 모르게 말했다. 그냥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 그 말뿐이었다.
“저쪽으로 가면 살 수 있나요? 그쪽을-”
믿어도 되나요?
뒷말은 차마 내뱉지 못하고 삼켰다. 그러나 다크엘프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네, 삽니다.”
동시에 여인은 제 옷깃을 잡아당기는 아이의 손길을 느꼈다.
“엄마, 엄마! 저기 봐!”
“지금 중요한 이야기 중-”
아이를 잠시 조용히 시키려던 여인은 아이가 가리킨 곳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공중에 활활 타오르는 불의 검을 지닌 이가 떠 있었다.
네 개의 불기둥과 같은 불길에, 저자가 이 일을 벌인 자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자의 앞에 다른 한 사람이 떠 있었다.
둘 다 너무 높은 곳에 있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적어도 두 사람의 손에 맺힌 힘의 빛깔만은 선명하게 보였다.
“…물?”
저 푸른 것은 얼핏 보아 물이었다.
“얼른 저쪽으로 가십시오. 발렌티노 왕세자 저하께서도 계신 곳입니다.”
다크엘프의 목소리에 여인은 아이를 품에 안았다. 왕세자가 있는 곳이라면, 적어도 그 귀한 분이 있는 곳이라면 안전할 것이다.
그리고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얼른 가세요!”
우리 편이다.
푸른빛이 손을 감싸고 있는 저자는 우리 편이다.
가진 것이 없기에 이런 예감은 예민하고 꽤 정확했다. 여인은 다크엘프가 가리킨 방향으로 아이를 안고 달렸다.
길을 잃을 이유는 없었다.
까악까악.
까마귀 한 마리가 여인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도시 안 곳곳에서 까마귀들이 길잡이가 되어 한곳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어째 해결하고 나왔나 보네.”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을 내뱉던 하얀 별은 고개를 들어 정면을 응시했다.
“경고음이 울리는 걸 보니 마나 교란 장치도 부수려고 건드는 중인 것 같고. 케일, 네 편들이 하나둘씩 오나 봐?”
케일은 어깨를 으쓱이며 하얀 별에게 손에 들린 창을 겨눴다.
“오늘따라 말이 뭐 이리 많아? 지겹게.”
“하!”
뚱한 목소리로 내뱉는 말에 하얀 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그는 불의 검을 케일에게 겨누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우리 둘이서만 서로를 마주하는 건 처음이 아니었던가? 대화 좀 하면 어떨까 싶은데?”
“싫어.”
케일은 무시했다.
지금 대화를 하자고? 동서남북에서 불을 담은 액체가 두보리 영지를 뒤엎으려고 길을 뚫고 오는 마당에?
케일에게는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아직 라온과 에르하벤이 마나 교란 장치를 부수지 못했으니까. 혼자 하얀 별을 상대해야 한다.
그러나 케일은 하얀 별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거 알고 있나? 나는 고대의 하얀 별이 지녔던 힘들 중 하나는 가지지 않으려 했다.”
뭐?
고대의 하얀 별이 되고자 하는 놈이 가지고 싶지 않은 힘이 있었다고?
케일의 눈동자가 하얀 별에게로 향했고, 그 속의 의문을 알아챈 하얀 별은 짙은 미소를 그렸다.
“바로 물의 힘이지. 내 물의 힘은 너도 봤겠지?”
봤다.
장막처럼 펼쳐지는 하얀 별의 물 속성 고대의 힘은 주로 마치 방패처럼, 실드처럼 사용되었다.
“사실 나한테 방어용 힘은 필요가 없어. 오히려 공격할 수 있는 무기가 필요했지.”
불의 검이 케일 손의 창을 가리켰다.
물로 만들어진 창. 지금도 케일 머릿속에서 욕을 해대고 있는 하늘을 잡아먹는 물.
“그래서 심판하는 물을 가지러 그 힘이 있다는 호수로 향했지.”
창을 쥐고 있던 케일의 손이 움찔거렸다.
-심판하는 물이면 나잖아?
하늘을 잡아먹는 물의 말대로, ‘심판하는 물’은 신이 하늘을 잡아먹는 물에게 지어준 이름이었다.
“그 힘이 아주 막강했다고 했거든. 신의 사랑을 받았으며, 무엇이든 심판하는 아주 강력한 창이라고 말이야.”
케일은 하얀 별의 눈동자에 머문 탐욕을 읽었다.
“그 창의 힘이 심판하는 물이지? 내 것을 네가 가져갔구나. 그런데 이제 와서 내 땅의 힘도 탐내?”
그 탐욕은 서서히 분노로 바뀌어갔다. 하얀 별이 이다지도 케일에게 노골적인 분노를 드러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얀 별은 케일에게 말했다.
“덤벼라.”
케일은 입술을 깨물며 곧바로 두 손으로 창을 잡았다. 수창이 점점 더 길어지며 창끝의 물이 거세게 회전했다.
휘이이잉- 바람이 케일의 몸을 더욱더 꽁꽁 감쌌다.
하얀 별은 그런 케일의 생각을 다 안다는 듯이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창을 든 자세가 별로군. 무술을 좀 배워야겠어?”
자세를 잡은 하얀 별에게서 거센 불길이 피어올랐다.
“물이면 불을 이길 것 같지? 하지만 내 불은 재해와 하나가 된 불. 그저 물로는 못 이겨.”
“내가 언제 힘 하나만 쓴댔지?”
순간 케일이 내뱉는 말에 검을 쥐고 있던 하얀 별의 기세가 조금 멈췄다.
“뭐?”
되묻는 하얀 별을 향해 케일은 한숨처럼 내뱉었다.
“내가 지금껏 그냥 창 하나 들고 얘기 듣는 것만 한 줄 알아?”
케일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그 순간, 하얀 별은 낯선 소리를 들었다.
쿠웅.
거대한 진동과는 멀었지만, 그래도 땅이 울리는 소리였다.
쿠웅, 쿵.
동서남북. 방향을 가늠할 수 없게 사방에서 울림이 퍼져 나왔다.
파직.
그 순간, 누구도 듣지 못할 미세한 소리가 땅 표면에 흘러나왔다. 땅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아래에서부터 땅이 뚫리고 있었다.
제 앞을 가로막은 것들을 다 잡아먹으며 맹렬하게 다가오는 붉은 파도 앞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케일의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절할 것 같은데.
-잔말 말고 빨리 땅이나 제대로 뚫어! 이 짱돌아!
무서운 짱돌과 하늘을 잡아먹는 물의 대화가 케일의 머릿속을 채웠다. 쿵. 쿵. 그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설마 땅의 힘을-”
놀라 중얼거리는 하얀 별에게 케일은 삐뚤어진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설마는 무슨 설마. 그 설마가 맞다, 이 자식아!
콰직, 콰지직.
작은 소리와 함께 구멍이 뚫린 땅. 그 사이로 미세한 물줄기가 고인 순간.
콰아아앙! 콰앙! 콰아앙!
사람들은 사방에서 밤을 깨우는 듯한 거대한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동서남북에서 치솟아 오르는 물줄기를 보았다.
케일은 하얀 별을 띠겁게 쳐다봤다.
재앙을 만든다고?
“재앙은 얼어 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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